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교육부는 “지난해 초중고 학생들의 사교육비 총액은 월평균 41만 원으로 2021년 대비 11.8%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초등학생 지출 금액이 43만7000원으로 가장 높았으며 학교 수업 보충과 중학교 선행학습이 사교육의 주목적”이라고 전했다.
사교육의 과열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허리는 계속 휘고 통장은 어느새 ‘텅장’이 되어간다. 인구는 줄고 있지만 조기교육과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 등으로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가계 경제를 흔드는 것은 물론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는 사교육. ‘초등학교 성적으로 대학이 정해진다’는 속설처럼 실제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한 학생이 명문대를 갈 확률이 높은지, 그 방법은 오직 사교육뿐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1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이은경 씨는 둘째 아이가 정신지체 장애 판정을 받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하자 퇴직 후 육아에만 전념했다. 둘째 아이의 진료비, 치료비 등으로 집안 경제가 어려워지자 사교육은커녕 제대로 된 책 한 권 사주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교사 시절 봤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유튜브 인기 교육 콘텐츠 ‘슬기로운초등생활’이다.
채널이 공개되자마자 학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재 이 씨는 ‘학부모의 선생님’으로 불리며 관련 강의, 출판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실적인 조언과 정보, 명쾌한 해답으로 무한 신뢰를 받고 있는 그에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을 들었다.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사교육이죠. 질문의 유형은 천차만별이지만 빼먹지 않고 물어보시는 건 “사교육을 꼭 시켜야 하느냐”인 것 같아요.
사교육 꼭 시켜야 할까요.
성향에 따라 다릅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성취감까지 느낀다면 사교육을 통해 그 재미를 끌어올려 주는 게 맞아요. 하지만 의욕도 없고 학습 능력이 모자라는 아이에게 사교육은 큰 의미가 없어요. 학원에 가도 영혼 없이 책상 앞에 앉아 다른 생각만 하다 오거든요. 주위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구경하기 위해 학원에 가는 아이들도 있고요.
성적도 잘 안 나오는데 학원까지 안 보내면 부모의 마음은 더 조급해지지 않을까요.
초등학생의 사교육은 엄마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아이의 성적, 더 나아가 미래까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아요. 유명 학원에 다니는 아이 중에 성적이 안 좋은 경우도 있고, 사교육을 받지 않는데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학생도 많아요. 꼭 사교육만이 아이의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교육 없이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딱 2가지예요. 부모와의 관계와 독서.
부모와 사이가 좋은 아이가 성적도 좋다는 의미인가요.
맞아요. 간과하기 쉬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초등학교 때 부모와 관계가 탄탄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안정적이에요.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도 가감 없이 부모에게 오픈하죠. ‘엄마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에요. 부모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관계는 당연히 좋아지겠죠. 공부는 아이가 하지만 정보는 대부분 엄마에게서 나와요. 도움이 될 만한 공부 방법이나 입시 정보를 아이에게 줬을 때 ‘엄마가 말하는 건 나한테 이로운 거야’라는 인식이 있으면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습득하게 되죠. 자연스럽게 성적도 오르고요.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엄마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잔소리로 여기고 거부하게 되는 거죠.
부모와의 관계는 언제부터 형성해야 하나요.
저 같은 경우 작은아이를 데리고 병원 가는 일이 잦아서 큰아이는 거의 집에 혼자 있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동생이랑 치료실 갈 테니 영어책 읽고 있어”였죠. 다녀와서 보면 시키는 건 다 해놓았지만 표정은 어둡고 뭔가 불안한 것 같았어요. 동네 사람들이 “아이 얼굴에 항상 그늘이 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렇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던 것 같아요. 아이의 외로움과 힘든 상황이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어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심을 다해 다가가니 아이도 조금씩 마음을 열더라고요. 어느 순간 수다쟁이가 돼 있었죠. 시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정성과 관심의 깊이가 포인트예요.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위한 핵심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들어주세요.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일단 들어줘야 합니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면 “아 그랬어~” “그렇구나~” 하면서 수긍해주세요. 아이들은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만 이야기해요. 부모는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죠. 그걸 못 참아서 아이의 말을 자르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끝까지 들어줘야 합니다. 어느 순간 아이도 ‘엄마가 노력하고 있구나’ 깨닫게 될 거예요.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잘못됐으면 어떻게 하나요.
