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을 20여 분 넘긴 시각. 성대현(36)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노란 나비넥타이를 매고, 동그란 뿔테안경을 낀 모습이 명랑만화 주인공처럼 친근해 보였다. 그가 흔들고 들어온 도어 벨의 짤랑한 소리만큼이나 쾌활한 목소리로 첫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죄송해요. 제가 연예인이잖아요~.” 개구쟁이같이 히죽 웃으며 약속시간에 늦은 미안함을 재치 있게 넘겼다. 2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그랬다. 대화가 다소 진지한 분위기로 흐를라치면, 못 참겠다는 듯 툭툭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환기시키곤 했다. 천성적으로 긍정적인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R.ef 시절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까불까불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온 성대현. 그의 재기발랄한 입담은 R.ef를 모르는 세대마저 자신의 새로운 팬으로 흡수시켰다.
“성격상 잘되고, 못되는 것에 크게 신경 안 써요. 그냥 좋아서, 재밌어서 하루하루 마지막 방송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거죠. 대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는 않아요. 그러다가 인기가 저물 때가 되면, 또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겠죠.”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출연은 성대현을 재발견하게 된 계기였다. 여기서 그는 데뷔에 얽힌 사연, 해체 배경 등 R.ef 시절 숨겨진 일화를 거침없고, 유쾌한 언어로 쏟아냈다. 특히 전 국민 앞에서 멤버 이성욱은 팀 해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배신자로, 박철우는 실버타운에 있는 할아버지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속에 그들을 향한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와 이성욱은 각자 처자식이 있는 몸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쌓인 정은 농담 한마디에 쉽게 어그러지지 않는다. 더욱이 인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겪으며 기쁨과 좌절 속에서 싹튼 동료애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밤무대에선 빅뱅이나 2PM 못지않은 인기
그는 데뷔 전까지 클럽 DJ로 청춘을 즐기며 보냈다. 그 시절 DJ. DOC와 쿨, 잉크까지 가수 제의도 숱하게 받았다.
그 어떤 제안에도 끄떡하지 않던 성대현. 결국 운명의 끈은 R.ef로 이어졌다. 당시 소속사 사장이 ‘음악도 잘 틀고, 끼도 좀 있고, 귀여운 면도 있는’ 그를 눈여겨보고 가수 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해온 것. 역시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다 자신을 DJ.DOC에 추천해준 박철우에게 보답하고 싶어 그가 같이 하면 수락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장은 난색을 표했는데 이유는 이랬다. “철우가 나보다 두 살 어려. 내가 하는 게 더 나아. 오히려 내가 더 동안이야.” 그렇게 몇 달을 옥신각신한 끝에 결국 사장도 한발 물러섰다.
R.ef는 95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데뷔앨범에 수록된 ‘고요 속의 외침’ ‘이별공식’ ‘상심’ 등 3곡이 동반 히트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멤버 이성욱·성대현·박철우의 인기 비율을 묻자, 예의 장난기 어린 대답이 돌아온다. “6대 3.8대 0.2요(웃음)!” 당시 R.ef의 인기는 대단했다. 한번은 서울 돈암동 부근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는데, 팬들로 인해 7~8차선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인기도 시간이 가면서 차차 사그라졌다. 결국 99년 4집을 끝으로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소속사와 계약이 끝난 시점에서 다른 회사로 이적하기로 멤버들끼리 서로 입을 맞췄다. 이를 눈치 챈 전 소속사 사장이 가만둘 리 없었다. 솔로 데뷔를 시켜준다며 이성욱을 잡았다. 비중이 컸던 보컬이 빠지면 사실상 R.ef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4년이라는 짧은 자취를 남기고 R.ef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못된 마음으로 성욱이가 솔로로 나오기 전에 초치려고 제가 먼저 솔로 앨범을 냈어요. 그래서 벌 받았잖아요. 발매되기도 전에 흐지부지돼버렸거든요. 모든 걸 접고 미국에서 조그만 사업이나 할까 해서 갔어요. 미국 가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한번쯤 들르잖아요. 가자마자 일주일 만에 사업하려던 돈 다 잃고 1년 넘게 거지로 살았어요. 집에다 돈 달라고도 못하겠고. 장사로 자리 잡으면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당장 돌아갈 면목도 없고. 남자가 버틸 때까지 버텨야죠. 그러다 9·11테러가 났고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걸 핑계 삼아 들어왔죠. 또 성욱이가 R.ef를 다시 하자며 절 찾는다고도 했고요.”
