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갓 상경해 촌놈이라 불리던 남자. 그냥 가난한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 여자친구 한번 사귀지 못했고, 입사 후엔 여벌의 와이셔츠 한 장 살 돈이 없어 한 벌을 매일 빨아 입고 출근할 정도였다. 시골에 있는 부모 등 다섯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회사를 옮겨다녔지만 꿈이 있었기에 마음만큼은 가난하지 않았다. 30년 뒤 촌놈은 서울 강남에 1백억원대 빌딩을 가진 부자가 됐다.
보통 사람들은 서울 번화가에 빌딩을 소유한 부자라면 백이면 백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빌딩부자들 중 상당수는 가진 것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부를 쌓아 올린 독종들이다. 최근 출판된 책 ‘빌딩부자들’에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빌딩부자들 대부분이 자수성가형이라고 밝혔다. 인고의 시간 끝에 빌딩부자가 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책 ‘빌딩부자들’에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DNA를 찾았다.
성공 키워드 1. 꿈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백억원대 빌딩을 가진 부자들은 찢어지게 가난해도 빌딩주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눈빛만큼은 반짝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부를 이룰 수 있었다. 최근 몇 년사이 청담동에서만 빌딩 거래를 20건씩 하며 청담동 빌딩계의 전설로 불리는 한 빌딩부자는 “처음엔 내가 자주 가던 카페 같은 작은 건물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고 말한다. 혈혈단신 고국으로 돌아와 한강변에 빌딩을 짓겠다는 꿈을 현실화시킨 또 다른 빌딩부자는 “대학 시절부터 신문·잡지 등 빌딩과 관련된 자료는 죄다 모으며 차곡차곡 꿈을 키웠다”며 빛바랜 스크랩북을 펼친다.
그들 모두는 자기 소유의 빌딩을 갖는 것이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라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꿈 때문에 어떤 일이든 체면 차리지 않고 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미술학도였던 한 건축회사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돈 되는 일이라면 막노동이라도 닥치는 대로 했고, 밤을 새워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 팔기도 했다. 이후에도 온갖 재테크 방법을 동원해 결국 빌딩주의 꿈을 이뤘다. 30년 전 코카콜라 한국 지사에 취직해 박스를 나르는 일부터 시작한 또 다른 빌딩부자는 밥 한 공기에 고추장만 찍어 먹으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한 층 한 층 건물을 지어 올렸다. 현재 그는 신림동에서 월세를 가장 많이 받는 빌딩 4채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이 빌딩주가 되기까지 과정을 들여다보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부자는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보다 역경을 이겨내며 어떤 경험이든 자산으로 삼는 편이 현명한 선택임을 그들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성공 키워드 2. 대학졸업장 없지만 살아 있는 지식은 있다
오늘날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아직까지 많은 이들은 ‘좋은 학벌’을 첫손으로 꼽는다. 좋은 학벌은 한 인간을 가늠케 하는 지표이며 탄탄한 인맥을 갖췄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빌딩부자 중 소위 말하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은 몇이나 될까. 놀랍게도 SKY 출신은 손꼽을 정도로 적었고, 고졸인 경우도 많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대학졸업장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인생을 살며 터득한 생생한 경험을 자산으로 생각했다. 어릴 적 가정환경이 부유하지 못했던 한 빌딩부자는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정에 등을 돌린 아버지 때문에 어린 나이에 상경했다. 중학생 때 함께 올라온 누나의 분식집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뒤 돈을 벌어야겠다는 열망이 가슴속에 가득 찼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처음 손을 댄 분야는 컴퓨터. 90년대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 발전 가능성을 인식한 그는 자격증을 따 대기업의 AS센터 협력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밤낮없이 2년 동안 일한 끝에 능력을 인정받아 스물다섯 살에 센터 운영권을 따냈고, 사업체를 늘리겠다는 열망으로 인수 합병을 추진해 업계 1위를 기록했다. 이후 부동산에 새롭게 눈을 뜨면서 후배에게 센터를 넘기고 지인들과 동업해 부동산 시행업을 시작했다. 그가 부동산 업계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2년 사이 후배에게 넘긴 사업체는 공중분해 됐다. 10명 안팎의 작은 AS센터를 1백20여 명의 대규모 사업체로 키우고 운영했던 건 오로지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단한 노력 끝에 지금은 1백억원대 빌딩을 소유한 그는 “대학 진학은 돈을 버는 데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책에서 배우는 죽은 지식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살아 있는 지식이 종국에는 자산이 됐다는 것. 대부분의 빌딩부자들은 “배움이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익혔을 때 더욱 오래 간직할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성공 키워드 3. 가족 이상으로 신뢰하는 탄탄한 인맥관계