일단은 끝까지 들어주세요. 이야기가 다 끝나면 “엄마 생각은 조금 다르긴 해” 하면서 한마디 정도만 덧붙여줍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어차피 아이들은 안 들어요. 모든 이야기는 1절에서 끝내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요.
엄마의 생각을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 스스로 깨우치는 게 중요하죠. 아이가 반문한다면 일단 또 끝까지 들어주세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엄마의 생각이 다 맞는 건 아니니까 참고만 해도 될 것 같아” 정도로만 대답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바로 수긍하시고요.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일부러 말을 걸고 관심을 보이는 부모가 많아요. 맞는 방법일까요.
아이가 스스로 고립을 원해서 대화를 거부하진 않을 거예요. ‘혼자 있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내 속마음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정도로 해석하면 좋겠어요. 그럴 때는 질문보다는 부모님이 먼저 자신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가 오늘 마트 갔다가 네쌍둥이를 봤는데 완전 똑같이 생겼더라”는 식의 소소한 이야기요. 아이가 반응을 보일 만한 소재를 찾기 위한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어요. 슬금슬금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모님을 보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동참하게 될 거예요.
독서의 중요성을 느낀 건 언제부터인가요.
학교 엄마들끼리 커피를 마신다고 하면 무조건 나갔어요. 보통 모임에 나오는 엄마들은 아이의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거나,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죠. 모이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화두로 떠올라요. 물론 그 아이의 엄마가 없다는 전제하에서요(웃음). 히스토리를 물어볼 때 대부분 “책 많이 읽은 아이냐”는 질문부터 하더라고요.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고 하면 체념하면서 “졌다” “인정”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알았어요. ‘아무리 좋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도 독서를 많이 하는 아이를 따라가긴 힘들겠구나.’
독서를 많이 하지만 성적이 안 좋은 아이들도 있지 않나요.
물론 있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은 당장은 성적이 안 좋아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 금방 따라가더라고요.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속도도 빠르고 이해력도 높고요. 여기에 부모와의 관계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죠.
실제 사례가 있나요.
교사로 근무했을 당시 반에서 5등 정도 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항상 밝은 모습에 학습 태도도 좋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1등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그 아이는 죽어라 책만 보는 거예요. ‘그 시간에 공부하면 성적이 더 오를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었는데, 중학교에 가서 전교 1등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죠. ‘독서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이자 핵심 요소구나.’
독서는 어떻게 시켜야 하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단은 아이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경험하게 해주세요. 또 독서의 목적은 지식 습득이 아니라 무언가를 읽는 행위가 돼야 합니다. 책의 종류나 권수를 절대 제한하지 말고 모든 걸 아이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아이가 책을 읽고 나면 “이해했어? 설명해봐”라고 묻는 것은 절대 금기입니다. 책을 통해 느낀 생각과 표현 방법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른도 설명하기 어렵지 않나요? 읽은 것만으로 칭찬을 해주세요. 아이가 책을 대충 봤다 하더라도요. 그래야 책을 또 읽게 되겠죠. 독서는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읽고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어도 독서가 싫다면 어떻게 하죠.
아무리 독서를 안 좋아하는 아이라도 ‘이건 좀 괜찮네’ 하는 책이 한 권쯤은 있을 거예요. 그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면 밑에 함께 보면 좋은 책이 뜰 거예요. 아이를 불러서 그중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냐고 물어보세요. 있다고 하면 그 책을 사주는 거죠. 일단은 아이에게 책을 선택하는 재미를 선사해주세요.
책을 사줬는데 읽지 않는다면요.
자막이 있는 비디오 북과 오디오 북을 활용해보세요. 직접 읽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문맥을 이해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듣다 보면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가 형성될 거예요.
독서는 국어 성적에만 도움을 주는 거 아닌가요.
한 과목에 특출난 경우가 아니라면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은 대부분의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입니다. 시험문제는 한글로 돼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시험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죠.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정답을 고를 확률이 높아져요.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앞뒤 문맥을 보면서 유추하게 되죠. 이걸 꾸준히 해온 아이들은 시험문제나 지문에서 처음 보는 어휘가 나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아요. 그동안 쌓아온 유추의 경험 덕분에 글 흐름만 봐도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문해력 향상을 위해 독서보다는 문제집이나 학습지에 더 의존하는 것 같아요.
