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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성공의 힘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솔직 고백

“첫사랑의 쓰린 아픔이 음악적 영감을 주었다”

■ 기획·조득진 기자 ■ 글·이윤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4. 02. 10

조수미는 늘 많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속에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위에 서 있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칭송을 받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그러나 그에겐 첫사랑의 아픔, 결혼과 아이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 지난해 연말 공연을 위해 고국을 찾은 그가 ‘여자’로서 털어놓은 이야기.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솔직 고백

무대를 집 삼아 1년에 3백30일을 해외에서 보내는 사람. 158㎝의 작은 체구에도 화산 같은 에너지를 표출하며 카리스마와 천상의 음역을 선보이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41). 그러나 그는 지난 연말 공연을 위해 귀국했을 때 이뤄진 몇 차례의 인터뷰에서 “외롭다”고 고백했다.
“외국 호텔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가 어디인가부터 생각해요. 낯선 공간이 주는 막막함과 그 순간의 외로움이란 참기 힘들 만큼 절절해요.”
그는 만인이 다 아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각종 국제 콩쿠르 1위 입상, 천재 지휘자 폰 카라얀과의 만남, 그리고 그를 향한 수많은 찬사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 삶이 행운과 행복의 연속인 것은 아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최고학부를 졸업하고 성공적으로 유학을 마친 후 세계적인 성악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도 아픔은 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하루 7시간씩 피아노를 쳐야 했던 스파르타식 교육과 늘 불안했던 아버지의 사업, 동양인에 대한 무시와 냉대로 힘겨웠던 유학시절이 그가 말한 시련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아픔은 지금도 끊어버리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한다.
그는 자서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에서 무려 15쪽에 걸쳐 첫사랑 K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는데, 첫사랑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사랑에 대한 환상과 열정에서 헤어날 수 없게 한다고 이야기했다.
첫사랑을 떠올릴 때면 늘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다는 그. 그만큼 대학시절 1년간의 사랑은 강렬한 것이었고, 이제 막 불혹을 넘어선 그를 아직도 첫사랑에 연연하는 소녀 ‘조수경(본명)’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그가 첫사랑에 빠진 것은 대학교 2학년 무렵. 깨끗한 피부에 바람머리 스타일, 약간 거만해 보이는 K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 남자에게 직접 다가가 사귀자고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당시 그 남자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1주일 뒤까지 대답을 달라” 하고는 돌아섰다.
그의 거침없는 프러포즈는 동갑내기 K씨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후 불 같은 사랑이 이어졌다. 다방, 영화관, 디스코클럽, 여행 등으로 하루 24시간을 꼬박 붙어다니며 그렇게 1년 동안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 그러나 1년 후 눈앞에 놓인 건 4과목 낙제와 1등에서 꼴찌로의 추락, 그리고 부모님과 교수들의 호된 질책이었다.
1년을 뜨겁게 사랑한 대가로 그는 부모님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이탈리아에 보내졌다. 그때부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고 한다. 외롭고 고단한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4개월이 흘렀을까? K씨가 보내온 이별의 편지는 ‘내 길은 이것이다’ 하며 음악도로서의 길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인들에게 “지금 생각해 보면 첫사랑은 내가 음악적 영감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오페라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역을 맡아서 연기하거나 무대에서 애절한 노래를 부를 때 그때의 감정을 되살린다. 첫사랑이 없었다면 어떻게 지금의 감성으로 절절히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동양적 수줍음과 서양적 정열이 조합됐다’는 음악계의 평가는 그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노력의 결정체인 셈이다.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솔직 고백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 카라얀이 “1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칭송한 조수미. 그 성공엔 애틋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한몫했다.


이후 세계 무대에 진출해 지휘자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고, 이어 주빈 메타에게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평가를 받은 그. 누가 보아도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위치에 섰지만 커튼이 내려진 무대 뒤에서 그는 외롭다고 한다. 공연을 마치고 혼자 화장을 지우고 있노라면 참기 어려운 허무감이 밀려온다고. 그럴 때면 눈물이 날 만큼 공허해져서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데, 어쩌다 통화가 안되면 절망감마저 느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무대 위의 디바(Diba)로서의 모습만을 볼 뿐, 여자 조수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남자가 없다”고 솔직히 토로하기도 했다. 얼마 전 그의 어머니 김말순씨도 한 인터뷰에서 “몇년 전 언론에 소개된 외국인 매니저도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이성적으로는 아니었다고 하더라. 유명한 공학박사와 만나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너무 바쁜 스케줄에 밀려 만남이 이어지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열망을 접은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소박한 꿈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2001년 자궁근종이 발견돼 미국에서 수술을 받는 후로는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여러 번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올해 초 인터뷰에서 “인공수정을 해서라도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얼마 전 디트로이트 병원서 최종 답변이 왔다. 인공수정도 어려우니 아이 갖는 것은 완전히 포기하라는 거였다”고 밝혔다.
여자로서는 커다란 충격이었을 터. 그러나 쓸쓸함과 비애, 그리고 체념의 과정을 거치며 그는 많이 성숙해졌다. 보통 여자로서의 행복은 누리지 못하나 더 큰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이 나라의 희망이잖아요. 행복하고 자유롭고 정서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제 뱃속으로 낳은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제 가슴에 품고 돌보겠다는 그의 아름다운 포부가 어떻게 실현될지, 지켜보는 팬들도 훈훈한 감동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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