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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젠 남이 아닌 제 자신을 위해 연기해요”

첫 스릴러물에 도전한 37년 차 배우 전도연

정세영 기자

2025. 12. 24

배우 전도연이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로 스크린 앞에 섰다. 작품을 통해 숱한 인생을 보여준 그는
“시간에 갇혀 안주하고 싶지 않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인물은 단조로웠던 적이 없다. 사랑스럽게 웃다가 순간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돌변하고, 애절한 눈빛을 취하다가도 찰나에 섬뜩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러블리한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 드라마 ‘일타 스캔들’부터 킬러로 분한 영화 ‘길복순’, 복수에 사활을 건 전직 경찰을 연기한 영화 ‘리볼버’까지. 흡입력 있는 연기로 장시간 작품을 이끌어가는 그를 보노라면 넋을 놓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전도연이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시청자 앞에 섰다. 넷플릭스 시리즈물 ‘자백의 대가’에서 주연을 맡아 김고은, 박해수, 김선영 등의 실력파 배우들과 호연을 펼쳤다. ‘자백의 대가’에서 전도연은 남편을 죽인 용의자로 지목된 ‘안윤수’로 등장한다. 극 중 미술 교사인 윤수는 경찰서에 불려가면서도 화려한 옷차림과 자유분방한 태도를 취한다. 취조실에서도 미소를 보이며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모습에 수사 당국의 의심을 받는다. 전도연은 윤수를 미스터리하면서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역시 전도연’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자백의 대가’는 윤수와 마녀로 불리는 의문의 인물 모은(김고은)이 교도소에서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장르적인 재미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2025년 12월 5일 공개 이후 22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2위에 등극했다. 또 대한민국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9개국에서 TOP 10 리스트에 오르며 세계적인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데뷔 37년 차에 처음으로 스릴러물에 도전한 전도연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헝클어진 긴 파마머리였던 윤수의 헤어스타일은 어느새 단정한 단발 커트로 바뀌어 있었다. 

2명의 여자 주인공이 극을 이끄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제예요.



‘자백의 대가’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두 여자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이에요. 아울러 최근 여성이 이끄는 작품이 늘어나는 흐름이 반갑고요. 사실 여자 주인공이라는 점 자체가 화제가 된 것은, 그간 얼마나 많은 작품이 남성 중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메인인 스토리가 남성 중심의 서사와 특별히 구분되는 게 없음에도 말이죠. 시청자들에게 남성만 중심에 선 이야기가 아닌 좀 더 다양한 스토리를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백의 대가’는 원래 다른 배우가 윤수 역을 맡을 것으로 보도됐던 작품이에요. 차선으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대본이 흘러서 결국 나한테까지 왔구나’ 싶었죠(웃음). 캐스팅이라는 건 늘 순위가 존재해요. 제가 항상 일순위일 순 없죠. 차선이 선택되는 경우도 많아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아요. ‘자백의 대가’는 드라마 ‘굿와이프’를 연출했던 이정효 감독님에 대한 믿음으로 선택했어요. ‘굿와이프’는 개인적으로 정말 아끼는 작품이거든요. 종영 후에도 이정효 감독님과 다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자백의 대가’를 통해 이루게 됐네요. 

촬영은 어땠나요. 

이렇게까지 고생스러울 줄 몰랐어요(웃음). 대본을 4회까지만 받고 결정했거든요. 4회 이후의 회차를 촬영할 때는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꽤 있었어요. 달리는 장면이 정말 많았거든요. 편집돼서 짧게 보이지만 장소를 바꿔가며 며칠을 냅다 뛰었어요. 비 오는 날 얇은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신은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많은 사랑을 받으니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윤수는 어떤 인물로 와닿던가요. 

사람들의 편견에 갇힌 안쓰러운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수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남편을 잃은 아내와 상반된 이미지라는 이유로 사건의 가해자로 몰려요. 많은 사람의 편견 속에 갇힌 인물이죠. 사실 처음에는 윤수가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외면적으로 보이는 특성이 많지 않거든요. 때문에 윤수의 이면을 탐구하며 캐릭터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죠. 가족 없이 자라 가정에 대한 집착은 강하지만, 모성애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캐릭터를 구체화했죠. 

