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외대부고의 명성은 특별하다. 고등학교를 정량 평가하는 2024학년도 서울대 입시 합격자 수에서 58명을 기록했다. 2위 대원외고에 비해 13명 앞선 수치로 2021학년도부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정성 평가에서도 선두 자리에 선다. 종로학원이 진행하는 중학생들의 고교 선호도 조사에서 2013~2022년 10년간 한 번 빼고는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학생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학교가 경직성이 높은 한국 대입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이목을 끌 만하다. 자사고에 유리한 수시뿐 아니라 수능에서 만점자가 배출되지 않으면 아쉬운 소리가 학내에서 나올 만큼 정시에서도 뛰어나다. 2024학년도 서울대 입시에서도 수시 합격자(28명)보다 정시 합격자(30명)가 더 많았다. 외대부고가 설립된 2005년부터 스페인어 교사로 일하며 최근 11년간 입학홍보부장을 맡고 있는 조경호 선생님을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조 선생님은 “입시에서는 끝까지 공부를 놓지 않는 의지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며 “여기에 선생님의 의지가 더해져 좋은 성과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에 방문한 분들이 놀라긴 합니다. 스마트폰 사용이 자유롭고 외모에 신경 쓰는 학생도 많아서요. 외대부고는 설립 초창기부터 자율성을 강조했어요. 공부라는 건 스스로의 동기 부여에서 시작합니다. 저도 자녀가 있지만 “하지 마”라고 말한다고 아이들이 알아듣는 게 아닙니다. 물론 통제를 하지 않으니 게임 등에 빠져 공부를 소홀히 하는 학생도 있어요. 하지만 그 역시 스스로 깨닫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율성을 막아 음지에서 공부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게 더 좋지 않다고 봤어요.
최상위권 학생들을 뽑으니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외대부고는 전국 단위 자사고로 모집 정원 중 30%는 지역 선발로, 20%는 사회통합전형으로 학생들을 뽑고 있습니다. 모든 전국 단위 자사고가 이 정도 비율로 지역 선발과 사회통합전형을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면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할 준비가 돼 있는 학생을 뽑습니다. 그건 지금 당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는 달라요. 동기 부여가 확실한 아이들을 뽑기 때문에 좋은 성과가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15분이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면접에 올라온 학생들에게 성적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절대평가 체제에서 전 과목 A를 받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죠. 외대부고에서 요구하는 과목은 국영수사과 5과목이기도 하고요. 면접에서는 지식이 아니라 중학교 때 무엇을 했는지, 그 과정을 물어봅니다. 학원의 도움을 받아 기계적으로 말하는 학생보다는 자신의 중학교 생활을 즐겁게 이야기하듯 말하는 학생들을 눈여겨보죠. 요즘 말로는 ‘찐’ 학생이 맞는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선행학습은 어느 정도 돼 있어야 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채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은 없는 것 같아요. 외대부고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도 적응할 수 있냐고 학부모님들이 많이 물으시는데 저는 항상 되묻습니다.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 학생이 중3까지의 교육과정을 완벽하게 알고 있느냐는 거죠. 그러면 너무 공교육스러운 답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공부에 구멍이 난 상태에서는 그 위에 쌓아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는 고교 내신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함입니다.
자사고 내신 문제의 난이도가 악명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교과 범위 밖의 수준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사회 다른 선생님들도 동의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사회와 과학 과목의 경우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배우기 때문에 중학교 수준을 얼마나 잘 다지고 왔는지가 중요하고요. 오히려 문제는 국어라고 보는데, 이는 학생의 독서 능력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사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학교에서는 사교육을 요구하지 않지만 주말을 이용해 열심히 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만족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아요. 최근 수능을 마친 2명의 학생에게 사교육이 도움이 됐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왜 학원에 다녔냐고 물어보니까 불안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정보를 다른 학생이 알고 있을까 봐 그런 거죠. 이런 이유로 학원을 다니면 자신의 성적에 대한 책임을 학원에 돌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 공부할 시간도 없이 학원 숙제를 하고 있는 학생을 보면 다그치기도 합니다.
학교 선생님 입장에서 피해야 하는 학원이 있나요.
