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신기생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엄마들이 등장한다. 아이를 낳지 못해 동생네 딸을 양녀로 들이는 엄마(이종남)가 있는가 하면,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친 탓에 딸을 딸이라 부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봐야 하는 엄마(이상미)도 등장한다. 모두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그중 가장 안쓰러운 이는 미혼모로 낳은 딸을 아버지에게 업둥이로 보낸 한순덕이다. 순덕은 아이가 잘 살겠거니 믿었지만, 자신의 핏줄임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내버린다. 딸의 행방을 모른 채 애만 태우는 순덕, 그는 다리까지 불편해서 더욱 연민을 느끼게 한다. 순덕 역을 맡은 김혜선(42)을 지난 3월 중순 SBS 탄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드라마 속 완벽한 여성상, 임성한 작가의 분신 같아
‘신기생뎐’은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보석비빔밥’ 등을 집필한 임성한 작가가 대본을 쓰고, 그의 남편인 손문권 PD가 연출을 맡았다.
김혜선은 ‘온달왕자들’ ‘왕꽃선녀님’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임 작가와 인연을 맺었다. 스위스에서 ‘보석비빔밥’을 집필했던 임 작가는 2010년 초 귀국하자마자 김혜선과 만나 ‘신기생뎐’ 출연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 ‘온달왕자들’ ‘왕꽃선녀님’에 이어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또다시 캐스팅됐어요.
“앞서 두 작품을 했지만 임 작가님과 사적으로 연락하며 가깝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초 한번 만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남편 되시는 손문권 PD님과 인사동 식당에서 만났어요. 그때 감독님이 이러저러한 작품을 구상 중인데 자신을 믿고 함께할 수 있겠냐고 해서 좋다고 말씀드렸죠.”
▼ 임성한 작가가 김혜선씨의 어떤 점을 좋게 보신 것 같나요.
“특별히 이유를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왕꽃선녀님’에서 무속인 부용화 역할을 맡아 굿당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들린 연기를 했었는데 그때 좋게 보신 게 아닐까 싶어요.”
두 번의 이혼 상처를 잘 극복해낸 김혜선. 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이는 건 잘 자라준 아이들 덕분이다.
▼ 김수현, 문영남 등 스타 작가의 작품을 두루 거쳤는데 임성한 작가와 다른 분들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수현 선생님은 잘 아시는 것처럼 배우가 정확하게 대본대로 해주길 바라세요. 그래서 김 선생님 작품을 할 때는 항상 대본을 끼고 다니며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런 부분은 문영남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반면 임성한 선생님은 의외로 까다롭지 않으세요(웃음). 배우에게 특별한 주문 없이, PD에게 다 맡기는 편이죠. 현장에도 거의 안 나오시고요. 연기자나 방송국 관계자 중에도 선생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온달왕자들’을 할 때 종방연에서 한 번, ‘왕꽃선녀님’때 회식 자리에서 한 번 뵈었어요. 이번 드라마는 남편 손문권 PD가 연출을 하시니까 안부도 듣고, 또 모니터링도 해주시고, 앞으로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아요.”
▼ ‘보고 또 보고’의 은주, ‘인어아가씨’의 아리영, ‘보석비빔밥’의 비취까지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선 거의 예외 없이 완벽한 여성상이 등장하죠. 여성들의 로망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리감이 들기도 하는데 배우로선 어떤가요.
“하하하. 그런 사람 흔하지 않지만 더러 있지 않나요? 예쁘고 똑똑하고 음식 잘하고 경우 바르고. 다른 부분은 어디다 내놓아도 손색없는데,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경우가 많죠. 저는 ‘임성한 선생님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실제 요리도 잘하고 사리 판단도 분명하고 생활도 굉장히 규칙적이라는 말씀을 들었거든요. 작가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어려운 환경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 ‘대장금’에 이어 이번 드라마에서도 부용각 주방장으로 나오죠. 실제 요리 솜씨는 어느 정도인가요.
“나물 무칠 때 삶아서 눈대중으로 스윽 간을 해서 내놓아도 다들 맛있다고 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 첫 결혼 후 미국에서 살 때는 이탈리안 요리와 홈베이킹을 배웠고 한국에 와서도 방배동 최경숙 선생님께 중국요리, 손님 접대 요리를 배웠어요. 또 최명길·황신혜 언니와 요리 배우는 동호회를 만들어 압구정 요리 선생님께 반찬 만드는 법을 배운 적도 있고요. ‘대장금’에서는 칼질 하는 장면에서 대역을 쓰기로 했다가 대역보다 제가 더 잘해 다들 놀란 적이 있어요. 배우가 안 됐더라면 아마 요리연구가가 됐을 거예요(웃음).”
▼ 아이들이 좋아하겠어요.
“아들에게는 많이 해줬는데 딸을 낳은 후에는 바빠서 잘 챙기지 못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혜만큼은 자주 만들어주려 노력해요.”
성공해서 엄마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대견한 아들
드라마 밖 김혜선은 원석(15)·예원(7) 남매의 엄마다. 결혼은 그에게 상처를 남긴 대신 보석 같은 두 아이를 선물했다.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김혜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어깨가 올라갔다. 한동안 그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두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특히 아들은 아빠의 빈자리까지 채워주려 애쓰는 엄마가 안쓰러워 뭐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김혜선은 그런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 일 때문에 밖에 나와 있을 땐 누가 아이들을 돌보나요.
