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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커트 엄친딸 박규영의 시대가 왔다!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11.23 10:30:01

배우 박규영의 말엔 ‘감사’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인 자신이 지금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감사한 일이라며. 박규영에게 20대의 끝자락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그에게 다가올 앞날은 기대의 연속이다.
박규영(28)에겐 ‘대세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지난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부터 ‘스위트홈’, 올해 ‘악마판사’에 이르기까지 출연한 작품이 모두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보다 박규영을 더 돋보이게 하는 점은 그가 작품마다 맡은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든다는 점이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문강태(김수현)를 짝사랑하며 고문영(서예지)에게 그를 뺏길까 전전긍긍하는 남주리부터 ‘스위트홈’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 용감히 괴물에 맞서는 윤지수, ‘악마판사’에서 거친 형사지만 소꿉친구 김가온(진영)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윤수현까지. 작품 간 큰 텀을 두지 않고도 결이 다른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모습은 그의 연기 재능을 짐작게 한다.

박규영의 연기 경력은 5년 정도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편이다. 부산외고 졸업 후 연세대 의류환경학과에 진학한 박규영은 2015년 잡지 ‘대학내일’ 표지모델 활동을 계기로 JYP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게 됐고, 2016년 가수 조권의 뮤직비디오 ‘횡단보도’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의 데뷔지만 안방극장과 스크린, OTT를 오가며 한 해도 쉬지 않고 해마다 2개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쌓았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사이코지만 괜찮아’ 이후엔 그가 출연한 이전 작품들 또한 화제가 되며 시청자들로부터 “그 배우가 박규영이었어?”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올해 9월엔 드라마 ‘달리와 감자탕’의 달리 역을 맡았는데,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첫 주연이다. ‘달리와 감자탕’은 무식하지만 생활력 하나는 끝내 주는 무학(김민재)과 귀티가 흐르지만 생활 능력은 없는 달리가 미술관을 매개체로 펼치는 로맨스 드라마다. 달리는 명망 높은 청송가(家)의 외동딸로서 네덜란드의 미술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미술관 관장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파산으로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달리와 감자탕’은 첫 회 시청률 4.4%로 시작해 11월 11일 마지막 회(16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5.7%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대박’을 터트렸다고 할 순 없지만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결말은 달리와 무학이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결혼을 약속하는 해피엔딩. 11월 12일 화상으로 마주한 박규영은 “그보다 완벽한 엔딩은 없었을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첫 지상파 주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박규영은 감회가 남다른 듯 인터뷰하는 동안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를 “박규영이라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나에 대해 궁금해해줘서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선 겸손함과 풋풋함이 묻어났다.

나를 잃지 않기

무사히 첫 지상파 주연 작품을 끝냈어요. 부담이 됐을 것 같은데,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자면.



딱 50점 주고 싶어요.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어요.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촬영 내내 행복했고 많이 웃었어요. 부담감에 짓눌려서 캐릭터를 잘 표현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욱 몰입했죠.

출연하는 작품마다 결이 다른 모습을 선보였는데, 달리 역을 소화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달리는 미술 전문가로서 학문적으로, 예술적으로 조예가 깊은 인물이에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미술계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의 조언을 구했죠. 말투도 다듬었고 외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어요. 특히 달리의 예술적 면모를 표현하기 위해 과감하게 뽀글머리를 시도했어요. 작품 초반부엔 고집스러울 정도로 제 의견이 많이 들어갔죠. 사실 작품을 할 때 헤어스타일에 대해 의견을 내는 편이에요. 헤어스타일이 캐릭터에 힘을 불어넣어 줄 때가 많다고 생각해서요. 의상은 달리가 매일 쇼핑을 즐기기보다는 취향에 맞는 옷을 오래 입는 인물일 거라 생각해서 차분한 것을 택했죠.

쇼트커트가 트레이드마크인데,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건가요.

선호한다기보다는 쇼트커트를 하고 나서부터 감사하게도 관심을 많이 받게 됐어요(웃음). 그 후 연달아 작품을 하는 바람에 머리를 기를 시간이 없어서 이 스타일을 고수하게 됐고요. 그런데 쇼트커트나 단발머리에 대한 시안으로 미용실에 제 사진을 들고 가시는 분을 보면 그보다 더 기쁠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하지만 가장 예뻐 보이는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고, 보시는 분들에게 ‘이번에는 어떤 헤어스타일일까’ 궁금증을 드리고 싶어요(웃음).

영어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한 점도 화제가 됐어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영어를 조금 배웠던 게 아직 남아 있어요(웃음). 그걸 토대로 달달 외운 건데 좋은 반응이 있어서 뿌듯해요(웃음).

달리와 박규영 씨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꼽자면.

처음엔 저와 닮은 점이 정말 없다고 생각했지만 연기를 하며 달리로 살다 보니 ‘어느새 많이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투도 차분해지고(웃음). 캐릭터와 완전히 분리되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에 제가 반영되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하고요. 차이점은 달리는 능동적이고 용기 있는 인물이에요. 공주같이 자랐지만 자신의 신념과 취향이 확고하죠. 저와 다른 점이자 닮고 싶은 점이에요.

무학과 달리가 맞이한 해피엔딩은 달리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지막 회에서 무학의 아버지 백원(안길강)이 둘 사이를 반대하며 이별을 종용했지만 달리는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끼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무학 씨 사랑합니다”라며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회에서 달리가 백원에게 했던 말이 인상 깊었어요.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사실 무학과 달리처럼 성장환경과 가치관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인물이 화합하고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어요. 그럼에도 사랑을 이뤄냈기에 그 커플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슷한 사람이어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그래서 달리가 대단하다고 느꼈고 대리 만족했어요. 저는 달리 같은 용기가 없어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편이죠. 마음 아프지만 현실과 타협하고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길 선택했을 거예요. 너무 다른 사람과의 사랑은 모험 같아요.

