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이 심하지 않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어요. 엄마 고생시키지 않는 걸 보면 배 속 아이가 벌써부터 효도를 하나봐요.”
비와 우박이 쏟아지던 지난 6월 초, 서울 홍대 근처 레스토랑에서 만난 이혜승 아나운서(31)는 떡볶이를 주문했다. 맵다고 입을 호호 불면서도 “비가 오는 날에는 떡볶이·수제비·칼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이 떠오른다”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기자의 입맛까지 돋워줬다.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든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한 생각을 하는 게 태교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실 ‘접속! 무비월드’‘출발 모닝와이드’를 진행한 지난해부터 얼마 전 우주인 이소연씨의 우주생활을 생중계한 ‘2008 스페이스코리아’까지 하루가 48시간으로 생각될 만큼 스케줄이 빠듯했어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방송을 하고 보도국 회의와 뉴스 진행을 마치고 나면 기운이 쏙 빠졌죠. 그때는 ‘하루에 프로그램 하나만 진행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했는데, 여러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DMB 라디오 프로그램만 진행하고 있는 지금도 방송 이외의 일이 많이 생겨서 여전히 바빠요(웃음).”
그는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는데 “배가 더 부르기 전에 방송일로 잠시 미뤄둔 공부를 하고 남편과 여행도 많이 다닐 생각”이라며 “며칠 전에는 부산에 다녀왔고 주말에는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민병철 중앙대 교수의 아들이자 국제변호사로 일하는 민준기씨(31)와 결혼한 그는 “활동적인 남편을 따라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닌다. 예전에는 공부와 일밖에 몰랐는데 요즘은 여행과 스포츠를 즐긴다”며 활짝 웃었다.
“사실 지난해 홍대 앞 클럽이나 스키장 등에 처음 가봤을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남편이 함께 운동하자고 해도 ‘저는 움직이는 게 싫어요’ 하면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막상 스키와 웨이크보드를 배우고 나니 왜 진작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사는 재미를 느껴요.”
“1년간 신혼재미 즐긴 뒤 아이 갖자는 계획 꼭 들어맞았어요”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엄마가 되는 그는 “1~2년간 신혼재미를 즐긴 뒤 아이를 가지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꼭 들어맞았다”며 신기해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결혼한 뒤로는 감기약조차 먹지 않았어요. 임신테스트를 할 때 남편이 문밖에서 기다렸는데, 내심 기대했는지 임신했다고 말하자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린 건 아니지만 저희 부부가 원할 때 생긴 것 같아 고마워요.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올가을이면 둘에서 셋이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요.”
시아버지인 민병철 교수와 시어머니도 그의 임신 소식을 무척 반긴다고. 민교수 부부는 평소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할 정도로 그를 친딸처럼 아낀다고 한다.
그는 “아들인지 딸인지 아직 모르지만 무척 건강할 것 같은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임신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지난 2월, 그는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다쳤다고 한다. 3주 동안 팔에 깁스를 할 정도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 임신 사실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그날 계속 넘어지고 굴렀던 기억이 나요. 아이가 수난을 이겨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강한 아이인가보다’ 싶어 흐뭇했어요(웃음). 아이를 갖기 전에는 어떤 아이가 태어나면 좋겠다, 남편과 저의 이런 부분을 닮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졌는데, 지금은 아이가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한 달 정도는 입덧 때문에 살이 빠졌지만 지금은 체중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아이 역시 개월수에 따라 잘 크고 있다고. 하지만 남편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식사 때마다 전화를 해 그가 밥을 잘 챙겨 먹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새벽 방송을 할 때도 남편을 위해 과일주스를 만들고 그럴 시간이 부족하면 바로 갈아먹을 수 있게 준비해놓고 출근했는데 임신한 뒤로는 남편이 그렇게 해줘요. 제가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과일주스 만들고 아침식사를 차려놓은 뒤 조심스레 저를 깨우죠.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대우를 받을까 싶다가도 ‘남편이 곁에 있어 정말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맙다는 말을 꼭 해요.”
평소 애정표현을 잘 하는 남편은 그의 배를 쓰다듬으며 ‘오늘 하루도 잘 놀았니?’ ‘엄마 배 속에서 편히 잘 자렴’ 하고 태담을 한다고. 두 사람은 태명을 짓지 못해 배 속 아이를 ‘아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부러 동화를 읽거나 클래식을 듣는 대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태교를 한다”는 그는 “4년 전부터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에 다녔는데 이참에 논문을 써 석사학위를 딸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그동안 쿠킹클래스를 꾸준히 다니며 요리실력을 닦은 그는 얼마 전 요리책 ‘아내의 요리비법’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 북어달걀국·멸치볶음 같은 초보주부가 쉽게 할 수 있는 기본요리부터 등갈비구이·샤브샤브 같은 응용요리까지 1백50여 가지 요리를 담았다.
