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종일 열이 오르락내리락해서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몰라요. 오늘은 많이 좋아졌어요.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가 ‘체중이 9kg이 안 되네요’ 하고 말하는데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아이 몸무게가 표준 체중에 조금 미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은 여느 엄마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영화배우 김진아(41)가 엄마가 됐다. 지난해 가을 봉사활동을 하던 입양기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아기를 최근 입양한 것.
“지난해 10월, 성가정입양원의 바자회에서 마태오를 처음 봤어요. 위탁모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마태오를 가슴에 안으니 뭔가 ‘찌릿’하고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김진아는 결혼 전부터 아이를 입양할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2000년 미국계 부동산투자금융회사 리먼 브러더스의 수석 부사장 케빈 오제이씨(42)와 결혼한 그는 늦은 결혼인 만큼 완전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그가 생각하는 완전한 가정은 부부 두 사람만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기르며 많은 사랑을 나눠주는 가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연애시절부터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방법 중 하나로 입양을 생각했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분명 다른 누군가와 그 사랑을 나누라는 뜻일 텐데 입양만큼 아름다운 나눔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케빈과 결혼 전부터 아이 둘은 낳고, 한명은 입양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요. 그것도 4∼5세의 입양이 잘 안 되는 아이를 입양하자고 했었죠.”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 임신의 기쁨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시험관 아기도 시도해보고, 좋다는 약도 챙겨 먹었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은 것. 마침내 2년 전 어렵게 임신이 됐으나 8주 만에 자연 유산되고 말았다.
김진아는 지난해 10월 마태오를 처음 만났는데 첫눈에 ‘찌릿’하는 전율이 왔다고 한다.
“제가 처녀 적부터 아이를 참 좋아했는데 아이를 너무 갖고 싶어 안달하다 보니 오히려 아이가 안 생긴 것 같아요. 임신을 하고 정말 소파에 가만히 앉아 십자수를 놓으며 몸조심을 했는데도 자연 유산됐죠.”
그 무렵 한남동에서 성북동으로 이사한 그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자원봉사를 택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가정입양원을 매주 방문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 성가정입양원은 국내입양 전문기관인데 그는 매주 월요일 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도를 할 때마다 아이를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고 한다.
밤 지새며 아이 돌본 열성 엄마, 매일 아침 아이와 눈 맞추며 우유 먹이는 다정한 아빠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1년6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그는 성가정입양원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가 홍보대사로 위촉되던 날 마침 자원봉사자 축제 겸 장애유아 시설 건립 기금 마련 바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마태오를 처음 만났다. 김진아는 마태오와 처음 눈을 마주치던 순간을 회상하며 “지금 생각하면 내게 더 큰 축복을 주려고 그동안 그렇게 시련을 겪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입양기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아이 둘을 낳고, 한명을 더 입양하자는 당초의 자녀 계획을 바꿔 입양을 먼저 하기로 했다. 마태오를 만나기 전 두명의 아이와 인연이 닿았으나 입양 기회를 놓쳤다는 그는 “마태오를 보는 순간 ‘이 아이만은 꼭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일단 마태오의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위탁모를 택했다. 마태오를 집에서 돌보며 입양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이다.
야무진 살림솜씨를 지닌 그는 옥상에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을 직접 키우고 있다.
지난해 겨울, 마태오와 한 집에서 지내게 된 그는 처음 한달 동안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한다. 아기가 순해서 한번 잠들면 8시간씩 잘 자는데도 마음이 안 놓여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됐다고. 그는 “행여 아이에게 병이 옮을까 감기 기운이라도 있으면 얼른 약을 챙겨먹곤 했다”며 웃었다.
“입양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낳지도 않은 아이에게 과연 애정이 생길까’ 하는 고민을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까 양부모라고 해서 다른 점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정말 제가 낳은 아이지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 같지 않아요. 자다가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이 아이가 왜 우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등등 아이에 대한 연민과 동정과 아픔…,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느껴지면서 생각이 많아져요. 앞으로는 아이가 절대 슬퍼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기고요. 부부 사이가 나빠도 자식 때문에 이혼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부들이 많은데 우리도 아이가 생기고 나서 부부금실에 대한 책임감이 훨씬 커졌어요.”
