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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또 다른 변신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장으로 취임한 영화감독 정지영

“영화를 책상머리에 앉아서 만들 순 없잖아요”

■ 글·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2003. 03. 05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국내 영상예술인들의 상아탑으로 새롭게 탄생한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장으로 취임해 주목을 끌고 있다. 부담스러운 자리이긴 하지만 창작활동 못지않게 후학 양성도 보람된 일이라 판단해 무거운 직책을 맡았다는 그. 학장으로서, 감독으로서 낮과 밤이 다른 그의 독특한 이중생활 이야기.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장으로 취임한 영화감독 정지영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자리한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장실. 흩날리는 바람머리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형사 콜롬보 스타일의 트렌치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들어오는 중년의 남자.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래도 명색이 학장인데… 단정한 정장에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스타일을 연상했던 기자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기자를 향해 “어? 나 안 늦었어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며 자리에 앉기를 권하던 그. 바로 중견 영화감독 정지영(57)이다. 올봄에 첫 신입생을 맞는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장으로 선임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모은 그는 학장이라기보단 촬영 현장을 누비는 감독다운 모습으로 그렇게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실내에서도 검은 선글라스를 좀처럼 벗질 않았다. ‘웬 오버?’인가 싶었는데 그 생각도 빗나가고 말았다. 평소에 쓰던 안경 테가 부러진 탓이었다. “이게 어쩌다 부러졌담. 나 안경 없으면 안되는데… 클났네. 내 안경은 다초점 렌즈라서 금방 못 맞추는데…”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는 이내 선글라스를 벗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학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자 그는 대뜸 “축하할 일은 아닌데요. 짐을 또 하나 맡은 거니까”라고 응수한다. 평소 기자들을 잘 안 만나는 사람 중 하나로 유명한 정감독. 이유는 간단하다. 딱히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런 그가 이번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건 “학장으로서 학교 홍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털어놓는다.
“학장 제의는 지난해 가을쯤 받았는데 처음엔 거절했어요. 솔직히 전 학장으로서 학교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행정업무를 잘할 수 있는 체질이 못돼요. 감독이란 게 공동작업 속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인화를 다지거나 가르치는 것까진 좋은데 행정분야에서 딱 걸리는 거야. 이전에 순천향대학교에서 3년간 교수직을 맡았는데 역시 내 체질에 안 맞더라고요.”
때문에 그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영화에만 전념하리라 다짐했다. 스스로 체질에 안 맞는다는 그가 교수보다 ‘더한’ 학장 자리에 앉게 된 계기부터 물었다.
“이 학교 이사장인 김민성씨가 제 후배거든요.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지만 그 친구는 그동안 연기자 양성기관을 이끌어오면서 나름대로 이런 분야에 소신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 뜻을 알고 있기에 자꾸 거절하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곰곰 생각해보니 일반 대학과 달리 직업전문학교 같은 성격을 띠고 있어 교육방침도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현장 위주의 교육을 바탕으로 재미있고 활기차게 밀고 나갈 수 있겠다 싶었죠.”
학장이지만 그도 한 과목 정도는 직접 강의를 할 참이라고 했다. 어떤 과목을 맡을 거냐는 질문에 “음… 난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어른이니까(웃음) 영화 개론 같은 기초 과목을 가르칠 생각”이라고.
사실 교수는 내 체질이 아닌데…
요즘은 연예인들 중에서 인기 좀 있다 싶으면 너도나도 강단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간혹 ‘교수 하고 싶으면 먼저 연예인이 되는 게 낫다’는 말도 나온다는 얘기를 넌지시 비추자 그는 “나는 현장에서 연기를 하는 연예인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약간의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다만 경험은 많지만 기본적인 연기관도 없이 단순히 인기가 있다고 해서 강단에 서는 건 문제죠. 물론 학생들 입장에선 유명한 사람이 오니까 호기심도 생기고 흥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긴 힘들죠. 그런 면에 있어 강단에 나서는 사람은 강의를 해도 좋은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야죠. 어떻든 ‘감히(이 단어를 강조한다)’ 강단에 나서는 사람은 그런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는 학생이라고 해서 그저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책만 들여다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현장에서 팔팔하게 일하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교수진도 영화 ‘공공의 적’의 강우석 감독, ‘몽정기’의 정초신 감독, ‘중독’의 김병일 촬영감독, 드라마 ‘옥이 이모’의 성준기 PD, MC 임성훈, 김병찬, 영화배우 안성기, 문성근, 송윤아 등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영입했다.
학장으로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그이지만 그의 본업은 뭐니뭐니 해도 영화감독. 요즘은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영화 ‘아리랑’ 작품을 구상하느라 틈틈히 여기저기 정처없이 다니는 게 일이다. ‘아리랑’은 한 미국 작가가 중국에서 만난 한국 독립운동가의 짧은 인생을 인터뷰를 통해 소설로 발표한 작품.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장으로 취임한 영화감독 정지영

