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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꽃미남 주인공에서 ‘배우 장동건’으로

EDITOR 김지영 기자

2018. 05. 14

데뷔 후 처음 외모를 포기한 대가로 더 큰 선물을 받았다. 영화 ‘7년의 밤’으로 연기력을 재평가받은 배우 장동건 얘기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명성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배우는 연기의 폭과 깊이를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3월 말 개봉된 영화 ‘7년의 밤’에서 장동건(46)은 우발적 사고로 자신의 딸을 죽인 세령마을의 댐 관리팀장에게 복수하려는 사이코패스 의사 오영제 역할을 맡아 촬영 때마다 멀쩡한 머리를 밀어 M자 탈모를 만들며 열연을 펼쳤다. 지금 그 자리에는 전보다 더 건강한 머리카락이 뿌리를 내렸다. ‘7년의 밤’으로 연기에 대한 그간의 아쉬움을 떨치고 새로운 재미와 자신감으로 내면을 채운 장동건처럼.

원작 소설을 쓴 정유정 작가가 장동건 씨의 연기에 대해 호평을 했어요. “정말 무서웠고 존재감이 엄청 컸다”고요. 

다행이에요. 다른 인물보다 오영제 캐릭터가 소설과 가장 다르게 그려져 원작이 훼손된 느낌을 받으시면 어쩌나 걱정됐거든요. 영화화되기 오래전, 소설 ‘7년의 밤’을 읽었어요. 그때 느낌이 아주 생생해요. 책을 덮으며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오영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배역이 들어와 운명이구나 싶었어요. 그런 설렘과 기대가 추창민 감독님과 첫 미팅을 가진 후 걱정과 우려로 바뀌었죠. 제가 생각했던 오영제는 샤프하고 섹시한 매력도 있는 사이코패스거든요. 오영제 자체가 유머 감각이 있진 않지만 익살맞은 상황도 좀 있고요. 근데 감독님은 지역사회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기름진 중년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계셨어요. “우리가 익히 봐오던 사이코패스의 클리셰를 가져가고 싶지 않다. 좀 더 납득이 가는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제게 털옷을 입히며 사냥꾼의 느낌으로 가자고도 하고, 살을 10kg 정도 찌우는 게 어떻겠느냐고도 하셨어요. 하하하. 

정말 10kg을 찌웠나요. 

여러 시도를 했는데 뻔한 느낌 이상이 나오지 않았어요. 헤어스타일을 바꾸게 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처음엔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다만 머리를 미는 게 과한 변신처럼 비칠까 봐 걱정했는데 M자 탈모를 만들고 보니 이런 오영제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감독님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고 해서 살은 안 찌워도 됐죠.
 
어떤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나요. 

오영제를 악역이라 단정하지 않았어요. 사이코패스라는 점에도 매몰되지 않으려고 했어요. ‘오영제에게는 부성이 아닌, 자기가 설계하고 계획한 세계의 파괴자에 대한 응징이 복수의 동력이 됐다. 그 세계 안에 아내와 딸이 있었고, 나중에 보니 그 세계가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감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늘 작품 이야기만 하셨어요. 심지어 사담도 ‘기승전작품’이었고요. 애써 감정을 유지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현장에 있으면 저절로 캐릭터에 빠졌어요. 촬영하는 동안에는 지방 모텔을 숙소로 쓰다 간만에 한 번씩 집에 가면 보통 아빠로 돌아왔고요(그는 2010년 동갑내기 배우 고소영과 결혼, 슬하에 아들 준혁과 딸 윤설 남매를 뒀다). 

촬영하는 동안 딸이 무서워했다고 들었어요. 

맘에 드는 촬영 사진이 있어 스태프에게 하나 달래서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깔아뒀는데 그걸 딸아이가 우연히 본 거예요. 딸아이가 지금은 다섯 살인데, 촬영 당시만 해도 세 살이어서 사진 속 인물이 아빠란 생각을 못 한 거죠. “괴물! 괴물!” 하더라고요. 하하하. 

제작보고회에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한 이유는요. 

연기하며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도 딸이 있으니까 이번 작품에선 구체적인 상상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사고로 목숨을 잃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상을 계속하는 게 기분 나쁜 거죠. 그럼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그 자체로 죄책감이 들었어요. 감독님도 오영제가 딸을 학대하는 장면을 찍기 싫어하셨어요. 감독님도 딸을 둔 아빠니까요. 

