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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탤런트 남성훈의 미망인 배문자씨 남편 떠나 보낸 가슴 아픈 사연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사진·김순희

2002. 11. 15

“언제나 다정다감했던 남편,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연기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탤런트 남성훈이 지난 10월18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는 <수사반장> <사랑과 야망> <모래시계> <목욕탕집 남자들> 등에 출연해 중후한 연기를 선보이며 꾸준하게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사랑하는 가족과 팬들의 곁을 떠나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나이인 ‘쉰다섯’의 남편을 떠나보낸 미망인 배문자씨의 가슴 아픈 사연.

탤런트 남성훈의 미망인 배문자씨 남편 떠나 보낸 가슴 아픈 사연
중후한 연기로 인기를 끌었던 탤런트 남성훈(본명 권성준)이 지난 10월18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서울삼성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료, 선후배 연기자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12년 동안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형사’로 기억되었던 그는 이후 <사랑과 야망> <의가형제> <모래시계> <목욕탕집 남자들> 등에서도 중후한 연기를 선보여 꾸준히 인기를 얻어 왔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편안히 눈을 감으셨어요. 오랜 시간 병과 싸우느라 몹시 힘들어하셨어요. 이젠 그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가셨으니….”
부인 배문자씨(53)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인의 영정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의 부음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최불암씨는 <수사반장>에 함께 출연하던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남다른 성실한 배우였다”면서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연기자”라며 애도의 말을 전했다.
“남편은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소식을 듣고 찾아오겠다는 선후배들에게 늘 ‘이다음에 다 낳으면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했어요. 참 다정다감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게는 둘도 없이 자상한 아빠였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해마다 새책을 받아오면 비닐로 곱게 겉표지를 싸주었어요. 그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딸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는 일도 즐겨 하셨어요.”
“시간날 때마다 딸의 머리를 묶어준 자상한 아빠”
고인은 68년 동양방송(TBC) 7기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었다.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극단활동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방송 진출의 문턱을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탤런트 시험에 하도 많이 떨어져 면접관들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자네 또 왔나”하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때마다 그는 기죽지 않고 “붙을 때까지 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연기에 대한 그의 집념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KBS 주말드라마 <내사랑 누굴까>에 출연하고 있는 정혜선은 이틀 연이어 영안실을 찾았다. 87년 김수현씨가 극본을 쓴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함께 출연하며 야심가인 태준 역을 맡아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남성훈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죠.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파요. <사랑과 야망>뿐만 아니라 여러 드라마에서 함께 일할 때마다 열정적으로 연기에 매달렸었는데…. 정도 많고 성실한 연기자였어요. 어떤 촬영현장에서건 늦는 법이 없었어요. 아직 한창 더 일할 나이에 떠나보내려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네요. 그래서 어제도 오고 오늘도 이렇게 다시 찾아왔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정혜선은 남성훈이 “<배반의 장미> <모래시계> <목욕탕집 남자들>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인기 중견 탤런트로 자리를 굳힌 모습을 보면서 내 가족의 일처럼 기뻤었다”고 회고하면서 고인의 아들인 권용철씨(26)의 손을 꼭 잡았다.
권용철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내 사랑 누굴까>에 윤다훈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의 조수 역을 맡은 그가 ‘남성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구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당당하게 실력으로 인정받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연기자가 되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때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완강히 반대하셨어요. ‘연기자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험한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잘 알지 않느냐’고 하셨어요.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며 말리셨어요. ‘공부를 계속하거나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셨지만 제가 연기자가 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자 용기를 불어넣어주시고 격려해주셨어요. 아버지이기 이전에 연기자의 선배로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요.”

탤런트 남성훈의 미망인 배문자씨 남편 떠나 보낸 가슴 아픈 사연

미망인 배문자씨.

그가 파킨슨씨병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다발성신경위축증’이란 진단을 받은 건 6년전. 언제부턴가 신경에 이상이 생겨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자 결국 98년 KBS 아침드라마 <너와 나의 노래>를 끝으로 30년 동안 몸담아온 연기인생을 접어야 했다.
“마지막 작품이 돼버린 <너와 나의 노래>에 출연중일 때도 몸이 많이 아픈 상태였어요. 기억력이 감퇴되어 대본 외우는 것을 힘겨워했지만 몹시 즐거워했어요. 연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가족 못지않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았거든요. 남편은 완쾌하면 다시 드라마에 출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어요.”
브라운관을 떠난 후에도 그는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안부를 묻는 동료와 지인들에게 “꼭 다시 일어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등 재활의지를 불태웠다.
그의 집 근처 사람들은 양팔을 부축받은 상태에서 한발 한발 힘겹게 걸음을 떼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지인들은 그가 하루빨리 병을 털고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장례식장에서 시종일관 배씨의 곁을 지키고 있던 딸도 “아버지께서는 1년4개월 전쯤부터는 아예 말을 못했어요. 투병생활 중에 의식은 있어서 사람들을 알아보시기는 했지만 따로 유언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셨겠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면서 저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셨거든요. 제 옷을 사와서 옷이 좀 크다 싶으면 손수 바짓단을 줄여서 다림질까지 해주신 분이셨어요”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10월19일 저녁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영안실을 찾은 탤런트 박상원과 이계인, 강석우 등 후배 연기자들은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다.
남성훈과 함께 <모래시계>에 출연했던 박상원은 “배울 게 참 많은 선배였다”면서 “따뜻한 성품으로 후배 연기자들에게 애정과 사랑이 남달랐던 선배를 일찍 떠나 보내게 돼 마음이 몹시 아프다”고 말했다.
87년 MBC 방송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은 남성훈은 수많은 작품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는 연기뿐만 아니라 의리도 중요시해 <모래시계>의 김종학 PD가 연출한 <백야 3.98>에서는 카메오로 출연해서 동료, 선후배에게 귀감이 되었다.
“아버지는 연기자로서 모범을 보이셨죠. 이젠 제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아버님 몫까지 연기에 열정을 불태우겠습니다. 아버님 이름에 절대 누가 되지 않는 연기자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연기자로 아버지의 뒤를 잇겠습니다.”
고인은 갔지만 “아버지의 연기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겠다”는 아들은 끝내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 이제 좋은 곳에서 편히 잠드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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