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INSIDE

이수근, 꼭 하고 싶었던 말

기획 · 김유림 기자 | 글 · 이정연 스포츠동아 기자

2015. 09. 15

2년 전 불법 인터넷 스포츠 도박 혐의로 물의를 빚고 자숙의 시간을 갖던 이수근이 활동을 재개한다. ‘1박 2일’ 원년 멤버들과 함께 나영석 PD가 이끄는 새 디지털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 촬영을 마친 것. 그에 앞서 8월 중순에는 스포츠 도박 추방 캠페인 ‘싹!(SAC · Stop & Clean)’ 홍보대사로도 위촉됐다. 그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오던 그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이수근, 꼭 하고 싶었던 말

이수근은 전 ‘1박 2일’ 멤버들과 함께 9월 초 인터넷에서 방영되는 신개념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 촬영을 마쳤다.

개그맨 이수근(40)이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13년 불법 인터넷 스포츠 도박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가 이번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면 돌파’를 택했기 때문이다. 8월 11일, 불법 스포츠 도박의 심각성과 폐해를 알리기 위해 스포츠동아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펼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추방 캠페인 ‘싹!(SAC·Stop · Clean)’ 홍보대사로 위촉된 것. 2년간 자숙의 시기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활동의 기지개를 펴는 그가 감추고 싶었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이유는, 자신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 홍보대사를 맡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고,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져들었다. 누군가도 무의식중에 그럴 것이다. 정말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 도박에 빠져든 계기는.

6년도 더 된 일이다. 축구를 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그게(스포츠 도박이) 뭐냐?’고 관심을 가졌고 그 후에는 ‘너 얼마 걸래?’가 됐다. 그런 것들이 쌓여가면서 나도 모르게 일상이 된 거다. 점차 ‘오늘은 아무것도 없어?’ 묻게 되고. 정말 빠져들기 쉬웠다.



▼ 불법인지 몰랐나.

정말 몰랐다. 베팅을 하면서 계속 이렇게 해도 되나 정도의 찜찜함만 있었다. 어느 날은 30만원을 걸기도 하고, 50만원을 베팅하기도 했다. (베팅을 하지 않고) 축구 경기를 보면 재미가 없을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이 나도 모르게 빠져 있는 거다.

▼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인가.

내 경우는 돈을 벌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큰돈을 챙기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도박 자체가 일상이 된 사람은 물론 자살까지 하는 이들도 생겨나지 않나. 월급은 물론 억대의 돈을 허무하게 날린 뒤 그걸 되찾겠다고 또다시 나쁜 생각을 하게 되는 악순환 말이다. 도박에 빠져들면 매일 하고 싶어서 또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된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지금도 축구 경기장에서 청소년들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혹여 이걸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인 남자 10명 중 5명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리일까. 근본적으로 불법 사이트를 근절할 방법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 2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스스로 무너졌다. 방송쟁이가 카메라 앞을 떠나 2년 동안 칩거하면서 대중을 만나지 못한다는 건 정말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

그 얘길 하면 너무 슬퍼진다. 이제는 강해지기로 했다. 울지도 않기로 했다. 울 자격도 없는 놈이다. 처음엔 TV도 못 봤다. TV를 켜면 내가 나오니까.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예전의 ‘1박 2일’을 다시 봤다. ‘아! 이때는 내가 이랬구나, 해이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로 인해 직 ·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주위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괴로웠다.

▼ 강호동과 이경규가 도움을 많이 줬다고 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선배들이다. 호동이 형도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긴 말을 하지 않더라. ‘힘내!’라는 말조차 해주지 않았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사투리로 ‘괘않나, 소주 한잔하자’라고만 했다. 이경규 선배님은 정말 멋있는 남자다. 어떠한 위로보다 딱 한마디 가슴에 남는 말을 했다. ‘수근아, 남자가 웃통을 딱 벗었는데 상처 하나 없이 너무 깨끗해도 매력이 없다. 이왕 난 상처, 감추려고 하지 마라. 누가 봐도 다 보이는 상처인데 인정하고 드러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나이 마흔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이수근, 꼭 하고 싶었던 말
▼ 통풍을 앓았다. 지금 건강은 괜찮은가.

성격이 긍정적이고 밝은 편인데도 원형탈모가 왔다. 어느 날은 밤에 자는데 숨이 안 쉬어지더라. 답답하고 놀란 맘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스스로 인정을 하지 못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이 정도까지 무너져야 되나 하는,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죄가 크고 작은 게 어디 있나. 다 똑같은 건데. 나한테 실망하고 다시 나를 다잡게 됐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밖에 나갈 땐 모자를 쓴다. 자꾸 주위의 눈치를 보게 된다. 2년 전 죄스러운 마음에 모자를 눌러쓰고 어딜 가면 ‘수근 씨 힘내요!’라고 귓속말로 응원해줬다. 등을 두드려주는 분도 있었다. 그분들께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 가족들의 상처도 컸을 것 같다.

사건이 일어난 후 한 프로그램에서 우리 집 앞으로 많이 찾아왔다. 차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고 있다가 나와 아이들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하더라. 나 때문에 가족들한테까지 차마 상처를 줄 수 없었다. 내가 가족들을 잠시 떠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달을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어른들 말이 맞다. 아내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데, 정말 그렇더라. 아내는 나 때문에 무슨 고생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서 쫓아다니고 결혼하자고 매달렸는데, 나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가 불쌍했다. 정말 미안했다. 아내는 자신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하는데, 더 마음이 미어졌다. 내가 강해져야 가족들도 강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해 미안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힘든 시간을 돌이켜보니 가수 김수철의 ‘정신 차려’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이 마흔이 돼서야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이전까지는 (정신을) 차린 척만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른 뒤다. 다른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도박의 위험성을 빨리 알았으면 한다. 내가 어디 가서 ‘불법 스포츠 도박을 근절하자’고 외치면 아마 모두들 웃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더 알려주는 꼴이 될까 봐 우려스럽고 조심스럽다. 연예인들이 홍보대사를 많이 맡지만 내겐 하나의 철칙이 있다. 어설프게 할 거면 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말 좋은 계기인 것 같다. 나를 통해 분명히 자극을 받는 사람이 있을 거고, 한 명이라도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 나온다면 좋겠다. 그리고 완전한 용서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제라도 조금의 용서를 빌 수 있는 길은 예전처럼 웃음을 줬던 이수근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축구에 진 빚이 있다. 이제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축구 발전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특히 유소년 축구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다. 축구공을 기부하는 형식도 좋겠다. 방송 활동을 못하고 있을 때 축구 선수들이 많은 격려를 해줬다. 축구계에 진 빚을 진심 어린 말과 행동으로 꼭 갚고 싶다. 방법을 찾고 있다.

이수근은 조만간 방송으로도 컴백할 예정이다. 나영석 PD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디지털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에 강호동, 이승기, 은지원과 함께 출연하는 것.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삼장법사가 등장하는 중국의 고전 ‘서유기’를 예능적으로 재해석한 리얼 버라이어티 ‘신서유기’는 지난 8월 6일부터 5일간 중국 산시 성 시안에서 촬영됐다. 영상 공개는 9월 초 PC와 모바일 네이버 TV를 통해 단독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사진 · 스포츠동아 제공

디자인 · 유내경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