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한 화이트 7부 블라우스 타임. 화이트 와이드 팬츠 MOON YOUNG HEE. 골드 스틸레토 힐 페르쉐. 골드 레이어링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취재라는 이름의 사냥을 나선 기자의 대다수는 사냥감(연예인)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를 벌인다. 기존에 나왔던 인터뷰 기사를 탐독하고, 때론 친분 있는 스태프에게 “좋아하는 건 뭔지, 촬영 현장에선 어떤 스타일인지” 묻는다. 대면했을 때 ‘쫄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에 만난 워너비 스타는 배우 왕빛나(32). ‘여성동아’와 몇 차례 촬영할 때마다 최상의 작업물을 뽑아내온 그이기에 함께 작업했던 기자들에게 “그 사람 어때요? 드라마에선 좀 시크하고 무서운 이미지던데…”라고 넌지시 운을 떼었다. 그들은 짠 것처럼 “어머, 얼마나 사람 좋은데? 만나보면 생각 바뀔걸”이라고 했다.
지하에 위치한 스튜디오 계단을 내려오는 그와의 첫 대면. 표지 촬영 때문에 진한 눈화장에 버건디 컬러를 입술에 바른, 차갑고 도도한 인상의 여배우는 농염한 표정으로 렌즈를 유혹하며 몇 컷 찍지 않았는데도 그림을 만들어냈다. 첫 컷이 모니터에 뜨자마자 무의식중에 “(그림) 나왔네”라고 말해버렸다. 그는 “기자님이 나왔다는데? 그만 찍을까요?”라며 깔깔 웃었다. 많은 기사의 첫머리에 ‘왕빛나는 생각과 다른 배우였다’라고 쓰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아무 생각 안 할 때 잘 나오기도 하고, 렌즈를 꼬여봐야지 하는 느낌으로 유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고 답하는 그 앞에서 무장해제는 순식간이었다.
기억 속에 왕빛나라는 배우가 각인된 건 2007년 봄과 여름에 걸쳐 방영된 MBC 드라마 ‘메리 대구 공방전’을 통해서였다. 시청률은 좀 아쉬웠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작품. 그는 패리스 힐튼이 롤 모델인 성형 미인 이소란을 연기하며 얼굴부터 몸까지 붕대로 칭칭 감고 간호사한테 성형한 모습이 궁금해 죽겠다며 역정 내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신선했다.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소란은 제멋대로에 오만방자하고 섹시했지만 밉지 않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왕빛나는 드라마 방영에 한발 앞서 그해 1월 결혼했다. ‘메리 대구 공방전’ 기자간담회에서 “남편이 ‘지난번보다는 착한 역이지?’라고 묻기에 ‘눈에 힘을 덜 줄 것’이라고 했더니 좋아하더라”고 털털하게 말하기도 했다.
도회적인 외모 때문인지 악역을 자주 연기한 그는 지난해 대장정을 마친 SBS 1백24부작 일일 드라마 ‘그래도 당신’에 이어 지난 8월부터 SBS에서 방영 중인 아침 드라마 ‘두 여자의 방’에서도 악역을 맡았다. 친구라고 믿었던 한 여자의 욕망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여자 민경채(박은혜)가 벌이는 복수극의 한가운데에서 그가 연기하는 은희수는 그야말로 파란의 씨앗이다.
감정 소모 많지만 센 캐릭터 재밌어
“처음엔 또 악역이라고 해서 출연을 고사할까도 싶었는데, 이유 있는 악역이라 선택하게 됐어요. 희수는 다른 악역들처럼 재벌이나 부잣집 딸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위치에서 시작하는 인물이거든요. 촬영 현장이 정말 재밌어요. 이명우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친근하게 대해주고 상의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현장 분위기가 좋고요. 박은혜, 강경준, 강지섭 씨와도 많이 친해져서 가족처럼 밥도 같이 먹는 사이죠. 초반에는 극단적인 감정을 써야 할 장면이 많아서 고생했는데, 이제는 민경채의 남자를 뺏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유혹하거나 질투하는 감정을 많이 쏟아내고 있어요. 힘들어도 재밌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유난히 물과 인연이 많다고. “물 맞는 장면이 너무 많다”면서도 은근히 싫지 않은 눈치다.
