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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단독]국내 최초 딸 출산 공개한 레즈비언 부부 김규진‧김세연 인터뷰

“우리 딸은 ‘엄마 둘’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를 살길”

문영훈 기자

2023. 08. 30

8월 30일 새벽 4시 30분경, 한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라니’는 두 엄마, 김규진‧김세연 씨와 함께 인생의 첫발을 내딛었다. 출산을 마친 김규진 씨는 병원에서 ‘엄지척’ 사진을 보내왔다. 규진 씨는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 힘든 건 알았지만 이번 기회에 실감하게 됐다”며 “병원 스태프분들이 저와 제 와이프를 차별 없이 부부로 대해줬는데 이게 바로 ‘라니’가 살아갈 세상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출산을 보름여 앞두고 만난 김규진‧김세연 커플의 이야기다.

6월 29일 레즈비언 커플 김세연(위) 씨와 김규진 씨는 임신 소식을 SNS를 통해 공개했다.

6월 29일 레즈비언 커플 김세연(위) 씨와 김규진 씨는 임신 소식을 SNS를 통해 공개했다.

둘 다 MBTI가 ISTJ(현실주의자)인 세 살 터울 커플이 서울에 산다. 마취과 의사, 글로벌 기업 마케터로 열심히 일하며 꼬박꼬박 세금도 낸다. 2019년 식을 올린 결혼 4년 차 부부(婦婦)에게 지난해 아이가 생겼다.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에 얼마나 가상한 커플인가. 하지만 이들을 이렇게만 소개하긴 좀 심심하다.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을 자처하는 김규진(32) 씨는 6월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임신 소식을 밝혔다. ‘대한민국 저출생 대책 간담회’라는 정부발 보도자료에서 볼 법한 제목으로 베이비 샤워도 열었다. 그리고 8월 30일 ‘라니’(태명)가 태어났다. 규진 씨가 화제에 오른 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9년 자신의 결혼 준비 과정을 블로그에 공개하며 관심을 받았다. 이를 정리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2020)라는 이름의 책도 출간했다.

이제 규진의 아내 김세연(35) 씨도 함께 언론 카메라 앞에 선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차피 아기 엄마로 커밍아웃 해야 하는데 한 번에 해버리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취지다. 8월 12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레즈비언 커플에게 아주 평범했던 결혼과 임신에 대해 물었다.



첫 만남부터 시작해보죠.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에 세연 씨에 대해 “모범생 같은 외모에, 차분한 말투로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고 썼습니다. 첫인상이 기억나나요.



규진 | 셀프 소개팅으로 만났어요. 제가 먼저 글을 올렸죠. 저는 사진도 공개하는 편인데, 보통은 안 그러거든요. 와이프가 제게 사진을 보냈는데 형체를 알 수 없는, 흔들린 사진이었어요. 그래서 안 되면 ‘친구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소개팅에 나갔는데 멀쩡한 사람이 나왔더라고요(웃음).

세연 | 사진 교환이 어색해서 그랬어요. 저는 주변에 스스로를 오픈하는 퀴어 친구가 없어서 조금 걱정했어요. 실제로 만나서 얘기해보니 적극적이고 직설적이더라고요.

이상형과 부합했나요.

규진 | 저는 사실 차갑고 날씬하고, 엄청 예민할 것 같은 외모를 이상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을 막상 만나고 싶진 않았어요. 연애할 때는 귀엽고 유머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을 원했는데 언니와 그런 부분이 잘 맞아서 좋았죠.

세연 | 전 똑똑한 연하를 좋아합니다.

규진 씨가 세연 씨에게 PPT를 만들어서 프러포즈했다고요.

세연 | PPT로 프러프즈할 거라는 예상은 아예 못 했죠. 그런데 내용이 너무 알찼어요. 같이 삶을 꾸린다면 궁금해할 만한 내용도 많았죠. 귀여운 파트도 많았습니다. 자신의 발전 가능성을 어필하면서 지금까지 본인의 연봉 인상률과 향후 예상 상승률을 적었어요.