마태오를 맡아 기르고, 본격적인 입양 절차를 밝으면서 부부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한다. 그는 결혼 전부터 입양을 생각했지만 막상 입양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자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고. ‘입양 사실을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숨길 것인가, 내 자식처럼 키울 것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선을 그어야 할 것인가, 나중에 친부모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로 고민하는 그에게 남편은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우리는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고 했어요. 생부와 생모가 있었기에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그랬기에 우리를 만나게 된 것이잖아요. 그 부분을 덮어버리고, 아이의 인생을 바꾸겠다는 생각보다 아이가 타고난 운명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우리가 입양을 할 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각오해야 하잖아요. 이제는 그런 것들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떤 가정을 꾸리고, 마태오의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마태오가 행복하게 자라 사회의 일원이 되기까지 잘 돌보면 되는 거죠.”
오제이씨의 이런 말들이 그에게 큰 위로가 됐다. 김진아는 감성적인 자신과 다르게 감성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을 가진 남편을 새삼 다시 보게 됐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두 사람은 지난 5월말 마태오를 완전한 가족으로 맞을 수 있었다. 김진아는 “이렇게 되기까지는 성가정입양원과 국내·국외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의 도움이 컸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가 오랫동안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해온데다 이들 부부의 입양이 국내입양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양쪽 기관에서 많은 부분을 배려해줬기 때문이다.
남편의 도움으로 입양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었던 김진아는 입양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에게 입양은 아름다운 일임을 설명하는 것이 부모와 아이 모두의 아픔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그는 “입양 사실을 공개했으니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두 배 더 커졌다”며 웃었다.
케빈 오제이씨는 마태오에게 매우 다정한 아빠다. 퇴근하자마자 마태오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마태오가 아침에 먹는 첫 우유는 꼭 직접 먹인다. 어느 책에서 하루 1시간 정도는 아이와 아빠가 교감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는 케빈 오제이씨는 아침마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우유를 먹이고, 퇴근 후 아이와 나란히 누워 TV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사실 케빈 오제이씨는 김진아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아버지 연습을 해왔다. 지난 8년 동안 스페인계 미국인 소년을 후원해온 것. 얼마 전에는 그 소년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세 식구가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아이는 부모도 있고 가정도 있지만 남편이 초등학교 때부터 학비 등 경제적인 도움을 줬어요. 마치 아버지처럼 그 아이가 필요로 할 때마다 만나서 식사도 하고, 상담도 해주며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해왔죠. 결혼 전 시부모님께 인사하기 위해 미국에 갔는데 마침 그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어 참석했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저희 세 식구가 졸업식에 나란히 참석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남편이 그 아이에게 갖고 있는 애정과 책임감이 정말 좋아 보였어요.”
김진아는 마태오가 건강하고 밝고 맑은 사람으로 자라기를 희망했다. 그는 특히 자립심이 강한 아이로 커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잠만은 따로 재운다고.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아이를 부부침대에서 함께 재웠어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이를 재웠더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아침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눕혀놓고 우유를 먹여요.”
“마태오가 건장한 체격을 가진 청년으로 자라면 럭비 선수를 시키고 싶다”는 케빈 오제이씨는 마태오를 통해 입양의 기쁨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 아내에게 내년쯤 둘째 아이로 딸을 입양하자고 조르는 중이다. 그러나 김진아는 지금으로선 마태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마태오가 생겨서 제 삶이 충만해졌거든요. 지금도 너무너무 행복해요. 어제도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는데 정말 너무 예뻐서 가슴이 저려오는 거 있죠? 막 눈물이 나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양을 안 해본 사람은 제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아이를 보기만 해도 너무 좋아요. 이게 바로 축복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동안 김진아의 눈에 금세 이슬이 맺혔다. 마태오를 얻기까지 겪은 아픔과 시련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맑은 얼굴로 찾아온 마태오와의 인연에 감사한 마음 때문이리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인생의 절반쯤 산 지금까지 제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바로 마태오를 입양한 일이라고요.”
