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남겨진 가족들은 당황했다. 이재만 변호사와 아내 조이향 교수(국제대학교 엔터테인먼트학부 겸임교수)는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한국융합콘텐츠컴퍼니를 운영하며 평창군 홍보대사를 역임할 당시, 이재만 변호사는 조 교수가 강원도에서 일하고 있으면 늘 직접 데리러 갔다. 남편 없는 삶을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조 교수는 1년 6개월 가까이 암흑 속에 살았다. 밤에는 불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 낮이 되면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일하러 가는 이중생활을 남몰래 해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지인들과 아들의 도움으로 일상을 회복했다. 현재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국제대학교에 출강하는 동시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온라인 과정에 개설된 웰라이프 경영 디렉터 겸 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ADEC(미국 죽음교육 및 상담협회)에서 공인한 죽음교육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조 교수가 공부한 ‘사나톨로지(Thanatology·죽음학)’는 삶과 죽어감에 대한 학문이다.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아이러니하다. 그토록 사별로 힘들어했으면서 왜 더 깊게 죽음을 파고드는 걸까. 이재만 변호사가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 청파에서 조이향 교수를 만났다. 눈에 띄는 핑크색 셔츠를 입고 나타난 조 교수는 “한동안 밝은색은 쳐다보지도 않다가 다시 입어봤다”며 웃었다. 다섯 번의 무채색 겨울을 나고서야 그녀의 시간은 다시 핑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별로 인한 몸과 마음의 고통 극복하기까지
오는 5월이면 5주기예요. 지금은 마음이 안정됐나요.요즘도 남편 소식을 모르는 분들한테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와요. 워낙 건강하게 활발히 활동했으니까요. 청파는 이제 고유창 변호사가 이끌고 있지만, 제 사무실이 여기 있다 보니 같이 일했던 분들이 이따금 남편과의 추억을 얘기해주곤 합니다. 그렇게 불쑥불쑥 남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당연히 그립죠. 그리울 때면 시를 써요. 어디든 털어놓으면 괜찮아지거든요.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다 보니 더 충격이 컸겠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영정 사진도 없었어요. 장례를 마치고 둘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 불도 켜지 않고 지냈어요. 혼자 어둠 속에 고요하게 있는 게 편했거든요. 아마 그때 저를 봤던 분들은 지금 제 이야기에 놀랄 거예요. 그때도 수업을 하러 나갔지만, 사실 제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어요.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단기기억 상실과 미각 소실, 병명을 모르는 통증에 시달렸죠. 온몸을 바늘로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 때문에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옷 입는 데만 2시간씩 걸렸어요. 무용을 전공해 7cm 힐을 신고도 뛰어다닐 정도로 몸이 가뿐하던 제가 오죽하면 플랫 슈즈만 3년을 신었다니까요.

아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삼대독자인 데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자신이 먼저 간이식을 해주고 싶다고 나섰어요. 수술이 잘됐고 일상으로 돌아갔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니 아들 마음이 어땠겠어요. 내색 한번 안 하던 아이가 하루는 나 몰래 “아빠, 내가 간이식까지 해줬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갔어”라면서 울더라고요. 아들한테는 미안한 게 많아요. 이식 수술이 끝난 후 마취에서 깨어날 때 아들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아빠를 보낸 후 제 말에 무조건 알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죠.
지금은 교수님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나요.
