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신내림, 연말까지 예약 마감돼
이건주가 신내림을 받은 배경에는 자신도 몰랐던 집안 내력이 있다. 외증조할머니도 만신이었고, 할머니도 무속인을 해야할 운명이었으나 거부했던 것. 고모에 이어서 그도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는 신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운명에 따르기로 하고 지난해 8월 신내림을 받았다. 그가 차린 신당은 입소문이 나면서 이미 올 연말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그렇다고 연예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건 아니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무속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생겨나는 등 방송가의 상황도 달라졌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무속인 이건주의 무대는 더 넓어진 셈이다. 무속인과 연예인, 두 갈래의 길을 걷고 있는 이건주는 한결 여유로워진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신내림을 받은 뒤 방송 활동이 예전보다 더 활발해진 분위기예요.
신기하게도 무당이 되고 오히려 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방송 일도 훨씬 늘어났어요. 3월 11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조선 ‘아빠하고 나하고’ 시즌 2에 고정 출연자로 합류했어요. 첫 고정 예능이라 애착이 많이 가고, 작가와 PD님을 비롯한 스태프가 잘해주셔서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MC 전현무 형과 이승연 누나도 잘 챙겨주셔서 정말 고마운 마음입니다.
무속에 대한 시선이 예전과는 다른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무속인이 출연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나오고, 다양한 콘텐츠에서 무속을 다루는 걸 보면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어요. 예전보다 거부감이 줄어든 게 느껴지죠.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종교적인 부분이 있다 보니 여전히 불편하게 바라보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방송 댓글을 보면 지금도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시면 이겨낼 수 있어요” 같은 내용이 많이 달리거든요. 저는 어떠한 종교든 존중하기 때문에 그런 관심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운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이들 물어보시긴 해요. 하지만 저는 신당이 아닌 곳에서는 거의 점사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신당 밖에서는 그냥 평범한 ‘이건주’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자신의 운명이 궁금할 수 있죠. 다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해요. 아무래도 신점은 신당에서만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해 뭔가 떠오를 때는 전화를 걸어 “이건 조심해” “그거 하지 마”라고 조언한 적은 있어요.
무당이 된 후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깨끗하게 씻고 단정하게 옷을 입은 뒤 신당에 들어가서 옥수(맑은 물)를 올립니다. ‘천지인’이라고 해서 천신, 지신, 인신 신령님들께 옥수를 한 잔씩 드리는 거예요. 그다음에 초를 켜고 향을 피운 뒤 절을 올리면서 “오늘도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드려요. 이후 일정에 따라 예약 손님을 만나거나, 촬영을 하러 가죠. 일과가 끝나면 밤 12시쯤 ‘자시기도’를 올립니다. 개인적인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에요. 그리고 ‘산기도’를 가기도 해요. 산기도는 그때그때 달라요. 신아버지께서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한다. 어디로 다녀와라” 하시면 그곳으로 향하는 식이에요.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또 이끌어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루 일정이 바쁘네요.
이전까지는 촬영 있으면 현장에 가고, 약속 있으면 나가고, 비교적 자유로운 패턴으로 살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죠. 촬영이 있는 날과 없는 날이 명확히 구분되거든요. 물론 촬영이 있는 날에도 당연히 기도는 해야 하지만, 촬영이 없는 날에는 신당에서 손님 보는 데 집중하죠. 그런데 방송은 스튜디오 녹화만 있는 게 아니라 야외 촬영도 있다 보니 일주일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미운 우리 새끼’ 방송을 통해 재회한 임현식과 ‘순돌이’ 이건주(왼쪽). 이건주는 신병을 앓다가 신내림을 받았다고 한다.
우울증으로 찾아온 신병, 살고 싶어서 택한 무속인의 길
지금은 이건주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행히 그것이 순탄하게 풀리면서 잘 살고 있지만, 신내림을 받기 전에는 생과 사의 기로에 있었다. 무속인들은 신내림을 받기 전 극심한 신병을 앓는다고 하는데, 이건주 역시 ‘살고 싶어서’ 무속인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무속인 집안에서 자랐다고요.
