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흐름은 록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록 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2014년 라인업에서 여성 멤버가 포함된 한국 록 밴드는 4개 팀(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디어클라우드, 스몰오, 아즈버스)에 불과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24년 라인업에는 새소년, 한로로, 터치드, 카디, 더 픽스, 아마도이자람밴드, 세이수미, 세일러 허니문, 브로콜리너마저,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등 여러 스타일의 여성 록 아티스트가 즐비하다. 록 음악을 특정 성별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던 시각은 이제 옛날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여성 록 아티스트가 우리 앞에 나타나 활약하게 된 것일까?
여성 밴드들의 시대 혹은 ‘뉴 노멀’의 시대
가장 먼저, 밴드 신 자체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생긴 파급효과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여성 록 아티스트 중 상당수는 이미 이전부터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이들이다. 그러던 중 이른바 밴드형 아이돌(데이식스·QWER 등)의 성공과 새소년, 실리카겔을 위시한 인디 밴드들의 도약이 밴드 신에 대중의 시선을 가져왔고, 그동안 음악적 기반을 구축해놓은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자연스럽게 조명받게 된 것이다. ‘슈퍼밴드’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등 오디션 프로그램 또한 밴드 음악을 대중적으로 노출하면서 여성 록 아티스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했다.
물론 밴드 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성 록 아티스트들이 최근 들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준우 음악 평론가는 “해외 유수의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세일러 허니문을 비롯해서 전자양, 사막꽃, 해서웨이까지 좋은 음악을 선보이는 많은 밴드가 여성 멤버를 보유하고 있다”며 인디 록 신에서 크게 늘어난 여성 창작자의 면면을 언급한다. JTBC ‘슈퍼밴드2’를 통해 결성된 4인조 여성 밴드 더 픽스 또한 “현장에서 전반적으로 여성 록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많아졌다고 느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흐름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은 세계적 경향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DMZ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해온 이수정 예술감독은 “2019년 유럽 최대 규모의 음악 페스티벌 ‘프리마베라 사운드’가 대형 페스티벌 최초로 남녀 동수의 50:50 라인업을 실현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8~2019년쯤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뉴 노멀’을 내건 양성평등 이슈가 크게 부상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헤드라이너를 중심으로 여성 아티스트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여성 뮤지션을 롤 모델로 삼게 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여성이 록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을 꿈꾸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 그 영향이 지난 수년에 걸쳐 한국에도 닿았다는 분석이다.
박준우 평론가는 숏폼을 비롯한 SNS의 영향을 또 다른 이유로 짚었다. 그는 “여성 로커들이 좀 더 영리하게 본인들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브랜딩과 프로모션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지에서 성공적인 지표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성 밴드 더 픽스 또한 “요즘은 음악만큼이나 비주얼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라며 “보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한 방’을 고민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해외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여성 록 아티스트 매미도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시각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SNS 콘텐츠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밝힌 바 있다. 아티스트 스스로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쉬워진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팬층을 늘려온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록 스타 엄마 그리고 다음 세대
록 음악 신에 여성 아티스트가 늘어나면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변화는 바로 그들의 포지션과 스타일이다. 과거에는 주로 프런트우먼이나 보컬을 여성이 담당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연주자 파트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대해 박준우 평론가는 “그만큼 인정받는 여성 연주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예술감독도 “악기를 다루는 ‘쿨한 언니’를 보고 연주자를 꿈꾸는 뮤지션들이 생겨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과거 많은 여성 로커가 팝록, 모던 록 계열에 분포해 있었다면, 지금은 하드록이나 펑크, 포스트 록, 헤비메탈 등 보다 다양한 장르에서 주목받는 여성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변화다. 록이라는 장르가 가진 문턱이 낮아지면서, 여성들이 활약할 수 있는 방식도 다양해진 것이다.
한편 록 신에서 여성 아티스트들의 존재감이 새삼스럽게 부각되는 것은 그간 여성 비중이 워낙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여성 아티스트들의 성장세가 록 장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17년부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김뜻돌은 “최근 몇 년간 록 장르뿐 아니라 음악 시장 전반에 여성 뮤지션의 숫자가 늘어났다고 느낀다”고 체감을 이야기했다. 박준우 평론가는 “앞으로 전 장르에서 여성 음악가의 성장세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페스티벌이나 음악 시장 내에서 (특히 밴드 음악 중심의 록 장르에서) 여성의 비중을 걱정했다면,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관측을 내놓으며 “오히려 조니 미첼급의 명인이 얼마나 더 나올지 기대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제 어떠한 음악 팀에 여성 멤버가 있어도 어색하게 보는 시선은 사라졌다.
이처럼 롤 모델이 될 만한 여성 록 아티스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더 이상 ‘누구를 보고 꿈을 키워야 할까’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최근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음반 부문을 수상한 미역수염의 베이시스트 겸 보컬 정주이는 “배에 있을 때부터 시끄러운 음악 오래 들려줘서 미안하다. 앞으로도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수상 소감으로, 록 아티스트이자 어머니로서의 미래를 약속하며 큰 환호를 받았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다음 세대가 만들어갈 한국 록 신은 분명 과거와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할 것이다. 그 변화가 어떤 파노라마를 펼쳐낼지, 이제 우리는 기대 어린 마음으로 그 무대를 지켜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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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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