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효와 김영호는 둘 다 방송가에 소문난 애처가이자 모범가장이다.
인기리에방영 중인 SBS 금요드라마 ‘사랑한다 웬수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유부남이 나온다. 재벌 외동딸과 결혼해 부와 사회적 명성을 누리고 있는 오종세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5년째 동거하고 있는 권달평 두 사람이다. 하지만 두 부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반대다.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오종세는 아내에게 애인을 만들어줘 이혼을 하려는 기발한 음모를 꾸미는 반면 보통사람들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권달평은 동거녀와 결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사랑이 없는 부부와 사랑이 넘치는 동거커플의 대비를 통해 이 시대의 부부상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는 것.
오종세와 권달평으로 각각 열연하고 있는 탤런트 김영호(38)와 권해효(40)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사이. 하지만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어 연기하는 게 더욱 즐겁다고 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유부남이기도 한 두 사람이 만나 실제 결혼생활과 결혼 후 남자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무척 바빠 보였다. 김영호는 9월부터 방영하는 SBS 사극 ‘서동요’에 출연, 한창 촬영 중인데다 아버지의 부정을 담은 영화 ‘아빠가 있다’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곧 촬영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권해효 역시 얼마 전 연극 ‘아트’ 공연을 끝낸 데 이어 탤런트 최진실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 캐스팅돼 한창 촬영 중이라고 한다.
권해효(이하 권) 김영호씨와는 처음으로 작품을 하고 있는데, 전부터 꼭 한번 같이 일하고 싶었어요.
김영호(이하 김) 저도 그랬어요. 연기를 한다고 처음 방송국을 드나들 때 “운동선수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잘 생긴 배우들만 연기할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연기자가 될 수 없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때 한 영화에서 얼굴은 정말 아닌데 연기를 참 잘 하는 배우가 있는 거예요. ‘아,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갖게 한 사람이 바로 권해효씨였어요.
권 지금 칭찬이죠?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찜찜하지(웃음). 저도 영호씨 작품을 보고 ‘저 친구 참 괜찮다’는 생각을 한 게 배우들이 보통 폼 잡는 걸 좋아하는데 영호씨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같이 연기를 하면서 보니 ‘역시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구나’ 싶어서 더 좋았어요. 제가 술을 좋아하거나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었으면 벌써 친해졌을 텐데….
김 저도 촬영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는 스타일이라 깊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손현주와 김유석, 그리고 권해효씨예요. 어떤 역할이든 잘 소화해내니까요.
권 그건 진짜 칭찬 같다(웃음). 영호씨도 어떤 역할을 해도 잘 어울려요. ‘야인시대’ 이정재도 그렇고, 지금 드라마에서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어리버리하게 꼼수를 부리는 오종세 역할도 그렇고…. 그래서 실제 성격은 어떨까 궁금해요.
김 아마 오종세 같은 성격만 있다면 집사람에게 벌써 ‘아웃’되었겠죠(웃음). 원래 성격은 소심하고 말도 잘 못하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연기를 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재미없는 농담도 하고요.
살림과 육아로 무대 떠난 아내에게 미안함 느껴
권 언제 결혼했어요?
김 뮤지컬하면서 아내와 만나 1년 사귀다 95년에 결혼했어요. 2년 전에 늦둥이를 낳아 딸만 셋이에요.
권 전 94년에 했으니까 벌써 11년이 됐네요. 대학시절에 같이 공연하면서 만나 사귀다가 결혼한 아내는 2001년 가을까지 무대에 서다가 둘째 낳고는 쉬고 있어요.
김 우린 공통점이 많네요. 같이 공연을 하던 배우와 결혼했고, 촬영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는 가정적인 남편이고…(웃음).
권 전 이해할 수 없는 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한다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서 휴일에 낚시나 골프를 하러 가는 남자들이에요. 저는 남자가 집에 있으면서 꼭 뭘 같이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가족과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뒹굴더라도 집에 있어야죠.
김 해효씨는 정말 가정적인 것 같아요. 가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내랑 친구처럼 사는 거 같아요.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편인가요?
권 전에는 아내를 배려하기 위해 집안일도 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마음뿐이 돼가네요. 영호씨는 어느 잡지에서 보니까 가족을 위한 요리도 하던데?
김 저도 4년 전까지는 설거지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다 했어요. 놀고 있을 때라 그거밖에 할 게 없었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바빠지면서 못하게 되더라고요. 아내에게 조금 미안하죠.
권 일이 많아지기도 하고 수입이 늘면서 등한시한 건가요?
