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진 토마스 아카데미 원장
지난 20여 년간 목동에서 ‘토마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입시컨설팅을 전두지휘해온 김호진 원장은 “불필요한 입시 정보 수집은 오히려 독”이라고 말한다. 김 원장에 따르면 예비 고3이 지금 시기에 해야 하는 것은 당장 전 과목 개념을 훑는 것도, 기출을 반복해서 푸는 것도 아니다. 내신에 맞춰진 공부 마인드를 수능에 맞게 갈아 끼우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능은 장기전인 만큼 당장의 점수를 높이는 데 급급해하지 말고, 끝에 가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내실을 채우는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것. 김 원장에게 2026 대입을 앞둔 예비 고3이 개학 전 마지막 한 달을 보내는 법에 대해 물었다.
내신용 공부법이 통하지 않는 수능의 세계
1년 만에 정시 뒤집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그럼요. 흔한 말이지만 수능은 마라톤입니다. 마라톤에서 처음 1등으로 달렸던 선수가 마지막에도 1등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100경기 중 한두 경기도 채 안 돼요. 대부분 뒤에서 치고 나오죠. 1~2학년 때 모의고사 성적이 좋았던 특목고·자사고 학생들이 3학년 때 성적이 오히려 떨어지고, 일반고 학생들 성적이 오르는 경우가 많은 이유입니다. 실제 2학년 겨울방학부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성적을 올리는 학생들이 꽤 있어요. 이들이 특별히 똑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능의 속성을 잘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죠.
수능의 속성은 무엇인가요.
수능은 암기력이 아니라 이해력을 요하는 시험입니다. 문제 하나를 하루 종일 푸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고민하는 경험이 필요해요. 정해진 범위가 있는 내신 시험을 대비할 때는 주어진 분량을 모두 풀고 외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수능은 출제 범위도 넓고 시험 기간도 깁니다. 느리더라도 스스로 체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단단히 쌓아가야 빛을 볼 수 있어요.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영어 내신 성적은 좋지 않아도 수능은 잘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 친구들은 당장 단어 한두 개는 덜 외웠을 수 있지만, 사탕을 하나 사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고민한 경험이 있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본 과정이 수능에선 큰 힘이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더뎌서 조급해지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모의고사가 아닌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입니다. 모의고사를 잘 보면 기분은 좋겠지만 그 외엔 의미가 없어요. 특히 3월, 6월 모의고사 성적에는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간혹 모의고사를 대비한 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상반기에는 성적이 잘 안 나오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하나씩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내신 준비하듯이 수능 공부를 하면 결국 하반기에 가서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모의고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현 수준을 점검하는 지표죠. 3월 학력평가로는 겨울방학까지 공부해온 국영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6월 모의고사를 통해서는 국영수 밸런스를 확인하고, 수시냐 정시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9월 모의고사는 최저학력기준을 예측해서 수시 원서 접수에 활용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6월 모의고사를 보고 수시냐 정시냐를 정해야 한다고요.
2학년 때까지 학생부 성적이 좋지 않아서 정시로 가겠다는 예비 고3 학생들이 많아요. 그런데 지금 나쁘다고 생각하는 내신보다도 수능 성적이 더 안 좋게 나올 수 있어요. 3학년 1학기까지는 최선을 다해 내신을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6월 모의고사까지 보고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이 현저히 차이 난다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예비 고3은 2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요.
우선 입시 일정을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내신과 모의고사, 원서 접수 일정은 기본이고 수시 요강이 나오는 시점, 준비 전형에 따른 논술 및 면접 일정 등을 미리 정리해야 합니다. 매달 주어진 과제들을 풀어내다 보면 1년은 굉장히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각 시기에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방학 동안 정리해서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겨울방학까지 개념 정리를 끝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일찍 끝내면 일찍 잊어버려요. 탐구를 제아무리 빨리 공부해도 여름방학 때 꼭 다시 보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한번 봤던 것’이라는 생각에, 사실 잘 모르고 있는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N수생만 봐도 답이 나옵니다. 이들이 고3 학생들보다 개념 공부를 훨씬 빨리 했다고 해서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죠.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않아야 합니다.
사탐런 안 하면 정말 바보일까?
2026 대입의 핵심 이슈는 무엇인가요.‘사탐런’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탐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기는 하지만 사탐이 마냥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사탐이 확실히 과탐보다 성적이 잘 나온다는 보장이 있을 때 사탐을 택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다 사탐을 해야 한다고 해서 휩쓸리면 안 돼요.
