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경력 20년에 마흔세 살. 그런데 아직도 이 배우의 정체를 모르겠다. S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뒤 주로 재벌 2세, 순정남을 연기하다 얼마 전부터 짠돌이 남편(‘수상한 삼형제’ 김현찰), 바람난 남편(‘조강지처 클럽’ 이기적)을 맡고 급기야 이번엔 SBS 드라마 ‘폼나게 살거야’에서 사채업자의 똘마니, 신기한 역으로 분하며 이러저러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오대규 이야기다.
문영남 작가의 신작 ‘폼나게 살거야’는 한번 잘살아보겠다며 좌충우돌하는 모성애 집안을 그린 드라마다. 드라마 세트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SBS 일산 탄현 스튜디오.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목소리를 가진 오대규가 염색한 머리에 안경 줄을 걸치고, 9부 바지를 입은 채 얼빵한 신기한의 얼굴로 나타났다. 가상 세계에 있다가 이제 막 현실로 돌아온 그에게 캐릭터 소개를 부탁했다.
“신기한은 부모가 이혼해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인데, 험한 세상과 부딪치며 살다가 사채업자의 똘마니가 돼요.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19세기 순정남이랄까. 나노라(김희정)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나노라의 식구들을 만나 상처를 치유받으면서 가족 간의 사랑을 느끼죠. 시청자분들도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게 되실 거예요.”
신기한 역 맡은 뒤 가족의 소중함 깨달아
역할이 역할인 만큼 그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곱씹고 있었다. 며칠 전 아버지와 아들에게 ‘미안하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문자를 보낸 뒤 함께 술자리를 갖은 것도 그래서다.
“가족이 제게 구체적으로 해준 걸 3천6백 가지가 넘게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가족은 소소한 보살핌을 줬기 때문에 소중한 게 아니에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고 기다려주는 게 가족이잖아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가족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듬어주고 싶고요. 얼마 전 고등학생인 아들이 힘들다고 토로하길래 많은 얘기는 안 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너도 이겨낼 것’이라고 응원해줬어요. 저는 아들에게 느티나무가 돼주고 싶거든요. 오래 살다 보면 가지가 마르고 잎도 떨어지겠지만, 아이가 힘들어서 달려오면 언제든 품어줄 거예요.”
배우는 다른 누군가의 혼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고단한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인데 그때 그를 다잡아주는 사람은 역시 가족이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건 아니다. 작품 모니터링도 부탁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 개개인은 사랑해주면 빛나지만 존중해주지 않으면 금세 깨지는 유리 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잘 자라는 나무들처럼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배역 자체에 충실하고자 스스로 다그치는 편이다. 이번 배역을 위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꼭 끼는 옷을 입고, 사채업자 똘마니 표정을 짓는 건 물론이고, 트로트 가수 흉내를 내려고 일상 속에서도 그들의 행동거지를 따라 한다. 요즘에는 한발 더 나아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춤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실제 인물을 찾아다니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데, 그만큼 대본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 작가의 대본을 보면 정말 할 말이 없어요. 작가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을 너무나 생생히 그려내거든요. 연기하면서 놀랄 정도예요. 어떻게 수학 선생님의 고충을, 세 아이 키우면서 사는 큰며느리의 아픔을, 밑바닥 인생들의 슬픔을 알까 궁금해요. 그렇다고 소소한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번에는 작가가 인간의 존엄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실 겁니다.”
그는 문영남 작가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이가 바로 문 작가이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악관절로 고생하면서 오히려 연기에 대한 갈망은 커져갔지만 배우로서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조강지처 클럽’ 연기 인생 터닝 포인트
“그때 문 작가가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조강지처 클럽’의 이기적 역을 맡아서 조강지처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남편으로 분한 덕분에 연기 변신을 할 수 있었죠. 예전에는 팬들이 저를 어려워해서 사인해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그 작품을 한 뒤로는 아주머니들한테 무진장 맞으면서 시청자들과 공감하는 맛을 알게 됐어요. 드라마 종영 후 작가가 ‘사람이나 배우나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너는 지금이 바로 그 때야. 인생이나 연기적인 면에서 그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셔서 큰 힘을 얻었죠.”
