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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새로운 변신

능청스런 코믹 연기로 화제 모은 최불암

“젊어서 멜로 못한 게 아쉬워 노년의 로맨스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글·최호열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LK제작단 제공

2006. 01. 10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에서 한물 간 조폭 보스로 출연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고 있는 탤런트 최불암을 만나 그의 40년 연기인생과 부부사랑을 들어보았다.

능청스런 코믹 연기로 화제 모은  최불암

요즘 너무 많이 남발돼 의미가 많이 퇴색한 말이긴 하지만 ‘국민배우’야말로 탤런트 최불암(66)에게 딱 어울리는 수식어이다. ‘수사반장’ ‘전원일기’ ‘그대 그리고 나’ ‘영웅시대’ 등 숱한 화제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40년 가까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국민들에게 ‘정의의 상징’인 ‘수사반장’ 박 반장으로, 가장 한국적인 심성을 지닌 아버지인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기억되는 그가 최근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끈다. MBC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에서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한물간 조폭 보스 최범구 역을 열연하고 있는 것.
“연출자에게 ‘과거가 있는 조직의 보스 역할인데 괜찮겠냐’는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했어요. 배우는 양반이든 천민이든, 모범시민이든 불량배든, 뭐든 상관없이 소화를 할 수 있어야죠. 근래 맡은 배역 중에 비중이 가장 작긴 하지만 뒤에서 선배의 도리를 하는 것 같아 흐뭇해요.”
극 중 최범구는 비록 단역이지만 주인공들 못지않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첫 회부터 머리를 짧게 깎고 죄수복을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끈 그는 출소 직후 후배의 권투도장에서 자장면을 시켜 단 두 번의 젓가락질로 그릇을 비우곤 눈이 휘동그래진 후배들에게 담담히 “이 집은 양이 적다. 다음부터 곱빼기로 시켜라”고 하는가 하면 찜질방에서 방귀를 뀌고도 근엄하게 앉아 있는 등 한물 간 보스의 이미지를 코믹하게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자장면 먹는 장면을 찍는데, 교도소에 있으면 자장면이 제일 그리울 것 같았어요. 게다가 보스라서 통이 크다는 걸 그렇게 표현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한입에 다 집어넣은 거죠. 또한 그렇게 먹는 걸 쳐다보는 사람은 얼마나 질리겠어요. 그래서 후배 한 명이 그걸 보고 체하는 것으로 우리끼리 설정을 한 거예요.”
대본이 토요일 아침에야 나오는데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방영되기 때문에 모든 촬영을 주말에 끝내야 한다. 따라서 연출자가 지시하는 대로 찍기에도 바쁠 텐데 그는 콤비로 출연하는 다른 두 중견배우와 함께 대본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까 상의를 한다고 한다. 선배 연기자들의 진지한 연기 자세와 열정은 곧바로 남상미 등 젊은 배우들에게 이어져 ‘달콤한…’은 어떤 촬영 현장보다 열기가 뜨겁고, 분위기도 좋다고.
“배우는 연기를 할 때 자신이 극 중 인물에 동화되어야 해요. 그런데 일부 젊은 연기자들을 보면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 스타일로 연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고민하기보다 한 컷 찍고 머리카락 만지고, 분장 고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배우들을 보면 마음이 안 좋죠. 그래서 좋은 연기가 나오겠어요? 남상미는 그런 점에서 참 괜찮은 배우예요.”
과거 유행했던 유머 ‘최불암 시리즈’의 영향으로 그는 이따금 시트콤 등에 나와 코믹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코믹 연기에 도전한 것은 지난해 탤런트 오지명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까불지마’에 출연하면서다. 게다가 이번 드라마로 또 망가졌으니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기본에 충실하면 시청자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거예요. 악역이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이 미워하지 않듯이 코믹 연기도 마찬가지죠. 드라마에선 제가 깡패고 후배집에서 자장면이나 얻어먹는 사람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느끼게 하면 되는 거죠.”

육영수 여사가 ‘수사반장’ 시청하다 “담배 좀 줄이라”고 전화한 일화 공개
65년 연극으로 데뷔했으니 연기인생이 만 40년이 넘었다. MBC는 69년 개국드라마 ‘역풍’ 출연을 시작으로 줄곧 몸담고 있는데, 재미있는 게 20대였던 그는 ‘역풍’에서 70대 노인을 맡는 등 일찍부터 노인 역할을 주로 연기해왔다.

능청스런 코믹 연기로 화제 모은  최불암

최불암은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에서 한물간 조폭 보스로 출연해 코믹연기를 보여주었다.


