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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다섯 번째 |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

국민도서관 ‘책꽂이’ 대표 장웅

“도서 공유로 책장 속 잠자던 책을 깨우죠”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문형일 기자

2012. 03. 16

내 책장의 애물단지가 남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다. 이 책들이 모여 전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만들어진다면….

국민도서관 ‘책꽂이’ 대표 장웅


집집마다 한두 개씩은 꼭 있는 책장, 그중 얼마나 많은 책들을 기억하는가. 책장에 꽂아둔 이후로 단 한 번도 펴본 일 없는 책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놓고 잊어버리거나, 읽다가 말았거나, 아까워 버리지 못한 책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그런 책들이 누군가에게는 읽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책이라면? 이런 작은 생각에서 시작한 사람이 있다. 바로 국민도서관 ‘책꽂이(이하 국민도서관)’ 대표 장웅씨(38)다. 국민도서관은 회원들이 자신의 책을 내놓고, 다른 사람의 책을 빌려 읽는 도서 공유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장웅 대표는 홈페이지에서 이들 회원을 연결해주는 다리 노릇을 한다.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 잡은 국민도서관은 거창할 것 같은 이름과 달리 그냥 작은 사무실이었다. 창고처럼 보이는 서고에서 만난 장 대표는 원래 1세대 벤처사업가였다. 19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서점 ‘다빈치’를 창업한 인물이 바로 그다. 석사 마지막 학기에 짬이 나 ‘뭔가 하나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사업은 시기를 잘 타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1999년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인수됐다. 그 후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난 뒤 삼성물산 인터넷사업부를 거쳐 교보문고 인터넷사업본부 신규사업개발부 부장으로 일했다. 교보문고를 끝으로 그는 인터넷서점 ISBN닷컴을 열어 직접 작은 사업체의 대표가 됐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하면서 인터넷서점의 영향으로 책 자체의 수명이 짧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출판사가 신간을 낸 뒤 반응이 없으면 판매를 접는데,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된 것이다. 인터넷서점에 책을 검색했을 때 발간됐다는 흔적은 남아 있지만, 품절이나 절판으로 원하는 책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그는 ‘그렇다면 도대체 이렇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졌다.
“누군가는 책을 사잖아요. 그러니까 출판사에도 없는 책이 누군가의 집에 잠들어 있는 것이죠. 이들을 이어주면 누군가의 책장에 짐짝처럼 있던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도서 공유 시스템의 모델을 고민하던 중 마침 그에게 기존 도서관의 단점이 눈에 띄었다. 뭔가 하나씩 아귀가 맞아가는 느낌이었다.

책을 통해 함께 나누고 성장하는 국민도서관

국민도서관 ‘책꽂이’ 대표 장웅

회원들이 국민도서관으로 보낸 책들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홈페이지 내 자신의 가상 서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대여 기간이 보통 2주예요. 그 안에 책을 못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게다가 대출과 반납을 직접 가서 해야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에요. 도서관들은 보유한 책을 유지·보수하는 데 신경 쓰느라 신간이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제때 구매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전에 했던 생각과 도서관의 단점을 떠올리니 국민도서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그는 2011년 10월 말 국민도서관을 열었다. 이용 방법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원하는 책을 최대 25권까지, 택배비만 부담해 두달 간 대여하는 것이다. 홈페이지에서만 이용 가능한 것이 꼭 인터넷서점과 도서관의 모습을 한데 묶은 형태다. 대여 기간을 길게 잡은 이유는 두 달 정도는 돼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책을 즐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1천여 권의 책을 내놓았다.
“집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들을 다 도서관에 갖다 놓으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집이 넓어졌다고요(웃음).”
서비스 시작 후 이용자들이 빌려갔던 책과 함께 자신이 갖고 있는 책을 더 내놓으면서 서고 규모가 점점 커졌다. 나눔이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저희 도서관으로 책을 보내는 건 기부를 하거나, 책을 버리는 게 아니에요. 책장이 집에서 도서관으로 옮겨진 것뿐이죠. 보내주신 책들은 모두 전산으로 처리됩니다. 원래 주인의 이름이 저장돼 책을 대여할 때 누구의 책인지 알 수 있어요. 책 주인 역시 자신의 책이 어디에 사는 누구에게 대여 됐는지 알 수 있어요. 도서관이라는 이름과 장소를 빌렸을 뿐 사실은 개인이 개인에게 책을 빌려주는 겁니다. 친구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처럼요.”
오픈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은 5백여 명의 회원들이 국민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으며, 종수는 9천9백 종, 권수는 약 1만1천권 정도로 추산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용자들의 열기는 뜨겁다.
“도서관 시설이 잘 갖춰진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많이 이용합니다. 아무래도 책에 대한 갈증이 심하기 때문이겠죠. 그 밖에 도서관에 갈 짬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공간이 비좁아서 도서관이 금세 책으로 차버리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더니 그는 책이 들어오는 만큼 나가기 때문에 무조건 서고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서고를 이리저리 둘러보니 판타지물이나 무협지, 만화책들이 꽤 많았다. 그 책들을 장 대표는 “피난 온 책들”이라고 했다.
“청소년들은 좋아 하지만 부모는 자녀가 이런 책 읽는 것을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도서관으로 보내진 거죠. 책 주인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신청해서 보면 되고, 부모로선 자녀가 하루 종일 거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안 보니 좋고, 도서관은 책이 많아져서 좋습니다.”
국민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신규 서비스는 회원 모집이 쉽지 않은데, 최근 공유경제 바람과 함께 국민이나 언론이 국민도서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들이 스스로 어떤 책을 선호하는지 자신의 기호를 알게 되면 좋겠어요. 자신의 취향을 알면 직접 책을 구매하게 되거든요. 작은 움직임이지만 이를 통해 독자와 출판사가 공생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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