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가난을 이기고 자수성가한 정동일 중구청장.
남산과 청계천을 끼고 있는 서울 중구에는 명동, 남대문, 충무로 등 우리나라 금융·유통·문화 중심지가 자리해 있다. 하지만 이곳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정동일 구청장(53)은 ‘변두리’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전북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지연 학연 어느 면에서 봐도 ‘중심’과는 거리가 먼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라고 보기엔 다소 투박한 첫인상도 그의 남다른 인생역정과 닮아 있었다.
“자수성가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죠. 제가 생각해도 참 꿈만 같아요(웃음). 중학교에 다니던 열다섯 살 때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거든요. 고향 형 소개로 카센터에 취업해 기름때 묻혀가며 열심히 일을 배웠죠.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는데, 어느새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네요.”
담담하게 얘기하는 그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전북 무주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정 구청장의 어린 시절은 신산했다고 한다. 그를 낳은 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어머니가 3년여 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 정 구청장이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자는 아니어도 논을 30마지기(1마지기는 2백 평)를 가진 중농이던 집안의 가세는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는 동안 하루하루 기울어갔고, 나중엔 끼니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보릿고개 때는 산에서 쑥을 뜯어다 밀가루와 섞어 먹곤 했어요. 그러고도 배가 고프면 채 익지도 않은 보리를 꺾어 죽을 끓여 먹었죠. 하지만 가난보다 더 슬픈 건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거였어요. 저희 때는 어머니날(현재 어버이날)이 되면 아이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는데, 어머니가 있는 아이는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없는 아이는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야 했죠. 그때 친구들이 저를 보고 ‘너는 엄마가 없구나’ 하던 게 얼마나 서럽던지, 아직도 그 아픔이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어요. 그렇지만 만약 집안이 넉넉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평범한 삶을 살았을 테니, 이제는 오히려 그 시간에 감사해야 할 것 같네요(웃음).”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가 서울에 올라온 건, 초등학교 졸업 뒤 진학한 중학교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규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 돼 당시 나라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운영하던 ‘재건중학교’에 입학했는데, 2학년을 채 마치기 전 학교가 폐교된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명심보감’을 줄줄 외울 정도로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였던 그는, 가난 때문에 공부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무너졌다고 한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최선을 다하리라, 뭘 하든 고향 식구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리라’고요. 카센터에 취직한 뒤에도 힘들 때마다 고향에 남아 있는 아버지, 형, 누나들을 생각했죠. 그렇게 한 4~5년을 일하니 자동차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더군요. 카센터 사람들이 저를 ‘정 박사’라고 부를 정도로요(웃음). 지금도 저는 엔진 소리만 들으면 차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알아맞힙니다. 제 자동차는 직접 점검하고, 웬만한 수리도 직접 해요.”
카센터에서 일을 하며 운전면허를 취득한 그는 군 입대 뒤 장성의 운전병으로 발탁됐고, 그의 소개로 제대 후엔 한 기업 이사의 운전기사로 일하게 됐다고 한다. 운전면허 소지자가 드물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운전기사로 기반을 잡은 그는 장사를 시작했다. 정 구청장은 과일 행상, 안주 배달업 등을 거치며 모은 자금으로 지난 90년 서울 중구 명동에 치킨 가게를 열었다. 그것이 지금 프랜차이즈 업체로 유명한 ‘둘둘치킨’이다.
“아내와 함께 수없이 많은 닭을 튀기면서 가장 맛있게 익히는 데 필요한 기계를 개발했고, 무수히 밤을 지새우며 맛있는 소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사실 소스 개발을 시작한 건 안주 판매업을 하던 83년부터니까, 거의 10년 가까이 거기에만 매달렸던 거죠.”