“극 초반부터 희수가 비를 엄청나게 맞아요. 그리고 잔에 담긴 물을 맞고, 커피를 맞고, 양동이에 든 물을 맞고. 한강에도 들어가는 장면이 있거든요. 따귀 맞고 눈물도 흘리고…. 물하고 가까운 캐릭터더라고요. 눈물도 물이잖아요(웃음).”
“착한 역도 몇 차례 해봤다”고 하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왕빛나의 모습은 아무래도 센 캐릭터들이다. 선한 연기와 악한 연기, 어느 쪽이 더 재밌을까.
“센 캐릭터가 아무래도 더 재밌어요. 가난하고 착한 역도 맡아봤는데, 착한 역이 연기하기는 더 쉽지만 연기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건 악역을 할 때죠. 감정 소모가 많아 힘들지만 저는 재밌는 게 좋아요. 캐릭터가 있는 푼수 역도 그렇고요.”
극 중 희수는 갖고 싶은 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 이런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은 결국 자신과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악의 기운’은 살짝 걷어내고 물었다. 희수처럼 왕빛나도 ‘한다면 하는’ 성격인지.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왜 그렇게 욕심이 없니’라고 할 정도로 욕심도 없고 ‘깡’ 같은 것도 부족했어요. 물 흘러가듯 살자는 주의거든요. 어떤 상황에서 무작정 욕심낸다고 될 게 아니라면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요. 열심히 살다가 목표가 이뤄지면 정말 감사하지만 이뤄지지 않아도 슬프지 않아요.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욕망이 컸고 해내야겠다는 욕구가 컸다면 안 됐을 때 좌절감도 그만큼 컸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든 할리우드에 가겠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요즘은 아침 드라마를 하니 젊은 분들은 저를 잘 알아보지 못할지언정, 주부들이 정말 많이 알아봐주세요. 그게 참 좋아요. 앞으로 미니 시리즈 주연을 맡게 돼 젊은 층으로부터 반응이 오면 그걸로 또 고맙다고 생각할 거예요.”
슬럼프를 극복하는 그만의 비기는 ‘잠’이다.
“몇 년 전 슬럼프가 왔는데, 해결책은 단순했어요. 자요. 고민이 있거나 부부 싸움을 했다거나, 감독님께 혼나고 온 날도 집에서 그냥 자버려요. 저는 의지로 잘 수 있거든요(웃음). 잠도 많은 편이고…. 확 ‘나 잘 거야!’ 생각하고 누워버리는데,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풀어져요. 사람들이 그게 행복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삶이 그렇지만 가뜩이나 가정을 가진 여배우의 삶은 본인만큼이나 주변에서도 중심이 단단하지 않으면 지켜내기 힘들다. 특히나 그 같은 ‘엄마 배우’라면 말이다. 그는 남편과 함께 시댁에서 살고 있다. 다섯 살 난 아들의 육아는 시부모와 아주머니가 도와주신다고. 육아관이 궁금했다.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라고 가르쳐요. 할아버지 할머니께 잘하고, 엄마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하라고요. 무작정 ‘너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들 그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가정에서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아이가 밖에서도 남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화목한 가정을 만들려고 애쓰죠. 많이 사랑해주면 나중에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랄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를 익히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촬영 때문에 바빠 아이의 자는 모습만 보는 것이 늘 아쉽다. 그는 아들과 오래도록 비밀 없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기를 꿈꾼다.
“촬영 때문에 거의 만나지 못하니까, 제가 집에 들어가면 아들이 항상 ‘엄마, 나 잘 때 뽀뽀하고 갔어, 안 하고 갔어?’라고 확인해요. 한번은 아들이 엄마는 매번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온다고 하기에 ‘어떤 게 좋아’ 물었더니 ‘늦게 나가고 일찍 오는 게 제일 좋아’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하는 드라마는 성인 대상이라 아들에게 보여주지 않지만 엄마가 TV에 나온다는 건 알아요. TV 보면서 ‘저 아저씨랑 아줌마는 누구야’하고 물어봐요. 아직은 누구나 TV에 나오는 줄 알죠(웃음).”