저희 집안에 무속인 내력이 있었지만, 저는 전혀 모르고 자랐어요.외증조할머니가 만신이었고, 할아버지는 무속인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절을 지으셨다고 해요. 큰고모도 신병을 앓았는데 제가 어릴 때부터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저한테 피해가 갈까봐 신내림 받는 걸 거부하셨죠. 그래서 몸도 마음도 힘든 일이 많았고, 고생도 많이 하셨어요. 저 역시 신병을 앓았고요.
증상이 어땠나요.
신내림을 받기 2~3년 전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게 신병인지 몰랐어요. 제게는 몸이 아니라 정신으로 와서 우울증이 생기고,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어요. 살기 위해서 신내림을 받아야 했죠.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어요. 요즘 만나는 분마다 “얼굴빛이 좋아졌다”고들 하시는데, 저도 확실히 좋아진 걸 느껴요.
좋은 일도 많아졌다고요.
이상하게도 신내림 받기 전에는 일이 정말 안 풀렸어요. 잘될 것 같다가도 갑자기 일이 끊기거나, 진행됐던 일이 무산되는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 무당이 되고부터는 방송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어요. 모시는 신령님들께서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했으니,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방송을 마음껏 해봐라” 하면서 도와주시는 느낌이랄까요? 신내림을 받은 후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 섭외가 줄줄이 들어왔어요. ‘미운 우리 새끼’ ‘미스터트롯’ ‘불후의 명곡’ ‘라디오스타’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연이어 출연했죠. 그리고 ‘예능 고정 하나쯤 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아빠하고 나하고’에 출연하게 된 거고요. 뭔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감사할 뿐이에요.
신내림 받기 전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어차피 알려질 일이었고, 그걸 두려워했다면 애초에 공개하지 않았겠죠. 오히려 무당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지고 모든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렇다면 신내림을 거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우울증이나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너는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죠. 솔직히 저는 점을 보러 다닌 적도 없었고, 무속에 관심도 없었어요. 오히려 불교 신자였거든요. ‘그냥 내 마음 편한 종교를 믿고 잘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왔는데, 제 인생이 갑자기 무당이라는 방향으로 확 바뀐다는 게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과연 내가 이걸 잘해나갈 수 있을까?’ ‘이게 맞는 걸까’ 고민도 많았고요.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니까요.
무속인이 되기 전에도 ‘신기’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있나요.
눈치가 빠르고 촉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냥 ‘오늘 뭔가 이럴 것 같아’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었고, ‘저 사람 좀 이상한데?’ 싶으면 그 직감이 맞더라고요. 일적인 부분에서도 뭔가 불안해서 피했는데, 결국 제가 생각하는 게 맞았던 적도 있었고요.
신내림을 받은 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말도 안 돼. 하지 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라며 말리는 친구들도 있었고, “왠지 너 보면 그럴 것 같았어”라고 동조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상담 예약이 꽉 차 있다고 들었어요. 연예인이라 신기해서 오는 분들도 계신가요.
아직까지는 그런 분들은 없어요. 대부분 정말로 고민이 있어서 답답한 마음에 찾아오는 분들이었고, 가끔 저를 보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예약한 가족이나 지인을 따라오시는 경우는 있었어요. 저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당황스러운 경험도 있나요.
아무래도 고객은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많아요. 저희는 예약이 성사되면 공지 문자를 보내드리는 시스템인데, 그걸 안 보고 오시는 경우가 많죠. 또 예약 없이 한밤중이나 새벽에 무작정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벨 누르면서 “빨리 봐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신당 위치를 공개했다가 그런 일들이 몇 번 생긴 이후로는 장소를 비공개로 하고 있어요. 예약 손님에게만 방문 전날 문자로 정확한 위치를 알려드리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무속인이 된 후, ‘내가 이 일을 하길 잘했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저를 보자마자 막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있어요. “다른 곳에서 상담을 받고 점을 봤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여기 오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또 손님들이 “너무 좋다. 찾아오길 잘했다”고 하면서 계속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요. 무속인을 떠나서 제가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져요.
