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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조연 열전1

정상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는 ‘명품 조연’김희정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 Tara’s

2009. 08. 24

‘사람은 누구에게나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김희정은 지난해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으로 그 가운데 한 번의 기회를 잡았다. 처절한 눈물 연기로 연기생활 20여 년 만에 이름 석자를 알리는 데 성공한 것. 현재 시트콤 ‘태희 혜교 지현이’에서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 중인 김희정 내면 탐구.

정상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는 ‘명품 조연’김희정

잘록한 허리 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화사한 옷차림, 뽀얀 메이크업과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TV에서 보던 털털한 아줌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현재 MBC 시트콤 ‘태희 혜교 지현이’에서 보배 엄마로 활약 중인 김희정(40). 극중에서는 전업주부로 나오기 때문에 화려한 메이크업이 필요 없다는 그는 “오랜만에 화장을 하면 사람들이 몰라본다”며 까르르 웃었다.
지난해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에서 ‘모지란’으로 주목을 받은 그는 전작을 발판 삼아 ‘무명’에서 ‘명품 조연’으로 발돋움 중이다. ‘조강지처클럽’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시트콤에 캐스팅 돼 매일 저녁 유쾌한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찾는 것. 비슷한 시기 아침드라마에서도 출연제의를 해와 정극과 시트콤 사이에서 갈등한 그는 결국 ‘태·혜·지’를 택했다.
“‘모지란’ 역으로 오랫동안 우울하게 지내서 밝은 캐릭터로 전환하고 싶더라고요. 시트콤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재미도 있고요. 하지만 정극에 익숙해져서인지 초반에는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시트콤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대사 하나 하나에 다 힘이 들어갔거든요. 대사 분량은 또 얼마나 많은지, 처음에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려는 욕심에 촬영이 없는 날 2박3일 집에 틀어박혀서 대본만 외웠죠(웃음).”

문영남 작가 사단에 합류, 새 주말드라마에도 캐스팅돼
시트콤의 묘미인 애드리브도 낯설었다고 한다. ‘조강지처클럽’ 출연 당시 대부분의 연기자가 NG 없이 생방송처럼 녹화에 임했기에 어색함은 더욱 컸다고. 하지만 지금은 적절한 상황이 연출됐을 때 서슴지 않고 애드리브를 하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한번은 전화를 걸어야 하는 장면인데 휴대전화가 없는 거예요. 순간 ‘어머, 언니 나 전화기 두고 왔다’고 했더니 (박)미선 언니도 ‘모지란은 얘(정선경)가 아니라 니가 모지란이다’ 하고 받아쳐줬어요(웃음). 또 며칠 전에는 김국진씨가 실수로 제 발을 밟기에 보배 엄마 특유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땡칠 아빠는 왜 남의 발을 밟고 그래요’ 하고 즉석 연기를 했어요. 제작진이 보기에도 재밌었는지 그대로 방송에 나가더라고요.”
S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MBC 출연은 이번이 처음인 그는 박미선·윤종신·김국진 등 예능인들과의 연기호흡도 새로운 즐거움으로 꼽았다. 그는 “개그맨이나 가수들은 정말 연예인 같다. 연기자 선배들처럼 언니, 오빠 소리가 금방 안 나오더라”며 웃었다.
“미선 언니는 눈이 커서 웃지 않고 쳐다보면 무서울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빨리 친해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친언니처럼 잘해주세요. 소문대로 인간성 좋고, 바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선경이도 처음에는 새침한 척하더니(웃음), 금세 털털한 본모습을 보였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들 멤버가 여러 예능프로에 출연 중이다보니 회식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 더욱이 전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의무적으로 회식을 하며 팀워크를 다졌던 터라 촬영을 마치고 다들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다.
“회식 못해 서운하다는 게 어쩌면 우스울 수도 있는데, 초반에는 야속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웃음). 예전에는 촬영을 마치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거나 술 한 잔씩 하면서 공허함을 달래곤 했거든요. 그래서 시트콤 시작하고 두 달 정도는 예전의 분위기가 그리웠어요.”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김희정을 눈여겨보고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클럽’에 연달아 캐스팅한 문영남 작가는 오는 9월 방영 예정인 새 주말드라마에도 그를 합류시켰다. ‘솔약국집 아들들’ 후속 ‘수상한 삼형제(가제)’에서 그에게 둘째 며느리 역을 맡긴 것. 이번 드라마에는 김희정 외에도 ‘문영남 사단’으로 꼽히는 김해숙·오대규·안내상 등이 출연한다. 김희정은 지난 6월 문 작가로부터 직접 섭외전화를 받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황송한 나머지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또 표현력이 부족해서 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쏟아내지 못해요. 다행히 문 작가님은 이런 제 성격을 잘 아세요.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한테 오해받을 때가 많다는 것도 잘 아시죠. 그래서 더 감사해요. 예전에는 역할 하나를 맡을 때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는데 이제는 ‘잘해내야지’하는 자신감이 들어요.”