자기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학원, 특정 학교의 정보를 다 갖고 있다고 단언하는 학원은 피해야 합니다. 그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제가 가르치는 스페인어처럼 오랫동안 선생님이 한 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실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대개 국영수 공부잖아요. 학년 담당 선생님은 계속 달라지고 시험을 똑같이 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 상황을 다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많은 아이가 처음엔 박탈감을 느낍니다. 소위 전교권에서 놀던 학생들이 모이니까 주위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상향평준화랄까요. 졸업생이 말하기를, 학교 밖에서는 좋아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요. 고교 생활이 눈물 날 정도로 힘들었다고요.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 그 경험의 소중함을 알았대요. 보통 진로나 인생에 대해서는 대학에서 고민하는데, 외대부고 학생들은 그걸 좀 더 일찍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학생들이 있을 텐데요.
기성세대는 공부 잘하는 학생에 대한 이미지를 엉덩이 붙이고 옆도 보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떠올리잖아요. 지금은 그게 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미쳐서 할 수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요.
어떤 건가요.
한 과목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건 스페인어일 수도, 컴퓨터 과목일 수도 있어요.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다른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되기까지 해요. 수업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거죠.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동시통역을 맡은 샤론 최가 외대부고 졸업생 중 한 명입니다. 그의 통역 방식은 대다수의 통역사가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 샤론 최를 두고 쓴 논문까지 나왔어요. 그렇게 한 분야를 파고들어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만큼의 열정을 가진 아이들이 진짜 공부 명장이라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른 과목에 소홀해지지 않나요.
저는 선택과목 중 하나인 라틴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3학년이 되면 10명 남짓 들을 정도로 비인기 수업이죠. 하지만 라틴어 수업을 졸업할 때까지 들으면서 전교권을 놓치지 않는 학생들이 있어요. 처음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신청하는 학생이 대다수지만, 많은 용어가 라틴어에서 파생된 걸 깨닫고 흥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나를 잘하면 나머지도 다 잘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하나에 미친 듯이 빠져든다는 건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성실하고 근면하다는 방증이거든요. 그런 태도면 다른 과목에서도 비교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죠.
실제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장려한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야간 스케줄은 두 타임으로 이뤄진다. 첫 타임(오후 7~8시 20분)에는 토론 등 학술적인 활동을 장려하고, 두 번째 타임(오후 8시 50분~11시)에는 동아리 등에서 활동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조경호 선생님은 “입시 성적으로 유명해 외대부고를 입시 사관학교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학부모로부터 ‘공부는 언제 시키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떤 피드백을 받나요.
말씀드린 라틴어 수업도 사실 항의를 받아요. 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제가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거든요(웃음). 입시 사관학교를 기대한 학부모님께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이 우려스럽게 여겨지겠지만 학교는 기본적인 학업에서의 성취를 강조합니다. 공부는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죠. 그 위에서 플러스알파로 여타 활동을 해야 한다고 입학할 때부터 이야기합니다.
고교학점제를 일찍 도입한 학교로서 입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수업을 골라서 들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기초학력입니다. 학생들이 쉬운 과목이나 이름만 그럴듯한 과목에 몰릴 우려가 있어요. 자기와 잘 맞는 과목을 고르되,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이 잘 못 하는 과목일지라도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외대부고에서도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때 기초학력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어요. 토론이나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창의적인 능력을 키우려고 해도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 건 지식이거든요. 따라서 선택과목을 고르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목 선생님과 상담한 후 체계적인 플랜을 세우기를 권합니다.
2025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입에서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외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한다. 내신에서 9등급 대신 5등급 상대평가가 도입되고, 모든 수험생이 선택과목 없이 같은 수능을 치른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조 선생님은 “입시가 점차 종합예술처럼 바뀌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왜 그런가요.
5등급 상대평가 체제는 대학 입장에서 학생들을 뽑을 때 내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의 디테일한 면을 성적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학에서는 인재를 뽑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수시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하거나 정시에도 내신을 반영할 가능성이 커지죠. 면접 역시 중요해질 거고요.
대입 면접 팁이 있나요.
면접 준비는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검투사가 검투장에 들어가기 전에 계획을 짜는 것도 훈련이 돼 있어야 하는 거지, 재치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분명한 건 본인 관심사가 분명하고 그에 따른 활동을 열심히 한 학생이 유리할 거라는 겁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본인의 관심사를 축적하는 시간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무전공 선발도 있습니다.