크랭크 업을 하고 기분이 어땠어요. 

무거운 짐을 목적지에 잘 가져다 내려놓은 기분이랄까요. 여한이 없이 촬영해 너무 후련했어요. 개봉이 늦어져 외부에서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하던데, 저는 감독님의 성향을 아니까 조바심이 전혀 나지 않았어요. 작품 완성도를 높이려고 공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린 거거든요. 7년이 안 걸린 게 다행이죠(웃음). 

집에선 어떤 아빠인가요. 

애들하고 잘 놀아줘요. 애들이 아주 어릴 땐 제가 일방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고충이 있었는데 이제는 상호작용이 되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일이 없는 날은 웬만하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요.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아이들이 다 잠든 뒤에 가져요. 아무리 바빠도 잠깐이라도 아이들 얼굴을 보려고 해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후 정서적으로 달라진 건요. 

제 맘대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어요. 처음엔 그런 현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걸 인정하고 나서야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었죠. 좀 더 어른이 된 것 같았고요. 

‘맘대로 안 된다’는 게 뭔가요. 

아이들에 관한 거요. 그게 별일 아닌 것 같아도 막상 닥치면 힘들 때가 있거든요. 그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자연스럽게 바뀌더라고요. 

소문대로 심성이 착한가 봐요. 

착하다기보다 트러블을 싫어해요. 차라리 조금 손해 보는 게 더 편해요. 현장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게 싫어 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참고 넘어가는 편에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나요. 

어쩔 땐 화를 내보기도 해요. 근데 그러고 나면 마음이 더 불편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건 뭔가요.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낸 것이 가장 큰 소득 같아요. ‘7년의 밤’ 덕분에 촬영 현장이 다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고요. 연기하는 즐거움이 새삼 생겨났어요. 

장동건 씨가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요즘은 인생이 별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의미로요. 거창한 행복을 탐하지 않아요. 하루 24시간 중 내가 기분 좋은 순간을 늘리면 행복감도 그만큼 커지거든요. 방법도 간단해요. 제가 뭘 할 때 기분 좋은지를 생각해보고 그걸 찾아서 하면 되더라고요. 

아내 고소영 씨에겐 어떤 마음을 갖고 있나요.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해요. 그녀 역시 배우임에도 여러모로 자기를 희생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거든요. 지난해 아내가 드라마 ‘완벽한 아내’로 오랜만에 다시 연기를 했어요. 아내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많이 부담스러워했는데, 잠 못 자고 아침에 나갈 때 굉장히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현장에서 연기하는 것도 무척 즐거워했고요. 그 모습이 참 흐뭇하고 좋았어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많은 분들이 주연에서 조연으로 위치가 바뀌었어요. 장동건 씨는 계속 정상의 자리에 있지만 언젠가 그런 날도 있을 거예요. 그게 두렵지 않은가요.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거니 생각해서 그런지 두려움은 별로 없어요. 정말 모든 사람이 나만 보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여유롭고 자유로워진 측면이 있고요. 대중의 관심에서 살짝 옆으로 비껴가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편안해요(웃음). 

20대의 장동건에게 러브 레터를 보낸다면 어떤 말을 담을 건가요.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즐겨라. 고민해봤자 별거 없다. 그냥 편하게 더 즐겨라.’ 하하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뭘 가장 하고 싶나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때는 애초에 꿈꾸지 않던 배우의 길로 들어서 야단맞으며 신인 시절을 보냈어요. 혼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한 느낌이에요. 모든 걸 억지로 해내야 했어요. 즐긴다는 기분은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연기가 과제처럼 여겨졌죠. 20대가 굉장히 길었던 것 같아요.

‘7년의 밤’으로 배우로서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는 장동건은 4월 25일 첫 방송되는 KBS 드라마 ‘슈츠’로 TV에 복귀한다. 대사가 많고 경쾌한 법정물이다. 이미 촬영을 끝낸 영화 ‘창궐’도 연내 스크린에 걸린다. 최근 대형 기획사를 나와 1인 기획사까지 차렸다. “안락한 보살핌에서 벗어나 오랜 꿈이던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또 해외 영화제에서 만난 좋은 작품을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는 의미 있는 일도 해보고 싶어” 용기 낸 것이다. 어느 때보다 의욕적인 그의 새 출발과 올해 필모그래피에 오르는 세 작품의 성공을 응원한다.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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