문영남 작가의 ‘은근한 리더십’은 그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쪽대본이 난무하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어김없이 제시간에 대본을 주는 문 작가는 연기 지도력도 탁월하다. 그렇다고 배우들이 연기할 때마다 일일이 가르치는 건 아니다. 대본 리딩을 할 때마다 참여하지만 혹 연기력이 모자라더라도 배우의 의중을 받아주는 편이다. 다만 큰 흐름 속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문 작가가 나서 직접 연기를 선보이는데, 그 실력은 여느 배우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진정성 없이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세요. 그래서 첫 촬영이 힘들죠. 배우가 아직 캐릭터에 푹 빠지지 않은 상황이고, 잘하려고 어깨에 힘을 많이 줘서 도리어 연기가 자연스럽지 않거든요. 하지만 작가의 심성이 워낙 여려서 혼내고도 미안함에 금방 위로해주고 지지해주세요. 배우들을 아프게 하는 바이러스지만 더 잘하게끔 의욕을 주는 바이러스 백신이기도 한 거죠. 매주 촬영을 끝내고 맥주 한잔하는 자리에서도 가르침을 주세요. 때로는 대본에 배우의 모습을 녹여내 배우들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주시기도 하고요. 시청자들은 문 작가의 진면목을 잘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만 봐도 분명히 문 작가의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문 작가의 팬이 된 오대규. 하지만 ‘문영남 작가 사단’으로 불리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문 작가가 편 가르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오대규 자신이 문 작가의 사단에 속할 만큼 많은 작품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서 유난히 그와 많이 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그래선지 문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면 연기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된다.
“연기가 이게 다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싶어서 더 고민하고 연습하게 돼요. 배우들도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가수들처럼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든요. 문 작가 덕분에 하루하루 열심히 연기해서 배우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앞으로는 부족한 점을 지혜롭게 잘 채워나갈 일만 남았죠(웃음).”
실제로 그는 모자란 점을 채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중앙대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하고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를 거쳐 박사 과정에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식 때문에 시작한 공부는 그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악관절 때문에 절망의 나락에 빠진 적이 있어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죠. 수입은 없는데 병원비는 많이 들어갔고요. 차도 팔고, 집도 줄였는데 돈이 없어서 장롱 밑에 있는 5백원짜리 동전을 작대기로 꺼냈을 정도니까요. 이제 그만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했죠. 현장 경험은 많지만 이론이 부족한 배우가 공부를 하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언론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건 연기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을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인데요. 당시 아내는 그런 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어차피 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경제 상황이 악화돼 아내와 아들은 아내의 친정이 있는 미국에서 살았는데 홀로 남은 제 꼴은 말이 아니었죠. 대충 이것저것 먹다 보니 몸도 많이 불었고, 매일 책상에 앉아 있으니까 냄새나는 병에 걸릴 뻔도 했어요.”
악관절 때문에 한때 연기 포기하고 공부에 몰두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방송 환경변화에 따른 연예산업구조의 변천에 관한 연구’란 석사 논문을 쓴 뒤로는 공부에 흥미가 붙었고, 더 깊이 연구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후 몸이 나아져 일을 하게 되자 잠시 휴학을 했다. 연기는 자신을 비워야 하고, 공부는 자신을 채워야 하는 과정이기에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복학해 현재 4학기에 재학 중이다.
“공부가 연기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에요. 도리어 방해가 되죠. 연기할 때만큼은 그 순간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생각이 많으면 연기에 대한 확신이 안 서고, 표현할 때도 자신감이 떨어지거든요.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매진하는 자세를 갖게 됐다고 할까요. 역효과는 글쎄요… 대화할 때 가끔 어려운 말을 한다는 정도? 동료들이 그럴 때마다 ‘어우~ 박사야 박사~ ’하고 놀려요(웃음).”
그럼에도 인생의 우선 순위는 역시 연기다. 그토록 아팠을 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연기였는데, 지금도 완치된 것은 아니어서 그 소중함을 여전히 느낀다고 한다. 또한 언젠가부터 돈이나 유명세가 아닌 좋은 연기, 좋은 대본을 찾는 ‘진짜 연기자’가 됐고, 평가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배우로서의 습성’이 생겼다.
“SBS 1기 공채 탤런트가 된 뒤 20년, 그 전에 단역 배우로 생활한 3년을 포함하면 제 인생의 절반을 연기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이제는 연기를 떠나 살긴 어려워요. 하루라도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요. 과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일에 대한 욕구가 강해요. 연기는 제게 고충과 아픔을 줬지만 오뚝이처럼 벌떡 재기할 힘도 줬거든요.”
그 역시 인간이기에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대한민국 평범한 40대처럼 술과 친구로 스트레스를 푼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오랫동안 드라마를 함께한 안내상, 김희정과 어울려 소줏잔을 기울이면 모든 시름이 싹 날아간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이웃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아저씨, 오대규. 그가 그리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연기할 때도 공부할 때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열심이고 싶어요. 내년에는 공부에만 전념해서 논문을 쓰고 그다음에는 세계 일주를 하고 싶고요. 나중에는 타히티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고, 유학도 가고 싶어요. 배우는 자유로운 직업이라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그저 큰 그림을 그려놓고 후회 없이 살고 싶어요. 가장 큰 목표요? 아무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겠죠. 이 나이에 운동 열심히 하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에요. 하하.”
■ 의상협찬·파랜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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