무전공에 대한 오해가 있어요. 전공에 대한 고민을 미리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반대라고 생각해요. 외대부고에서도 학생들을 인문, 자연, 국제 단위로 나눠서 뽑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각 특성에 맞는 학생들을 뽑고자 했죠. 통합선발을 도입하고 나서는 세 트랙 중 어디를 보내도 잘할 수 있는 아이들을 뽑았어요. 그건 가능성이 많은 아이, 이 학교에 왔을 때 그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아이를 뽑는다는 의미죠. 무전공 선발을 하는 대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가능성을 고등학교 시절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증명해야 하죠.
외대부고만의 학종 관리 비결이 있나요.
1학년 때부터 각자 좋아하는 과목에 따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줘요. 독서하고 토론하거나 실험하는 그룹도 있죠. 그리고 그걸 자신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확장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외부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를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은 학생이고, 선생님은 지도 교사를 맡거나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이런 형식을 통해 개인의 관심사를 활동으로 발전시킵니다.
수능 만점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로도 유명합니다. 비결이 있나요.
외대부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모두가 서울대 입학을 꿈꿀 겁니다. 하지만 내신 5등급을 받으면 서울대에서 안 받아주거든요. 그러면 그 학생들은 수능으로 승부를 보자고 생각할 겁니다. 악바리 근성이 생기는 거죠. ‘내가 학교에서는 중간밖에 안 되지만 모의고사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요. 이건 학교에서 유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스스로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느냐의 문제죠.
정시를 보기 위해 자퇴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외대부고에도 자퇴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달 지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연락이 와요. 자퇴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지만, 실제로 학교는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이들끼리 진로에 관한 대화도 많이 하고요. 그런 시간이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부모님의 역할은, 아이가 뭘 좋아하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대부고에도 부모님의 의지대로 의대나 로스쿨에 진학한 학생이 있는데, 결국 대학에 가서 학업을 포기하더라고요. 부모님은 아이가 원하는 걸 스스로 찾게 하고 응원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만 아이가 어릴 때는 그걸 혼자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아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부모님은 그 순간을 발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조경호 #외대부고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용인외대부고홈페이지
학생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학교가 경직성이 높은 한국 대입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이목을 끌 만하다. 자사고에 유리한 수시뿐 아니라 수능에서 만점자가 배출되지 않으면 아쉬운 소리가 학내에서 나올 만큼 정시에서도 뛰어나다. 2024학년도 서울대 입시에서도 수시 합격자(28명)보다 정시 합격자(30명)가 더 많았다. 외대부고가 설립된 2005년부터 스페인어 교사로 일하며 최근 11년간 입학홍보부장을 맡고 있는 조경호 선생님을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조 선생님은 “입시에서는 끝까지 공부를 놓지 않는 의지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며 “여기에 선생님의 의지가 더해져 좋은 성과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면접에서 열심히 하려는 의지 본다”
졸업생 이야기에 따르면 학교 차원에서 공부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하던데요.학교에 방문한 분들이 놀라긴 합니다. 스마트폰 사용이 자유롭고 외모에 신경 쓰는 학생도 많아서요. 외대부고는 설립 초창기부터 자율성을 강조했어요. 공부라는 건 스스로의 동기 부여에서 시작합니다. 저도 자녀가 있지만 “하지 마”라고 말한다고 아이들이 알아듣는 게 아닙니다. 물론 통제를 하지 않으니 게임 등에 빠져 공부를 소홀히 하는 학생도 있어요. 하지만 그 역시 스스로 깨닫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율성을 막아 음지에서 공부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게 더 좋지 않다고 봤어요.
