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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남궁민

EDITOR 조윤

입력 2019.07.15 17:00:01

남궁민의 연기는 이제 어디에서도 꽃을 피운다. 도전과 기다림 사이를 유영하며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데뷔 20년 차 배우가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방법, 그 숨은 이야기.
대체불가 남궁민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환한 미소와 선한 눈웃음이 매력적이던 남궁민(41)이 악인의 서늘한 눈동자, 능청과 코믹의 몸짓을 동시에 지닌 채 이전과 전혀 다른 결의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 최근 시청률 15.8%로 막을 내린 KBS 2TV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는 그의 물오른 연기의 정점을 목격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드라마에서 남궁민이 연기한 ‘나이제’는 올곧은 성품과 실력을 겸비한 대학병원 의사였으나 억울하게 병원에서 쫓겨난 뒤 교도소 의료과장이 돼 자신을 병원에서 축출한 악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인물이다. 남궁민은 따스한 인간미와 카리스마를 두루 지닌 다크 히어로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표현해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악에 악으로 맞서는) 나이제식 복수는 힘들겠지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살아야 하는 보통 사람들이 통쾌함을 느꼈을 것 같아요.” 

핑크색 셔츠 차림에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약속 장소에 나타난 남궁민은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이렇게 밝히며 종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행”이라는 말을 앞세웠다.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에요. 지난해 7월에 대본을 받았으니 나이제로 살았던 기간이 참 길었죠. 시청률이 잘 나오니 좋긴 했지만 에너지 소모가 많은 작품이라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보통 몸무게 67kg 정도를 유지하는데 막판엔 62kg까지 빠졌죠. 아쉬운 점도 있지만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줘 작품을 무사히 잘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의 인기와 그가 보여준 연기에 비하면 ‘다행’이라는 말은 말하는 이, 듣는 이 모두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끝인사 같다. 하지만 이내 이는 욕심 많은 배우의 깊은 고민에서 흘러나온 안도의 숨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느 순간 연기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며 세간의 호평에 대해서도 쉬이 자신을 풀어두지 않으려 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캐릭터를 표현할 줄 알게 됐을 때 가장 자신감이 넘쳤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인물을 더 디테일하게 표현해야 하는 지점에 오니 연기라는 게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엄격해져요. 인물에 대한 해석도 모든 사람이 다르니 연기를 잘한다는 것 역시 그저 연출자와 작가, 저와 시청자의 ‘생각의 궁합’이 잘 맞는 거라고 봐요. ‘인생작’ ‘인생 캐릭터’라는 평가에 대해선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일들이 남아 있을 것 같아 여지를 남겨두고 싶어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공개된 그의 대본은 마치 수험생의 문제집에 비견할 만큼 각종 메모로 빼곡했다. 연기력의 비결이 작품과 캐릭터를 철저히 연구한 데서 나온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저음, 고음에 따라 성대 모양이 어떻게 바뀌는지 손짓으로 한참을 설명하다가 이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간단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조작’이나 ‘김과장’ ‘훈남정음’ 등의 드라마에서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대사가 과장된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들릴 듯 말 듯하게 호흡을 조절해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구현하고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속삭이듯 말할 때 성대가 더 예민해지는 탓에 그는 작품 내내 좋아하는 커피도 끊었다고 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에서 악의 세력을 응징하는 교도소 의료과장 역으로 열연한 남궁민.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를 직접 연출하는 것이 오랜 꿈이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에서 악의 세력을 응징하는 교도소 의료과장 역으로 열연한 남궁민.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를 직접 연출하는 것이 오랜 꿈이다.

‘완벽한 자기 관리’로도 정평이 난 남궁민에게 변신이랄 만한 배우로서의 변곡은 어떤 계기에 의해 이루어진 걸까. 이 역시 연기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낳은 산물일 거라 추측했으나 그는 그저 시대의 흐름을 탄 것뿐이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지금은 조금만 험한 표정을 지어도 사람들이 ‘오~ 남궁민 무서워’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PD님들이 ‘남자다운 역할은 못 할 친구’라고들 하셨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대의 흐름인 것 같기도 하고 선한 얼굴을 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반전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로는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날카롭고 예민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더군요. 변신을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좋게 포장된 것 같아요.” 