규진 | (진지하게) 당시에 기재한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올랐습니다. 와이프가 예전에 만났던 여자 친구들도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고 했어요. 계획적인 사람이 좋다고 해서 ‘내가 계획이 뭔지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PPT를 준비했어요. 마케터로 일하며 맨날 회사에서 기획서 만드는 게 일이니까요.

3년 뒤 도착한 결혼 축하 메시지

결혼을 준비하면서 규진 씨는 온라인상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가령 웨딩드레스 두 벌 견적은 어느 블로그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결혼 준비 과정을 블로그에 게시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올린 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동참해 퀴어 결혼 정보가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도 했다. 2019년 8월 만들어진 블로그에는 ‘김규진,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이라는 다소 직관적인 자기소개가 달려 있다. 다년간의 마케터 역량이 발휘된 기획이다.

규진 씨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블로그를 쓴다고 했을 때 걱정하지 않았나요.

세연 | 걱정하진 않았어요. 자기 얘기를 쓰는 거니까요. 뉴스에 나온다고 했을 때는 악플이 많이 달릴까 걱정하긴 했어요.

규진 | 블로그에 글을 쓰고 처음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을 땐 이걸 해도 될까 싶었죠. 뭐 물론 얼굴을 공개한 순간부터 그렇게 될 것 같았지만요. 저는 오픈리 퀴어(openly queer·성정체성, 성적 취향 등을 숨김없이 밝히는 사람)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SNS나 블로그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팔 수 있는 가장 비싼 게 제 신상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분명 그럼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될 거고, 그 생각이 맞아떨어진 거죠.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겠네요.

규진 | 퀴어 커뮤니티는 점조직처럼 돼 있거든요. 잘 모르시는 분들은 LGBTQ(성소수자)들이 숨겨진 비밀조직을 갖고 있으면서 서로 내통한다고 생각하시지만(웃음), 사실 점조직처럼 흩어져 있거든요. 블로그를 통해 감사 인사도 많이 받고 다양한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됐어요.

세연 씨는 ‘오픈리 퀴어’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본격적으로 커밍아웃했나요.

세연 | 결혼할 때는 친한 친구와 회사 동기들만 불렀어요. 규진이가 주재원으로 파리에 가 있는 동안 저도 일을 잠시 쉬고 1년 정도를 같이 살게 됐거든요. 그때 회사에 배우자와 함께 있다가 올 예정이라고 하면서, 카톡 프로필 사진을 웨딩 사진으로 다 바꿨어요. 그렇게 파리에 가 있는 동안 교수님들에게 응원 메시지도 많이 받았어요. 3년이 지났지만 결혼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웃음).

한국에서 2년, 프랑스 파리에서 1년 동안 꿈같은 신혼 생활을 보낸 규진·세연 커플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다. 원래 이 커플은 여느 MZ 부부처럼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규진 씨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었고, 세연 씨는 아이를 좋아하지만 임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규진 씨가 프랑스에서 일하는 동안 한 여성 상사로부터 들은 말이 결정적이었다.

“두 딸을 가진 상사였는데, 임신과 출산을 너무 ‘강추’했어요. 도대체 아이가 생기는 게 어떤 일이길래 저렇게까지 추천할까 싶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와이프에게 말했죠.”

규진 씨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에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세연 | 여성들 대부분 신체적인 어려움과 커리어 단절 등을 걱정하잖아요. 규진이가 그걸 기꺼이 희생해서 임신한다고 하니 너무 미안하면서도 좋았죠(웃음).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상 “정자 공여 시술은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돼 있습니다.

규진 | 이를 두고 보건복지부에서 “(법적 배우자가 없는 상황에서의 정자 공여 시술은) 불법이라 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개개인 의사의 판단에 달렸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한국에서는 그런 산부인과를 찾는 것보다는 정자를 찾는 게 더 힘들어요. 한국에서 정자은행 기증은 부부 중에 남편이 난임인 경우에만 가능해요. 구매는 불가능하고요. 그러니까 개인의 정자를 선의로 기증받아야 하는 거죠.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니 그 단계에서 대부분 막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한국에서 임신하고 싶었어요. 의사와 커뮤니케이션도 잘되고, 이미 여자 둘이 결혼한 커플인데 아이까지 혼혈이면 더 특이해 보일 테니까요(웃음).

