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펑펑 나눠줘도 남아돌 만큼 돈이 많은 것일까? 션과 정혜영 부부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를 직접 만나보니 알겠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행복이 차고 넘쳐,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션·정혜영 부부와 셋째 하율, 막내딸 하엘, 큰딸 하음, 둘째 하랑이(아이들은 왼쪽부터). <br>
연예계 대표 선행 부부인 션(42)과 정혜영(41)이 에세이를 통해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오늘 더 행복해’(홍성사)는 2008년 펴냈던 ‘오늘 더 사랑해’ 이후 6년 만에 출간한 책이다. 큰딸 하음이(10)와 둘째 하랑이(8)를 둔 결혼 4년 차 부부의 일상과 사랑 이야기를 담았던 전작에 비해 셋째 하율이(6)와 넷째 하엘이(4)로 인해 이야기는 더욱 풍성하고 깊어졌다. 지난 7월 초 열렸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션과 정혜영은 잉꼬부부답게 시종일관 서로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션은 기자들을 향해 “저는 인터뷰 담당, 혜영이는 얼굴 담당입니다”라는 재치 넘치는 소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가장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독후감 쓰기’였어요. 그런데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표현력이 훨씬 더 풍부해진 것 같아요. 책을 써서 좋은 점은 나중에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남겨줄 좋은 선물이 생겼다는 것이에요.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사랑과 행복이 충분히 전해지면 좋겠어요.”
‘글을 쓰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침에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느라 정신없었고, 낮에는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 건립 등 기부금 마련을 위해 달리기와 강연을 하러 다녔다. 책이 나오기까지 하루걸러 하루씩 밤을 새우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하지만 막상 책이 나오자 계속 웃음이 쏟아진다고 한다. 힘들게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책의 표지 모델이 마음에 들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첫 번째 책의 표지는 채 백일이 안 된 하랑이와 정혜영이 침대에서 찍은 셀카 사진이었다. 션은 두 번째 책의 표지 역시 두 사람이 맡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고, 그의 바람대로 사랑스런 아내와 하랑이의 멋진 사진 덕분에 이번 책도 아름답게 완성됐다. 첫 번째 책은 13만 부가 팔려나가 1억3천만원이 인세로 들어왔는데, 이들 부부는 이를 특별한 방법으로 이웃과 나눴다.
“처음에 책 집필을 반대했던 아내에게, 인세를 받으면 선물을 해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독자와의 만남에서 한 분이 ‘인세는 기부하실 건가요?’라고 질문하셔서 곧바로 ‘네’라고 대답을 했죠. 그래서 혜영이와의 약속과 독자와의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한 끝에, ‘정혜영 장학회’를 만들어서 27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줬습니다. 아내 역시 ‘큰 선물을 받았다’면서 기뻐하더군요. 이번 책 인세를 어떻게 쓸지는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그때만큼 행복하게 쓰이면 좋겠어요.”
<b><font color="#993300">“아이 넷 키우면서 울기도 하고 버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font></b>
“우리 남편은 육아의 달인이랍니다”
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흔치 않은 풍경인데, 이는 션의 꿈이었다.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불같은 성격 탓에 열여섯 살에 집을 나와 독립한 그는 가족의 끈끈함을 잘 모르고 자랐고 이 때문에 마음 한구석엔 늘 행복한 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4형제가 알콩달콩 사는 행복한 가족을 만났고 그 후 아이 넷을 낳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혜영은 하나만 낳아 예쁘게 키우려고 했지만, 첫째 하음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무척 사랑스럽고 예뻐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단다. 주부라면 공감하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다. 정혜영의 고충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저라고 아이 키우는 게 쉽기만 하겠어요! 많이 울기도 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이 버겁게 느껴진 적도 있었죠. 하지만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아이가 절 보고 웃어줄 때 행복을 느껴요.”
정혜영이 이렇게 4명의 육아를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이다. 션은 아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힘들게 출산한 후에도 모유 수유 때문에 새벽잠을 못 자는 아내가 안쓰러워 네 아이 모두 생후 1년 동안 육아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자세로 재우고 먹이는 일을 도맡아 했다. 아침에 일하러 가기 전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준비물까지 챙겨놓는 것은 물론, 저녁에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재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그의 이런 노력 때문인지 아이들 역시 잠은 무조건 아빠와 자야 하는 줄 알 정도다. 아이들이 자다가 깼을 때도 정혜영은 일어나본 적이 거의 없다. 푹 자고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라는 남편의 배려 덕분이었다.
