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사람만은 아닌 ‘인사 팀장’
이현균은 연극으로 연기 내공을 다져왔다. 2009년 연극 ‘언니들’로 데뷔한 이후, 2015년 연극 ‘뽕짝’으로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2013년 영화 ‘감시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그는 이후 오랜 공백 끝에 영화 ‘1987’에서 의사 오연상 역할을 맡으며 매체 연기에 본격적인 물꼬를 트게 됐다. 2021년 영화 ‘강릉’에서는 깡패 조직의 수장을 맡았고, 2025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서는 강약약강의 부인과 교수 조준모를 연기했다. ‘김 부장 이야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이제부터가 전성기다.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나긋나긋하지만 얄미운 인사 팀장 ‘최재혁’ 역을 맡은 이현균.
방영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졌어요. 식당에 가면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특히 여성분들이 “남편이 너무 좋아해요”라고 말씀하세요. 남성분들이 유독 공감하신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분이 공감하는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 부장 이야기’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조현탁 감독님이 제가 출연했던 영화 ‘강릉’을 보시고 캐스팅 제안을 주셨어요. 조직의 보스 역할이었는데, 그때 보여준 무섭고 날 선 모습이 인사 팀장 ‘최재혁’과 잘 맞을 것 같다고 판단하셨대요.
대본 속 ‘최재혁’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처음엔 굉장히 강한 사람으로 보였어요. 그런데 대본을 곱씹고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이 사람도 결국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에 닿았어요. 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지점을 살려 캐릭터를 만들어갔어요.
“진짜 인사 팀장 같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회사 생활 경험이 있나요.
전혀 없어요. 레퍼런스로 삼은 것도 없고요. 다만 진짜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아쉬움 없이 보셨으면 했어요. 인사 직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잖아요. 그런 일을 소화하는 것이 나쁘게만 비치진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죠. 이를테면 김낙수(류승룡)에게 해고 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장면에서도 “이거 진짜 쉬운 일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부드럽게 설득하려고 하죠. 그저 나쁜 사람으로만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시청자로서는 다소 얄밉게 느껴졌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어요(웃음). 대본에도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 있었고요. 또 약 올리는 듯한 대사도 있었죠. 저도 대본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좀 얄밉네’라고 느꼈거든요.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같아요. 아무리 부드럽게 상쇄해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었죠.
특히 어떤 부분이 얄밉게 느껴졌나요.
김낙수가 자기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가 “당신의 능력을 보여줘”라고 노래하는 장면이요. 대본을 읽을 때부터 부담이 컸어요. 너무 촐랑거리는 모습으로 보일까 봐 걱정됐죠. 그래서 촬영할 때는 그 대사를 반복하면서 목소리를 점점 줄이고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톤을 조절했어요. 낙수가 “네,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 뒤에 제가 덧붙인 “그런 게 아니었는데…”는 애드리브였고요. 최대한 힘을 뺐는데도 어쩔 수 없이 얄밉게 보이더라고요.
특히 “형, 왜 이렇게 자아가 비대하냐”며 낙수와 싸우는 장면이 화제였어요.
사실 그게 저의 첫 촬영 장면이었어요. 호흡도 길고 격한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걱정이 많았죠. 집에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현장에서 류승룡 선배랑 연기하니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즉흥적인 교감이 좋았고, 촬영이 즐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첫 촬영을 잘 마치고 나니까 ‘최재혁을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류승룡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이번이 두 번째 호흡이에요. 개봉 예정인 영화 ‘비광’에서 처음 함께했는데 그땐 너무 긴장했었죠. 이번엔 더 편하게 호흡을 나눌 수 있었어요. 류승룡 선배는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극 중에서 류승룡 선배와 유승목 선배님 두 분만 만나거든요. 드라마에는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데, 김낙수는 그 인물들을 다 만나잖아요. ‘김낙수’의 캐릭터는 유지하면서 다양한 인물과 호흡을 잘 살리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습니다.

(왼쪽부터) 배우 이현균은 2025년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와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그는 과거 ‘남자충동’ 등 다양한 연극으로 탄탄한 연기 내공을 쌓았다.

영화 ‘1987’에서 ‘오연상’ 역을 맡으며 매체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화 ‘1987’로 눈도장
연기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무엇인가요.고1 여름까지는 농구 선수 생활을 했어요. 농구에 소질이 없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모가 당시 사촌 누나가 다니던 계원예술고등학교 영화과에 입학해서 영화 만드는 기술을 배워보라고 권했어요. 막상 입학해서는 영화과 친구들보다는 연기과 친구들과 더 가깝게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극을 시작하게 됐죠.
연극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거의 쉴 틈 없이 연기를 해왔지만 연극만 했을 때는 금전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연기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스스로 재미있다고 우기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웃음). 즐거운 일을 하니까 어렵진 않았죠.
영화 ‘감시자들’로 매체 연기에 도전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감시자들’의 조의석 감독님이 극단 ‘여행자’에 관심이 많으셨대요. 제가 마침 여행자와 작품을 함께하던 시기라 운 좋게 단역 기회를 얻었죠. 제가 매체 연기를 원해서 먼저 찾아갔던 건 아니었어요.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영화 ‘1987’인가요.
그렇죠. 덕분에 소속사도 생기고 매체 연기도 꾸준히 하게 됐으니까요. ‘1987’ 영화 촬영 1년 전쯤부터 매체 연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 제작사에 프로필을 돌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락이 한 번도 안 오더라고요. 그때 제 프로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고민하던 차에 ‘1987’에 출연하게 됐어요.
캐스팅 과정이 상당히 치열했다고요.
오연상 역할에는 이미 많은 배우가 물망에 오른 상태였어요. 당시 ‘1987’의 조감독님이 제가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제 이미지가 오연상 선생님과 닮았다고 느끼셨대요. 그때 제가 출연 중이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제작사를 통해 연락이 왔고, 1차와 2차 오디션을 차례로 봤죠. 이후엔 추가로 영상을 두 번 더 촬영해 보내며 결과를 기다렸어요. 그렇게 마음 졸이던 끝에, 영화 고사를 지내기 약 2주 전에 최종 캐스팅 소식을 들었습니다.
실제 인물을 연기하는 만큼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촬영장도 오랜만이라 긴장됐고요. 다행히도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잘 주셔서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박종철의 고문치사) 양심선언하는 장면은 재촬영했는데, 첫 촬영 때는 제가 가진 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어요. 다시 찍으면서 더 생생한 표현이 나왔고, 그 덕분에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블루칼라도 잘할 수 있어요”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서도 의사 역할을 맡으셨어요.네, 좀 화가 많은 의사였죠(웃음). 그렇지만 저는 화를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 구축을 할 때 이면도 구체적으로 구성해야 표현을 편하게 할 수 있거든요.
배우로서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앞서 했던 작품과는 겹치지 않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은 엘리트 계층이거나 화이트칼라 직군을 주로 연기했거든요. 그래서 좀 더 소시민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블루칼라도 잘할 수 있습니다(웃음).
바쁜 일정 속 연애는 어렵겠어요.
지금 연애를 하고 있진 않아요. 다양한 작품을 하느라 바쁘긴 한데, 그것 때문에 연애를 못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는 ‘좋은 사람을 못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뒤돌아보니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요.
아직 어떤 배우로 남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어요. ‘어떤 배우’로든 기억되기 위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연기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에요.
#인사팀장 #이현균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SLL 드라마하우스 바로엔터테인먼트 빅보스엔터테인먼트 JTBC tvN 프로스랩 영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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