최상위권 학생들을 뽑으니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외대부고는 전국 단위 자사고로 모집 정원 중 30%는 지역 선발로, 20%는 사회통합전형으로 학생들을 뽑고 있습니다. 모든 전국 단위 자사고가 이 정도 비율로 지역 선발과 사회통합전형을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면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할 준비가 돼 있는 학생을 뽑습니다. 그건 지금 당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는 달라요. 동기 부여가 확실한 아이들을 뽑기 때문에 좋은 성과가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15분이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면접에 올라온 학생들에게 성적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절대평가 체제에서 전 과목 A를 받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죠. 외대부고에서 요구하는 과목은 국영수사과 5과목이기도 하고요. 면접에서는 지식이 아니라 중학교 때 무엇을 했는지, 그 과정을 물어봅니다. 학원의 도움을 받아 기계적으로 말하는 학생보다는 자신의 중학교 생활을 즐겁게 이야기하듯 말하는 학생들을 눈여겨보죠. 요즘 말로는 ‘찐’ 학생이 맞는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선행학습은 어느 정도 돼 있어야 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채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은 없는 것 같아요. 외대부고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도 적응할 수 있냐고 학부모님들이 많이 물으시는데 저는 항상 되묻습니다.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 학생이 중3까지의 교육과정을 완벽하게 알고 있느냐는 거죠. 그러면 너무 공교육스러운 답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공부에 구멍이 난 상태에서는 그 위에 쌓아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는 고교 내신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함입니다.
자사고 내신 문제의 난이도가 악명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교과 범위 밖의 수준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사회 다른 선생님들도 동의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사회와 과학 과목의 경우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배우기 때문에 중학교 수준을 얼마나 잘 다지고 왔는지가 중요하고요. 오히려 문제는 국어라고 보는데, 이는 학생의 독서 능력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사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학교에서는 사교육을 요구하지 않지만 주말을 이용해 열심히 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만족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아요. 최근 수능을 마친 2명의 학생에게 사교육이 도움이 됐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왜 학원에 다녔냐고 물어보니까 불안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정보를 다른 학생이 알고 있을까 봐 그런 거죠. 이런 이유로 학원을 다니면 자신의 성적에 대한 책임을 학원에 돌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 공부할 시간도 없이 학원 숙제를 하고 있는 학생을 보면 다그치기도 합니다.
학교 선생님 입장에서 피해야 하는 학원이 있나요.
자기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학원, 특정 학교의 정보를 다 갖고 있다고 단언하는 학원은 피해야 합니다. 그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제가 가르치는 스페인어처럼 오랫동안 선생님이 한 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실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대개 국영수 공부잖아요. 학년 담당 선생님은 계속 달라지고 시험을 똑같이 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 상황을 다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혈투가 벌어지는 학교
공부로는 난다 긴다 하는 많은 학생이 입학 후 첫 중간고사 결과를 받아들고 고전할 것 같습니다.많은 아이가 처음엔 박탈감을 느낍니다. 소위 전교권에서 놀던 학생들이 모이니까 주위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상향평준화랄까요. 졸업생이 말하기를, 학교 밖에서는 좋아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요. 고교 생활이 눈물 날 정도로 힘들었다고요.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 그 경험의 소중함을 알았대요. 보통 진로나 인생에 대해서는 대학에서 고민하는데, 외대부고 학생들은 그걸 좀 더 일찍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학생들이 있을 텐데요.
기성세대는 공부 잘하는 학생에 대한 이미지를 엉덩이 붙이고 옆도 보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떠올리잖아요. 지금은 그게 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미쳐서 할 수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요.
어떤 건가요.
한 과목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건 스페인어일 수도, 컴퓨터 과목일 수도 있어요.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다른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되기까지 해요. 수업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거죠.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동시통역을 맡은 샤론 최가 외대부고 졸업생 중 한 명입니다. 그의 통역 방식은 대다수의 통역사가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 샤론 최를 두고 쓴 논문까지 나왔어요. 그렇게 한 분야를 파고들어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만큼의 열정을 가진 아이들이 진짜 공부 명장이라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른 과목에 소홀해지지 않나요.
저는 선택과목 중 하나인 라틴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3학년이 되면 10명 남짓 들을 정도로 비인기 수업이죠. 하지만 라틴어 수업을 졸업할 때까지 들으면서 전교권을 놓치지 않는 학생들이 있어요. 처음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신청하는 학생이 대다수지만, 많은 용어가 라틴어에서 파생된 걸 깨닫고 흥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나를 잘하면 나머지도 다 잘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하나에 미친 듯이 빠져든다는 건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성실하고 근면하다는 방증이거든요. 그런 태도면 다른 과목에서도 비교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죠.
실제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장려한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야간 스케줄은 두 타임으로 이뤄진다. 첫 타임(오후 7~8시 20분)에는 토론 등 학술적인 활동을 장려하고, 두 번째 타임(오후 8시 50분~11시)에는 동아리 등에서 활동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조경호 선생님은 “입시 성적으로 유명해 외대부고를 입시 사관학교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학부모로부터 ‘공부는 언제 시키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떤 피드백을 받나요.