문해력을 높이고 싶다면 문제집 풀이보다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해요. 특히 초등학생들은 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요. 읽기의 누적은 축구를 잘하기 위한 기초체력을 기르는 것과 같고, 문제 풀이의 정답률을 높이는 것은 결국 골을 잘 넣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기초체력 없이는 골을 몰고 상대편 골대 앞까지 도달하기도 힘들겠죠. 골 찬스를 못 얻는 것은 당연하고요. 만약 아이가 문제집과 학습지 푸는 걸 너무 즐거워하고 원한다면 매일 약간의 시간을 내서 시켜보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자녀에게 언제부터 문해력 문제집을 풀게 하셨나요.
큰아이는 판타지, 추리, 탐정물 등 자신의 관심사를 좇으며 독서 수준을 끌어올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문제집을 전혀 풀지 않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수능 국어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문학, 비문학 독해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죠.
아이들에게 독서 교육을 하면서 고민은 없었나요.
본인의 관심사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편독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둬도 될지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비문학 영역으로 독서의 범위를 넓혔으면 했던 중학교 1, 2학년 시기까지도 여전히 추리소설에 빠져 있는 걸 보면서 마음이 조급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럴 때는 고등학생을 가르치거나 키워봤던 선배 엄마와 학원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어요. 공통적으로 “중학교 때까지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어도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조용히 계속 기다렸어요. 중학교 3학년이 되니 그간 제가 꼭 접했으면 했던 사회, 과학, 철학, 역사 등의 책을 스스로 찾아 읽기 시작하더라고요. 역시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와의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꼭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아이 키우는 과정을 너무 비장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을 진지하고 심각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 시트콤이라는 느낌으로 가볍고 즐겁게 시작하고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아이와의 시간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이에요. 좀 더 힘을 빼고 즐기시길 바랄게요.
#독서 #사교육 #부모관계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이은경
사교육의 과열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허리는 계속 휘고 통장은 어느새 ‘텅장’이 되어간다. 인구는 줄고 있지만 조기교육과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 등으로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가계 경제를 흔드는 것은 물론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는 사교육. ‘초등학교 성적으로 대학이 정해진다’는 속설처럼 실제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한 학생이 명문대를 갈 확률이 높은지, 그 방법은 오직 사교육뿐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1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이은경 씨는 둘째 아이가 정신지체 장애 판정을 받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하자 퇴직 후 육아에만 전념했다. 둘째 아이의 진료비, 치료비 등으로 집안 경제가 어려워지자 사교육은커녕 제대로 된 책 한 권 사주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교사 시절 봤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유튜브 인기 교육 콘텐츠 ‘슬기로운초등생활’이다.
채널이 공개되자마자 학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재 이 씨는 ‘학부모의 선생님’으로 불리며 관련 강의, 출판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실적인 조언과 정보, 명쾌한 해답으로 무한 신뢰를 받고 있는 그에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을 들었다.
부모와의 관계가 아이의 성적 판가름
이은경 씨는 올해 3월 오은영 박사와 ‘유아 및 초등생의 올바른 교육 습관과 감정’에 관한 주제로 강연했다.
사교육이죠. 질문의 유형은 천차만별이지만 빼먹지 않고 물어보시는 건 “사교육을 꼭 시켜야 하느냐”인 것 같아요.
사교육 꼭 시켜야 할까요.
성향에 따라 다릅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성취감까지 느낀다면 사교육을 통해 그 재미를 끌어올려 주는 게 맞아요. 하지만 의욕도 없고 학습 능력이 모자라는 아이에게 사교육은 큰 의미가 없어요. 학원에 가도 영혼 없이 책상 앞에 앉아 다른 생각만 하다 오거든요. 주위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구경하기 위해 학원에 가는 아이들도 있고요.
성적도 잘 안 나오는데 학원까지 안 보내면 부모의 마음은 더 조급해지지 않을까요.