“친정 부모님이 함께 살면서 아이들을 봐주세요. 아버지는 아이들의 통학을 책임지시고, 어머니는 음식 챙겨주시고, 주말엔 모두 함께 공연도 보러 다니고 동생들 가족과 어울리기도 하고. 저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면 그늘이 생길 수도 있었을 텐데 부모님께서 늘 사랑으로 보살펴주니까 아이들이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틈이 없어요.”
▼ 그래도 아이들 속마음은 다를 수 있을 텐데.
“안 그래도 그런 부분이 걱정돼 한번은 아이에게 물었더니 ‘엄마 걱정 하지 마. 주변에 나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많아. 다만 엄마는 공인이니까 알려졌을 뿐이지’라고 말하더군요.”
▼ 아이들이 아빠와는 전혀 안 만나나요?
“그런 면에선 아무래도 아이들이 ‘제 아이’인 것 같아요. 언젠가 아이들이 크면 아빠를 만날 날이 오겠죠. 아이들에게 아빠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라, 엄마는 항상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어요.”
▼ 아들이 일찍 철이 들었네요. 든든하겠어요.
“남자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엄마와 대화가 안 된다고 집을 뛰쳐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은 집을 나가기도 한다는데 너는 그러고 싶은 적 없니?’라고 슬며시 떠본 적이 있어요. 우리 아들은 그런 쓸데없는 고민 하느니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싶대요. 아들이 엄청나게 바쁘거든요. 인터넷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하루 방문자가 수천 명이에요. 얼마 전에는 블로그를 운영해서 벌었다며 20만원을 내놓더라고요. 요즘은 스마트폰용 게임도 개발 중이에요.”
▼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한데요.
“아들의 꿈이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되는 거래요. 얼마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 등이 참석한 만찬 사진을 제게 보여주며 ‘엄마, 나도 나중에 이런 자리에 꼭 낄 거야’라고 말하더라고요. 벌써 MIT 공대에 진학해 똑똑한 친구 2~3명과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웠어요. 지금 운영하는 사이트를 앞으로 잘 키워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금의 절반은 유학 경비로, 나머지 절반은 사업 자금으로 쓸 거래요(웃음). 아이들 앞에서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한 적이 없는데도 아들은 엄마가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고 빨리 성공해서 엄마를 편히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의 꿈이 꼭 실현되면 좋겠지만 그보다 요즘 꿈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우리 아들은 꿈이 있어서 참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훗날 ‘배우 김혜선’보다 ‘장한 어머니’로 더 유명해지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아들이 ‘10년 뒤엔 누구 엄마로 인터뷰하기 바쁘게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엄마는 해준 게 없어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말만으로도 고맙죠.”
▼ 딸은 어떤가요.
“아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디는 스타일인 반면 딸은 고집이 세고 활달한 성격이에요.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나 같이 내성적인 성격은 싫다. 밝은 아이가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기도대로 됐어요.”
▼ 오빠가 동생에게 많이 양보하겠어요.
“동생의 밥이죠. 동생이 괴롭히고 때려도 눈물을 뚝뚝 흘릴지언정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어요.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탈 때도 위험하지는 않은지 항상 챙기고, 잘 놀아주고, 꽃피면 예쁘게 옷을 입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진도 찍어주고….”
▼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싱글맘으로 살기는 여전히 힘든 점이 많을 텐데.
“아이들과 나들이할 때, TV에서 이상적인 가정 모델들이 나올 때, 아이들이 부러워할 거란 생각은 들어요. 그런 점은 안타깝지만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그들 눈높이에서 바라봐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면 싱글맘이든 싱글대디든 아이를 키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아픔을 잘 극복해낸 지금이 인생의 절정기
김혜선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누구보다 떳떳하고, 배우로서도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김혜선은 “비교적 그렇다”고 답했다. 젊은 시절 꿈꾸던 마흔 살 김혜선은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아내, 엄마 그리고 배우였다. 그중 한 가지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 대신 아들이 반듯하게 잘 자라줬고, 부모님께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김혜선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명언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리니’라는 구절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 배우로서 전성기인 30대에 힘든 일이 많았어요.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성숙해지면서 연기에도 도움이 됐고요. 다만 앞으로 자기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눈앞의 이익만 쫓다 보면 볼썽사납게 늙을 것이고, 그러면 작품 속에서도 금방 티가 나겠죠. 또 선하게 나이 들어야 그 덕이 아이들에게 가지 않을까라는 고리타분한 생각도 갖고 있고요.”
▼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아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한창 달려가고 있을 거고, 아마 여자친구가 있겠죠? 딸은 밝고 예쁘게 잘 자랐을 거고, 저는 좋은 작품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을 테죠?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음료 사업도 잘 되면 좋겠어요. 석류·블루베리·울금 등을 음료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니만큼 이익이 적게 나더라도 몸에 좋은 걸 만들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거든요.”
▼ 재혼은요?
“안 할 거예요. 부모님께 넌지시 말씀드린 것도 있고, 우리 아이들 봐서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결혼은 안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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