영화 ‘하얀전쟁’의 원작자인 소설가 안정효씨(오른쪽)와 함께 한 정감독


81년, 비운의 스타 오수미, 윤영실이 주연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작품으로 영화감독에 입문한 정지영. 기자도 그 영화를 봤다고 하자 대뜸 “아니 지금 몇 살인데 그 영화를 봤느냐”며 반문한다. 기자가 나이를 밝히자(정감독은 기자의 나이를 기분좋게도 10년이나 깎았다) 눈이 동그래지면서 “아이구 나 헛살았네. 아니, 감독의 눈이 날카로워야 하는데 이렇게 무뎌서야…” 라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차기 작품 ‘아리랑’이 그렇듯 그동안 ‘남부군’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 ‘색깔 있는’ 작품을 위주로 만들어온 그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묻자 “원래 제가 생겨먹은 게 좀 삐딱해요”라며 말끝을 잇는다.
“지금껏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내가 선택한 작품의 공통분모가 뭘까 생각해봤더니 이런 것 같아요.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젖어버린 잘못된 지배 이데올로기, 인생은 이렇데 살아야 되고 학교는 이래야 되는 거야… 뭐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부수려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남부군’은 그동안 우리가 교육에 의해 철저히 의식화된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고, ‘하얀 전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월남전이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있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통해서는 현대사 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아마 미국문화일 것이다. 뭐 이런 것을 짚어보면서 문제 제기를 해왔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요즘 흥행을 염두에 둔 코미디풍의 가벼운 영화가 주류를 이루는 풍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코미디라고 해서 무조건 가벼운 영화라고 치부할 수는 없죠. 그 안에서도 진정한 삶의 흔적을 담아 신나게 웃고 나서 되돌아보게 하는 것도 있거든요. 하지만 요즘 나오는 코미디 영화들 중에는 그런 코미디라기보다는 그저 웃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뭐라 말할 순 없죠. 영화라는 게 오락적인 것도 있는 것이고 반드시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이런 것이 한국영화의 전체가 된다면 그건 좀 문제다 싶은 생각은 갖고 있어요. 영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대중의 구미에 맞춰 흥행만 염두에 두고 너무 그런 쪽으로만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이죠. 한국영화가 한창 꽃 피우려는 시점에서 자칫 방향을 잘못 잡아나가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은 됩니다.”
정감독은 자신의 젊은 시절과 요즘 젊은이들이 사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그네들이 좋아할 영화는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영화는 꽃이 잘 안 피는 모양”이라며 덤덤하게 웃는다.
그렇지만 얼마 전 북한을 왜곡된 시선으로 담아 개봉 전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 ‘007 어나더데이’의 참패를 두고 “한국 젊은이들의 의식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미국이라는 강력 파워를 지닌 나라가 시나리오 의도에 맞춰 다른 민족을 자기들 마음대로 그린 것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봅니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볼 때 한국영화 시장이 결코 작은 시장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마인드를 수정하는 데 새로운 계기를 준 게 아닌가 싶어요.”
오래 전 직배 외국영화 상영하는 극장에 뱀 풀어놓았던 장본인
그의 말대로 한국영화가 한창 꽃 피고 있는 요즘은 별로 걱정할 건 못되지만 10년 전만 해도 외국영화 앞에서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깨갱’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외국영화 직배 운운하며 한국영화판을 위협하고 있을 즈음 정감독은 스크린 쿼터제를 주장하며 직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뱀까지 풀어놓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허허… 그거 다 옛날 얘긴데… 우리 영화계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을 개방한다니까 영화인들이 얘기 끝에 ‘아 이거 한국영화 다 죽는구나’ 하는 결론을 내린 거죠. 이건 안되겠다 싶어 저항을 한 건데 그 저항의 최종 목적이 한국영화 진흥법을 만들어놓고 받아들이겠다는 거였어요. 근데 이미 법적으로 허용된 상태에서 미국애들이 ‘그럼 다시 갔다 천천히 올게’ 이게 아니거든요. 걔들은 하루 빨리 한국시장을 먹는 것이 목적인데…. 그러니까 우린 몸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죠. 매일 극장 앞에서 피켓 들고 시위하고 그랬는데…. 관객들이 외국영화 표 사들고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임마 영화나 잘 만들어. 한국영화 잘 만들면 한국영화 보지 내가 미쳤다고 외국영화 보냐’ 이러는 거예요. 그에 따른 절망감이 겹치면서 ‘안되겠다, 이건 사고를 쳐야 한다’는 분위기였죠. 그때 누군가가 ‘옛날에 어디에 뱀을 넣었더니 그 극장이 한달간 문을 닫았다’는 소릴 하길래 ‘아 그럼 우리도 한번 해봅시다’는 식의 얘기가 오간 거죠.”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장으로 취임한 영화감독 정지영

정감독은 영화판에서 ‘색깔있고’ ‘삐딱한’ 감독으로 통한다.