김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 날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쉬는 날은 거의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이랑 많이 놀아줘요. 아내도 집안일 해줄 필요 없으니까 아이들 보라고 해요. 그게 도와주는 거라면서.
권 부부싸움을 한 적은 있어요?
김 가끔은 제가 혼내키기도 하고 혼나기도 하죠(웃음). 그래도 큰 싸움은 없어요.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이 안 맞아 목소리가 높아지면 누군가 먼저 ‘잠깐, 너도 이해가 안되냐?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여기서 그만하고 이따 다시 시작하자’ 그래요. 그러다 며칠 지나 눈 마주치고 씩 웃으면 또 풀어져요. 그럼 와인 한잔 마시고요.
권 우리도 부부간에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아요. 그래도 대화가 끊길 때가 있죠. 그럴 땐 아내가 편지를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둬요. 그걸 읽고 저 자신을 반성하곤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까먹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문제죠.
김 남자들은 보통 결혼한 후에 자기 인생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요.
권 글쎄…, ‘자기 인생이 사라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제 입장에서 할 말이 없어요. 저보다는 제 처가 더 그런 부분을 느낄 테니까요. 제가 미안하죠. 같은 연기자인데 제가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져 경제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내가 살림과 아이 키우는 일을 떠맡아야 했으니까요. 자기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내년엔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니까 다시 활동을 하라고 했어요. 아이는 저와 장모님이 함께 보면 되니까요.
김 제 아내도 뮤지컬을 계속하고 싶어 했어요. 지난해까지도 집에서 춤 연습을 했는데 무대에 서는 게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연출공부를 하고 싶대요. 그래서 유학을 보내려고 미리 떨어져 사는 연습을 해봤는데, 못살겠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뮤지컬 연출이냐 함께 뮤지컬이나 보러 다니자고 했어요.
혼자만의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족사랑 더 깊어져
권 결혼하기 전에 스님이 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김 맞아요. 사실 전 스님이 되려고 했어요. 출가하기 직전, 아내를 만난 거죠. 결혼을 하면서 많이 가정적이 된 것 같아요. 평범하게 살았어요. 제 색깔대로 살면 아내가 많이 힘들어하니까요. 예를 들면 저는 지금도 바람이 불면 ‘바람이 왜 불까’ ‘이 바람은 어디서 온 걸까’ 생각을 하는데 아내는 콩나물 값이나 어느 할인매장의 물건값이 더 싸다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처음엔 아내랑 소위 ‘코드’가 안 맞았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제가 맞춰가야지.
권 가정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나본데, 어떻게 극복했어요?
김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고…. 무엇보다 운동을 해요. 힘든 운동을 하면 그 순간에 많이 버려요. 몸을 지치게 해서 잡생각을 잊는 거죠. 그렇게 풀어요. 1년 6개월 전부터는 혼자 여행을 가기 시작했어요. 가방 하나 메고 혼자 떠나 짧게는 4~5일, 길게는 20일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그러면서 제 몸에, 머리에 담겨 있던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고 오죠.
권 혼자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아내가 싫어하지 않아요?
김 오히려 그동안 제가 너무 답답하게만 살았다며 좋아하던 걸요.
권 저도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면 아내는 “가고 싶으면 갔다 오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가지 못했어요. 남자가 혼자 여행을 가면 여자도 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내는 가사와 양육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 아내 친구가 파리에 있어서 내년 초에 혼자 가서 좀 쉬다 오라고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왜 혼자 가느냐, 부부가 함께 가면 더 좋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찹쌀떡과 카스테라 중에서 어느 게 좋으냐를 묻는 게 황당한 것처럼요. 서로 전혀 다른 맛이 있는 것이거든요.
김 물론 전 가족과도 여행을 많이 가요.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이 필요해요. 전 결혼 9년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혼자 간 적이 없어요. 대신 가족이 안 간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데려갔어요. 제가 가고 싶으니까요. 그러다 지난해에야 정신적으로 독립한 거예요. 아내의 남편, 아이의 아빠로만 살아왔는데 이젠 자신을 찾는 넉넉한 내 모습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와 아이들은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더 좋아졌다고 해요. 훨씬 더 잘 웃고.
권 전에는 안 웃었어요? 드라마에선 코믹한데.
김 무뚝뚝해서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이었어요. 이젠 말도 많이 하고, 바뀌었대요. 특히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어요. 아내가 선물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할 정도였죠. 그러면 전 “선물 안에 다 담겨 있다”며 얼버무렸어요. 그런데 이젠 사랑한다는 말도 잘 해요.
