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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래퍼에서 트로트 가수로! ‘어수룩한’ 김성수의 진지한 변신

“노래하는 아빠 모습에 열광하는 딸 위해서라도 반드시 ‘홀로서기’ 성공할 거예요”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2009. 07. 21

‘쿨’ 멤버 김성수가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때문에…’라고 생각했다. 김성수 역시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노래에 대한 갈증을 풀고 싶어서, 가장으로서 떳떳해지고 싶어서다.

래퍼에서 트로트 가수로! ‘어수룩한’  김성수의  진지한 변신


어눌한 말투, 코믹한 표정 때문에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지만 그는 누구보다 일에 대한 욕심이 컸고, 책임감이 강했다. 얼마 전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쿨’ 멤버 김성수(41) 얘기다. 지방에서 행사를 마치고 먼 길을 달려온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트로트 가수로 섰던 첫 무대 뒷얘기를 들려줬다.
“M·net ‘엠카운트다운’이 첫 방송이었는데, 촬영 당일 갑자기 사전녹화에서 생방송으로 바뀌는 바람에 십년감수했어요(웃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사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부랴부랴 차에 있는 CD를 가져와 가사를 외우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뒤 무대에 섰죠. 다행히 큰 실수는 없었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니까 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고요(웃음). 새삼 신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그는 트로트 가수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조건’의 박상철과는 예전부터 막역한 사이고, 장윤정·박현빈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 트로트계 대선배라 할 수 있는 태진아·송대관에게도 귀여움을 받는다는 그는 “쿨로 활동한 시간이 있어서인지 다들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래퍼에서 트로트 가수로! ‘어수룩한’  김성수의  진지한 변신

“솔로 활동은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 트로트가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트로트로 전향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트로트 앨범을 냈다고 생각하는 것. 이에 대해 김성수는 “돈은 당연히 벌어야 하지 않나. 그게 비난받을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나이도 있고…,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쿨’로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솔로 활동은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일이고, 트로트를 선택한 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마흔 전에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면 아마 록을 했을 거예요.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들국화’의 공연을 보면서였거든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은 록이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이 나이에 록을 시작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며칠 전 라디오 공개방송에서는 박상철의 무대를 보면서 흥에 겨워 스태프에게 사인도 보내지 않은 채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방청객들은 그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더 큰 환호를 보냈다고. 그는 ‘쿨’ 시절에는 몰랐던 새로운 재미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수는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기에 앞서 보컬 트레이닝을 따로 받았다. 복식호흡과 함께 트로트의 맛내기 포인트라 할 수 있는 ‘꺾기’ 연습을 중점적으로 했다. 노래는 ‘까칠한 여인’과 ‘말랑말랑’ 두 곡, 붐의 피처링 곡까지 합하면 총 세 곡이 이번 싱글 앨범에 담겼다. 타이틀 곡을 선정하는 데는 네 살배기 딸 혜빈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두 곡 중에 어떤 걸로 할까 고민하면서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아이가 ‘까칠한 여인’을 서너 번 듣더니 바로 후렴구를 따라 하더라고요. 아이들 감각이 정확하다 싶어서 바로 타이틀 곡으로 정했죠(웃음). 제가 TV에 나오면 그렇게 좋아할 수 없어요.”
그가 활동을 재개하자 가족들도 흐뭇해하는 분위기다. ‘쿨’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보컬 비중이 약했기 때문에 솔로로 데뷔한 지금, 그가 무대에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한다고. 김성수는 “‘운명’은 랩 부분이 뒤에 나오기 때문에 버라이어티 방송이 끝날 때 보여주는 뮤직비디오에서는 내 모습이 나온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 ‘해변의 여인’ 때는 맨 앞에 ‘와~여름이다’ 하고 외치는 부분이 있어 그나마 카메라에 잡힐 수 있었다”며 웃었다. 데뷔 초부터 “너도 쿨 맞아?” 하고 농담 삼아 묻는 질문에 그저 웃어넘기긴 했지만, 그도 가수로서 노래에 대한 욕심이 없을 리 없다. 김성수는 “(이)재훈이가 완벽하게 보컬을 소화해줬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래퍼에서 트로트 가수로! ‘어수룩한’  김성수의  진지한 변신

무조건 성공하겠다는 결심으로 집 나와 고생 끝에 ‘쿨’결성
그는 가수가 되기 전 서울 이태원에서 ‘잘나가는’ DJ였다. 다른 DJ와 차별화를 위해 춤을 선보이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그는 사비를 털어 수입 LP판을 사 모으고 래퍼토리도 직접 짜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도 처음 1~2년은 메인 DJ 수발을 드는 일명 ‘하우스 DJ’로 활동했다. 무보수로 클럽 청소며 잔심부름을 도맡아 한 것. 때문에 집에서는 어머니의 타박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놈이 돈은 한 푼도 못 벌면서 매일 밤 놀다가 새벽에 들어와 퍼질러 자기만 한다”며 자주 야단을 친 것. 보다 못한 어머니는 그가 일을 마치고 들어와 자고 있는 동안 길게 묶었던 그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 그 일로 그는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제 꿈을 몰라주시니까 답답하고 원망스러웠죠. ‘꼭 성공해서 돌아오리라’고 다짐하고 집을 나왔어요. 하지만 어머니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거든요.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하셨어요.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빨리 큰돈을 벌어서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집을 나와 몇 년 동안 친구 집을 전전하며 DJ 생활을 계속한 그는 동료 최준명의 제안으로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모인 사람들이 초창기 ‘쿨’ 멤버인 ‘김성수·이재훈·유채영·최준명’이다. 이들이 데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년. 첫 무대는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다.
래퍼에서 트로트 가수로! ‘어수룩한’  김성수의  진지한 변신

