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전이면 직장인들은 전날 밤 김혜수(43)가 소위 ‘약 빨고 연기한’ 미스김 이야기로 수다 떨기에 바쁘다. KBS2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그가 맡은 계약직 직원 미스김은 온갖 자격증을 소지하고 혼자 정규직 직원 세 사람 몫은 거뜬히 해내는 파워우먼이다. 특유의 “~했습니다만”으로 끝나는 말투나 ‘빠마머리’ 장규직(오지호)과 티격태격하는 모습, 신입 계약직 정주리(정유미)를 은근히 도와주며 사회의 냉혹함을 일깨워주는 멘토로서의 면모까지 행동 하나하나가 호감이다.
드라마 방영 직전 석사 학위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지자 깔끔하게 사과하고 연기로 보답하겠다고 했던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6회까지 방영된 시점에서 작품은 월화극 1, 2위를 다투고 있는 데다 누구도 그의 학위 논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미스김 어록이 SNS를 타고 공유되고, 유머 사이트에서는 그가 연기한 장면들이 회자된다. 사생활에 대한 루머를 연기력 하나로 덮어버린 이병헌처럼 김혜수 역시 김혜수다움으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이번 김혜수 인터뷰는 극 중 만능 사원 미스김에게 특별히 맡겼다. 극 중에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1백여 개가 넘는 그의 자격증 중 ‘칸이 모자라서 적지 않았던’ 러시아어 자격증처럼 인터뷰에도 특화된 스킬 하나 정도는 있을 것 같아서다.
미스김_ 안녕하십니까. 미스김입니다. 오늘 김혜수 씨 인터뷰가 제 업무입니다. 드라마 ‘직장의 신’ 대본을 보자마자 출연을 결정하셨는데, 연기해보니 어떻습니까.
“대본이 정말 유쾌하더라고요. 미스김이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느낌이 있는데, 주변의 상황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드라마 이면의 메시지가 현실 생존과 밀착해 있어서 공감이 갔어요. 이 드라마를 고르기 전에 만약 드라마로 다시 시청자를 뵙는다면 밝고 희망찬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완벽하게 걸맞은 작품이었죠. 그래서 대본을 보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합류 의사를 전했어요.”
미스김_ 잠깐! 본격적인 인터뷰 전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만.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3월 25일) 석사 학위 논문 표절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학위를 반납하겠다고 하셨죠. 정확히 표절 관련 보도에 대해 알게 된 게 언제인가요.
“촬영 현장에서는 다들 열심히 찍느라 뉴스에 어떤 기사가 나는지 잘 몰라요. 그러다가 22일 밤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모였을 때 말씀드렸어요. 개인적으로 큰 실수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작품 시작 전에 누가 돼서 죄송하다고요. 사실 연기자로서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인사드리는 것만도 조심스러운데, 중차대한 시점에 개인적 실수로 많은 분들에게 우려를 끼쳐드려서 위축된 상태예요. 연기로 많은 분의 공감을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가진 에너지를 전부 끌어내서 잘해야죠.”
미스김_ 원작 ‘파견의 품격’이 워낙 인기였습니다. 원작과의 비교가 두렵지 않습니까.
“대본과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는 일본 원작이 있는 줄 몰랐어요. 조카들이 생기니까 아이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드라마에서 유쾌하고 의미 있는 캐릭터를 맡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미스김이 거기에 맞는 캐릭터였어요. 첫 미팅에서 ‘원작을 보는 게 참고가 될까요?’ 물었더니 봐도 되고 안 봐도 된다고 하기에 1회만 보고 그만뒀어요. 원작을 본 분들은 오오마에라는 완벽한 캐릭터가 있기에 기대도 하고 비교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작품을 촬영하며 그걸 너무 의식하거나 지나치게 변별성을 두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일본의 계약직과 우리의 계약직은 현실적 차이가 있는데, 그런 부분은 작가님이 우리 현실에 맞게 각색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우리식으로 재해석했죠. 미스김은 나이와 개인 정보가 노출이 안 된 신비로운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계약직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반영한 인물 같아요. 개인적인 부분이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닌 인물이라는 거죠. 그가 완벽한 계약직으로 사람들 앞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개인적 히스토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 부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스김_ 다른 사원들과 제작발표회 때 이야기를 나눴는데, 빠마머리 씨(오지호)가 “연기하면서 두 손이 자연스럽게 모아지는 선배”로 김혜수와 김남주를 꼽았습니다. 여기 증거 자료가 있는데 먼저 보시죠.
