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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앞서가는 여성

경호원 양성하는‘경호학’의 대모 경기대 교수 황복희

“사람들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닦아 일인자 됐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 ■ 사진·김성남 기자

2004. 11. 11

경쟁이 치열한 시대일수록 한발 앞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경기대 경호비서학과 황복희 교수는 그런 점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여 년 전 여성에게 불모지나 다름없는 경호학에 투신해 경호원을 양성하는 홍일점 교수가 된 황 교수의 불도저 같은 인생이야기.

경호원 양성하는‘경호학’의 대모 경기대 교수 황복희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골라서 집중하라. 희소가치가 있는 일, 최초가 될 수 있는 영역을 개발하라. 나만의 영역을 확보했다 해도 계속되는 벤치마킹으로 독점적 지위를 선도하라.’
경기대(서울 캠퍼스) 경호비서학과 황복희 교수(45)는 리더의 요건을 나열하고 있는 위 문장에 딱 부합하는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여성이지만 무예에 남다른 흥미를 가졌던 그는 쿵푸를 시작으로 태권도, 합기도, 검도, 격투기 등 합이 20단이 넘는 무술 실력을 갖췄고, 스포츠마사지 등 1백여 개의 자격증을 따냈다. 20여 년 전 ‘경호’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부각될 즈음 그는 이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경호학을 공부해 마침내 국내 유일의 경호학과 여자 교수가 됐다.
경기대(서울 캠퍼스) 경호비서학과 연구실을 노크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문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검은 제복의 사나이들. 그 가운데 푸른 빛깔의 블라우스에 검정 투피스 차림을 한 황 교수가 서 있었다. 황 교수의 인터뷰 일정을 알고 재학생들이 그를 경호하고 있었던 것.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그의 손끝에 블루 컬러의 매니큐어가 눈에 띄었고, 같은 색깔의 하이힐을 신은 발목에서는 가는 금빛 체인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경호원’ 하면 키가 크고 딱 벌어진 어깨에 선 굵은 무사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건 옛날이야기예요. 무술만 잘한다고 날아드는 총알을 막아낼 수는 없습니다. 무술만 할 줄 아는 경호원의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죠. 요즘처럼 전 세계적으로 테러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선 여성적인 섬세함과 세밀함, 주의력과 집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돼요.”
그는 “경호업무에도 다양한 이미지의 변장술이 필요하다”며 “무술이나 권총도 좋아하지만 ‘버버리’ ‘겐조’같은 향수도 즐길 줄 안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는 강의실 밖에서는 ‘누님’이나 ‘언니’같은 친근함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지만 강의시간엔 학생들 사이에서 ‘불도저’ 혹은 ‘불독’으로 불릴 만큼 엄격한 사부로 통한다. 엘리트 경호원을 양성하고자 하는 그의 욕심이 남다르기 때문.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연방수사국(FBI)을 탐방해 테러진압 방법과 민생치안을 보고 배우는 현장감 있는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피아노 가르치다 뒤늦게 경호학 공부 시작
군 장교였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이던 어머니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난 황 교수는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먹는다’는 말을 생활신조로 삼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부지런함이 몸에 배었다.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아버지가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영어방송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것. 때문에 그의 수면시간 역시 5시간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그의 어머니도 아버지 못지않았다. “10원을 비웃는 자, 10원에 운다”며 근검절약을 실천했지만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고.

경호원 양성하는‘경호학’의 대모 경기대 교수 황복희

엄마를 닮아 도전의식이 강한 두 딸. 첫째 희서는 모델 지망생이고, 둘째 희남이는 경호학과에 진학하고 싶어한다.


“제 꿈은 여군 장교였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그냥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 음악콩쿠르에 출전해 상을 타니까 모두들 제가 예술가가 될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그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가 군 제대 후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여고 시절 그는 피아노 레슨을 해 가족의 생활비를 보태야 했다. 전문대 유아교육학과에 진학한 뒤에도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놓지 못했던 그는 2학년 때 피아노 4대를 마련해 피아노 교습소를 차렸다. 다행히 교습소 운영이 잘돼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이자 그는 오랫동안 억눌렀던 욕구들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이 쿵푸. 우연히 중국무술을 보고 흥미를 느낀 그는 금세 쿵푸에 심취했다. 무예를 익히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권법을 마스터할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쿵푸에 빠져들었을 당시 홍콩의 한 영화기획사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기까지 했다고. 그는 내친김에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유학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중국으로 떠나는 대신 그는 한국에 남아 태권도, 합기도, 검도, 격투기 등을 차례로 섭렵했다. 93년 명지대 사회교육원 연극영화과에 무예전공생으로 입학한 그는 졸업 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대학에서 체육사회학을 전공한 데 이어 컨베넌트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땄다.
끊임없이 배움의 욕구를 채워가던 그가 경호원이라는 직업에 시선을 돌리게 된 건 경찰청에서 주관하는 경비지도사(경호원의 정식 명칭) 국가고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경호원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그는 그 방면의 공부를 계속하며 그동안 연마한 무술과 취득해온 자격증들이 모두 이 직업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렇게 경호학 공부를 계속한 그는 현재 경기대(서울 캠퍼스) 경호비서학과의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식 두 딸에게 그대로 이어져
황 교수는 사업을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딸 둘을 뒀다. 고등학교 3학년인 첫째 희서는 모델 지망생이고,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 희남이는 경호비서학과에 진학해 엄마의 뒤를 잇고 싶어한다고.
“희서는 일곱 살 때 한 일간지에서 주최하는 전국피아노 대회에서 1위에 입상했을 정도로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나요. 플루트, 바이올린, 발레도 수준급이고요. 희서가 열세 살 되던 해에는 필리핀 대통령 경호실장으로부터 사격을 배우기도 했어요. 어린 나이에도 자동소총을 무서워하지 않아 필리핀 경호실장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죠(웃음).”
황 교수는 자신을 닮아 예술 분야에 재능이 있으면서 사격 등에도 소질을 보이는 희서가 자신의 뒤를 이어 경호비서학과에 진학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정작 본인은 모델이 되고 싶어한다고.
“희서의 키가 176cm예요. 늘씬한 체격 덕분에 모델에이전시에서 여러 번 제의가 들어왔어요.”

경호원 양성하는‘경호학’의 대모 경기대 교수 황복희

황복희 교수는 미연방수사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필리핀 바기오 대학과 연계를 맺는 등 국내 경호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첫째와 달리 일찍이 엄마의 뒤를 잇겠다고 선언한 둘째 희남이는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때문에 국내 최연소 경비행기 조종사로 SBS ‘리얼코리아’에 소개된 적도 있다고.
그의 이력은 저돌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온 여전사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두 딸을 자랑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빠서 아이들을 곁에서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했지만 대신에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샘솟는 에너지를 원천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해온 황복희 교수. 강하지만 부드러운 그의 남은 인생이 또 어떤 새로운 무늬로 장식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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