“첫 무대가 좋았어요. 4년 동안 죽어라 연습을 했으니 호흡이 안 맞을 수가 없었죠(웃음). 또 여학생 팬이 급속도로 늘어났어요. 채영이는 삭발을 하고 나와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심어줬고요. 오랜 기다림 끝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죠.”
94년 데뷔한 ‘쿨’은 이후 최준명·유채영이 빠지고, 유리를 새 멤버로 영입해 10년간 활동해왔다. 2005년 그룹을 해체했다가 지난해 10.5집을 발표하고 재결합했는데, 김성수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쿨’ 해체 이후로 꼽았다.
“팀의 리더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잘 못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싶었죠. 힘든 시간이 길어지니까 우울증까지 걸리더라고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사람도 만나지 않고 은둔생활을 했어요. ‘무한도전’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지만 방송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금세 제외됐어요. 그러면서 또 한번 상처를 받았죠. 어떻게든 빨리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개그맨 이봉원씨와 산에 오르면서 우울증을 극복해나갔어요. 그리고 그 즈음 딸 혜빈이가 태어나 새 인생을 맞게 됐죠. 아이가 태어나자 방송일도 많이 들어오고 좋은 일만 생기더라고요. 딸아이는 제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귀한 존재예요.”

“‘쿨’해체 후 우울증 겪었지만 딸아이 얻은 것 계기로 새 인생 시작했어요”
그는 “혜빈이는 내 인생의 전부다. 아내가 서운해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인 듯싶었다.
“얼마 전에는 촬영차 일주일 정도 미국을 다녀왔는데, 혜빈이가 보고 싶어 숙소에서 혼자 펑펑 울었어요. 아이가 전화기 너머로 ‘아빠~’ 하고 외치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이가 커갈수록 책임감도 더욱 커진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술 좀 마시지 마’ 하고 정색하고 말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딸을 위해서라도 건강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성수는 혜빈이를 ‘제2의 보아’로 키우고픈 욕심이 있다고 한다. 능력만 된다면 아이가 가수로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 태진아·이루 부자처럼 딸아이와 나란히 무대에 서는 꿈도 꾼다. “연기자로 키울 생각은 없냐”고 장난스레 묻자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혜빈이가 다행히 나를 안 닮긴 했는데, 아무래도 연기자는 외모가 출중해야 하기 때문에…. 물론 내 눈에는 우리 딸이 세상 누구보다도 예쁘지만 연예계 현실은 냉정하더라”며 농담을 했다.
그의 아내 강지희씨(37)는 ‘경제비타민’에 출연해 ‘내조의 여왕’으로 등극한 바 있다. 꼼꼼한 돈 관리로 ‘목돈 마련 가능성 80%’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것. 방송에서 강씨는 세심하게 정리한 가계부를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똑 소리 나는 아내와 달리 그의 경제관념은 무딘 편이다. 해외 부동산 투자를 잘못하는 바람에 1억원 가까운 돈을 날렸고, 고민 끝에 마련한 7백만원짜리 명품 시계를 “하루만 빌려달라”는 아는 형에게 넘겼다가 그 길로 연락이 두절돼 잃어버린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총각시절 돈을 흥청망청 쓰며 방탕한 생활을 한 건 아니다. ‘쿨’로 한창 인기가도를 달릴 때 꼬박꼬박 저축하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에요. 남들 외제차 타고 다닐 때 저는 국산 중형차에 만족했죠. 신인 때는 무대 의상 빼고 제대로 된 옷 한 벌이 없었어요. 무조건 집부터 마련하자는 생각으로 모든 수입을 고스란히 통장에 넣었죠.”
아내와는 2002년 ‘쿨’ 앨범 녹음실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인 유리를 따라 녹음실로 놀러왔던 강씨는 김성수의 레이다망에 포착돼 2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당시 김성수는 강씨의 도도한 매력에 끌렸다고 한다.
“농담을 걸어도 못 들은 척하고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하니까 슬슬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반드시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죠(웃음). 신혼 때는 많이 다퉜지만 이제는 아내만큼 편한 상대가 없어요. 남편으로서 신경 많이 써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동안 크고 작은 일 겪을 때마다 항상 옆에서 묵묵하게 지켜봐줘서 고마워요.”
김성수는 트로트를 부르면서 ‘국민 연예인’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것. 그는 “나를 원하는 곳이라면 트럭 위에서도 노래 부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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