“김혜수 선배는 누가 봐도 미스김에 딱인 캐스팅이에요. 모두가 신기해하고 원더우먼처럼 보이는 역인데 실제로 현장에서도 스태프와 배우들이 그렇게 보고 있어요. 7시간씩 먼저 현장에 와서 다음 장면을 연습하세요. 제 장면 촬영하는 데 멀리서 포클레인이 움직여서 뭔가 하고 보면 기사와 연습하고 있고, 새벽에 탬버린 소리가 나서 보면 노래방 장면을 연습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저절로 존경하게 되죠.”(이희준)
“선배님이 대학 선배라서 시선을 못 마주치고 45도 허공을 바라볼 정도로 긴장할 때가 있어요. 아우라가 있으세요. 그런 모습이 정말 멋지고 존경스럽죠.”(전혜빈)
“평소에 좋아하던 선배예요. 이 작품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도 선배님이었죠. 대본을 빨리 받은 편인데 선배님이 캐스팅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언니가 하면 나도 하고, 아니면 안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죠.”(정유미)
“여자들이 보기에 멋질 것 같아요. 저희는 좀 무섭거든요(웃음). 데뷔 초에 ‘김혜수의 플러스 유’ 패널로 나갔는데, 그때 느낀 배우 포스와 지금이 똑같아요. 선배의 포스가 남다르기에 미스김에 정말 딱 맞죠. 촬영할 때도 김혜수 선배가 세트장에 들어오면 일단 모두가 조용해져요. 불편한 건 아닌데 저도 모르게 ‘선배가 뭔가 말하기를’ 기다리게 되죠.”(오지호)
|
||||||
1 장규직과 얼결에 벚꽃나무 아래에서 키스하게 된 미스김. 2 퇴근 후에는 자유로움을 만끼하며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미스김. 3 단벌 정장은 회사생활에서 미스김의 전투복이다.
미스김_ 후배들의 평가를 보니 기분이 어떤가요.
“제가 연예인을 오래해서 나이도 있고 최근에 강한 배역을 많이 맡다 보니 자연인으로서의 제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처음 보면 제가 무서운가 봐요. 저는 무서운 사람, 불편한 사람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제가 그렇게 되는 것도 싫어요.
지호 씨는 토크쇼 진행 할 때 만났는데, 잘생기고 이국적인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토크쇼에서 만나 배우로 성장해 가는 걸 보는 게 좋았어요. 기본적으로 착하고 서글서글해요. 원래 심성이 그런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고 편하게 해주죠. 대본을 읽으면서도 상대역으로 오지호 씨를 떠올렸는데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반가웠고, 대본 리딩할 때 능수능란하면서도 코믹 센스가 많아서 도움을 많이 받겠구나 싶었죠. 실제 연기도 그랬고요. 코미디 연기가 약한 게 제 약점인데, 그래서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지호 씨의 무겁지 않고 활달한 성격이 개인적으로 고맙죠.
유미 씨는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서 주요 배역으로 나올 때 제가 단역 작업을 하며 연기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참 마음에 들었던 배우예요. 전형적이지 않고 늘 신선한, 과장되지 않았지만 ‘진짜’가 전달되는 느낌이라 좋아해요. 유미 씨나 공효진, 배두나 씨 같은 분들의 연기를 좋아하는데,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분들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기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극 중 유미 씨가 맡은 정주리가 가장 현실적인 공감대를 끌어가면서 드라마 안에서 성장하는 인물이거든요. 촬영 현장에서 보면 정유미라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의지하며 살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한 계약직 사원 정주리 같아요.”
미스김_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나도 계약직이다. 하지만 선택받고 특혜를 누리는 계약직이기에 감히 ‘나름대로 애환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던데요. 저(미스김) 같은 계약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주리가 현실에 깊게 발을 담근 캐릭터라면, 미스김은 비정규직과 계약직이 이상적으로 꿈꾸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그리고 있어요. 계약직이라는 위치가 아무리 일을 똑 부러지게 해도 정규직 타이틀을 가진 누군가와 대적할 수 없다는 현실은 다 아시잖아요. 대본을 읽으며 ‘말도 안 돼, 저런 사람이 어디 있어’보다는 ‘극 중 미스김은 이렇게 하지만 이 사회 구조 자체가 이미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계속 생각해요. 늘 ‘미스김입니다!’라고 외치지만, 이름이 드러나지도 않고 결국 허드렛일과 잡일을 담당하거든요. 실제로 계약직인 분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걸 미스김이 대리로 표현해준다는 점에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현실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
||||||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