“멜로물은 젊어서 한번인가 했었어요. 그리고 ‘그대 그리고 나’에서 박원숙과 황혼의 로맨스를 연기한 게 다예요. 멜로를 못해본 아쉬움이 있죠.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요. 사랑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는 거고 늙어서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말 하면 아내가 싫어하지만 멜로를 하고 싶어요(웃음).”
그는 데뷔 초 신성일, 최무룡 등 꽃미남 대선배들 때문에 일찍부터 멜로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자신의 얼굴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래서 대학에서도 연기를 포기하고 연출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 배우들이 노인연기를 제대로 못해 시범을 보이곤 했는데 이를 본 지도교수가 ‘네가 잘하니까 네가 해라’고 해서 배우가 되었다고 한다.
4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수사반장’을 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역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밧줄을 타고 2층에서 뛰어내리는 등 위험한 장면도 직접 찍곤 했다고. 또한 ‘수사반장’ 하면 육영수 여사가 떠오른다고 한다.
“시작하고 한 1년쯤 되었을 거예요. 저는 박 대통령은 드라마를 안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사반장’은 빼놓지 않고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드라마 한 편에서 담배를 꼭 네 번 피웠어요. 시작하면서, 시체 보면서, 사건이 꼬일 때, 그리고 사건을 해결한 후에 여유 있게 담배를 피웠죠. 그런데 대통령도 드라마에 심취해 제가 담배를 피우면 따라 피웠대요. 그래서 영부인이 ‘담배 좀 줄이라’고 했더니 ‘임자는 저 드라마를 보면서 속 안 상해?’ 하시더래요. 그래서 영부인이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담배 피우는 걸 좀 줄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도 인연이 각별하다. 그가 한때 정치로 외도했던 것도 정 회장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아직 말 못할 이야기가 많다”는 그는 정 회장과의 인연도 드라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제가 출연하던 드라마가 좋다고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을 청운동 자택으로 초대했어요. 그런데 저보다 윗분이 만취해서 실수를 많이 하기에 더 이상 그냥 놔두면 안되겠다 싶어 제가 제지했어요. 정 회장이 그걸 보고는 사내다운 데가 있다며 저를 종종 집으로 불렀어요. 그러면서 지게를 지는 자세, 쌀을 올리는 노하우 등을 꼼꼼히 일러주더라고요. 그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한국방송상, 한국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등 상이 새로 만들어질 때마다 1회 수상의 영예를 많이 안았던 그는 요즘 연기자로서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MBC 드라마들이 최근 ‘드라마 왕국’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고전을 하고 있기 때문. “드라마 왕국 재건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하겠다”고 남다른 애정을 밝힌 그는 “‘전원일기’의 종영은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어른들이 ‘전원일기’를 왜 안 하냐고 물어요. 다시 만들면 좋겠어요. 어른이 보는 드라마, 4대가 함께 사는 모습을 담은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왜 그걸 살리지 않는지 안타까워요.”

앞으로 드라마 통해 한국 아버지의 정신 되살리고 싶어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뭐냐”고 묻자 뜻밖에도 아버지 역이라고 한다.