2015년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연쇄살인마라는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스타 셰프 역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긴 그는 ‘리멤버-아들의 전쟁’(2016)의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재벌 2세, ‘조작’(2017)의 사건을 몰고 다니는 속칭 쓰레기 기자, ‘김과장’(2017)의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일침을 가하는 유쾌한 회사원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스스로는 흐름에 몸을 맡긴다고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는 도전이라는 글자가 자주 읽힌다. 첫 번째 도전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우연한 열망에서 시작됐다. 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중앙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 시절로 이야기를 이끌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대학에 가서 적응을 잘 못 했어요.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한 데다 대학에 가서는 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우리 과 2백 명 중에 여학생은 3명뿐이더군요. 그때부터 학교를 멀리하기 시작했죠. 하하.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란 고민을 그때 처음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MBC 공채 탤런트 모집 공고를 봤죠. 어머니께서 ‘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안 돼’라고 하면서도 프로필 사진을 찍으라며 15만원을 주셨어요. 실기 시험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준비를 하며 무척 흥미를 느껴 계속 도전하게 됐죠.” 

이후 1999년 제5회 KMTV 뮤직스타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VJ로 연예계에 데뷔한 남궁민은 2001년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연기 인생 15년 만에 스스로에게 두 번째 도전장을 던졌다. 2016년 범죄 수사 스릴러를 소재로 한 단편 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어’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것. 영화감독은 어쩌면 배우보다 앞선 것이었을지 모를, 여전히 미완성의 꿈이다. 그가 생각하는 배우 인생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동생이랑 영화 보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언젠가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재미있는 게 생각나면 틈틈이 적었는데 동생이 습작으로 써둔 게 두 편, 저도 세 편쯤 돼요. 첫 영화는 이틀 만에 찍은 거라 지금 보면 만족스럽지 못해요. 연기 활동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영화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업이라 지금은 엄두를 낼 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연인 진아름이 인정한 솔직하고 순수한 매력

남궁민은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모델 겸 배우 진아름과 교제를 시작, 4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진아름은 ‘솔직함, 돌직구, 애교, 순수함’ 등을 남자친구 남궁민의 매력으로 꼽으며 애정을 과시했다. 그러나 남궁민은 인터뷰에선 그녀와 관계된 질문을 자제해주길 당부하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남궁민은 연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진중함을 내비쳤다. 매일 두세 편의 영화를 보는 것 외에 특별한 취미가 없다는 그는 “드라마가 끝난 뒤 그간 못 본 (유)준상이 형, (이)준호 등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상의 전부”라면서도 “요샌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서울 때도 있다”며 진지한 견해를 펼쳤다. 

“선배들은 제가 ‘연기를 20년 했는데도 이런 게 어려워요. 어떻게 연기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물어보는 걸 놀라워하더라고요. 이번 드라마에서도 붙는 신이 많았던 (김)병철 형과 상의를 많이 했어요.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해 ‘돌직구’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연기 호흡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저 역시 진솔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쉽게 찾기 힘들어요. 예전엔 숫기가 없었지만 요샌 먼저 말을 걸려고 노력해요. 사람을 대할 땐 어떤 말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를 먼저 보죠.” 

촬영장에 문제가 터지면 어린 단역 배우라는 이유만으로 화풀이 대상이 돼야 했던 시절을 묵묵히 견딘 끝에 데뷔 20년 차의 독보적인 주연 자리에 오른 남궁민. 지금도 여전히 그에게 연기는 도전의 대상이다. 또한 그는 마음처럼 몸이 따르지 않을 땐 연기를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면서도 화면 속에 펼쳐질 자신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끊임없이 열망하고 있다. 

“연기를 너무 사랑해요. 돈을 벌고 생활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이걸 너무 사랑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성공하든 안 하든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연기하면서 저도 치유되는 게 있어요. 취미도 없고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제가 연기를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있거든요. 책임질 수 있는 역할이 주어져서 올 하반기는 캐릭터 연구를 하며 보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기획 김지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935엔터테인먼트 지담




여성동아 2019년 7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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