순돌이부터 무속인까지, 이건주의 두 가지 운명
이건주는 1986년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MBC 드라마 ‘시사회’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한지붕 세가족’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모두 고모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모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어린 이건주를 아들처럼 키우며 매니저 역할을 자청했다. 특히 ‘한지붕 세가족’ 촬영 당시, 이건주의 출연 분량을 늘리기 위해 스태프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읍소했다고 한다. 두 살 때 헤어진 아버지와는 스무 살 무렵 다시 만났지만, 그가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건주는 최근 ‘아빠하고 나하고’에 출연해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놓았다.용기를 내 가족사에 대해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해요.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간간이 인터뷰를 통해 언급하긴 했지만, 여전히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부분을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제 잘못도 아닌데, ‘왜 내가 죄인처럼 이걸 숨기면서 살아야 할까?’ 하는 답답함도 있었고요. 세상에는 꼭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연예인이기 이전에 저도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에 아파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걸 나누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저 솔직하게요.
처음 ‘아빠하고 나하고’ 프로그램 섭외가 왔을 때는 거절했어요. 그런데 다시 연락을 해와 “한번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미팅하면서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어요. 흔히 방송 관계자들을 ‘방송국 놈들’이라고 표현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제가 만나본 여느 제작진과는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진심이 느껴졌어요.
촬영 전에 협의된 부분도 있나요.
아니요. 저는 있는 그대로, 솔직한 감정 그대로 촬영하고 있어요. 저는 촬영 중에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요. 제작진도 제 감정을 존중해주면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죠.
현재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어떤가요.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아빠하고 나하고’가 리얼 관찰 예능이라 저는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가식적으로 행동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그저 제가 만나고 싶으면 만나는 거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을 때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냥 제 마음이 움직이는 부분을 지켜보면서 촬영을 해달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딱히 큰 변화가 있거나 무언가 확 달라진 감정은 없어요.
‘순돌이’라는 수식어는 이건주의 정체성인 동시에 배우로서 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모습과 다른 분위기로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순돌이’로 불린다면, 조금 속상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컸고(웃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역할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분이 저를 기억해주시고 좋아해주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순돌이’라는 수식어가 불편하거나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이름 때문에 내가 안 되는 거야’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결국 ‘순돌이’ 덕분에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는 거잖아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가요, 여전히 순돌이가 되고 싶은가요.
아마 평범한 삶을 택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이 볼 때는 연예인의 삶이 화려하고 멋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 장단점이 존재하잖아요.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해도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연예인으로 한번 살아봤으니, 선택할 수 있다면 평범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긴 해요.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장사를 했을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술집을 차렸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정작 술을 한 잔도 못해요(웃음). 또 밥집이나 카페 같은 걸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단순히 가게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면서, 손님도 편히 찾을 수 있는 그런 가게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는 천생 연예인’이라 느낄 때가 있나요.
정말 피곤하고 몸이 힘들 때도 새벽 5~6시에 일어나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촬영장에 가서 카메라 앞에 서요. 그러면 아무리 전날 잠을 1시간밖에 못 잤어도 이상하게 너무 쌩쌩해져요. 오히려 기분도 좋아지고요. 그럴 때마다 ‘아, 내가 정말 이 일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걸 다시금 느껴요.
앞으로 계획이 궁금한데요.
저에게 또 하나의 직업이 생긴 것뿐이지, 원래 해왔던 대로 배우이자 방송인으로 계속 활동할 계획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거부감을 갖거나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방송에서 잘 안 되니까 무당을 한 거 아니냐’ 같은 오해는 안 하셨으면 해요. 정말로 제가 살고 싶어서 신내림을 받았으니까요. 이 결정을 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고, 마음고생도 심했어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걸 조금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다행히 기도한 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어서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마음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건주 #순돌이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출처 ‘미운 우리 새끼’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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