초등학생의 사교육은 엄마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아이의 성적, 더 나아가 미래까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아요. 유명 학원에 다니는 아이 중에 성적이 안 좋은 경우도 있고, 사교육을 받지 않는데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학생도 많아요. 꼭 사교육만이 아이의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교육 없이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딱 2가지예요. 부모와의 관계와 독서.
부모와 사이가 좋은 아이가 성적도 좋다는 의미인가요.
맞아요. 간과하기 쉬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초등학교 때 부모와 관계가 탄탄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안정적이에요.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도 가감 없이 부모에게 오픈하죠. ‘엄마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에요. 부모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관계는 당연히 좋아지겠죠. 공부는 아이가 하지만 정보는 대부분 엄마에게서 나와요. 도움이 될 만한 공부 방법이나 입시 정보를 아이에게 줬을 때 ‘엄마가 말하는 건 나한테 이로운 거야’라는 인식이 있으면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습득하게 되죠. 자연스럽게 성적도 오르고요.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엄마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잔소리로 여기고 거부하게 되는 거죠.
부모와의 관계는 언제부터 형성해야 하나요.
저 같은 경우 작은아이를 데리고 병원 가는 일이 잦아서 큰아이는 거의 집에 혼자 있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동생이랑 치료실 갈 테니 영어책 읽고 있어”였죠. 다녀와서 보면 시키는 건 다 해놓았지만 표정은 어둡고 뭔가 불안한 것 같았어요. 동네 사람들이 “아이 얼굴에 항상 그늘이 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렇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던 것 같아요. 아이의 외로움과 힘든 상황이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어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심을 다해 다가가니 아이도 조금씩 마음을 열더라고요. 어느 순간 수다쟁이가 돼 있었죠. 시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정성과 관심의 깊이가 포인트예요.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위한 핵심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들어주세요.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일단 들어줘야 합니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면 “아 그랬어~” “그렇구나~” 하면서 수긍해주세요. 아이들은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만 이야기해요. 부모는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죠. 그걸 못 참아서 아이의 말을 자르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끝까지 들어줘야 합니다. 어느 순간 아이도 ‘엄마가 노력하고 있구나’ 깨닫게 될 거예요.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잘못됐으면 어떻게 하나요.
일단은 끝까지 들어주세요. 이야기가 다 끝나면 “엄마 생각은 조금 다르긴 해” 하면서 한마디 정도만 덧붙여줍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어차피 아이들은 안 들어요. 모든 이야기는 1절에서 끝내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요.
엄마의 생각을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 스스로 깨우치는 게 중요하죠. 아이가 반문한다면 일단 또 끝까지 들어주세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엄마의 생각이 다 맞는 건 아니니까 참고만 해도 될 것 같아” 정도로만 대답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바로 수긍하시고요.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일부러 말을 걸고 관심을 보이는 부모가 많아요. 맞는 방법일까요.
아이가 스스로 고립을 원해서 대화를 거부하진 않을 거예요. ‘혼자 있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내 속마음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정도로 해석하면 좋겠어요. 그럴 때는 질문보다는 부모님이 먼저 자신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가 오늘 마트 갔다가 네쌍둥이를 봤는데 완전 똑같이 생겼더라”는 식의 소소한 이야기요. 아이가 반응을 보일 만한 소재를 찾기 위한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어요. 슬금슬금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모님을 보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동참하게 될 거예요.
백번 말해도 부족한 독서의 중요성
상대적으로 교육 정보가 부족한 지역에 직접 찾아가 학부모들과 면담을 나누는 모습(왼쪽). 2021년 EBS ‘미래교육 플러스’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 자기주도학습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펼쳤다.
학교 엄마들끼리 커피를 마신다고 하면 무조건 나갔어요. 보통 모임에 나오는 엄마들은 아이의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거나,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죠. 모이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화두로 떠올라요. 물론 그 아이의 엄마가 없다는 전제하에서요(웃음). 히스토리를 물어볼 때 대부분 “책 많이 읽은 아이냐”는 질문부터 하더라고요.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고 하면 체념하면서 “졌다” “인정”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알았어요. ‘아무리 좋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도 독서를 많이 하는 아이를 따라가긴 힘들겠구나.’
독서를 많이 하지만 성적이 안 좋은 아이들도 있지 않나요.
물론 있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은 당장은 성적이 안 좋아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 금방 따라가더라고요.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속도도 빠르고 이해력도 높고요. 여기에 부모와의 관계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죠.