얘기 끝에 실제로 임시투쟁위원회 회의에서 안건으로 부쳐졌다. 거의 다 찬성이었다. 그러나 투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그런 행위를 한다는 건 사실 우스운 일이라며 없었던 걸로 덮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몇 사람이 비공식적으로 뒤에서 실행을 한 것. 물론 그 뒷무대의 주요멤버는 정감독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6개월간 구속됐다 풀려났다.
“풀려나니까 사람들이 나를 보면 슬쩍 다가와서 ‘야 진짜 뱀 풀었어?’ 묻기도 하고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짓을 하느냐’고 하기도 했죠. 사실 내가 주동은 했지만 내가 직접 풀어놓은 게 아니라 몇 마리가 들어갔는지 나도 잘 몰라(웃음). 그래도 독 없는 뱀으로 골라서 샀는데… 근데 그 뱀들이 움직이질 않더래요. 예전에 극장에 뱀을 풀어넣자마자 뱀들이 기어다녀 관객들이 기겁을 해서 뛰어나왔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지. 극장측에서 먼저 발견해놓고 소문날까봐 쉬쉬해서 그때는 신문에 나질 않았죠. 그러다 나중에 직배와 관련해서 다른 화재사건이 났을 때 경찰이 화재사건을 추적하다 ‘이전에 뱀 풀어놓은 놈들 찾으면 될 거 아니야’ 해서 뒤늦게 밝혀진 거지. 그래서 난 뱀 풀어놓고 한참 만에 영화 촬영하다 잡혀갔다는 거 아닙니까. 한창 ‘남부군’ 찍고 있는데 연행한 거야.”
‘못 말리는 감독’으로 통하기도 하는 그의 영화 인생은 어느덧 25년이 다 돼간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나? 그의 아들 역시 영화계에 몸담고 있다. 최근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화제에 올랐던 ‘오아시스’ 연출부에서 일했고, 지금은 정감독과 함께 ‘아리랑’ 연출부를 맡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정감독은 아들이 영화 일을 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처음엔 반대했죠. ‘넌 아빠가 감독생활 하면서 사는 것도 못 봤냐? 하필이면 감독이냐’ 하면서 저도 말리고 집사람도 말렸는데….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가진 남편을 만난 아내들은 다 그랬을 거예요.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감독 외에는 다 가난한데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또 가난하기만 하남? 감독들 보면 자기 일만 아는 이기적인 성향이 얼마나 강한데….”
유명감독이라 해도 여전히 배고프지만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어
그래도 정감독은 유명 감독 축에 끼는데 배고픈 차원에선 좀 벗어나지 않았느냐는 말에 대뜸 “그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란다. “몇몇은 돈 좀 벌었지. 그런 사람들이 감독의 대표로 보이는 것일 뿐 감독들 다 가난해요”라며 자신도 “유명무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영화배우들이 한국영화 실정에 맞지 않게 개런티를 너무 세게 부르는 것 같다”며 내심 불만을 토로한다. “영화는 작품인데 좋은 작품에 출연해서 인기 올라가면 CF나 다른 곳에서 돈 벌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좋아하는 배우는 무조건 연기 잘하는 배우다. “싸가지가 없더라도 연기 잘하는 배우를 좋아한다는 것을 다 알아요”라고 할 정도다.
정감독은 고려대 불문과 출신이다. 언뜻 영화와는 상관없는 전공이다 싶지만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가 진학한 대학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던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빨리 제대로 배워서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에 그 학교에 간 건데…. 그 당시엔 어느 연극영화과고 간에 16mm 카메라 하나 없었어요. 영화 찍으려면 필름도 사야 하고 현상도 해야 하고 조명기도 있어야 하고…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러니까 영화를 이론으로만 만드는 거예요. 강의실에서 듣는 얘긴 집에서 책 보면 되는 건데… 그래서 1년 만에 때려치운 거죠.”
그렇다면 영화를 만들지 못해서 학교를 때려치운 사람이 불문과로 돌아선 이유는 뭘까?
“제가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불문과에 가서 프랑스 영화에 대한 것을 좀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어 간 거죠. 들어가자마자 영상서클을 만들어서 8mm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는데 역시, 돈 때문에 못했어요. 오래 전에 나도 경험해서 알지만 지금도 일반 대학 연극영화과에서는 기자재가 충분하지 못해 학과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처지예요. 학교에서 기자재를 사려면 말이 많은 거야. 너희들만 그렇게 지원해줄 수 없다는 거죠. 영문과나 국문과는 책만 사주면 되는데 형평성을 따져서라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여기는(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실습할 수 있는 기자재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죠.”
인터뷰 말미에 급기야 감독이 아닌 학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그는 “특히 이걸 강조해야 된다”며 인턴십 제도를 거론한다.
“여기는 방학중 현장에서 직접 일하며 부딪히는 것이 필수입니다. 현장에서 평가받은 것을 기준으로 학점을 주죠. 그것이 학생들한테는 귀찮을 수도 있죠. 방학 때 놀고 싶어도 못 노니까. 하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다 보면 자기가 정말로 그 일에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 빨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봅니다.”
가장 좋은 직업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감독. “그런 면에서 난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그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학교의 목적”이라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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