사업은 성공적이었지만 삶이 편해진 건 아니었다. 매일 밤 가게에서 벌어지는 취객들의 싸움을 말리고,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손님을 잡으러 뛰어다니느라 몸 여기저기 성할 날이 없었다고. 그는 “솔직히 말하면 내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의치”라며 “전부 그때 벌어진 갖가지 사고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성공’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이런 노력 덕에 ‘둘둘치킨’은 놀랍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전국 3백여 곳, 세계 7개 나라에 체인점을 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됐다. 그가 성공한 CEO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자신이 성공하는 데 디딤돌이 된 중구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고팠을 때 보리밥 한 그릇 준 사람의 은혜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르침이 평생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그는 ‘둘둘치킨’이 자리를 잡은 뒤인 지난 98년 중구의회 제 3대 구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했고, 지난해 중구청장이 됐다.
그가 구청장에 취임한 뒤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보통사람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 현재 중구청의 구청장실은 1층에 있다. 정 구청장이 취임 후 “구청장은 장애인이나 노약자 같은 민원인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며 옮기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 구청장은 취임 뒤 관내에 사는 85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3만원씩 지급하는 ‘장수수당’을 신설했고, ‘1직원 1가정 보살피기’ ‘방문간호사 1인 1동제’ 등 노인과 장애인, 가난한 이웃을 위한 ‘저인망식 복지 그물망’ 마련에도 힘쓰고 있다.
“‘1직원 1가정 보살피기’는 1천3백여 명쯤 되는 구 직원들이 각각 어려운 가정의 후견인을 맡아 ‘맞춤형 도움’을 주는 제도입니다. 평소 꾸준히 연락을 나눌 뿐 아니라, 설과 추석에는 가정을 방문해 작은 선물을 드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죠. ‘방문간호사 1인 1동제’는 각 동마다 한 명의 간호사를 배치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가정에 방문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거고요. 제가 어렵게 살았고, 또 어머니가 편찮으셨던 때문인지 가난한 분들, 편찮은 분들, 노인 분들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드리고 싶어요.”
또 한 가지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교육정책.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그는, 최소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만은 없게 해야겠다는 뜻이 강하다고 한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카센터에 근무하면서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든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부해서 뭣에 쓰려고 하냐. 그럴 시간 있으면 기술이나 하나 더 배워라’는 핀잔만 받았어요. 그때 공부하던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내가 부자가 되면 절대 가난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없도록 하겠다’고 생각했죠.”
사업가가 된 후에야 비로소 공부를 시작한 그는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지난 2005년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내친김에 동국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지금도 책을 읽고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가 교육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구를 교육·복지 중심구로 만드는 게 소망”
“지난 1월부터 구청 홈페이지(www.junggu.seoul.kr)에서 ‘중등 인터넷 교육방송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우리 구 학생은 누구나 홈페이지에 접속해 EBS 교육방송 콘텐츠 가운데 중학교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5개 과목 프로그램을 무료로 볼 수 있게 했죠. 또 ‘철학교실’ ‘철학에세이’ ‘눈높이명심보감’ ‘사이언스 매거진’ 같은 EBS 교양 프로그램도 모두 무료로 볼 수 있어요. 학생들이 원어민의 생생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미국의 영어 교육프로그램인 ‘TTESS(Thomas Technological Education System)’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교양서적 3백 권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올려두기도 했고요.”
하나하나 정책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 자랑스런 웃음이 번졌다. 중구는 올해부터 관내 초등학교 6학년생 전원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영어마을에 무료 입소시키고, 전국 최초로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원어민 영어교사를 배치한다고 한다. “모든 과목 공부를 도와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부모에게 가장 큰 사교육비 부담을 주는 영어 분야만큼은 돕고 싶다”는 정 구청장의 의지가 담긴 정책이다.
정 구청장은 이 외에도 중구 중심에 초고층 건물을 지어 강북의 랜드마크로 만들고, 남산에 테마 공원을 조성하며, 충무로에서 국제 영화제를 여는 등 중구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저는 지금도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자지 않습니다. 젊을 때부터 늘 새벽 2~3시까지 일하다 잠들고 5시면 다시 일터로 나가던 게 습관이 됐기 때문이죠. 아무리 힘들 때라도 전 꿈을 잃지 않았어요. 지금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는 정책들은 오랫동안 제가 간절히 꿈꿔왔던 것들입니다.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 힘들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