지난해부터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오고 있어요. 지난해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에 스스로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나요.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하고 싶다는 점은 변함이 없어요. 다만 제 역할이 커질수록 잘 표현하지 못했을 때 시청자들의 공감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자로서의 책임감이 더 커지는 느낌이죠. 선배님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존경심이 생겨요(웃음).

이젠 ‘대세 배우’라는 수식어를 듣기도 하는데.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웃음). 감사할 따름이죠. 아직 제 입으로 배우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어떤 캐릭터든 감사하게 받을 준비가 돼 있고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맡은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게 제 일이니까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아직 제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에 끌려요. 또 좋은 스토리, 내면을 가진 캐릭터에 마음이 가죠. 그런 점에서 달리는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전작 ‘악마판사’의 윤수현과 달리는 외형과 내면이 모두 다른 인물인데, 작품 간 텀이 길지 않았어요.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솔직히 쉽지는 않았어요. 저는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제 진심으로 가득 채워요. 그래서 ‘또 다른 캐릭터를 사랑하려면 이전 캐릭터에 가졌던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도 필요하구나’ 하고 반성했죠.

배역마다 차별화를 주는 비결이 있다면.

아직 부족해서 비결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엄마 역할을 하셨던 김미경 선배님께서 “어떤 인물을 맡더라도 절대 너 자신을 잃어선 안 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이 말씀을 제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지정해놨죠(웃음). 어떤 캐릭터든 저로부터 발전해서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제 자신을 잃지 않고 표현하려 애쓰죠.

연예계 대표 엄친딸로 꼽히곤 해요. 학업 대신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잘한 것도 아니고 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아요(웃음). 저는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걱정이나 두려움에 이를 놓치기보다는 일단 부딪쳐보는 편이에요. 이젠 제 재능이나 외모가 어떻든 관심 갖고 봐주는 사람들이 있고, 제 작품에 위로와 힘을 받는다는 분들이 계세요. 만약 제가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삶에서 이런 사랑을 언제 받을 수 있었을까요. 후회는 없어요. 정말 배우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데뷔 후 쉬는 해 없이 다작하고 있잖아요. 지칠 때는 없나요.

특별히 지쳤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어요. 맡은 캐릭터들이 모두 호기심 가고 재미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작을 하게 됐더라고요(웃음).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스태프분들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과 작품에 기뻐해주시는 시청자분들의 반응이 원동력이 되죠.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도 들고요.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이 있다면.

원래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그것보단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이라도 해주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넌 이게 부족해’라며 채찍질을 하다가도 ‘그래도 이거 하나는 괜찮잖아’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좋더라고요. 저를 더 예뻐하고 사랑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달리로 20대의 마지막 즈음을 보내면서 배우게 된 방법이에요(웃음).

‘달리와 감자탕’이 박규영 씨에게 의미 깊은 작품으로 남겠네요.

제 20대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달리는 고난과 역경을 겪지만 주변에서 도와주는 많은 인물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성장해가거든요. 저 역시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주변의 응원과 사랑 덕에 잘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달리로서도, 박규영으로서도 사랑을 많이 받아서 참 감사해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0대가 되는데.

이제 30대가 되는 데에 두 달도 안 남았어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웃음). 저 스스로를 사랑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방법을 알기에 예전보다 마음이 훨씬 평온해졌어요. 이런 상태에서 맞이한 30대의 박규영은 얼마나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기대도 되고요. 물론 고난과 역경은 분명히 오겠죠. 하지만 전 언제나 삶에서 한 줄기 희망은 늘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 지인들도 “30대가 얼마나 멋진 시기인지 모를 거야. 기대해”라고 얘기해주고요(웃음). 또 연기를 한 20대의 시간이 짧진 않더라고요.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있었어요. 그건 감사하게도 많은 캐릭터들이 저에게 찾아왔고, 저 역시 그 캐릭터로 사는 데 진심을 다했기 때문인 듯해요. 제 20대에게 “정말 너무 고생했고 수고했다”라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방법을 알게 돼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예전에는 ‘스케치북 같은 배우’나 ‘편한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었어요. 이젠 ‘좋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고, 사람 박규영이 가진 에너지도 건강하고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 같아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2021년도 하루하루 충실히 일하다 보면 2020년만큼 배우로서 꽤 괜찮은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한 적 있는데, 올해는 괜찮은 한 해였나요.

이보다 더 충실하게 채운 한 해는 없을 거예요. 지난해 ‘스위트홈’을 공개하고 올해 초엔 관련 활동을 했고요. 그다음엔 바로 ‘악마판사’ 촬영과 방송을, 다음으로 ‘달리와 감자탕’을 찍고 나니 올해가 끝나가고 있어요. 매 순간 진심을 다했고, 앞으로도 이렇게 채워나가다 보면 2022년도 끝나 있지 않을까요(웃음). 2021년은 괜찮은 한 해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감사한, 잊을 수 없는 해예요.

곧 연말 시상식이 열릴 텐데, 수상을 기대하고 있나요.

만약 참석하게 된다면 저에겐 첫 지상파 연기 시상식이에요. 뭔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어떤 상을 받는다면 정말,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보다 더 감사할 수 없을 만큼이요(웃음). 물론 참석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지만요(웃음).

사진제공 사람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21년 12월 6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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