실제 사례가 있나요.
교사로 근무했을 당시 반에서 5등 정도 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항상 밝은 모습에 학습 태도도 좋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1등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그 아이는 죽어라 책만 보는 거예요. ‘그 시간에 공부하면 성적이 더 오를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었는데, 중학교에 가서 전교 1등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죠. ‘독서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이자 핵심 요소구나.’
독서는 어떻게 시켜야 하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단은 아이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경험하게 해주세요. 또 독서의 목적은 지식 습득이 아니라 무언가를 읽는 행위가 돼야 합니다. 책의 종류나 권수를 절대 제한하지 말고 모든 걸 아이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아이가 책을 읽고 나면 “이해했어? 설명해봐”라고 묻는 것은 절대 금기입니다. 책을 통해 느낀 생각과 표현 방법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른도 설명하기 어렵지 않나요? 읽은 것만으로 칭찬을 해주세요. 아이가 책을 대충 봤다 하더라도요. 그래야 책을 또 읽게 되겠죠. 독서는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읽고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어도 독서가 싫다면 어떻게 하죠.
아무리 독서를 안 좋아하는 아이라도 ‘이건 좀 괜찮네’ 하는 책이 한 권쯤은 있을 거예요. 그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면 밑에 함께 보면 좋은 책이 뜰 거예요. 아이를 불러서 그중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냐고 물어보세요. 있다고 하면 그 책을 사주는 거죠. 일단은 아이에게 책을 선택하는 재미를 선사해주세요.
책을 사줬는데 읽지 않는다면요.
자막이 있는 비디오 북과 오디오 북을 활용해보세요. 직접 읽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문맥을 이해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듣다 보면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가 형성될 거예요.
독서는 국어 성적에만 도움을 주는 거 아닌가요.
한 과목에 특출난 경우가 아니라면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은 대부분의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입니다. 시험문제는 한글로 돼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시험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죠.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정답을 고를 확률이 높아져요.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앞뒤 문맥을 보면서 유추하게 되죠. 이걸 꾸준히 해온 아이들은 시험문제나 지문에서 처음 보는 어휘가 나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아요. 그동안 쌓아온 유추의 경험 덕분에 글 흐름만 봐도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문해력 향상을 위해 독서보다는 문제집이나 학습지에 더 의존하는 것 같아요.
문해력을 높이고 싶다면 문제집 풀이보다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해요. 특히 초등학생들은 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요. 읽기의 누적은 축구를 잘하기 위한 기초체력을 기르는 것과 같고, 문제 풀이의 정답률을 높이는 것은 결국 골을 잘 넣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기초체력 없이는 골을 몰고 상대편 골대 앞까지 도달하기도 힘들겠죠. 골 찬스를 못 얻는 것은 당연하고요. 만약 아이가 문제집과 학습지 푸는 걸 너무 즐거워하고 원한다면 매일 약간의 시간을 내서 시켜보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자녀에게 언제부터 문해력 문제집을 풀게 하셨나요.
큰아이는 판타지, 추리, 탐정물 등 자신의 관심사를 좇으며 독서 수준을 끌어올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문제집을 전혀 풀지 않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수능 국어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문학, 비문학 독해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죠.
아이들에게 독서 교육을 하면서 고민은 없었나요.
본인의 관심사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편독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둬도 될지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비문학 영역으로 독서의 범위를 넓혔으면 했던 중학교 1, 2학년 시기까지도 여전히 추리소설에 빠져 있는 걸 보면서 마음이 조급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럴 때는 고등학생을 가르치거나 키워봤던 선배 엄마와 학원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어요. 공통적으로 “중학교 때까지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어도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조용히 계속 기다렸어요. 중학교 3학년이 되니 그간 제가 꼭 접했으면 했던 사회, 과학, 철학, 역사 등의 책을 스스로 찾아 읽기 시작하더라고요. 역시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와의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꼭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아이 키우는 과정을 너무 비장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을 진지하고 심각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 시트콤이라는 느낌으로 가볍고 즐겁게 시작하고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아이와의 시간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이에요. 좀 더 힘을 빼고 즐기시길 바랄게요.
#독서 #사교육 #부모관계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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