왜 당시 살던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에서 정자를 받기로 결정하셨나요.

규진 | 프랑스에도 정자가 없었어요. 2021년 6월 레즈비언과 싱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자 기증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에 정자 품귀 현상이 발생해서 1년 반 이상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국 중 벨기에로 갔어요. 인공수정 확률이 15% 정도라고 하는데 한 번에 성공했습니다.

임신이 됐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규진 | 되게 성격이 급한 편이에요. 원래 인공수정 후 2주 차부터 임신 테스트를 해야 하지만 10일 차부터 계속했거든요. 보니까 희미한 두 줄이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임신 맞는 거 같다고 막 설레발을 쳤는데 와이프가 그 결괏값은 정확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세연 | 보기 좋게 딱 두 줄이 아니었거든요. 설레발치면 실망만 할 뿐이라고 했죠. 보통 인공수정을 2~3회는 해야 성공한다고 하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요. 또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나와도 초음파로 확인해야 해요.

규진 | 그래서 실제로 초음파 확인까지 마쳤을 때도 감동받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기보다 “이거 봐 내가 맞았잖아” 하는 쾌감이 더 강했어요.

출산예정일을 한 달여 앞두고 있습니다. 임신으로 인한 육체적 변화가 힘들지 않나요.

규진 |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잘 까먹어서 힘든 건 잘 기억이 안 나요. 다만 보통 서른 살 이후에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걸 경험하기 힘들잖아요. 그런 부분이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세연 | 저는 임신 초반에만 규진이와 같이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야 했어요. 임신 6개월 차가 넘어서 규진이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중요한 시기에 떨어져 있어서 계속 미안한 기분이었어요.

규진 | 다행이죠. 인성이 제일 나빠졌을 때 떨어져 있어서 싸울 일이 없었어요(웃음).

한국에 돌아와서 세연 씨가 잘해줬나요.

규진 | 최근에 이사하는 걸 전담했고요. 무거운 걸 들어주거나 고양이 화장실 치우기 등을 열심히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8월 30일 김규진 씨는 순산 후 자신의 SNS에 ‘엄지척’ 사진을 게시했다.

8월 30일 김규진 씨는 순산 후 자신의 SNS에 ‘엄지척’ 사진을 게시했다.

규진·세연 부부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혼인 신고를 허용하는 미국 뉴욕에서, 지인들이 있는 서울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올렸지만 이들은 아직 법적 부부가 아니다. 혈연·혼인 관계가 아닌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의 국회 통과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 9월 세상을 처음 볼 ‘라니’(태명) 역시 법적으로 세연씨의 딸은 아니다.

7월 열린 베이비 샤워 이름이 특이합니다. ‘대한민국 저출생 대책 간담회’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요.

규진 | 정상 사회를 좀 놀리고 비틀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출생률 올리려고 임신한 건 아니잖아요. 좀 비꼬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혼인이나 혈연 밖 가족을 법적 단위로 규정하는 ‘생활동반자법’에 관한 발제를 했고요. 딸 ‘라니’의 성별을 공개하는 젠더 리빌 행사는 트랜스젠더 친구가 해줬어요. 기존 한국 사회의 가족이나 젠더 규범을 뒤집는 기획이죠.

세연 | 저도 재밌었어요. 출산 이후엔 친구들을 한꺼번에 볼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다 같이 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 결혼 당시 그리고 최근 임신 소식에 대한 기사가 다수 나오면서 악플도 많이 달립니다.

규진 | 물론 기분은 나쁘죠. 그렇지만 큰 영향은 받지 않아요. 나의 삶과 관계없는 사람들이니까요. 너무 심한 모욕을 하면 고소하는 등의 조치도 취할 수 있긴 합니다. 재밌는 건 4년 전 결혼을 공개했을 때에 비해 달리는 악플이 하나도 발전하지 않았어요. 더 모욕적이거나 새로운 앵글의 악플은 없었어요(웃음). 그동안 퀴어 커뮤니티는 많이 발전했거든요.

