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배우를 겸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많이 일반화됐지만 김민종(33)이 가수 활동을 시작했던 90년대 초만 해도 신인배우가 겸업선언을 하면 한편에선 “신선하다”고 격려해주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하나라도 똑바로 배울 나이에 가수까지 하겠다니 되바라졌다”며 비난하기 바빴다. 그런 시대에 그는 연기와 노래, 두 분야를 오가며 만능 엔터테이너 시대를 열었다.
김민종의 경우엔 단순히 두 분야를 섭렵한 게 아니다. ‘미스터 Q’ ‘수호천사’ ‘사랑할까요’ 등 그가 출연한 히트 드라마의 수는 이루 헤아리지 못할 정도. 게다가 가수로서의 그의 활약상은 오히려 본업인 연기를 넘어서는 경지다. 가수로서 그는 8집 앨범까지 냈다. 손지창과 듀엣으로 나섰던 ‘블루’ 시절까지 합치면 모두 10장의 앨범을 낸 특급 가수인 셈. 부침 많고 유행 빠른 국내 가요계에서 이 정도의 활동을 펴왔으니 그에게 ‘만능 엔터테이너 A급’이란 레벨을 달아줄 만도 하다.
지난 2001년 8월 종영된 SBS ‘수호천사’를 끝으로 영화에 전념해오던 그가 다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KBS 주말드라마 ‘진주 목걸이’로 안방 팬들을 찾은 것. ‘진주 목걸이’는 뮤지컬 기획사를 배경으로 한 50부작 드라마로 그는 이 드라마에서 연출가 ‘김기남’ 역할을 맡았다. 기남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뮤지컬 연출자로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기의 길을 가는 캐릭터다. 부잣집 외동딸이자 뮤지컬 기획자인 박난주(김유미)와 사사건건 부딪치다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위기감을 느껴서 드라마로 복귀한 건 아니에요. 드라마 쪽에선 섭외가 계속 왔었는데 그 동안은 영화 때문에 못했던 거죠. 정성효 감독님하고는 ‘머나먼 나라’ 찍을 때 만났는데, 서로 잘 맞아서 다시 같이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기회가 되서 이렇게 같이 하게 됐는데, 영화 ‘낭만자객’ 촬영이 늘어지면서 일이 좀 꼬일 뻔했어요.”
올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온 탓에 8월 안에 끝났어야 할 영화 ‘낭만자객’의 촬영이 가을까지 밀리고 말았다. 다행히 ‘진주 목걸이’ 제작진이 “하던 영화는 끝내야 하지 않겠냐?”며 편의를 봐준 덕에 드라마 출연을 포기하지 않아도 됐지만, 그 탓에 요즘 촬영 스케줄은 빈틈이 없을 지경이다. 비가 오면 드라마 실내 촬영을 하고, 비가 안 오면 영화 촬영장으로 달려나가야 하는 형편이다.
“드라마 시작하면서 헤어 스타일도 바꾸고 나름대로 노력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가난한 연출자라 부자 티 안내기 위해 엄청 노력했죠. 제가 아무 거나 입어도 귀티가 나는 타입이라…(웃음). 주위 선배들에게 자문도 많이 구했어요. 분위기랄까, 말투 같은 것 좀 배워보려고. 그런데 연출자라고 특별히 전문 용어를 쓰는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제가 사실 뮤지컬을 한번도 못해봤어요. 해보고 싶었고 섭외도 몇번 들어왔는데 결정적으로 제가 춤이 안돼요(웃음). 이 드라마에도 배우 한명이 아파서 연출자가 대신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사정사정해서 뺐어요. 춤이 안돼서…(웃음).”
연기와 노래에 모두 능한 그가 15년에 걸친 연예계 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번도 뮤지컬 무대에 서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가수로 무대에 섰을 때도 춤을 추는 그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을 ‘몸치’라고 표현했는데 연습을 해도 춤만큼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2~3년간은 사실 그에겐 슬럼프 기간이었다. 그가 나온 영화 ‘패밀리’ ‘나비’는 잇달아 흥행참패를 겪었고, 지난 7월 2년 만에 낸 8집 앨범 ‘상처받은 사람들’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말 개봉 예정인 ‘낭만자객’이 남아 있지만, 영화만 놓고 보자면 그는 적어도 ‘흥행 배우’는 아닌 셈이다.
“영화는 사실 감독의 예술이죠. 찍고 나서 어떻게 편집되는지 시사회 전까지는 전혀 모르니까요. 그런데 힘들게 찍고 나서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아니다 싶으면 정말 참담해요. 거기다 흥행도 안되면 더 비참한 기분이 들죠. 전 그런 경험이 좀 많은데…(웃음). 흥행배우는 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제 색깔은 가지고 있다고 자부해요.”
