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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슬픔을 이긴 웃음

청각장애 홀어머니와 살아온 개그맨 윤정수 '슬픈 가족사'

“부모의 이혼후 방황도 했지만, 이젠 돈 벌어 효도하고 싶어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5.07 17:11:00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웃고 있지만 가슴속엔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방송 3사를 넘나들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맨 윤정수. 그의 재치 있는 유머 뒤에는 불우했던 가족사가 담겨있다. 최근 그가 오픈한 퓨전레스토랑 ‘청담 안’에서 그를 만났다.
청각장애 홀어머니와 살아온 개그맨 윤정수 '슬픈 가족사'

요즘 개그맨 윤정수(31)의 방송활동이 활발하다. MBC ‘느낌표‘ ‘강호동의 천생연분‘ KBS ‘주주클럽‘을 비롯해, 각종 쇼오락프로에서 재치 있는 입담과 익살스런 행동으로 팬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TV를 틀면 나온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 ‘수도꼭지’일 정도로, 지난 92년 데뷔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데뷔한 지도 벌써 10년이 됐네요. 사실 그동안 공백기 없이 꾸준히 방송활동을 했는데 요즘 들어 시청자들이 더 주목해 주시는 것 같아요. 키가 좀 컸나? 하하. 일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또 성격도 ‘빨빨거리고 다니는’ 타입이라. 무엇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니까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아직 눈물샘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홀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친다.
“저희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이에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청각을 잃으셨대요. 그러니 방송 때문에 집밖에 나와 있으면 늘 걱정이죠. 전화로 안부를 물을 수도 없고…. 그래서 밤늦게까지 방송이 있는 날은 이동하는 중간에 집에 들러 안부를 살피곤 해요. 아침에 나오는데 어머니 안색이 안 좋으셨거나, 불안한 느낌이 들면 방송도 잘 안되거든요.”
그는 연예계에서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연말 ‘쫑파티’다, 송년회다 해서 각종 모임이 많았지만 그는 늘 어머니 곁에 있었다. 단 두 식구인데, 연말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리가 안 들리시니까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잖아요. 수돗물이 넘쳐도, 가스불 위에 올린 음식이 타도 모르시더라고요. 물이야 넘쳐도 그만이지만 불은 위험하잖아요. 얼마 전엔 주전자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르시고 멍하니 베란다 창밖만 바라보고 계시더군요.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가스불을 끄고 그 길로 나가 물이 끓으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는 전기포트를 사왔다. 강릉 외가에 계시던 홀어머니를 서울로 모셔온 이후, 생활은 늘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
“2년 전이었어요. 친구분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신 후로 뭔가에 쫓기는 듯 불안한 모습을 보이셨죠. 멍하게 벽을 쳐다보거나 사물에 대고 혼자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방바닥을 발로 차며 화를 내기도 하고. 외할머니가 10년 동안 치매를 앓다 돌아가셔서 처음엔 치매인가 싶었는데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더군요.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뇌종양 초기라고 했어요.”
청각장애인으로 평생을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에게 뇌종양까지 생기다니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종양은 성장을 멈춘 상태. 수술을 하지 않고 약물투여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청각장애 홀어머니와 살아온 개그맨 윤정수 '슬픈 가족사'