능청스런 코믹 연기로 화제 모은  최불암

최불암 특유의 ‘파~’하는 웃음으로 인해 최불암시리즈 유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를 보면 아버지 모습이 어느 나라 아버지를 그렸는지 모르겠어요. 정체성이 없어요. 한국 특유의 투박함과 질박함, 인내와 끈기를 가진, 때론 용기도 한번 내는 그런 한국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요. 한국 아버지의 정신을 되살리고 싶어요.”
줄곧 한국의 대표적인 아버지상을 연기해온 그는 실제 가정에서 어떤 아버지일까.
“별거 없어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집사람이 ‘아, 그렇게 텔레비전 보고 있지 말아요. 김 회장이 앉아 있는 것 같아요’ 하며 놀려요. 아이들도 제가 말하는 투가 ‘전원일기’ 김회장 같다고 하고요.”
그는 ‘전원일기’의 김 회장처럼 엄한 아버지보다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도록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금 자기 인생을 더 또렷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고. 그의 아들과 딸은 모두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연예인 2세들이 대를 이어 연예계에 데뷔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최불암도 그런 욕심이 있지 않았을까.
“있었죠. 집사람을 사귄 것도 좋은 2세를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3대가 같은 일을 하면 천재가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손자대에서는 정말 좋은 연기자가 나왔으면 하고 바랐어요. 그런데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안되는 거더라고요. 아이들 인생은 아이들이 선택하는 거니까, 그걸 인정해야죠. 아이들이 연기를 하지 않는 게 ‘아버지가 하는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자존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연예인이라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면 싫대요. 얼굴이 공개되면 자기들까지 자유롭지 못하다고.”
아들 동녘씨(35)는 탤런트 서승현(63)의 딸 황유선씨(33)와 2002년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부모끼리는 예전부터 친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각자 미국에 유학을 갔다 현지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어 졌으니 보통 인연은 아니었던 셈.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가까운 사이가 사돈이 되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저는 아이들이 정식으로 인사를 오기 전부터 둘이 사귄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원래 소문은 빠른 거잖아요. 모른척하고 자기들 입에서 말이 나오길 기다리면서도 양가가 잘 아니까 속으로 걱정을 하긴 했어요. 그래도 저희들이 좋다니까 하라고 해야죠.”
처음엔 친했던 서승현과 사돈이 되면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 우려가 되었는데 오히려 서로 눈치 볼 일이 없어 더 편하다고 한다. 아이들 생일이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만나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통해 근황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손자 소식은 없냐고 하자 “애들이 안 낳아서 다행이지 뭐, 아직 할아버지 안되니까” 하면서 웃는다.
그의 나이 60대 후반. 그런데도 여전히 건강해 보인다. 요즘도 소주 1병은 거뜬하다고.
“저는 술은 마음을 열고, 담배는 생각을 열고, 커피는 대화를 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난 2002년에 담배를 완전히 끊었어요. 당시 교양 프로그램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하면서 담배를 끊으라고 하기에 무심코 알았다고 한 것이 저도 모르게 방송에 나갔나봐요. 전 끊을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하루는 카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한 시민이 다가오더니 ‘방송에서 담배 끊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냐’고 하더라고요. 국민과의 약속이니 지켜야겠다 싶어 안 피우기 시작한 게 벌써 4년째예요. 덕분에 몸은 한결 좋은데 대신 심심해서 술이 늘더라고요.”



아내와 한강 둔치 걸으며 부부사랑 나눠
나이 들면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그의 팔엔 나이답지 않게 근육이 제법 잡혀 있다.
“드라마 촬영 배경이 체육관이어서 촬영장에 가면 줄넘기랑 샌드백이랑 아령 등이 갖춰져 있어 그걸로 연습을 해요. 촬영이 없는 날은 천천히 걷거나 골프연습을 하고요. 운동을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생활의 일부로 여겨야 해요. 지금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잖아요. 가끔은 좀 느리게 움직이면서 자기를 발견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전 그게 운동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능청스런 코믹 연기로 화제 모은  최불암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재미있는 이유를 밝힌 최불암.


그는 운동을 하는 재미있는 이유를 들려주었다.
“산에 열심히 오르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산에 열심히 오르냐고 하니까 산에 올랐다 내려와야 술맛이 더 난다고 하더라고요. 건강하지 못하면 술을 마신 다음 날 힘드니까요. 저도 담배를 끊은 후로 술을 더 자주 마시는데, 술을 잘 마시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거죠.”
골프 스윙연습을 하거나 한강 둔치를 걸으며 운동할 때는 아내 김민자씨(64)와 함께 한다고 한다. 걸을 때 손을 꼭 잡고 걷느냐고 묻자 “에이” 하며 웃는다.
“남남처럼 걸어요. 물론 애들 얘기, 걱정스런 집안 이야기는 하죠. 하지만 침묵 속에서의 대화가 더 많아요. 예를 들어 제가 술을 많이 먹고 늦게 들어왔다면 다음 날 같이 걸으면서 속으로 ‘여보 미안하오’ 하고 말하면 그게 아내에게 전달돼요. 오래 산 부부니까 감으로 느껴져요(웃음).”
최불암은 올 1월부터 드라마 ‘궁’에서 탤런트 김혜자와 부부로 출연한다. 두 사람은 69년 드라마 ‘개구리남편’에서 부부로 출연한 이후 ‘전원일기’ 등 부부로 유난히 많이 출연해 실제 부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정도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 아내 김민자씨의 기분은 어떨까.
“함께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농담으로 ‘김혜자씨가 본부인이에요, 이분이 본부인이에요?’ 하고 말해요. 웃으며 넘기지만 기분 좋을 리는 없죠.”
김민자씨도 70년대 최고의 스타였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 출연이 뜸해진 게 사실. 이유를 묻자 “둘이 한꺼번에 집을 비우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혼 후 꼭 지킨 원칙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을 위해 두 사람 중 한 명은 집을 지킨다는 것이었다고.
“꼭 한번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아내와 함께 드라마에 부부로 출연해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거예요. 시청자들이 둘이 돈 벌려고 함께 나온다고 흉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요(웃음).”
“앞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정서적으로 풍족하게 만드는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최불암은 천생 국민배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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