2003년 R.ef는 다시 뭉쳤다. 연습 삼아 해보자는 취지에서 밤무대 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매번 앨범 발매를 생각했지만 음반시장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자꾸 기회를 놓쳤다. 그러다 2005년 디지털 싱글 ‘사랑은 어려워’를 냈지만 그것마저 잘 안됐다. 그러다 앨범을 낼 수 있는 또 한 번의 좋은 기회가 찾아와서 녹음까지 다 마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이성욱이 솔로로 나가버렸다. “다시 그러면 그땐 진짜 인연을 끊어야지. 근데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기회가 생기면 또 갈 거야. 아이가 있으니 가야지….” 그가 말끝을 흐린다. 어느덧 처자식 걱정하는 ‘아빠’가 됐지만 밤무대에선 여전히 덧니가 귀여운 ‘오빠’로 활동하고 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올라요. 거기선 우리 인기가 2PM이나 빅뱅 정도 되죠(웃음). 그러니까 사장이 쓰겠죠. 희한한 건 지금 춤춰보라고 하면 동작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음악만 나오면 저절로 몸이 움직여요.”
가수에게 무대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열정을 펼칠 수 있고, 환호하는 팬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무대다.
똑 부러진 아내, 어렵게 얻은 딸… 세상 살아가는 재미
애처가로 소문난 성대현은 지난 2005년 한 살 연하인 아내와 10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얼추 계산해보니 R.ef로 활동하던 시기와 겹친다. 그의 성격답게 대놓고 연애했지만 당시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서 매일같이 길거리에서 손 붙잡고 다녀도 크게 열애 소문이 나지 않았다.
아내와는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전부터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의 머리를 해주는 헤어디자이너가 손님 중에 소개시켜주고 싶은 여자가 있다고 했다. 그의 코디도 협찬받는 의류 브랜드 회사의 직원 중에 아주 예쁜 여자가 있다고 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친구 역시 딱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바로 지금의 아내다. 부부의 연은 하늘이 맺어준다고 하는데, 그는 ‘이게 인연이구나’ 싶었다.
“아내를 보면서 다들 제 생각이 났나봐요. 그냥 딱 제 스타일이에요. 장인장모님이 잘 키우셨어요(웃음). 그런데 성격은 정말 안 맞아요. 너무 세서 무서워요. 그런 똑 부러진 성격이 오히려 저한테는 잘된 거지만. 걱정거리가 없어요. (기사를 보게 될 아내를 의식한 듯) 백점이야, 백점! 다시 태어나도 또 결혼 할거야(웃음). 싸운 적은 별로 없어요. 일방적으로 제가 혼나는 거죠. 엄마한테 혼나듯이….”
금실 좋은 부부지만 신혼 초부터 각방을 써왔다. 그가 밤무대 일을 마치면 새벽 3, 4시가 되기 때문에 부득이 따로 방을 쓴다. 혹여 딸 아영이가 깰까, 자신한테 냄새가 날까 노심초사한 아빠의 배려다.
“미혼이었을 땐 집앞 슈퍼에 잠깐 갔다 오려고 해도 치장하느라 한 시간 걸렸어요. 지금은 신경 써서 입었는데도 방송국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그래요. 집에서 자다 나왔냐고. 이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에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다. 이렇듯 애지중지하게 된 사연이 있다. 딸을 얻기에 앞서 6개월 된 태아를 사산하는 아픔을 겪은 것. 게다가 첫아이를 잃은 후 아내는 두 달 넘게 하혈을 계속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술이 잘못된 상태였다. 재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다시 한 번 아기를 가져보고, 안되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났다. 다시 아기를 갖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기가 들어섰는데, 그게 바로 아영이다. 그 아기 역시 태변을 먹고 나와 중환자실에 한 달 동안 있었다.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제 인생의 전부죠. 낳아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제가 봤을 땐 왈가닥이에요. 그 안에 아이가 세 명은 들어가 있는 거 같아요. 하는 짓 다 예뻐요. ‘아빠 사랑해!’ ‘아빠 빨리 와!’ 전부. 제가 일하러 가면서 ‘아빠 돈 벌러 갔다 올게’ 그러거든요. 그럼 아영이가 ‘아빠 돈 벌어와’ 그래요. 문 열고 집에 들어가면 현관까지 뛰쳐나와요.”
딸 자랑이 끝없이 이어져나오는 아빠 성대현. 28개월 된 아영이는 이제 TV에 아빠가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 아빠와 TV 속 아빠를 번갈아보며 “똑같아, 똑같아!”를 연발한다. 알아봐주는 딸 덕분에 어깨에 힘 좀 들어가는 요즘이다.
성대현은 방송 활동외에도 사회인 야구단 ‘해차림’과 ‘베이스볼 스미스’의 구단주(?) 겸 2루수를 맡고 있다. 그의 역할은 식사 제공, 경기 후 목욕비와 유니폼 지급 등이다. 수익은 없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술안주 회사의 스폰을 받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전국대회 우승으로 TV에 나가서 그동안 도움 준 아버지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
할 말이 많아도 다해서는 안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되고, 참아야 될 때는 참아야 한다는 걸 그는 지난 삶을 통해서 배웠다. 하지만 머리 싸매고 고민하며 사는 인생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성대현다운 인생이다.
인터뷰를 끝낸 그가 처음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걸어 나갔다. 카페 안이 금세 한산해진 느낌이었다. 방송에서의 그의 존재감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시청자 곁에서 항상 재잘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면 몹시 허전한 존재…. 별빛이 다시 가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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