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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문학에 빠진 명품 브랜드들

오한별 객원기자

2025. 08. 11

프라다가 소설을 쓰고, 발렌티노가 러브 레터를 보내고, 샤넬은 여류 작가들을 후원한다. 럭셔리가 선택한 새로운 언어는 바로 문학이다.

프라다의2025 S/S 캠페인‘Acts Like Prada’.  @prada

프라다의2025 S/S 캠페인‘Acts Like Prada’. @prada

최근 몇 년 사이 명품 브랜드들이 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단편소설을 쓰거나, 매장에 서점과 카페를 들이고, 공간을 도서관처럼 꾸미는 브랜드도 있다. 화려한 이미지 대신 문장을 앞세우며 감성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유행한 ‘텍스트 힙’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짧은 글귀를 활용한 굿즈나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책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형성되는 가운데 문학은 다시 주목받는 문화 코드가 됐다.

출판 시장도 이를 증명한다. 2024년 미국에서는 7억8000만 권이 넘는 인쇄 서적이 판매됐고, 국내에서도 올해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 사상 초유의 흥행을 기록했다. 인터넷 예매만으로 도서 전량이 매진되었고, 부스 신청 역시 조기에 마감돼 참여하지 못한 출판사들도 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출판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논의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리며 문학에 다시금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진정성이 있고 문화적인 방식으로 소비자와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자 브랜드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생로랑의 캠페인 패션 필름. 클로에 세비니, 조이 킹, 샤를로트 갱스부르 등 초호화 배우들이 등장했다. SAINT LAURENT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생로랑의 캠페인 패션 필름. 클로에 세비니, 조이 킹, 샤를로트 갱스부르 등 초호화 배우들이 등장했다. SAINT LAURENT

문학으로 연결되는 컬렉션

프라다는 이전부터 문학을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새로운 축으로 삼고 있다. 단순한 문화 후원을 넘어, 문학을 통해 브랜드의 감성과 세계관을 보다 깊이 있게 구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프라다는 이미 ‘프라다 저널’이라는 문학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접근을 시도한 바 있다. 전 세계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이 공모전은 일상 속 이미지를 탐구하고, 글쓰기로 그 의미를 재구성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2025 S/S 캠페인 ‘Acts Like Prada’는 그 정점에 있다. 배우 케리 멀리건이 주연을 맡고,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가 캠페인 속 여성 캐릭터 10명을 위한 단편소설을 집필했다. 번역가, 인형술사, 사진작가 등 다양한 서사를 지닌 이 인물들은 프라다 컬렉션을 입고 각자의 이야기 안에서 생동감을 얻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Ten Protagonists(10명의 주인공)’는 일부 부티크에서만 한정 판매돼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지와 서사가 맞닿는 지점에서 프라다는 문학을 가장 프라다다운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CHANEL

CHANEL

샤넬과 생로랑은 문학을 브랜드의 정체성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소재로 삼는다. 특히 샤넬은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생전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 장 콕토 등과 교류했던 문학적 유산을 바탕으로 2021년부터 ‘Les Rendez-vous littéraires rue Cambon(깜봉가에서의 문학적 만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 작가, 학자, 예술가들과의 대담과 팟캐스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신진 여성 작가를 위한 문학상도 신설해 문학과 브랜드 철학의 연대를 더욱 확장 중이다.



생로랑은 창립자 이브 생 로랑이 20세기 문학의 초석을 닦은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열렬한 팬이었던 만큼, 브랜드에도 문학적 감수성이 깊이 배어 있다. 최근에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캠페인 패션 필름을 공개하며 고전문학의 정서를 브랜드 미학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두 브랜드는 문학을 일회성 장치가 아닌 브랜드의 세계관을 내면에서부터 단단히 받쳐주는 문화적 기반으로 삼는다.

@miumiu

@miumiu

출판부터 협업까지 브랜드를 경험하는 다채로운 방법

발렌티노와 반클리프아펠은 출판사와 협업해 문학 콘텐츠를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발렌티노는 뉴욕의 독립 출판사 드림 베이비 프레스(Dream Baby Press)와 손잡고 작가들의 손 글씨 러브 레터를 일부 부티크에 전시하고, 직접 가져갈 수 있도록 배포했다. 코코 멜러스, 제리 스탈 등 참여 작가들은 브랜드의 무드에 맞는 ‘사적인 서사’를 써넣으며 문학과 패션의 교차점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francomariariccieditore

@francomariariccieditore

발렌티노는 작가 러브레터 전시를, 반클리프아펠은 고전문학 시리즈를 통해 문학을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valentino

발렌티노는 작가 러브레터 전시를, 반클리프아펠은 고전문학 시리즈를 통해 문학을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valentino

반클리프아펠은 이탈리아 출판사 프란코 마리아 리치(Franco Maria Ricci)와 함께 ‘Dédale(데달)’이라는 문학 시리즈를 론칭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슈테판 츠바이크의 ‘보이지 않는 소장품’ 등 주얼리와 수집의 세계를 주제로 한 고전문학을 다국어로 재출간했다. 이 협업은 브랜드가 문학을 얼마나 공들여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문학 작품을 직접 만들거나 출판하지 않더라도 브랜드 고유의 감각으로 문학을 선별하고 제안하는 방식도 눈길을 끌고 있다. 미우미우는 매년 여름 ‘서머 리즈(Summer Reads)’ 팝업을 통해 여성 작가들의 고전을 브랜드 포장지로 감싼 북 큐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부는 북 클럽 형태로 운영되며, 문학을 여성의 정체성과 감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현재 럭셔리 브랜드가 문학을 선택한 이유는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이미지 대신 깊고 오래 남는 서사로 연결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소비자는 브랜드가 제안하는 서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단순히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살아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럭셔리가 제안하는 사치는 그런 것이다.

#프라다 #샤넬 #문학 #여성동아

사진출처 유튜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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