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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중년

중견 배우 조성하의 재발견

‘성균관 스캔들’로 여심 뒤흔들다

글·이혜민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 ■ 장소협찬·카페올라(02-2070-7220) ■ 헤어&메이크업·내함by원미(02-541-8270)

2010. 12. 16

사람마다 운이 들어오는 시기가 다르다고 한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뒤늦게 빛을 발하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정조로 호평 받은 배우 조성하는 후자에 속하는 듯하다. 그는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를 닮아 있었다.

중견 배우 조성하의 재발견


최근 종영된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잘금 4인방’ 만큼 주목받은 배우가 있다. 진중한 말투, 예측 불허한 행동,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정조를 연기한 배우 조성하(44)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재는 MBC 드라마 ‘욕망의불꽃’에서 그룹 총수의 둘째 아들로 열연 중이다.
왕으로 보여서일까. 시선 맞추는 것조차 편치 않다. 곰곰 생각하니 전작의 역할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영롱한 눈빛 탓에 지레 움츠러드는 것만 같다.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왕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 배우에게 종영 소감부터 물었다. 양복 입은 왕이 듣기 좋은 중저음으로 ‘하오체’ 대신 ‘해요체’로 또박또박 답하기 시작했다.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역할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니 감사하죠(웃음). 길 가다 저를 보고 깜짝깜짝 놀라는 분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요. 센 척하는 왕이 아니라 아저씨 같으면서도 아버지 같은 친근한 왕이었기에 사랑해주신 것 같아요.”
안내상, 김갑수와 함께 ‘꽃중년 3인방’으로 불리긴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은 ‘잘금 4인방’의 인기에 비할 수는 없는 노릇. 그 인기가 부러울 법도 하건만 “정조 역할을 맡은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한다. 내친김에 ‘잘금 4인방’ 중 좋아하는 역할을 꼽아보라고 하니 “매력덩어리 여림, 절제미가 느껴지는 이선준, 남성적이면서도 헌신적인 걸오가 모두 매력적이라 어느 누구를 콕 집을 수 없다”며 허허 웃는다.

안내상, 김갑수와 ‘꽃중년 3인방’으로 인기
‘성균관 스캔들’이란 작품은 배우 조성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생애 처음으로 왕 역할을 소화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은 부수적인 이유인 듯했다.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함께 일했던 김원석 감독이 왕 역할을 권하면서, 왕의 대척점에 선 사람이 김갑수 선배님이라는 거예요.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도 마음이 움직여지더라고요. 이윤택 연출가가 만든 ‘길 떠나는 가족’이란 연극을 본 뒤로 그 선배를 늘 존경하고 있었거든요. 함께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저와 그분이 라이벌이라니…. 그래서 왕을 한 번도 못해본 ‘초짜’이지만 무작정 해보겠다고 했어요(웃음).”
그렇다고 손 놓고 대본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행여 선배에게 누가 될까 싶어 그 어느 때보다 자료를 열심히 찾아 숙지했다. 문헌을 읽을수록 인물에 대한 이해 폭은 점점 넓어졌다.
“정조가 노론의 수장 심환지와 주고받은 3백여 통에 가까운 어찰첩(御札帖·임금의 편지 모음)을 보니까 이분이 노론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남인과 소론을 긴장시키며 세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무던히 애쓰셨더라고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는 기록대로 자유로운 화법을 구사하는 분이기도 하고요. 어느 날은 ‘이 영감탱이야, 그걸 어떻게 일이라고 하고 있나’ 말씀하시고 또 상대가 아플 때면 진심으로 위하는 인간적인 분이더군요.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하고 지혜로운 분이란 생각이 들어 연기했는데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네요.”
평소 연기할 때는 롤 모델을 찾으려 애썼지만 웬일인지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의 모습에서 배역의 진면모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중견 배우 조성하의 재발견

“검이 짧으면 일보 전진해서 찌르고, 여건이 불비하면 노력을 배가하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조성하.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많이 참고했지만 이제는 내 스스로 풀어내고 싶더라고요. 실제로 저와 비슷한 면도 있었고요. 전 즐겁고 편안한 거 좋아하거든요. 모든 게 다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건데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는 건 우매한 게 아닌가 싶어요. 힘든 건 되도록 빨리 잊고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고 하죠. 엉뚱한 면도 있는 것 같고, 가물에 콩 나듯 저돌성이 나오기도 하죠.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인간이지만 일 할 때만큼은 간혹 그래요(웃음).”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드라마 ‘황진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연극에서 영화로 활동반경을 옮긴 뒤 현재 드라마 ‘대물’을 연출하는 김철규 감독님의 눈에 띄어서 그분이 하시는 HD문학관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당시 감독님이 ‘조성하씨는 묘한 매력이 있으니 방송을 많이 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이 분야에) 아는 사람이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감독님이 ‘황진이’를 만들면서 저를 다시 캐스팅해주시곤 악사를 맡으라는 거예요. 배우라면 누구나 그 인물의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을 표현하는 게 목표잖아요.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잘해야 되겠다 싶어 6개월간 가야금을 배웠어요. 선생님께서 제 손은 가야금을 연주하기에는 너무 둔탁하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주어진 숙제가 가야금이니 어쩌겠어요(웃음). 그러고 마침내 1회 대본을 받아봤는데 ‘악기를 만지고 있는 기생들, 그리고 튜닝을 해주고 있는 엄수’란 설명만 있는 거예요. 그래도 준비한 게 아까워 휘모리장단 4소절을 연주하며 조율하는 연기를 했는데 많이들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어찌 보면 단순한 역할일 수 있지만 이런 노력이 발판이 됐는지 이후 그를 찾는 이가 하나둘 생겨 뒤이어 여러 드라마에 섭외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매듭 풀리듯 인생이 언제나 그렇게 잘 풀렸던 것만은 아니다. “남들처럼 바쁘면 한 끼, 일할 때는 두 끼 먹고 살았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그 역시 흔들리며 살았다. 정조가 이선준에게 나침반을 선물로 주면서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는 한, 그 나침반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말한 대목을 되새긴 건 쉬지 않고 방황해온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던 까닭이다. 흔들리는 인생은 서라벌고등학교 연극반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 연극 한 편 본 적 없었지만 ‘1주일에 미팅 4번 시켜준다’는 말에 가입한 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국연극제 우수연기상을 받은 것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인정받은 적이 없는데, 여기에서만큼은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인정받는구나 싶었죠. 그래서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이 길을 가야 되겠다 싶어 학교만 끝나면 대학로에 가서 연극 보면서 꿈을 키웠죠. 해마다 연극 최우수단체상을 받고 연극으로 3년 내리 장학금을 받아선지 집에서도 굳이 반대하지 않았어요. 위로 형님 두 분과 누님 한 분이 계셔서 막내에겐 별 말씀이 없으셨죠. 방치하셨던 것 같은데…. 아, 괜히 슬퍼지네요(웃음).”