“결혼 전에는 밥도 제대로 못 지었어요. 엄마가 ‘주방 어지럽히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라고 할 정도였죠(웃음). 그런데 누군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더라고요. 남편이 제가 만든 음식을 늘 맛있게 먹어주니까 더 신나고요. 사실 요리과정을 일일이 카메라에 담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독자들이 ‘혜승씨, 그 책에 소개된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렸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뿌듯해요.”
그는 앞으로도 목표를 세워 공부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한다. 지난해 어린이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일본어 공부도 틈틈이 할 계획이라고. 그는 “남편은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라고 운을 떼면 ‘생각해봤다는 당신의 말이 가장 무서워요. 또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해요?’ 하며 심각하게 바라본다”고 말했다.
“물론 아이에게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야죠. 아직 산달이 멀었지만 주위 분들에게 아이를 낳는 과정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제품까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어요. 아이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겠지만 유모차 같은 아이용품을 물려받아 쓰는 알뜰한 엄마, 아이가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안 돼’라고 말하는 강한 엄마가 될 거예요.”
동갑내기지만 연애할 때부터 높임말 써
이혜승 부부는 동갑내기지만 연애할 때부터 줄곧 높임말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투더라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고.
“‘야’ ‘너’ 이렇게 상대방을 부르면 별일 아닌데도 기분이 상할 것 같아서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높임말을 썼어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말에서 묻어나서인지 애정이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남편은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에요. 보통 결혼하고 나면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데 남편은 한결같아요. 가정의 화목을 중요시하는 시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저뿐만 아니라 친정 엄마·아빠까지 잘 챙겨요. 바쁜 저 대신 장을 봐주고, 설거지나 음식물 쓰레기 정리 등 집안일을 많이 거들죠.”
이혜승 아나운서는 남편을 만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내가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정도로 애교가 부족했는데 점점 사랑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고. 주변 사람들은 이런 그를 보며 “결혼 전에는 새침하고 도도했는데 결혼 후 온화하고 사분사분해졌다”며 놀란다고 한다. 그는 “‘남자도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자도 남자하기 나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연인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끼는 마음을 담아두면 되지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 하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남편과 데이트할 때도 ‘모든 연인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 이벤트를 하는 건 유치해요’라고 말했죠. 드라마나 영화에서 프러포즈하는 장면이 나와도 시큰둥했고요. 그런데 이벤트에 무덤덤한 저와 달리 남편은 소소한 선물이나 편지를 준비하더라고요. 느닷없이 꽃 한 송이를 보내거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식사를 예약해 감동을 줘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은근히 이벤트가 기대돼요(웃음). 이런 게 결혼한 뒤에도 연애하는 기분처럼 사는 비결 같아요.”
남편 민씨는 결혼 후 처음 맞는 그의 생일에 직접 미역국을 끓여주는가 하면 때때로 집안 구석구석에 깜짝 선물을 마련해놓고 그가 발견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는 “며칠 전에는 안방에 서류를 놓고 갔다기에 부랴부랴 찾았더니 작은 선물이 놓여 있더라”며 자랑했다.
그는 요리로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고 한다. 간식으로 직접 만든 양갱을 챙겨주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제철 재료로 식탁을 꾸며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 달에 한 번씩 시부모를 집에 초대한다는 그는 얼마 전 시어머니 생일에는 시폰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용품을 물려받아 쓰는 알뜰한 엄마,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안 돼’라고 말하는 강한 엄마가 되겠다”는 이혜승 아나운서.
“제가 괜한 스트레스를 받을까 염려되셨는지 어머니가 따로 음식장만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그래도 어디 그럴 수 있나요. 부쩍 제과제빵에 관심이 생겨 그날 처음으로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빵틀에 반죽을 잘못 끼워 반죽이 흘러내리고, 잘 부풀지 않아 양이 줄고…(웃음). 서툰 솜씨였는데도 감동하시는 모습을 보며 더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가정을 꾸리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말이 꼭 맞더라. 나이가 든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좋은 배필을 만나면 미루지 말고 결혼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아나운서국에 ‘유부클럽’이 생겼어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과 워킹맘의 모임인데, 저도 유부클럽의 일원으로서 정보를 주고받거나 조언을 해요.”
그는 현재 출산휴직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방송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남편과 시부모님께서 TV에 나오는 내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단란한 가정을 일군 만큼 보다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 입사 8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결혼식 당일에도 뉴스를 진행했을 만큼 방송에 대한 애착이 깊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뉴스 앵커도 좋지만 앞으로는 취미를 살려 요리 프로그램 MC를 맡거나 내레이션, 라디오 DJ에 도전하고 싶어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할 자신이 있어요. 특히 주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고요. 엄마로서뿐 아니라 아나운서로서도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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