사탐런을 할지 말지 어떻게 결정해야 하나요.
국영수 합 5등급 이내로 상위권 대학을 노리는 학생인데 과탐이 3등급 이상 나오면 사탐런을 권합니다. 이 학생들은 사탐으로 바꾸면 충분히 1~2등급이 나올 수 있어요. 상위권 대학 대부분 과탐 가산점이 있지만, 가산점을 포기하더라도 두 등급 이상 높이는 게 낫습니다. 단, 메디컬이나 서울대는 과탐이 필수라서 사탐런을 하면 안 되고요. 국영수 합 5등급 이하라면 사탐, 과탐 구분 없이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는 과목을 택하면 됩니다. 둘 다 비슷하다면 사탐이 낫고요.
사탐런이 입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과 전공 교과 전형의 컷이 올라갈 것입니다. 자연계 학생들이 사탐런으로 교과 전형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맞출 가능성이 높아져서죠. 과탐 응시 인원이 빠지면서 과탐 응시자들이 유리한 성적을 받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별로 변환 표준점수를 채택하고 있어서 과탐을 응시한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불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2026 대입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요.
교과 전형의 수능최저학력기준이 낮아지는 대학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려대, 서울시립대, 이화여대입니다. 일반적으로 수시 원서를 접수할 때 전년도 입결을 참고하지만 이 학교들은 절대 전년도 커트라인을 참고해서는 안 됩니다. 수능최저학력기준이 낮아지면서 교과 커트라인이 훨씬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죠. 기존에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던 한양대 논술 전형의 경우에는 새로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생기면서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기회가 더 열렸고요.
올해는 정시에서 내신도 본다고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정시 모집에서 학생부를 반영합니다. 이 때문에 정시에 올인한 학생이라고 해도 내신을 버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서울대 정시 모집 지역균형선발전형, 고려대 정시 모집 교과우수자전형 등 내신이 좋은 학생들이 지원하는 전형은 따로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시 모집에서는 내신 등급에 따른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요. 내신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확실히 좋아서 정시에 올인하는 경우라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수능에 집중해도 좋습니다.
결국은 수능이네요.
수시와 정시의 비율은 2:8입니다. 물론 수치적으로 본다면 상위권 대학들은 수시 비중이 6할이고 정시가 4할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들은 수시 전형에도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있죠. 결국은 수능 공부를 해야 합니다. 즉, 실질적으로 수능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은 20%밖에 안 되는 것이죠. 아무리 교과나 논술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수능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입시 준비는 핀셋으로
입시에서 ‘엄마의 정보력’은 유효할까요.보편적인 입시 설명회나 유튜브 속 불필요한 정보는 오히려 해가 됩니다. 수능 난이도 예측이나 N수생 현황, 의대 정원 변동 등 거시적인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가 지망하는 대학과 전공의 정원이 어떻게 바뀌는지, 최저학력기준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미시적인 정보죠. 그런데 사실 학부모가 아무리 정보를 수집해도 학생이 체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 수는 없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쉽게 이야기하면 정보력에서 부모가 아이를 이길 수 없습니다. 대입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선수예요. 직접 공부하고, 검색해서 본인에게 딱 맞는 정보를 찾아내죠. 그런데 부모가 좋은 정보를 듣고 왔다며 알려주려고 들면 짜증이 나죠. 어떤 선수가 자기보다 모르는 사람이 감독 행세하는 걸 좋아하겠어요. 고3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뒤에서 밀어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밥을 잘 차려줄 수도 있고, 응원해주거나 가끔은 긍정의 거짓말을 해줄 수도 있죠. 많은 부모가 학원 상담을 오면,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얘는 수학이 약해요”라는 식으로 말해요. 어떤 감독이 경기 직전에 선수한테 “너 이번에 10등 안에도 못 들 것 같아”라고 말하나요? 아이가 실제로 수학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단원은 잘해요”라고 긍정적으로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해요.
심리적인 지지가 중요하네요.
최소한 아이가 고3일 때만큼은 손님으로 대해주세요. 누가 우리 집에 왔는데 반겨주고 대접해 줘야지 행색이나 태도를 두고 탓하면 안 되잖아요. 특히 부모가 걱정하면 아이는 그 걱정을 2배로 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마음을 건강하게 먹어야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2026대입 #예비고3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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