곧 개봉할 영화 ‘황해’에서 첫 주연 맡아
이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들어갔고 열정은 배가됐다. 탤런트 시험, 성우시험을 보며 브라운관 진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 그럼에도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가 있어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겁도 없이 스물아홉에 결혼해” 두 딸을 둔 가장이 되자 삶의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나를 찾아주는 곳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았는데, 결혼하면서부터는 책임질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힘든 경우가 띄엄띄엄 찾아왔죠.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가 싶은 순간도 오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배우로서 선택되지 못한다는 게 힘들었죠. 내가 사랑하는 일에서 충족감을 느끼고 그 일이 발판이 되어 다른 일을 하기는커녕, 내 본연의 의지와 달리 가족에게 해가 되는 상황이 오니까….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게 내가 사랑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힘든 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라는 걸 실감한 시간이었죠.”

중견 배우 조성하의 재발견


그래선지 농사짓는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경찰 시험 언제 보느냐”고 채근했다. 그 직업만큼 안정된 것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 배를 탄 아내만큼은 그의 편에 서주었다.
“집사람이 가지고 있는 역량은 어마어마해요. 지금도 아내가 고생한 사연은 드러내지 말라고 해서 말 안 하려고요. 자기는 조성하란 배우가 멋있는 배우로 비치는 것이 좋지 고생한 누구로 그려지는 게 싫대요. 살면서 고생 안 한 사람이 없기도 하잖아요. 영화를 하게 된 것도 저희 집사람 덕분이에요. 이러다가는 우리 가족이 모두 침몰하겠다 싶어서 성냥개비만한 노라도 잡아야겠다 싶었는데, 집사람이 ‘이제 와서 (연기를) 안 하겠다고 하면 당신만 바라보고 온 우리는 무슨 희망으로 살아야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곤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기를 해야 하겠구나 싶어 영화를 하게 됐죠. 물론 연극은 제 가슴에는 남아 있긴 하지만 파도 한번 치면 없어지는 포말 같은 거잖아요. 기록으로 남겨서 그랬는지 영화 찍은 뒤로는 저를 찾아주시는 분이 하나둘 생기더라고요.”
독립영화에 출연하기를 수차례. 영화 ‘인샬라’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야수’ ‘집행자’를 거쳐 올 12월 개봉할 ‘황해’에서는 생애 첫 주연을 맡았다. 자신을 찾아줘 그저 고맙다는 그는 “고 김광석씨가 콘서트를 끝낼 때마다 여러분들이 밥숟가락을 얹어주신 덕에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는데 저 역시 주변에서 이끌어주셔서 살아갈 수 있었다”면서 중견배우 김지영에 대한 애틋함을 감추지 않았다.
“10년 전쯤에 뵈었을 때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성하야, 사람은 다 때가 다른 거다. 좀 일찍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늦게 되는 사람이 있다. 세월이 갈수록 자기 일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면 되는 거야. 젊어서 잘 되고 나이 들어 맥 못 추면 그것만큼 초라한 것도 없다. 너는 마흔 이후에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 건가 준비해라’고요. 분명 그때 가서 필요한 연기가 있을 테니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그 덕에 힘이 났어요.”
어찌 보면 조성하란 배우는 젊어서 빛나기 어려운 캐릭터였는지도 모른다. 남다른 눈빛 때문인지 ‘섬광이 나오는 눈 때문에 움찔해진다’ ‘살기가 느껴진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의 풍화작용 덕분인지 그의 눈매는 예전과 사뭇 달라져 인자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그이기에 누구보다 중년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지도 몰랐다.
“예전에는 중년의 매력이란 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좀 더 감싸는 기술을 배워가는 나이라 그런지 편안해 보이는 것 같아요. 20, 30대에는 치고 올라가야 하고 누구를 밀고 나오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눠 주면서도 함께할 수 있다는 마인드이기 때문에 중년이 아름다운 게 아닌가 싶죠. 굳이 외모를 가꿔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사람에게는 남다른 각오가 있을 터. “검이 짧으면 일보 전진해서 찌르고, 여건이 불비하면 노력을 배가하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조성하는 그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혜를 알고 있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달란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많이들 그 달란트가 모자라다고 아쉬워하고 불평하는데 저 역시 그랬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좀 더 나은 자리가 약속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 생각지도 않은 행복이 찾아오는 것도 같고요. 앞으로도 오늘처럼 많은 땀을 흘리고 싶습니다. 배우는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역할 맡아 정진할 때 가장 아름다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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