그는 최근 서울 청담동에 ‘청담 안’이라는 퓨전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돈 많이 벌어 홀어머니 호강도 시켜드리고, 어려운 이웃도 돕고 싶다고 한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밥통에 쌀을 안치고는 취사버튼 대신 보온버튼을 누르기도 하고, 아파트 마당에 산책을 나갔다가 집을 못 찾아 아파트 관리소에서 연락이 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는 아랫집에서 ‘시끄럽다’며 항의를 해와 “우리집은 아이도 없고, 개도 안 키우는데 무슨 말씀이냐”고 했더니 “새벽에 누군가 바닥을 발로 찬다”는 거였다. 바로 어머니였다.
“제가 돌이 막 지났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어요. 그 뒤로 남편 없이 홀로 저를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그 설움과 한이 응어리가 진 거죠. 가슴속의 화를 이기지 못해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가라”고 어머니에게 소리지르며 싸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고 나면 그는 그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눈물을 흘리며 펑펑 울었다고. 한번은 어머니가 진짜로 짐을 싸 집을 나가는 바람에 고속버스터미널을 온통 뒤진 적도 있었다.
“아버지도 청각장애인이셨어요. 다섯살 때인가, 무슨 일이었는지 강원도 주문진에서 어머니와 제게 회를 사주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저를 품에 안아주셨는데, 그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따스한 기억이에요.”
개그맨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그는 강릉 외가에서 자랐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외삼촌이 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됐다.
“제가 외삼촌을 많이 닮아 주위사람들로부터 ‘아들 아니냐’는 말을 듣곤 했어요. 그 때문에 우리 외삼촌 하마터면 장가도 못 갈 뻔했죠, 하하. 외삼촌은 무서운 분이셨어요. 제가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무척 엄하게 대하셨죠. 맞기도 참 많이 맞았어요.”
그런 외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장애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그. 그러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콤플렉스로 작용한 것이다.
“많이 힘들었어요. 제 처지가 너무 한심하고 불쌍했으니까요. 한마디로 그런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담배도 피우고,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죠.”
하지만 그의 방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뛰쳐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그의 발길을 잡았던 것이다.
“한번은 심한 독감에 걸려 지독하게 앓고 일어났는데 머리맡에 콜라 한병이랑 담배 한갑이 있는 거예요. 어머니가 사다놓으신 거죠. 순간 눈물이 울컥 쏟아지면서 ‘영원히 엄마를 지켜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청각장애 홀어머니와 살아온 개그맨 윤정수 '슬픈 가족사'

늘 유쾌한 웃음을 선보이고 있는 개그맨 윤정수. 그의 웃음 뒤에는 힘겨운 유년기를 건너온 여유와 익살이 담겨있다.


자신의 장애와 이혼 때문에 방황하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은 더했을 것이다. 그는 힘겨울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한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었을까? 그는 서울에 올라온 이후 두번인가 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장애인인 어머니를 두고 군대에 가려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어머니의 유일한 보호자’라는 것을 입증하면 군대에 안 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 서류 때문에 처음으로 찾아뵈었죠. 재혼을 하셔서 남매를 낳고 살고 계시더군요. 글쎄요, 아버지라고 찾아갔지만 제가 끼여 들 틈이 하나도 없는 그 답답함이란….”
두번째는 그로부터 2년 뒤.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동차 할부금을 감당해야 했던 그가 보증인을 구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러나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는 그때의 섭섭함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저 같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아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야박하실 수 있는지….”
결국 그에게 남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섭섭함과 원망뿐이라고.
그런 과정 속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의 애정은 더욱 커졌다. 요즘도 방송국에 있으면 좁은 집안에서 우두커니 홀로 계실 어머니가 걱정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3월 중순에 병원에 갔는데 종양이 다시 커지고 있다고 해 걱정이에요. 어머니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데…. 빨리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겠어요. 살아생전 며느리가 해주시는 밥 한번은 드셔야 하잖아요.”
그는 최근 사장님이 되었다. 서울 청담동에 일식과 양식, 한식을 복합한 퓨전레스토랑 ‘청담 안’을 오픈한 것. 홀과 룸이 구비된 3층 건물의 이곳은 ‘청담동의 대중화’를 표방할 만큼 맛있고, 저렴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연예인이 많이 온다’는 입소문이 퍼져 요즘 같은 불경기 속에서도 제법 장사가 잘된다고.
“우선 돈을 많이 벌 겁니다. 남을 돕고 싶어도 능력이 안되면 마음뿐이잖아요. 우선 우리 어머니 먼저 호강 좀 시켜드리고, 저처럼 어렵게 자란 친구들을 돕고 싶어요. 특히 장애인에 대한 봉사에 관심이 많아요.”
한 5년 후쯤엔 듣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고 한다. “윤정수, 그 녀석 웃기기만 한 줄 알았는데 참 야무진 녀석이네”가 그것. 조만간 사회봉사의 첫발을 내디디려 한다.

여성동아 2003년 5월 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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