권 애교가 많이 늘었나봐요?
김 얼마 전 드라마에서 해효씨가 출근하러 나섰다 다시 들어온 걸 보고 지수원이 “뭘 두고 갔냐”고 하니까 “당신을 두고 갔다”고 했던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게 생각나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현관에서 주머니를 뒤지는 척 했어요. 아내가 “뭐 빼놓은 게 있냐”고 하기에 “아, 있다 있다. 당신” 그러니까 “오빠도 그런 말 할 줄 알아” 하면서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권 전 집사람과 하루 3~4통 정도 전화를 해요. 대개 저녁 먹고 들어올 거냐 정도의 간단한 내용인데, 영호씨는 누군가와 전화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색시인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김 아내와 자주 해요. 문자도 자주 보내고요. 문자도 이런 식이에요. ‘지금 비가 온다. 비는 하늘과 같아서 색깔이 없다. 내 눈에만 색깔이 보인다.’ 그러면 전에는 아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았어요. 같은 말을 해도 왜 그렇게 어렵게 하냐고 하고. 추상적인 말보다는 ‘지금 당신이 그립다’ 같은 직접적인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젠 아내도 그런 추상적인 말을 좋아해요.
나와 다른 배우자의 모습을 좋게 바라보는 게 부부사랑
권 아내가 드라마 속 하희라씨처럼 웬수 같아 보일 때는 없었어요?
김 한번도 없었어요. 지금은 내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졌고요. 그런데 아내는 “아직도 나는 당신이 익숙하지 않다. 만날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다 거짓말이에요. 어제도 일찍 끝나고 들어갔는데 잘 때까지 옆에 한번도 안 와요. 그래서 “보고 싶다고 일찍 들어오라고 해서 일찍 들어왔더니 뭐냐”고 신경질을 냈더니 집에 와도 옆에 있어주지 못하니까 일찍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놀다 늦게 들어오래요(웃음). 미안할 때가 더 많죠. 주로 아이 때문에 잠 못 자고 힘들어할 때인데, 그러면 제가 몰래 아이를 데리고 나가 소파에서 자요.
권 저도 웬수 같을 때는 없는데, 답답할 때는 있어요. 남자들은 잘못한 것을 잘 모르잖아요. 빨리 말을 해주면 같은 실수를 안 할 텐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뭐라고 그러면 제가 잘못한 걸 인정하면서도 억울한 기분이 들어요. 예를 들면 제가 집에 들어갔는데 장인어른이 안 보이면 안 계신가 보다 하고 제 방에 들어가 옷 갈아입고 씻다가 그냥 넘어갈 때가 있어요. 방에 아버님이 계시다는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내가 시집에 가서 그렇게 해볼까” 하면 억울하죠.
김 그래도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가 더 많잖아요. 전 아내가 아이들이랑 놀 때가 좋아요. 아내는 배우여서인지 구연동화를 잘 해요. 제가 볼 땐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인데, 아이들은 엄마의 구연동화를 좋아해서 아내가 아이들에게 “물을 주세요” 하면 아이들이 “네네, 선생님” 할 정도예요. 그걸 볼 때 행복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 전 처음 결혼할 때보다 지금 아내가 더 예뻐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헝클어진 모습을 보다 아내가 머리를 새로 하거나 잘 차려입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김 아내를 위해 연말쯤 콘서트를 할 생각이에요. 제가 노래를 좀 하거든요(웃음). 가까운 사람들 불러 아내 자랑도 좀 하고요. 그걸 준비하는 과정부터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권 저도 꼭 불러주세요. 며칠 전에 60대 부부 두 쌍을 봤어요. 할머니들이 젊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즐겁게 수다 떠는 모습을 할아버지들이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저 같으면 “너 취했다. 그만 가자” 하며 잡아끌었을 텐데 그 할아버지들은 아니었어요. 아내가 나와 같아지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면을 좋게 바라보는 게 진정한 부부사랑이구나 느꼈죠. 저도 그렇게 늙고 싶어요.
김 주부들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요즘 남자들이 갈수록 남자다움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가 조금만 더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대한민국 남편만큼 아내 사랑하고 가정 지키려는 남자들도 없어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남자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는 사람이고, 아내는 그 안을 채워가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아내가 같이 동그라미를 그리겠다며 간섭하면 남자는 동그라미를 제대로 그리지 못해요. 아내들이 남편을 믿고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권 일부분 공감이 가네요. 오늘 이야기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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