“남편이 육아 달인이 된 건, 워낙 부지런하고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를 배려하기 위한 부분이 커요. 많이 도와주고 표현해주는 덕분에 제가 힘을 많이 얻고 있어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정혜영이 막내 하엘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산후 조리를 할 때였는데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션이 혼자서 아이 셋을 데리고 식당에서 평화롭게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 엄마가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식당을 가도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데, 아빠 혼자서 아이 셋과 평화로운 식사를 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정혜영은 “남편이 몰래 육아 수업을 받으러 다니는 게 아닌지…, 정말 신기하다”고 회상했다.
“저는 아직도 육아가 쉽지 않아요. 아침에 ‘아이들하고 웃으면서 보내야지’ 하지만, 저녁이 되면 ‘또 그러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라고 고백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오빠는 참 잘해요. 놀 때는 화끈하게 놀아주고, 혼낼 때는 엄격해요. 하지만 야단치고도 바로 사랑을 주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빠를 참 좋아해요.”
넉넉한 마음씨의 부모를 닮아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넘친다. 부부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되,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 아들인 하랑이와 하율이가 잘못하면 가끔 팔굽혀펴기 벌을 주기도 한다. <br>
“넷 낳길 참 잘했어요”
네 명의 아이들은 같은 엄마 배 속에서 나왔지만, 개성이 각자 다르다. 그래서 서로 노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지만, 자주 다투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의 훈육은 거의 아빠가 담당하는데, 션은 아이들이 작은 잘못을 하든 큰 잘못을 하든 끌어안고 ‘기도’를 했다. “우리 하음이가 이런 걸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예쁜 마음을 꺼내서 쓸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이가 잘못을 하면 울며 기도를 하면서 아빠에게 오더란다. 그 모습을 보면 더 이상 혼내지도 못하고 그저 웃음만 나온다고. 하지만 상황에 따라 따끔하게 혼낼 때도 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때다.
“간혹 공적인 자리에서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일단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설명을 해줘요. 다른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아이가 바짝 긴장해서 말을 더 잘 듣기 때문이죠. 가끔 그 자리에서 엄하게 꾸짖어야 한다고 판단이 되면 매우 강경하게 혼을 내고 집에 와서 또 주의를 주기도 합니다.”
아들인 하랑이와 하율이는 잘못을 하면 팔굽혀펴기로 벌을 주기도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회초리를 들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안’에만 매를 든다.
하지만 이젠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첫째 하음이와 둘째 하랑이가 군기반장 노릇을 톡톡히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TV 시청을 전혀 하지 않는 대신, 토요일 오전 2시간만 EBS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아이들. 그런데 가끔 셋째 하율이와 넷째 하엘이가 계속 모니터 앞에 앉아서 TV를 보고 싶어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하음이와 하랑이가 나서서 “2시간 지났어. 이젠 어른들 프로그램이야. 우리 시간 끝났어!”라고 말하며 TV를 꺼버린다. 그러고는 둘이 주도해서 넷이 함께 놀이를 시작하고, 그렇게 엄마 없이 몇 시간도 끄떡없이 신나게 논다. 누가 봐도 이상적인 아이들의 이런 생활 습관은 “TV 시청보다는 아이들끼리 놀고 싸우고 웃고 우는 시간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정혜영의 평소 육아 철학 덕분이다.
“육아가 힘들지만,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고 알뜰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요. 그래서 모든 생활에는 규칙이 중요하죠.”
두 사람은 아이들이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잘 들이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들을 멋대로 놔두면 부모의 일상마저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갓난아기일 때는 아이와 부모가 새벽에 깨는 고생을 줄이기 위해 밤중 수유를 하지 않는 수면 교육을 했고,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부모와 따로 떨어져서 자는 연습을 시작해 돌 즈음에는 따로 자기 시작했다. 돌쟁이 아이를 혼자 재우는 게 쉽지 않았지만, 부부는 원칙과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아이들이 자다가 깨서 울면 토닥토닥거리며 다시 재웠다. 그 결과 지금은 하음이가 방을 따로 쓰고, 하랑이와 하율이가 같은 방을 쓰고, 막내 하엘이만 개인 침대를 두고 부부와 함께 잔다.