정상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는 ‘명품 조연’김희정

연기생활 18년 만에 처음 소속사와 계약
이번에 맡은 둘째 며느리 역은 그동안 그가 해온 역할 중 “가장 무난한” 캐릭터다. 김희정은 “적어도 이번에는 불륜녀, 세컨드는 아니다”며 웃었다. 문 작가로부터 들은 간단한 설명에 의하면 시청자들은 이번에도 그를 보며 울고 웃을 것이라고 한다.
“문 작가님은 대본이 나오기 전까진 연기자들에게도 정보를 주지 않으세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믿고 가는 거죠. 무엇보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쓰시는 게 느껴져요. ‘조강지처클럽’ 때도 모지란과 원수(안내상)가 같이 한강에 빠져 죽겠다고 투신하는 장면을 두고 제작부 윗선에서는 ‘불륜 커플이 얼마나 시청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문 작가님이 끝까지 밀어붙인 덕분에 명장면으로 남을 수 있었어요.”
올해로 18년째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그는 얼마 전 처음으로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동안은 작품 내 역할의 비중이 작아 매니지먼트가 필요 없었지만, 최근에는 혼자 업무를 처리하기에 버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운전하고 의상도 직접 챙겼어요. 어떨 때는 연기하는 도중 차 빼달라는 소리에 달려나간 적도 있죠(웃음). 사실 그때만 해도 감정연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까 연기 외의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있었어요. 아는 방송작가 소개로 지금의 소속사 사장님을 만났는데, 유명 배우가 아닌데도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해요.”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낸 그는 지금도 소탈함이 몸에 배어 있는 듯 보인다. 소속사와의 계약에 앞서 앞으로 탈 차를 고르라는 회사 측 제안에도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국내산 RV차량 이름을 댔다고 한다. 소박한 그의 선택에 너털웃음을 지은 소속사 사장은 결국 그에게 수입산 중형 승용차를 마련해줬다.
“경제도 어려운데 큰 차 탈 필요 없잖아요. 절약정신이 투철한 건 아니지만 아낄 수 있는 건 아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커피도 프림, 설탕 다 섞여 있는 ‘다방커피’가 좋아요(웃음). 요즘 커피 전문점에서 파는 커피는 식사 한 끼 값과 맞먹잖아요. 또 누군가가 가서 사와야 하는 불편함도 있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소속사 사무실에 1회용 커피 한 통을 사다놨어요.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직접 타면 되니까 간편하고 좋아요(웃음).”

“나이 들수록 베푸는 삶 실천하고 싶어요”
데뷔 후 지금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촬영장을 오간 그는 헛된 욕심을 품지 않았기에 실망도 크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방송계는 처음부터 주연급과 조연급이 나눠지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힘들다. 다행히 나는 처음부터 내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작은 역할에도 만족했다”고 말했다.
“연기자의 인생은 ‘토끼와 거북이’ 내용과 비슷해요. 처음부터 톱스타 대열에 합류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죠. 하지만 출발이 느리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어요. 중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불혹에 접어든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나이를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비록 얼굴에 주름이 늘고, 체력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나이 들어 좋은 점도 많다고. 젊은 시절 끊임없이 고뇌하며 갈등하던 요인은 줄어들고, 연륜 덕분에 평온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전성기’라고 말해주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동안 참 치열하고 각박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외골수 같은 면이 있어서 저 스스로를 속박하며 살았거든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여행도 많이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살고 싶어요.”
그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어떻게 나이 먹느냐’에 대해서는 자주 고민한다고 한다. 최근 든 생각으로는 ‘베푸는 삶’이 아름다운 것 같다고. 그는 “사회봉사 등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금전적인 게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그 동안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저로서는 작은 도움도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죠. 아직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쁘지만,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갖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용기 낼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부터 시작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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