말씀드린 라틴어 수업도 사실 항의를 받아요. 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제가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거든요(웃음). 입시 사관학교를 기대한 학부모님께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이 우려스럽게 여겨지겠지만 학교는 기본적인 학업에서의 성취를 강조합니다. 공부는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죠. 그 위에서 플러스알파로 여타 활동을 해야 한다고 입학할 때부터 이야기합니다.
고교학점제를 일찍 도입한 학교로서 입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수업을 골라서 들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기초학력입니다. 학생들이 쉬운 과목이나 이름만 그럴듯한 과목에 몰릴 우려가 있어요. 자기와 잘 맞는 과목을 고르되,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이 잘 못 하는 과목일지라도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외대부고에서도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때 기초학력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어요. 토론이나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창의적인 능력을 키우려고 해도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 건 지식이거든요. 따라서 선택과목을 고르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목 선생님과 상담한 후 체계적인 플랜을 세우기를 권합니다.
2025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입에서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외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한다. 내신에서 9등급 대신 5등급 상대평가가 도입되고, 모든 수험생이 선택과목 없이 같은 수능을 치른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조 선생님은 “입시가 점차 종합예술처럼 바뀌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왜 그런가요.
5등급 상대평가 체제는 대학 입장에서 학생들을 뽑을 때 내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의 디테일한 면을 성적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학에서는 인재를 뽑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수시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하거나 정시에도 내신을 반영할 가능성이 커지죠. 면접 역시 중요해질 거고요.
대입 면접 팁이 있나요.
면접 준비는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검투사가 검투장에 들어가기 전에 계획을 짜는 것도 훈련이 돼 있어야 하는 거지, 재치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분명한 건 본인 관심사가 분명하고 그에 따른 활동을 열심히 한 학생이 유리할 거라는 겁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본인의 관심사를 축적하는 시간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무전공 선발도 있습니다.
무전공에 대한 오해가 있어요. 전공에 대한 고민을 미리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반대라고 생각해요. 외대부고에서도 학생들을 인문, 자연, 국제 단위로 나눠서 뽑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각 특성에 맞는 학생들을 뽑고자 했죠. 통합선발을 도입하고 나서는 세 트랙 중 어디를 보내도 잘할 수 있는 아이들을 뽑았어요. 그건 가능성이 많은 아이, 이 학교에 왔을 때 그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아이를 뽑는다는 의미죠. 무전공 선발을 하는 대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가능성을 고등학교 시절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증명해야 하죠.
외대부고만의 학종 관리 비결이 있나요.
1학년 때부터 각자 좋아하는 과목에 따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줘요. 독서하고 토론하거나 실험하는 그룹도 있죠. 그리고 그걸 자신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확장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외부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를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은 학생이고, 선생님은 지도 교사를 맡거나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이런 형식을 통해 개인의 관심사를 활동으로 발전시킵니다.
“아이 눈이 빛나는 순간을 찾아라”
2005년 설립된 외대부고는 개교 20년 만에 국내 최상위 고등학교가 됐다.
외대부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모두가 서울대 입학을 꿈꿀 겁니다. 하지만 내신 5등급을 받으면 서울대에서 안 받아주거든요. 그러면 그 학생들은 수능으로 승부를 보자고 생각할 겁니다. 악바리 근성이 생기는 거죠. ‘내가 학교에서는 중간밖에 안 되지만 모의고사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요. 이건 학교에서 유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스스로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느냐의 문제죠.
정시를 보기 위해 자퇴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외대부고에도 자퇴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달 지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연락이 와요. 자퇴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지만, 실제로 학교는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이들끼리 진로에 관한 대화도 많이 하고요. 그런 시간이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부모님의 역할은, 아이가 뭘 좋아하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대부고에도 부모님의 의지대로 의대나 로스쿨에 진학한 학생이 있는데, 결국 대학에 가서 학업을 포기하더라고요. 부모님은 아이가 원하는 걸 스스로 찾게 하고 응원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만 아이가 어릴 때는 그걸 혼자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아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부모님은 그 순간을 발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조경호 #외대부고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용인외대부고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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