부자는 혼자 힘으로 되기 어렵다. 가진 것 없이 빌딩부자로 올라선 사람들 뒤에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이 반드시 있다. 막다른 골목에 섰을 때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빌딩부자가 될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빌딩을 사려면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꼭 닥친다. 그럴 때일수록 인맥관계는 빛을 발한다. 지금은 강남의 1천억원대 빌딩을 가진 월급쟁이 출신 빌딩부자도 종잣돈 7억원으로 시작할 때 사람 하나만 믿고 30억원을 대출해준 금융권의 친구가 있었기에 부를 일굴 수 있었다. 또 고졸 출신으로 1백억원대 자산가가 된 빌딩부자는 첫 부동산 매매에서 그를 믿고 잔금 납입기간을 1년간 유예해준 생명보험사 직원 덕분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둘은 일면식도 없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알았던 자산가가 절실한 눈빛으로 애원하자 다섯 살 어린 생명보험사 직원도 그의 진심을 읽고 기회를 준 것이다. 이후 그는 약속을 지키며 신뢰를 회복했고 지금까지 그 직원과 인맥을 유지하고 있다.
건축가와 시공사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강남의 랭킹 3위 안에 드는 한 건축설계사무소 대표는 지인들의 건물 위주로 설계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그가 설계한 영화계 원로 김수용 감독의 장충동 주택도 친한 친구의 소개로 맡게 됐다. 그는 “강남구에만 1천여 개 설계사무소가 있지만 그중 활발히 움직이는 곳은 10%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신뢰를 바탕으로 일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진다. 평범한 공무원에서 강남 빌딩주가 된 또 다른 빌딩부자는 시공사 대표와의 인연 덕분에 신용 하나로 빌딩을 지을 수 있었고, 이후 그의 소개로 강남의 알짜배기 땅도 구할 수 있었다. 잘 맺은 인간관계 하나가 부를 이룰 기회를 연달아 이어 주는 것이다.
성공 키워드 4. 흙 속 다이아몬드 찾아내는 눈
빌딩부자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없는 옥석을 가리는 안목이 있다. 하나같이 돈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부동산에 투자해 200% 이상의 수익률을 얻는다. 그들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몸에 익혀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낸다.
이들 대부분은 저평가된 물건의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한다. 임대주택으로 지을 수 있는 부동산, 빌딩을 지어 올릴 수 있는 땅, 주거지가 상업지로 바뀔 지역의 땅 등 정확한 자료부터 수집하고 종합분석을 한 뒤 투자에 뛰어든다. 앞서 소개한 일면식도 없는 생명보험사 직원에게 대출금 회수 기간을 1년 유예해달라고 빌었던 빌딩부자가 당시 투자했던 빌딩은 누가 봐도 하자가 있는 물건이었다. 유명 외식 업체가 외환위기 때 짓다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경매로 소유권이 넘어간 빌딩이었던 것. 빌딩을 담보로 잡은 금융권은 다달이 나오는 임대료를 차압했고,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한 시공사는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언제 보증금을 뺏길지 모르는 문제 빌딩에 발을 들일 임차인은 하나도 없어 공실률 또한 높았다. 하지만 그는 빌딩 위치, 건물 상태 등을 바탕으로 하자만 해결하면 임대료 수입을 세 배까지 올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과감히 투자했고 그 판단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런 판단을 하기까지 내공은 그냥 쌓이는 것이 아니다. 빌딩부자들은 하나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보통 30~50건의 물건을 본다. 성격이 꼼꼼한 사람일 경우 첫 빌딩을 매입하기 전까지 최소 1년 정도는 빌딩을 보러 다니는 데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지난 6년간 20건의 빌딩 매매를 모두 성공적으로 매듭지은 한 빌딩부자는 첫 거래를 하기 전 1년 동안 무려 1천여 채가 넘는 건물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업계 인맥이 없던 그는 신문이나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고, 가짜 광고를 보고 찾아가 허탕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발품을 팔고 나자 나중에는 빌딩의 이름만 들어도 위치와 시세가 떠오르는 경지에 올랐다고. 이 정도의 노력을 들여야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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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서적·빌딩부자들(성선화 지음,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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