잠자리 습관뿐만 아니라 일상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3시부터 정해진 스케줄에 따른다. 무조건 숙제를 먼저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야 자유 시간을 갖는다. 4명의 아이들은 치열하게 놀다가, 저녁 8시가 되면 잘 준비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정혜영은 “아이 넷 키우는 게 절대 쉽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이 애교를 떨거나 넷이서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어요. 특히 남편과 아이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 부자가 된 것 같죠. 그럴 때는 ‘넷 낳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저희는 8백4명의 부모입니다”
이들 부부의 자녀는 하음, 하랑, 하율, 하엘이가 전부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8백명의 아이들이 더 있다. 처음 아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한 건, 하음이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2005년 무렵이었다. 우연히 어린이 구호에 앞장서는 ‘컴패션’이라는 단체의 홍보를 돕기 시작한 게 그 시작이었다. 션과 정혜영은 당시 식구 수만큼 세 명의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고, 4명의 아이를 낳는 게 꿈이었던 션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이름으로 3명을 더 후원해 총 6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2008년 결혼 4년 차가 되던 해, 부부는 3억~4억원 정도를 은행에서 빌려 예쁜 집을 사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매달 3백50만원씩 10년을 갚아야 하는 돈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필리핀을 다녀온 정혜영은 션에게 “내 집 마련을 위한 꿈을 잠시 미뤄두려고 한다”며 “가난 때문에 꿈을 꾸지 못하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나의 꿈’으로 대신해보고 싶다”고 선포했다. 집을 사는 데 들어갈 뻔했던 돈으로 이전에 후원하던 아이들을 포함, 1백 명의 아이들을 품고 그들의 꿈을 뒷바라지했다.
2009년에 션은 입양을 기다리는 국내의 아이들을 위해 홀트아동복지회의 홍보대사를 맡게 됐는데 때마침 그때 생각지도 않게 부부 동반 CF를 찍게 됐고, 감사한 마음에 그 출연료로 우리나라 아이들 1백 명의 꿈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빠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2010년에는 아이티 지진 이후 그곳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1백 명을 더 후원하기 시작했고, 이후 가깝고도 먼 이웃인 북한의 아이 5백 명에게도 손을 뻗었다. 이렇게 해서 4명의 자녀 외에 총 8백 명의 아이들을 마음에 품어, 션과 정혜영은 세계에서 누구보다 많은 아이를 둔 부모가 됐다.
이들 부부는 직접 낳은 4명의 아이들 외에도 전 세계 8백 명 어린이의 부모가 돼 그들이 희망을 갖고 꿈을 키우며 살 수 있도록 후원한다. <br>
이외에 션이 하는 일이 참 많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전직 농구 선수 박승일 씨와 함께 루게릭전문 요양병원을 짓기 위해 모금운동을 하고 있으며,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매일 기부하고, 모금하는 션. 오죽하면 주위에서 “직업이 사회복지사가 아니었냐?”고 물어볼 정도다. 션이 이렇게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가족의 행복’이다.
“2004년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 그 감사함을 작게라도 나누면서 살자는 생각으로 하루에 1만원씩 모으자고 결심했던 게 기부의 시작이었어요. 제게는 가족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족을 뒤로하고 이웃 돕기에만 바빴다면 아마 벌써 지쳐 넘어졌을 겁니다. 저의 나눔은 우리 가족의 행복에서 시작됩니다. 가정의 행복으로 나누기에 저에게 나눔은 행복의 연장선입니다.”
이들 부부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롤 모델로 꼽히고 있다. 빅뱅의 지드래곤 역시 션에게 “형의 모습이 나의 새로운 꿈”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이들 부부는 ‘가장 닮고 싶은 부부’, ‘롤 모델’, ‘기부 천사’ 등의 이미지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션은“누구의 롤 모델이 되고자 했던 건 아니다. 가장으로, 아내로, 엄마로 그냥 서로 열심히 행복하게 살았고, 그 모습을 다른 분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이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그는 그동안 4명의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한 아내가 이제 ‘정혜영’으로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실 좋은 작품이 들어와도 육아 때문에 고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저에게 아이를 4명이나 선물해주고, 배우로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살아왔어요. 이제는 좋은 작품을 통해 ‘여배우’로서 본인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며 많은 분들과 호흡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복이 아니라, 가정의 소소한 행복이 넘쳐서 이웃과 나누게 됐다는 션. 이웃이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해지고, 그 나라에 사는 우리 아이들이 더욱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단다. 행복을 나누면 나눌수록 스스로가 더 행복해지는 션과 정혜영 부부. 이들은 앞으로도 “오늘 더 행복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살지 않을까 싶다.
글·김민주 자유기고가|사진·박해윤 기자, 홍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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