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달 만이다. 이재룡(39) 유호정(34) 부부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사랑의 집짓기’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 6월4일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 바자회 모금행사에 참석을 했을 때도 이들은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가서 땀 흘리고 오겠다”고 각오를 다진 바 있다. 그 약속을 지킨 셈이다.
두달 전에도 그랬듯이, 이재룡 유호정 부부는 이날도 의욕에 차 있었다. MBC 드라마 ’앞집 여자‘를 촬영하느라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는 유호정은 다소 지친 모습이었으나 표정만은 밝았다.
“오빠(이재룡)가 꿀을 넣은 홍삼차를 타줘서 아침에 먹고 왔어요. 몸이 약해서 체력이 따라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힘 쓰는 일은 주로 오빠가 많이 할 테고 저는 여자니까, 여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꼼꼼한 일을 하겠죠.”
유호정의 말에 이재룡이 “하하핫” 웃음을 터뜨리며 “이 몸 불 살라서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어떤 결의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기자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과연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잘생긴 외모 탓인지 이제껏 험한 일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자 이재룡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일을 해냈다. 그날 현장감독이 시킨 일은 38kg 가량 되는 무거운 석고자재를 나르는 일이었다.
유호정도 처음엔 “오빠가 몇장이나 나를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런 빛을 나타냈지만 그는 의외로 지칠 줄 몰랐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무거운 석고자재를 나르느라 얼굴은 온통 땀으로 얼룩지고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한시도 쉬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같이 작업하던 자원봉사자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대학 다닐 때 한달간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돈을 벌려고 한 일이었지만, 이 정도의 일쯤은 거뜬히 해낼 수가 있어요. 작년에 수해를 입은 분들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동참하게 돼서 기쁘고, 제 작은 힘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이재룡이 “으샤으샤” 하며 석고자재를 나르는 동안 유호정은 마감자재를 붙이는 작업을 했다. 어설퍼 보이긴 했지만 뚝딱거리며 망치로 못을 박는 모습이 TV에서 보던 이미지하고는 달리 억척스럽고 강단이 있어 보였다.
“망치질을 많이 해서 손이 아프긴 하지만,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땀 흘리면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고 할까요. 오히려 제가 별로 한 일도 없고 수선만 떤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작업은 오후 1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5시가 돼서야 겨우 끝이 났다. 두 사람은 도중에 “잠시 쉬고 하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묵묵히 일을 했다. 그 때문일까, 작업이 끝난 뒤에는 지쳐 보였지만, 가슴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재룡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집이란 의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모였을 때 편히 쉴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인 것 같고, 그 때문에 집이 없는 것도 고통일 거라고 생각하죠.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집짓기에 동참해서 이 행사가 전국적인 국민운동으로 확산이 됐으면 좋겠어요. 수재민들도 힘든 일을 많이 겪었을 텐데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강릉 ‘사랑의 집짓기’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재룡 유호정 부부.
올해로 결혼생활 8년째, 그는 “아이가 생기니까 느낌이 또 다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로 인해 예전보다 더 부부의 정이 두터워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예요. 믿음이 있으면 서로 이해할 수 있고 깊이 사랑할 수 있거든요. 결혼해서 살다 보면 서로 닮아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와이프도 결혼하기 전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는데 돌쇠 신랑인 저와 살다 보니 성격도 활발해지고 아이를 낳고부턴 아주 씩씩해졌어요. 제가 보더라도 장점이 많은 여자예요. 좋은 여자한테 장가간 것에 대해 행복하게 생각하죠.”
유호정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요즘 MBC 드라마 ’앞집 여자‘로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는, 드라마에서는 바람난 남편(손현주) 때문에 속앓이를 하지만 현실에선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과 외조를 받고 있다고 자랑을 한다.
“촬영이 있을 때마다 꿀을 넣은 홍삼차를 타서 보온병에 담아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제가 하는 연기에 대해서도 많이 지적을 해줘요. 만날 오빠한테 혼나지만 연기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돼요. 가장 날카로운 모니터를 해주고 있죠.”
하지만 이재룡은 손사래를 쳤다.
“요즘 드라마를 잠시 쉬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헌신적으로 외조를 해주는 건 아니에요. 고작해야 17개월 된 아들 태연이하고 놀아주고, 와이프 대신 집안일 좀 하고, 와이프가 드라마 촬영 때문에 나가면 배웅을 해주고… 그게 다죠. 외조라는 게 뭐 별것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그는 자상한 남편인 것 같았다. 유호정이 쓰고 있던 안전모도 대신 벗겨주고, 작업하면서 유호정의 옷에 묻은 먼지도 털어주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그런 그에게 기자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만약 그가 “드라마 ’앞집 여자‘에서 아내 유호정의 남편으로 나오는 손현주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거였다. 여기에는 두가지의 질문이 함축돼 있다. 손현주처럼 바람이 났을 경우와 아내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하겠냐는 뜻이었다. 이재룡이 잠시 생각을 하는 눈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드라마에는 극중의 인물들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이 없잖아요. 불륜을 미화시켰다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남편에게 여동생 같은 예쁜 여자후배가 있고 아내에게 듬직한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고 코믹하게 다뤘다고 생각해요. 만약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저는 와이프를 이해할 것 같아요.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단순히 친구, 선후배 사이라면, 그런 정도의 관계는 충분히 이해를 해줘야 하고 와이프 역시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저나 와이프나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각자 지킬 선은 지키지 않겠어요. 그런 점에서라도 부부는 믿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믿는다면 그런 일 따위로 상대방을 의심하는 일은 없을 것 아니에요.”
자칭 ‘돌쇠 신랑’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보수적일 것 같은데 막상 얘기를 들어보면 이해심이 많고 사고방식이 탁 트인 것 같다. 그의 말을 유호정도 주의깊게 들으면서 남편의 의견에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내 대신 아들 태연이와 놀아주고 집안 일도 도와주는 이재룡. 그런 남편이 유호정은 듬직하게 느껴지고 고맙기만 하다.
이들은 아들 태연이가 태어난 후 라이프 사이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생활의 중심이 모두 아이한테 맞춰진 것이다. 지난 가을 작은 마당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간 이유도 아이에게 땅을 밟게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유호정은 요즘 드라마 촬영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는 날이 많은데 밖에 나와 있어도 아들이 눈에 밟히고 괜시리 태연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그것은 이재룡도 마찬가지. 친구와 술을 좋아하던 그는 학교(고려대 언론정보대학원)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태연이하고 놀아주기 위해서인데,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느 가정이나 그렇지만, 아빠라는 존재가 다정다감하지는 않잖아요.엄마처럼 하루 종일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고 아이에게 세세하게 신경을 못 써주잖아요. 마침 드라마를 잠시 쉬고 있는 틈을 타서 태연이하고 많이 놀아주고 아이하고 교감도 많이 나누려고 하는데 그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낳은 후부터 가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이재룡, 예전보다 더 착실한 가장이 된 남편을 보면서 유호정은 아이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날 해비타트 건축현장에서 작업이 모두 끝나자 서둘러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제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태연이 때문에 빨리 집에 가야죠” 하고 말했다.
일보다 가정이 우선이긴 하지만 배우로서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재룡 유호정 부부. 이들이 해비타트 건축현장에서 하룻동안 흘린 땀방울은 분명 수재민들에게 많은 희망을 줄 것이다. 두 사람이 탄 자동차가 떠난 후에도 늦여름 햇살이 환하게 해비타트 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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