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대 앞에 선 아빠와 아들. 골문을 지키는 건 프로축구 골키퍼인 아빠가 아니라 네 살배기 아들이다.
“산아, 아빠가 골키퍼는 골대보다 조금 나와서 서야 한다고 알려줬지. 그게 몇 발짝이야?”
(발을 움직이며)“다섯 발짝! 하나, 둘, 셋, 넷, 다섯!”
“자, 이번에는 얼굴 쪽으로 공이 간다. 얼굴로 가는 공은 어떻게 막지?”
(어깨 위로 손을 반쯤 올리며)“이렇게!”
FC 서울 소속 한국의 대표 골키퍼 김병지(36)의 오른팔에는 독수리 문신과 함께 2002.06.28이라는 숫자가 써있다. 2002년 6월28일은 그의 둘째 아들 산이가 태어난 날로 독수리 문신은 아들 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당시 대표팀의 일원으로 한일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던 그는 히딩크 감독의 허락을 받고 달려가 큰아들 태백이(8)와 함께 산이의 탯줄을 잘랐다. 산이는 김병지에게 월드컵이 준 선물인 셈이다.
“산이는 장난감이 좋아 축구공이 좋아?” “축꾸공!”
“축구 볼 거야, 만화 볼 거야?” “축꾸!”
아빠와 같은 꽁지머리를 한 산이는 축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부터 공을 차기 시작했고,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 축구공을 가지고 논다고 한다.
“보통 때는 거실에서 축구를 해요. 덕분에 집에 있는 액자나 유리로 된 물건들은 남아있는 게 없죠(웃음). 산이는 아직 어리지만 공을 차는 힘이 대단해요. 집에서 맨발로 공을 차면 아플 텐데 아프다는 말도 없이 발이 새빨개질 때까지 공을 차요. 그러다 세 살 때는 발톱이 빠진 적도 있죠.”
우리나라 중추에 위치한 태백산처럼 맑고 신성한 정기를 받으라는 뜻으로 두 아들의 이름을 ‘태백’‘산’으로 지었다는 김병지는 두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울 예정이다. 큰아들 태백이는 골키퍼, 둘째 산이는 공격수를 시키고 싶다고.
장난감보다 축구공을 더 좋아하는 네 살배기 산이는 KBS ‘해피선데이’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 중이다.
“아이 둘이 같은 포지션이면 서로 경쟁하다가 괴로워질 수도 있잖아요(웃음). 아무래도 골키퍼는 수명이 기니까 형 태백이가 골키퍼를 하고 산이가 공격수로 뛰게 된다면 둘이 비슷한 시기에 은퇴할 수 있을 거 같아요(웃음).”
팀웍이 중요한 축구를 통해 희생정신을 익히고 사회성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두 아들을 일찍부터 어린이 축구단에서 활동하게 했다.
“산이의 경우 세 살 때부터 리틀 FC 서울 소속으로 활동하게 했어요. 원래 여섯 살부터 활동할 수 있다고 하는데, 체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기술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확신해서 테스트를 시켜달라고 했고, 합격했어요(웃음).”
집에서 발이 새빨개질 때까지 공을 차는 네 살배기 아들 산
공격수로 자라길 바라는 아빠의 소망과 달리 산이는 아빠와 같은 골키퍼가 되는 게 꿈이다. 지난 9월부터 KBS ‘해피선데이’ ‘날아라 슛돌이’ 2기로 활약하게 된 산이는 “골키퍼를 하겠다”면서 손에서 땀이 줄줄 흘러도 촬영 내내 골키퍼용 장갑을 벗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2기 ‘…슛돌이’는 전 국가대표 유상철이 감독을 맡는 한편 김병지와 함께 FC 서울에서 활약 중인 이을용의 아들 태석이도 포함됐다. 올해 네 살인 산이와 태석이는 머리 하나가 더 큰 여섯 살 형들 틈에서 연습생으로 참여한다.
“(유상철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어요. 전화하면 분명 아이 얘길 할 텐데 특별한 혜택을 받고 싶진 않아요(웃음). 을용이는 같은 팀에서 뛰는데 서로 아이 얘기는 안 해요. 말하기가… 쑥스럽잖아요(웃음).”
많은 축구팬의 기억 속에 김병지는 지난 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던 선수로 남아있다. 그는 당시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후 섭섭함과 함께 자신에게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 대한 감사,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렸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가지실 실망감을 제가 다 거둬갑니다”란 문장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병지 선수는 아내 김수연씨와 사이에 태백과 산,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지난해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여론도 긍정적인 편이라 내심 기대하긴 했어요. 제 실망보다도 가족과 팬들에게 미안했죠. 특히 팬들은 자기 일도 아닌데 (대표팀 선발을) 바랐으니 그분들께 감사하고, 그 실망은 제가 거둬가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대표팀 선발에서 제외된 다른 스타급 선수들이 방송이나 CF 등 다양한 활동을 한 것과 달리 축구경기 외 다른 활동은 자제해왔다.