세연 | 기사가 나오면 댓글을 보기도 하는데, 기분이 상하면 어떤 상황에서 악플을 썼을까를 생각해봐요. 화가 난 분들은 자기 삶이 힘드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큰 타격감은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냐”고 물어본다면요.

규진 | 부모님이 항상 말씀하세요. 아내와 잘 살고 있는데 왜 그걸 알려야 하느냐고요. 사실 저는 그 기획이 잘될 거 같을 때 합니다. 제일 못 참는 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예요. 결혼을 못 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주길 기다리는 게 성미에 안 맞았고요. 이제는 저희가 법적으로 결혼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두 사람 모두가 낳을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규진 | 성소수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할 거면 세금이라도 깎아주면 좋겠다고 항상 이야기합니다(웃음). 사실 행정과 입법이 사법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법부에서는 동성 부부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한다든가,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등 차별 해소를 위한 판결이 나오고 있어요. ‘국회와 대통령은 뭘 하고 있나’ 생각해요. 행정과 입법이 일상을 사는 개개인의 삶과 더 가까워야 하잖아요. 이미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을 위해서 정치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좀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딸, 라니에게

김규진(왼쪽) 씨와 김세연 씨는 “아이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규진(왼쪽) 씨와 김세연 씨는 “아이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월 21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동성 커플에게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리며 이와 같은 의견을 밝혔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차별이 존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감정·능력·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

공개 결혼식을 열거나 임신할 수 없는 상황의 성소수자들도 많습니다. 비교적 두 분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연 | 맞아요. 사실 직장에서 커밍아웃하고 진지하게 축하 메시지를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죠. 커밍아웃과 생계가 직결되는 사람도 많거든요. 다음 달 월급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좋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해요.

규진 |
주변 교사 친구들은 직장에서 커밍아웃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나서려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얘기하고 다녀도 생계에는 지장이 없으니까요. 언론에서는 저희를 ‘최초 임신 동성 부부’ 타이틀로 쓰지만 결혼한 동성 부부도 많고, 그중엔 출산한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항상 주변에 다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LGBTQ 커뮤니티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규진 | 커밍아웃을 못 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계세요. 자신이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이성애자라고 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거나, 삶의 모든 걸 이야기하지는 않잖아요. 반대로 상황이 괜찮은 분들은 더 이야기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연 |
제가 커밍아웃하고 느낀 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말하고 나면 처음엔 왁자지껄하지만 일주일만 지나도 새롭게 재밌는 게 생겨요. 나의 생계와 무관하고 안전한 상황이라면 용기를 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딸 ‘라니’는 어떤 세상에서 자라길 바라나요.

규진 |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지금은 동성 부부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자라기에 팍팍한 환경이잖아요. 그냥 대한민국에 사는 어린이로서 좀 안전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라니가 저희 나이쯤 됐을 때는 엄마 둘이 있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너희 엄마는 그걸로 책도 썼냐”라는 말을 듣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세연 | 서로를 존중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컸으면 좋겠어요. 이혼 가정이든 재혼 가정이든 조부모 가정이든 가족의 모습은 다양하잖아요. 다양성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가능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규진 | 이걸 강조하는 이유는 누구나 정상 트랙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변에서 이혼한 분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주류사회에서 벗어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고 그 이후로 주변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요.

라니가 크면서 “왜 넌 엄마가 2명이야”라는 질문을 듣게 될 수 있습니다.

규진 | 인공수정을 받기 전 산부인과에서 심리상담 과정이 있었어요.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질문을 미리 생각해보는 거죠. 중요한 질문 중 하나였어요. 아이가 크면 물론 인공수정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줄 수도 있겠죠. 그 전엔 다양한 가족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들 엄마 아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빠와만 사는 친구도 있고, 할머니와 사는 친구도 있다고요. 네가 속한 곳은 엄마가 둘인 가정이고, 엄마들은 너를 너무너무 원했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한 거다. 이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김규진 #김세연 #레즈비언 #임신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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