지난 2년간 영화와 앨범에서 겪은 참패가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계기 되기도
그가 말하는 자신의 색깔은 ‘살짝 오버하는 듯한 코믹함’이다. 코믹함에 카리스마가 담기면 나름대로의 색깔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 ‘3인조’나 드라마 ‘머나먼 나라’ ‘수호천사’ 등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카리스마가 발현되었다는 자평이다. 앞으로도 그런 색깔은 살려나갈 생각이지만 예전의 코믹한 ‘오버’는 조금 숨을 죽일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발랄한 기운을 눌러 어른스러워지고 싶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영화에 대해선 사실 우울한 기억이 많다. 배우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시사회 때 처음 보게 된다. 영화 시사회 이후 극장을 나서는 출연진의 표정을 보면 그 영화의 흥행을 점칠 수 있다고 한다. 때론 만족스런 웃음을 만면에 띠고 나서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도저히 말 한마디 붙여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나서는 배우도 있다. 김민종은 후자의 경험을 많이 했다. TV 드라마나 노래에서 얻었던 명예와 성공을 그는 스크린으로 옮겨오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영화 ‘낭만자객’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가수가 더 좋은가, 배우가 더 좋은가 하는 질문은 지난 10여 년간 계속 받아온 질문인데,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요. 둘 다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이번에 임창정씨가 은퇴를 선언했는데, 과감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해요. 보기 좋았고…. 저도 언젠가 ‘이 앨범이 마지막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물론 언젠가 오겠지만…. 이번에 낸 8집 앨범은 좀 조용히 지나갔죠(웃음).”
지난 92년 1집 ‘사랑, 이별 이야기’를 내며 데뷔, 올해 가수 11년차를 맞았다. 그의 표현대로 8집 앨범 ‘상처받은 사람들’은 ‘조용히 지나간’ 느낌이다. 게다가 그와 같은 길을 걸어온 임창정마저 은퇴 선언을 한 터라 그의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그가 한참 선배이지만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아 자주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두 사람 모두 록발라드 가수였고, 그것도 전업가수가 아닌 배우 겸업 가수로서 10년 넘게 장수해왔다.
영화 ‘낭만자객’의 윤제균 감독은 일찌감치 주인공 역에 김민종을 낙점하고 러브콜을 보냈으나 영화 ‘나비’의 흥행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김민종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김민종의 마음을 바꾼 것은 윤감독의 문자 메시지 세례. 윤감독은 “민종아! 사랑해”라는 문자 메시지를 계속 보내 김민종의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2001년 5월, 김민종은 6년간 열애해온 이승연과 헤어져 연예계에 충격을 주었다. 아직까지 이승연과 그를 연관지어 말하는 것은 좀 잔인한 일이다 싶지만 얼마 전 이승연은 한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민종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할 용의가 있다. 민종이와 6년간 사귀다가 헤어졌지만 우리에겐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 가뭄에 콩 나는 정도긴 해도 가끔 안부전화도 주고받는다. 김민종이 지금 촬영중인 영화 ‘낭만자객’이 잘됐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민종이가 정말 흥행 배우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혀 화제를 낳았다. 김민종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김민종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뭐, 성격이 워낙 그런 사람이라…” 하며 피식 웃었다.
“사실 요즘도 간혹 안부전화는 해요. 이번에 전화했더니 드라마 ‘진주 목걸이’ 예고편 봤는데 느낌이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헤어스타일이 좀더 자연스러우면 좋겠다고 조언도 해주고. 진짜 제 결혼식에 올지 안올지는 모르겠지만 온다면 환영하고…. 근데 결혼식에 오는 것보다 여자 친구나 하나 소개해주는 게 더 좋을 텐데…(웃음).”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신중하게 호흡을 끌었지만, 그는 이제 많이 편안해진 듯 이승연의 말을 농담처럼 받아넘겼다. “더는 이승연과 연결시키지 말아달라”며 정색을 하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자친구가 없어요. 사실 나이가 한살, 두살 더 먹으니까 연애를 하기 힘들더라고요. 특별히 이상형이 있는 건 아닌데, 느낌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어져요.”
영화 ‘나비’가 끝난 후 그는 김정은과의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이는 ‘김민종, 김정은 제주도 밀월여행, 알고 보니 포스터 촬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던 신문기사가 와전되며 퍼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아직도 김정은에게 ‘정은씨’라며 깍듯한 호칭을 쓰는 사이라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여유 있고 부담 없이 저를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여유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지금으로선 제 유일한 꿈이에요. 감독님은 저보고 15년 연기했으니 나름대로 내공이 쌓인 배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는데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이 돼요. 언젠가 편해지는 날이 오겠죠.”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영화 ‘낭만자객’ 촬영이 있다며 총총히 촬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 ‘낭만자객’은 오는 12월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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