다양한 이면을 가진 윤수를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극 초반에는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로 몰리면서 절규하는 모습을, 후반에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려내야 했어요. 각 상황에 따라 표출되는 윤수의 행동과 감정을 현실감 있게 보여줘야 했죠. 또 여성 서사를 그리는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는 모성애 부분도 고민의 지점이었어요. 윤수는 단순히 모성애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기에 캐릭터가 더 복잡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이 모든 고민을 해결하려면 ‘윤수가 왜 그럴까’에 대한 설득력이 필요했죠. 그래야 시청자들의 집중력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부분인 감정, 디테일 등에 좀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극 초반에는 윤수를 범인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감독님이 초반에는 윤수가 범인으로 비쳤으면 하셨거든요. 저 역시 이러한 혼란을 주면 시청자들이 범인을 찾아가는 데 더 흥미를 가질 것 같았죠. 그래서 연기할 때 이러한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신경을 썼어요. 편집 과정에서 조금은 걷어졌고요. 아마 감독님께서 윤수까지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윤수가 범인으로 예상되는 흐름에서는 그가 주도면밀해 보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윤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감정적이고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누리죠. 집에 라면이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살림에는 큰 관심이 없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고 촬영한 건가요.  

전혀 몰랐어요. 촬영 도중에도 감독님께서 범인을 안 알려주셨거든요. 개인적으론 장정구(진선규) 변호사를 범인으로 의심했어요. 윤수의 곁에서 밑도 끝도 없는 친절과 호의를 베푸니까요. 그러다 나중에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지목돼서요. 지인들은 소름이 끼쳤다고 하더라고요.  

‘자백의 대가’는 윤수(전도연)와 모은(김고은)이 교도소에서 자백을 건 거래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자백의 대가’는 윤수(전도연)와 모은(김고은)이 교도소에서 자백을 건 거래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고은, 연기 집중력 대단해요”

김고은 배우는 도연 씨를 오랫동안 롤 모델로 꼽아왔어요. 도연 씨가 이 작품을 한다고 해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할 정도로요. 실제 두 사람의 합은 어땠나요. 

고은이는 2015년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처음 만났어요. 고은이가 ‘자백의 대가’에서 모은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반가우면서도 궁금하더라고요.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얼마나 단단한 배우가 됐는지 보고 싶었거든요. 생각보다 함께하는 신이 많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정말 든든했어요. 호송차 안에서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는 고은이가 리드하면서 촬영을 이끌어가기도 했고요. 감정연기를 하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역할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집중력 있게 끝까지 모은을 이끄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러다 다치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고요.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후배들에게 칭찬을 잘 해주는 편인가요.

선후배는, 선배가 뭔가 가르침을 주고 후배는 일방적으로 받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죠. 제가 칭찬에 인색한 편은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선 사실 선후배가 없어요. 그러니 제가 감히 누군가의 성장에 대해 평가할 순 없는 것 같아요. 

교도소 동료인 왈순으로 분한 김선영 배우의 감초 연기가 드라마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했어요. 현장에선 어땠나요. 

미친 사람 같았어요(웃음). 대본 리딩할 때 스케줄 때문에 김선영 배우가 참석을 못 했어요.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것 같아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역시나 현장에서 기대 이상으로 부응하더라고요. 함께 연기할 때는 계속 깜짝 놀랐어요. 대사의 80~90%가 애드리브였거든요. 덕분에 무겁고 진지한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든 것 같아요.  

작품을 본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너무 재미있다” “한번 보면 멈출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은 “그간 전도연의 못 보던 표정을 발견했다”예요. 윤수의 절박함을 표정으로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얼굴 근육을 사용했거든요. 촬영 중에도 감독님이 “선배님, 너무 인상을 쓰는 거 아니냐”며 걱정할 정도였죠. 제 의도가 시청자들에게도 잘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해요.

전도연은 세월의 연기 내공으로 모든 역할을 쉽게 소화할 거라는 편견도 있어요.

그런 생각도 편견일 수 있어요. 어렸을 때는 사람들의 시선에 많은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진 않지만요. 그래도 이제는 ‘남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남들을 만족시키는 건 쉬울 수 있어요. 보이고 싶은 부분만 보이면 되니까요. 하지만 제가 저 자신을 속일 순 없잖아요.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요. 연기도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함이 아닌 저를 채우는 작업 중 일부라고 생각해요. 

차기작은 정해졌나요.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 ‘가능한 사랑’이요. 이창동 감독님과 함께한 결과물은 늘 예측이 어려워요. 제가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고요. 저는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정말 좋아해요. 작품 제안을 받기 전에 사석에서 감독님을 뵀을 때 “저를 캐스팅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꼭 찍어주세요”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인지 감독님의 작품을 하게 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출연 제안이 왔을 때 캐스팅이 엎어질까 봐 대본을 빨리 달라고 할 정도였죠(웃음). 현장도 즐거워서 정말 감사하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요. 

정통 멜로드라마요. 저는 늘 멜로라는 감정에 끌리거든요. 얼마 전 변성현 감독이, 홍경 배우가 저와 멜로를 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캡처해서 보여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직도 20대 배우가 선배님과 멜로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말하는데, 뭉클했어요. ‘자백의 대가’가 끝나니 따뜻한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요즘은 멜로가 희귀한 장르가 돼버려서인지 더더욱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전도연 #자백의대가 #넷플릭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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