“사실은 방송캐스터에 관심이 있어서 한 방송사와 구두로 약속이 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가 속한 구단의 사정이 있었고, 선수로서 구단의 입장을 따른 거죠. 방송이나 다른 활동이야 은퇴한 후에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산이는 수시로 아빠와 안고 뽀뽀를 한다. 입을 맞출 땐 “사랑합니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해 프로무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지는 15년째. 사실 그의 축구인생이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키가 163cm에 머물러 축구화를 벗어야 했을 때도 있었고, 축구 명문학교는커녕 동호회 수준의 직장팀에서 활동해야 했다. 이후 프로구단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다시 시작, 주전으로 뛰게 됐으며 이제는 한국의 대표 골키퍼 자리에 올랐다. 그 과정 속에서 시련도 많았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뚝심으로 이겨냈다. 올해도 월드컵에 출전하진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K-리그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월드컵 이후 이어진 삼성 하우젠 컵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올스타전 11회 출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내 골키퍼 중 최고령이라고 할 수 있는 서른여섯의 나이지만 기량은 여전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종종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저는 그때마다 극복을 잘한 것 같아요. 이번 월드컵 이후에도 K-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고요. 몸 관리요? 보약 같은 건 따로 먹지 않아요. 그냥 꾸준히 운동하고 술, 담배를 안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기본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아내와 아이들 유학 보낸 기간 철저한 자기관리로 최고기록 올린 아빠
자기관리에 철저한 김병지는 가정에도 소홀하지 않다. 아내 김수연씨(33)는 내조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오히려 외조를 받는다”며 웃는다.
“남들이 들으면 흉볼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아이아빠 없으면 못 살 거예요(웃음). 좋은 친구이자 조언자예요.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고요.”(김수연)
“뭘, 커피나 끓여주고 그런 거지…(웃음).”(김병지)
대학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한 김수연씨는 최근 대학원에 다니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내가 자기 (미술)작업 얘길 할 때 보면 활기가 느껴져요. 아내가 저 만나서 많은 걸 포기했는데 이제 유턴을 시켜주고 싶어요. 엄마나 주부로서보다는 자기 자신을 찾게 하는 거죠.”
지난 2003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그를 제외한 가족들은 필리핀에 있는 영국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왔다. 아이들의 어학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병지가 아내 몰래 미리 어학연수 학교를 살펴본 뒤 아내와 두 아들을 보낸 것. 놀라운 것은 가족들의 자리가 비어있는 지난해 그가 최고의 방어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유학 갔다 오라는 남편의 얘길 듣고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먼저 학교를 알아보고 찾아가 결정한 뒤에 우릴 거기에 놓고 가버리는 거예요. 주변에서 걱정 많이 했죠. ‘신랑 바람날 거다’ ‘남자가 혼자 살면 지저분해진다’ ‘중심을 잃어서 경기에 지장 있을 거다’ 등등. 하지만 혼자서도 너무 잘 사는 거예요(웃음).”(김수연)
“혹시 제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아내가 없어서 그런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더 철저하게 관리했죠.”(김병지)
그는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짬짬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려 하고, 아내가 바쁠 때는 훈련장에 데려가기도 한다고.
“훈련장에 데려가면 가끔씩 감독님이 종종 아이들을 가르쳐주세요(웃음). 사실 눈치 보이는 일인데 고맙죠.”
잠잘 때조차 엄마보다 아빠를 더 찾는다는 아이들은 아빠와의 스킨십에도 익숙하다.
“집에 돌아오면 (열쇠가 있지만) 일부러 벨을 눌러요. 그럼 집안 멀리서부터 ‘내가~ 내가~’ 하면서 서로 자기가 열겠다고 다투는 소리가 들리죠(웃음). 문이 열리면 반갑게 입을 맞춰요.”
실제로 산이는 수시로 아빠와 안고 뽀뽀를 한다. 입을 맞출 땐 “사랑합니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축구를 하는 이유도 가족 때문이죠. 모든 일에 가장 중심이 되는 건 가족이에요. 축구도 그 다음에 있는 거죠.”
현재 K-리그 ‘최다 출전’ ‘최다 무실점’ 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병지는 K-리그 5백 회 출전을 축구인생의 남은 목표로 잡고 있다고 한다.
“지금 4백20경기 남짓 뛰었으니까, 이제 2년 반 정도 더 뛰어야 해요. 나이에 따른 체력적인 부담보다도 저 스스로를 다잡는 게 더 어려운 거 같아요. 그간 많은 것을 이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기냐 아니냐의 문제 같은 거죠. 은퇴 후에는 꼭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최종적인 꿈은 구단주가 되는 건데, 그건 정말 꿈이죠(웃음). 하지만 또 모르잖아요. 제가 축구를 시작했을 당시나 프로팀이 아닌 직장팀에서 활동할 때 프로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건 정말 허무맹랑한 얘기였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가능성 있는 꿈 아닐까요(웃음).”
인생계획 중에서도 자녀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두 아들 외에 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지 묻자 앞으로도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더 낳고 싶다고 답한다.
“아내와도 자주 하는 말인데 셋째, 넷째도 가지고 싶어요. 그중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고요. 두 아들을 낳을 때마다 팔에 문신을 했는데 딸을 낳게 되면 배꼽 옆에 할 예정입니다(웃음). 아이를 키우면 힘들 때도 있지만 기쁠 때가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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