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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신비한 이야기

귀신 체험 사이트 ‘잔혹소녀’ 운영하는 ‘여우계단’ 시나리오 작가 이신애

“사람들 내면의 공포를 끌어내 ‘살풀이’해주고 싶어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3. 09. 04

올여름도 예외 없이 국내 극장가는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과 ‘장화, 홍련’ ‘4인용 식탁’ 등 공포물이 휩쓸었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이색 경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여우계단’의 이신애 작가. 어릴 적부터 귀신이 보였다는 그를 만났다.

귀신 체험 사이트 ‘잔혹소녀’ 운영하는 ‘여우계단’ 시나리오 작가 이신애

“지금 이 카페 안에도 두명의 귀신이 보여요. 손님을 따라온 모양인데, 누구를 해치거나 할 귀신은 아니에요.”
“기자의 등뒤엔 귀신이 안 보인다. 안심하라”며 그가 불쑥 던진 말이다.
올여름 전작의 인기를 이어 흥행 대박을 기록한 영화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의 시나리오 작가 이신애(23). 깜찍한 덧니가 매력적인, 귀여운 외모의 그였지만 입을 열 때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이 사람은 대체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말들이 나왔다.
영화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은 예술고등학교를 무대로 질투가 부른 저주를 다룬 작품. 학생들간의 보이지 않는 시기와 ‘왕따’ 문제 등을 공포로 형상화해냈다. 28계단의 여우계단에서 소원을 빌면 29번째 계단이 나와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정. 하지만 그 소원엔 무서운 대가가 따른다.
“세명의 작가가 함께 작업을 했어요. 제가 안양예고 출신이기 때문에 남의 토슈즈에 몰래 유리조각을 넣는다는 등 예술고와 관련된 설정, 그리고 공포에 대한 이미지 작업을 맡았죠. 시나리오 작업은 너무 힘들었어요. 마무리 단계에선 몇달간 합숙을 했는데, 진이 다 빠져 정신이 황폐해지는 걸 느꼈다니까요. 그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다 풀었죠. 휴대전화도 두개나 던져서 고장냈고요.”

생후 7년간 병원 신세 지면서 영적 존재 만나
한번은 작업에 영 진척이 없어 ‘그때의 감정을 만나보자’는 심정으로 고교 때 교복을 꺼내 입고는 목동에서 사무실이 있는 충무로까지 걸어왔다고 한다. 예고에 다닐 무렵처럼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그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드디어 미쳤구나”였다고.
그는 현재 인터넷 사이트 프리챌에서 귀신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잔혹소녀의 엽기공포 글방(www.freechal.com/wizardcat)’을 운영하고 있다. 2001년부터 사이트에 오른 영적 체험담을 중심으로 귀신 쫓는 법, 영혼을 부르는 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주술 등을 소개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귀신도 보였고요. 이후 무속에 관련된 책을 뒤지며 불가사의한 체험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됐죠.”
‘귀신이 보인다’는 그는 태어나자마자 7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진 경험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심한 천식을 앓았고, 그것이 합병증을 유발하면서 특수병동에 입원해야 했던 것. 간호사 출신의 어머니가 그의 곁에서 병간호를 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어느 날부터 어른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다섯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바로 옆 침대에 있던 친구인데 어느날 ‘저 창문 밖에 계단 보여? 난 저 계단을 올라갈 거야’ 하더군요. 그러곤 그날 밤 갑자기 중환자실로 옮겨갔어요. 그뒤로도 3일 동안 저는 그 친구를 봤는데, 어른들은 그 친구가 그날 밤 죽었다는 거예요. 아마 그 영혼이 장례식을 치른 후에야 병원을 떠난 것 같아요.”
그때서야 어렴풋이 자신의 눈에 죽은 사람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자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됐다.
“집안에 무당이나 점쟁이는 없지만 외갓집 대대로 그런 신기가 이어져왔다고 해요. 외할머니가 그렇고 이모를 거쳐 저에게 내려온 거죠.”
불교를 믿는 집안이라 어려서부터 천도재 등을 보면서 죽은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동화책을 읽게 되면서부터는 공포물에 빠졌다고 한다. 또 틈나는 대로 무녀들을 따라 진혼제 구경을 갔고, 무당집에 들어가 스스로 ‘저 사람은 어떤 일로 왔을까’ 맞추어보기도 했다고.
어린 나이에 무당집 주위를 맴도는 그를 두고 집안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저러다 무슨 일 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날인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그의 아버지가 마당에서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재즈무용을 배우고 있었는데 바로 그 옷을 태우고 계셨어요. 귀신이 보인다고 하고, 무용까지 배우고 있으니 혹시 무당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그런 거였죠. 그뒤로 절에도 못 가고, 무용도 배우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가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 3학년 때 고모할머니의 죽음을 보면서였다.