프로 골퍼인 남편 정승우(38)와는 3년 연애 끝에 2007년 결혼했다. 남편을 소개해준 이는 동생 왕윤나의 남편이자 프로 골퍼인 김대섭이라고. 결혼 당시 왕빛나는 26세였다. 결혼 2년 만에 아들을 낳았으니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혼전 임신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빨리 결혼을 했을까 의문”이라며 “그래서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여러 남자를 만나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더 재밌지 않을까”라며 깔깔 웃었다.
“남편은 제가 일할 때면 자기가 쉬는 날이어도 아이를 데리고 야외로 나가요. 놀이공원이나 한강공원으로 데려가서 놀아주고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써요. 그 덕에 아이가 아빠랑 굉장히 친해요. 남편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도움을 많이 줬고, 씻기고 먹이는 게 참 자연스러워요. 그런 게 진정한 외조죠. 밖에 나가서 일할 때 아이가 엄마 찾고 심심해하면 마음이 아플 텐데 남편이 잘해주니 안심돼요. 남들이 복 받았다고 그러죠.”
실크 화이트 슬리브리스 MOON YOUNG HEE. 진주 롱 네크리스, 십자가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브라운 레더 베스트 데무. 벌룬 화이트 원피스 MOON YOUNG HEE. 롱 네크리스 스와로브스키. 브라운 카키 니삭스, 베이지 워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이 들어서도 찾게 되는 배우 되고파
타고난 몸매 때문에 왕빛나가 아이 엄마인 것도 잊고 있었다. 이날 그는 표지와 화보 촬영을 하기 위해 어깨가 풍성한 원피스부터 편안한 느낌의 블라우스와 팬츠까지, 일반인이 잘못 입으면 ‘패션 테러리스트’가 될 법한 의상도 매끄럽게 소화했다. 평소에는 청바지에 면 티셔츠, 포인트로 신발이나 액세서리를 매치하는 걸 즐긴다는 그는 “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걸 좋아한다”고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올해 처음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해서 재미를 붙였다고.
“필라테스가 저랑 잘 맞더라고요. 드라마 끝나면 다시 시작하려고요. 골프 연습도 하고요. 골프는 참 재밌는 스포츠예요. 열심히 연습해서 나중에 골프 채널에도 나가보고 싶어요. 건강을 위해 하는 건…, 영양제 챙겨 먹기? 히히. 물은 많이 마셔야 하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파우치에는 핸드크림이랑 향수, 립밤을 꼭 넣고 다녀요. 향수는 남을 위해서라기보다 뿌리면 제가 향을 맡고 기분이 좋아져서 애용해요. 우디 계열의 중성적인 향을 좋아하죠. 몸이 건조한 편이라 립밤이랑 핸드크림은 필수고요.”
그는 “밖에서 일할 때는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집에서는 많이 풀어진다”며 “요리도 정리 정돈도 잘 못하지만 남편이 배려해줘서 늘 고맙다”고 했다. 연기 외적으로는 재테크를 꼭 배우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좋은 가정에서 아내로서 재테크를 잘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사업이나 장사를 하고 싶지만 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이라 공부 중이에요. 선배님들이 여배우로 살면서 가정과 일을 함께 챙기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들면 여배우는 아무래도 어머니나 주변인 역으로 밀려나게 되는데, 그 나이까지 자기 관리를 잘해서 주역으로 활약하며 아이까지 잘 키우는 선배님들이 정말 부러워요. 앞으로는 멜로 연기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제가 생각보다 멜로 연기를 많이 해보지 못했거든요. 항상 짝사랑하거나 뺏거나 이런 역만 해봐서(웃음). 예능 프로그램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무한걸스’처럼 여자 멤버들이 나와서 가족처럼 만들어가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앞으로 ‘선생님’ 소리를 들을 나이까지 지속해서 러브 콜을 받을 수 있고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왕빛나. 이젠 누가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 참 괜찮다고. 만나보면 알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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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크업·손희정(보보리스)
■ 스타일리스트·최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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