요즘은 다시 힐을 신어요. 입맛도 돌아왔고요. 참 신기한 게 제가 미각이 100% 돌아오지 않은 사실을 모르고 지냈더라고요. 어느 날 새벽에 물 마시러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남편이 생전에 좋아하던 복숭아가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날따라 먹고 싶어서 한 입 깨물었는데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미각이 완전히 돌아오고 컨디션도 나아졌어요. 어느 날 보니까 제가 불을 켜고 지내고 있더군요. 요즘은 죽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죽음을 연구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몸이 50% 정도 회복됐을 때 오이코스대학교 김종인 총장과 박흥식 학장이 “웰라이프 경영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때 ‘나는 기획자니까 내가 경험을 통해 느낀 감정을 삶과 연결해 전문적인 커리큘럼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엇보다 저를 위로해준 분들이 있어요. 남편이 세상에 없는데도 특별한 날마다 선물을 보내고, 만나면 제 남편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다며 눈물을 보여요. 신지영·임병식·조수진·조대원 교수, 고유창·이원곤·서상수 변호사, 박광현 극동방송 부사장님 등 정말 고마운 분들이에요.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내가 살아야겠다. 살아서 내가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오랜 투병을 하면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죽음을 맞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면 죽은 이 곁의 산 사람은 슬픔과 그리움,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요. ‘떡볶이 먹고 싶다 했을 때, 살찐다고 하지 말고 실컷 먹게 해줄걸’ ‘어디 가자고 할 때 같이 갈걸’ 이런 별거 아닌 죄책감에 시달리는 거예요. 또 외롭고 그립죠. 결국 남은 사람들은 죄책감과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합니다. 죽음을 맞는 연습을 한다면 슬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슬픔을 알아야 사랑도 할 수 있어요. 슬픔은 사랑을 전제로 하니까요. 저는 슬픔이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고, 자기 자신한테 솔직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사랑 예찬론자예요.

결혼하고 떨어져 지낸 날이 딱 하루뿐이라는 부부. 어딜 가든 함께했다.
“엄마 죽으면 청바지 입히고 커피 한 잔 줄래?”
아내로서 지켜본 이재만 변호사님은 어떤 분이었나요.저는 누가 물으면 ‘기네스북’에 오를 사랑을 했다고 얘기해요(웃음). 그만큼 결혼 생활 27년 내내 죽도록 사랑했어요. 남편은 시를 몰라도 제가 읽어주니까 가만히 듣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제가 토라져 “나한테 사과해”라고 하면 사과 한 알을 사 오거나 사과를 그려줬어요. 일본 여행 갔을 때 제가 맛있다고 한 드립커피를 여행 트렁크에 꽉 차게 사 오다가 입국할 때 불법 수입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죠(웃음).
사랑 예찬론자라면 재혼할 생각도 있나요.
재혼과 관련해 아들이 지난해 해준 얘기가 있어요. 남편이 아들에게 유언이라면서 저 모르게 남긴 말인데, “엄마가 노숙자든 사기꾼, 거렁뱅이(거지)든 결혼하겠다고 하면 반대하지 말아라. 엄마가 선택했을 때는 그 사람에게 무언가의 사랑이 있어서일 테니 너는 축복해주고 아버지로 받아들여라. 재혼하라고 해라” 했대요. 그 얘기를 듣고 남편이 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했다는 말로 해석했어요. 재혼은 모르겠어요. 하지 않겠다고 단언하는 것도 아닙니다. 설레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성은 열어두겠지만, 남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무척 솔직하시네요.
저는 기독교인이에요. 그러면 안 되지만 여러 방법으로 죽는 연습을 많이 생각했어요. 이렇게 힘들면서도 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숨겼던 이유는 아들과 제 명예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슬픔은 마침표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털어놓고 마침표를 찍으면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나, 사랑하고 있나요?’란 책을 쓰고 있고, 또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처럼 사별했거나 이혼한 사람, 비혼주의인 사람들이 새 삶과 사랑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사업도 준비 중이에요. 회사명은 ‘이제만남’으로 하려 해요. ‘내 속에 있는 나를 이제 만나 진짜 나를 찾으라’고요. 덕질을 하든 취미 생활이든, 뭐든 사랑하며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삶을 살면 좋겠어요.
교수님이 생각하는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람답게 살다가 죽고 싶어요. 사는 동안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 더 좋겠고요. 꼭 기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돼요. 저는 학생들에게 인생 이야기를 해줘요. 엔터테인먼트학부생들은 감정을 잘 알고 표현할 줄 알아야 콘텐츠로 만들 수 있잖아요. 중간고사에 사랑과 행복, 죽음에 대한 문제를 낸 적이 있는데, 의외로 죽음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저는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평소 좋아하던 청바지를 입히고 향수 뿌려주고 커피 한 잔 달라”고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죽음 파티도 해보고 싶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담아두기만 했던 고마운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그들이 더 열심히 살 동력이 되지 않겠어요.
#죽음 #사랑 #결혼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조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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