귀신 체험 사이트 ‘잔혹소녀’ 운영하는 ‘여우계단’ 시나리오 작가 이신애

불가사의한 체험을 다룬 ‘잔혹소녀의 엽기공포 글방’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이신애 작가. 앳된 외모를 가진 그는 ‘신비소녀’에 가까웠다.


“저를 친손녀처럼 몹시 아껴주셨던 분이죠. 시험을 보고 있는데 학교로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울면서 달려가 보니 고모할머니가 대문 앞에 앉아 계시는 거예요. ‘고모할머니 어떻게 된 거예요?’ 하고 물었는데 그냥 미소만 지은 채 집안으로 들어가시더군요. 얼른 따라 들어갔더니 지금껏 관이 움직이지 않아 장례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관을 쓰다듬으며 ‘할머니 이젠 편하게 쉬세요’ 하자 관이 들리는 거예요.”
처음에는 자신의 눈에 귀신이 보인다는 사실이 신기했지만 사춘기 시절엔 끔찍하게 싫었다고 한다. 친구의 소매를 잡고 따라다니는 할아버지의 첩 귀신, 피부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화장했던 터에 집을 지어 밤마다 심한 악몽을 꾸던 학교 선배를 보면서 ‘왜 내게 이런 능력이 있어 힘들게 하는 걸까?’ 하는 의문에 빠지기도 했다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피하게 되더군요. 말이나 행동을 듣고 보지 않아도 등뒤의 귀신으로 그 사람의 사연을 알 수 있으니 왜 안 그랬겠어요. 그래서 친한 친구들 외에는 절대 제가 본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중에는 저처럼 곧잘 귀신의 모습을 보는 친구도 있어요.”
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3학년 휴학중. 신입생 시절엔 고려대 응원단 ‘입실렌티’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헤어졌지만 남자친구와 ‘뜨거운’ 연애를 하기도 했다. 영화계에 입문한 것은 지난 2000년 영화 ‘북 오브 쉐도우’의 인터넷 소설 작업을 의뢰받으면서다. 학창시절 각 대학에서 주최하는 문학 콩쿠르는 물론, 전국 문학 콩쿠르를 휩쓸었던 그가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귀신 체험 사이트 ‘잔혹소녀’ 운영하는 ‘여우계단’ 시나리오 작가 이신애

그와 함께 영화 ‘여고괴담’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출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그는 ‘귀기’를 보여주었다.


지난 8월초엔 ‘잔혹소녀’라는 책을 펴냈다.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오른 귀신 체험담을 모은 것으로 귀신 쫓는 법 등 불가사의한 체험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 내용도 담겨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미녀 퇴마사’. 중학교 시절부터 따라다닌 별명 ‘신신애’는 이제 떨어져나갔다고.

“사이트를 통해 상담을 할 때도 전 ‘반드시 영혼이 있다, 귀신이 있다’고 강조하지 않아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정하려 들지 않거든요. 다만 동물과 식물, 땅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것처럼 영혼도 우리 사는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죠.”
영적 존재를 믿지 않는 기자가 마지막으로 “정말 귀신이 있느냐”고 묻자 그가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귀신을 보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는 것.
“노력을 한다고 되는 것 같지는 않고 귀신을 보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제 눈에 귀신이 보인다는 게 무서웠지만 그 귀신들이 저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뒤론 모든 것을 인정하기로 했죠. 하지만 지금도 무서워요.”
“심리물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잔혹소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것 같다”는 그는 앞으로 시나리오 작가 겸 연기자로 활동하고 싶다고 한다. 사람들 내면에 잠재된 공포와 불안을 끌어내 이야기함으로써 일종의 ‘살풀이’를 하겠다는 것. 이후 연극 무대에 올라 글로 못다한 이야기들을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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