“마태오가 자라서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해 젊음을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마태오의 생모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양육을 포기했지만 마태오가 뱃속에 있을 때 분명 깊은 사랑을 준 것 같아요. 마태오가 성인이 된 후에 친부모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 도울 생각이에요. 지금으로선 친부모를 찾고 싶어할 때 그 만남이 가슴 아프지 않은 형태였으면 하고 기도할 뿐이죠.”
마태오를 입양한 후에도 매주 성가정입양원을 방문해 3∼4시간씩 봉사활동을 하려고 노력중이라는 그는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수가 부쩍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낳는 기쁨 못지않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국내입양에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김진아와 케빈 오제이씨는 신혼초 빌라에서 생활했으나 직접 가꾼 정원에서 꽃과 풀을 키우고, 흙냄새를 맡으며 살고 싶은 마음에 2년 전 성북동 주택으로 이사했다. 회색 외벽이 둥글게 이어져 골목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그의 집은 안에 들어서면 깔끔하고 화사한 분위기의 그림과 동양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앤티크 소품들로 가득 차 있다.
취향이 비슷한 부부가 결혼 전부터 모은 고가구와 골동품, 결혼 후 함께 앤티크 숍을 다니며 구입한 소품들과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 가구들이 집안 분위기를 고풍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하게 만든다. 거실과 식당, 침실엔 각각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이 두점씩 걸려 있는데 부부가 결혼기념일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해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거실에 걸린 닥종이 작가 김영희씨의 작품은 마태오를 가족으로 맞은 기념으로 최근 구입한 것.
1_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의 나무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깍아 만든 테이블. 거실 소파 한켠에 자리 잡은 테이블 위에는 부부가 즐겨 읽는 책을 올려놓았다.
2_ 현관 입구에 놓인 콘솔은 붉은빛이 도는 중국 앤티크. 가는 다리와 섬세한 조각이 중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케빈 오제이씨가 김진아에게 프러포즈할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올려져 있다.
▲ 낮은 소파와 모던한 디자인의 조명으로 꾸민 거실. 두꺼운 나무 받침 위에 유리를 얹은 테이블은 남편인 케빈 오제이씨가 직접 디자인한 것. 입체감 있는 천장의 원형 무늬와 은은한 조명이 집안 분위기를 아늑하게 만든다.
숙면을 위해 회색 벽지와 약한 조명으로 꾸민 침실. 가구도 침대와 사이드 테이블만 놓아 푹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서로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양 사이드 테이블에 각각 전화기와 알람시계, 조명을 따로 설치한 것은 남편의 아이디어라고.
화이트톤의 가구로 깔끔하게 꾸민 아들 마태오의 방은 그가 가장 정성 들인 공간이다. 라탄 바구니가 들어 있는 수납장은 직접 디자인해 주문 제작한 것. 흰색 커튼 중간중간에는 파스텔톤 비즈 장식을 늘어뜨려 포인트를 주었다.
또한 그의 집엔 꽃과 풀이 많다. 거실에서 이어지는 야외 테라스엔 나팔꽃 등 계절에 맞는 꽃이, 주방 테라스에는 각종 허브가, 식당 한쪽엔 상추가 심어져 있다. 옥상엔 텃밭을 만들어 토마토, 고추, 가지 등 다양한 야채들을 키우고 있다. 김진아는 직접 키운 무공해 허브로 스파게티를 만들고, 상추를 뜯어다 맛깔스럽게 구운 고기와 함께 식탁에 내놓을 때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남자들 못지않은 능력을 지녀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여자들도 많지만 집안을 편안하게 꾸미고, 맛있는 음식으로 가족들을 기쁘게 할 때 진정한 나를 찾는 기분”이라고 했다.
◀ 거실과 연결되는 야외 테라스. 넓은 공간이라 날씨 좋은 날 파라솔을 펴고 식사를 하면 분위기가 그만이라고. 벽면을 장식한 소품은 도자기 페인팅을 배우고 있는 김진아가 직접 만든 작품이다.
▶ 동남아시아에서 물동이로 사용되는 것을 화분으로 이용한 것은 남편의 아이디어. 내추럴한 분위기의 나무 소재라 화려한 꽃보다는 야생화와 잘 어울린다. 요즘은 나팔꽃으로 장식했는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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