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식 여신’ 박은영 셰프
덕분에 ‘흑백요리사’가 시즌 2를 준비하는 요즘도 여전히 박은영 셰프의 인기는 뜨겁다. 지난해 7월부터 홍콩의 사천요리 전문 ‘그랜드 마제스틱 시추안’에서 수셰프로 근무 중인 그는 일주일에 5일은 홍콩에서 일하고 쉬는 날에는 한국으로 날아온다. 방송부터 여경래 셰프와 함께하는 유튜브 채널 ‘여가네’ 촬영, 이벤트 등을 1박 2일 동안 해치우고 다시 돌아가 근무하는 초인적인 스케줄. 인터뷰 당일에도 박은영 셰프는 새벽 5시 30분쯤 한국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피곤할까 빠르게 얼굴을 스캔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스튜디오에 봄이 왔다.
또래 셰프들을 선물로 남긴 ‘흑백요리사’

박은영 셰프는 2011년 이금기 요리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해 심사위원인 여경래 셰프 눈에 띄었다.
많이 오세요. 홍콩에 가면 제가 일하는 식당이랑 안성재 셰프의 ‘모수’가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여행객들에게 알려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렇게까지 열기가 뜨거울 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회사에서 굉장히 좋아합니다. 레스토랑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홍보가 많이 안 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정작 출연을 설득한 여경래 셰프가 더 먼저 탈락했어요. 만약 스승님과의 대결이 있었다면 어떻게 승부가 났을까요.
저도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대결이 성사되지 않아 아쉬워요. 만약 둘 다 오래 살아남아 대결이 이뤄졌다면, 셰프님이 이길 가능성이 좀 더 높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물론 모든 대결에 임할 때는 늘 제가 이기리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죠. 최선을 다하지만, ‘흑백요리사’는 예측이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었어요.
‘여가네’에서는 스승님에게 막내딸처럼 굴던데, 지금은 깍듯하네요.
하하. 제가 평소 셰프님을 엄청 존경합니다. 다만 ‘여가네’를 찍을 때는 워낙 구독자들이 저와 셰프님의 케미를 좋아해주셔서 제가 셰프님께 장난도 많이 치고 웃겨드리고 있습니다. 여경래 셰프님은 제가 알고 있는 어른 중에서 가장 ‘진짜 어른’에 부합되는 분이고, 그릇도 굉장히 크세요. 저는 지금까지 셰프님께 크게 혼나본 적이 없어요. 큰 잘못을 했을 때 오히려 덜 혼내세요. 저도 셰프님 나이가 되면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여경래 셰프의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해야 한다”는 탈락 소감이 화제였어요.
평소 본인은 은퇴할 때가 됐고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하셔서 저는 ‘그렇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말들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많은 분이 그 소감을 좋아해주는 걸 보고 좀 놀랐어요. 제가 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여경래 셰프를 제외하고 ‘흑백요리사’에서 본인에게 자극이 된 셰프, 친해진 셰프가 있나요.
흑수저로 같이 출연했던 셰프님들과 거의 다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히든 천재’로 나왔던 김태성 셰프와 프로그램 방영 이후 한 업체의 팝업 행사에도 같이 참여했는데요. 그분의 여러 스킬을 보며 많이 배웠어요. 또 ‘반찬 셰프’로 나왔던 송하슬람 셰프, ‘요리하는 돌아이’ 윤남노 셰프님 등도 굉장히 아이디어가 좋아요. 종종 만나 얘기하다 보면 요리에 대한 열정이 다 대단하더라고요. 활발하게 활동 중인 또래 셰프들을 만난 게 ‘흑백요리사’에서 얻은 여러 가지 중 하나예요.

흑백요리사’에서 동파육 만두로 백종원 심사위원에게 극찬을 받았다.
작가님이 만들어준 것 같진 않은데 단톡방이 있긴 해요. 흑수저와 백수저 각각의 방이 있고, 다 모인 방도 있어요. 요즘은 모두 바쁘니까 크리스마스와 명절 때 인사 주고받았고요. 주방에 안 쓰는 냉장고, 오븐이 있는데 가져가라는 메시지도 올라오고 정보 교환의 장으로 쓰이는 중이에요.
‘흑백요리사’에서 먹어보고 싶었던 요리가 있었나요.
대부분 다 먹어보고 싶었어요(웃음).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요리는 ‘셀럽의 셰프’ 임희원 셰프가 채소로 만든 베지테리언 사시미와 김태성 셰프의 알리오올리오예요. 못 먹어본 게 아쉬워서 ‘끝나면 매장 가서 하나하나 다 먹어봐야지’ 했는데, 지금 다들 예약이 꽉 차서 못 가고 있어요. 시간 내달라 하기 미안할 정도로 바쁘더라고요.
역시 남이 해주는 음식이 맛있긴 해요.
아마 대부분의 셰프가 집에서는 요리를 잘 안 할걸요. 또 저를 비롯해 셰프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달 음식으로 햄버거를 꼽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쓰레기가 별로 안 나오잖아요. 다 먹고 포장지만 딱 치우면 되니까 편하죠.
그럼 햄버거 먹고, 일할 땐 기름진 중식을 맛보는데 어떻게 날씬함을 유지하는 건가요.
요즘은 홍콩에 있으니까 광둥식을 많이 먹는데, 광둥식이 아무래도 한식보단 기름져요. 소화가 덜 되는 느낌이라 먹는 양을 좀 줄였어요. 일하다 보면 하루 한 끼 먹을 때가 많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활동량은 많으니까 살이 덜 찌지 않을까 싶어요. 웨이트 트레이닝, 골프 등 내킬 때마다 운동을 하긴 하는데, 제가 활동량 자체가 워낙 많아요.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해요.
보면 볼수록 우아한 ‘여신’보단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여장부’에 가깝다. 실제로 지난 시간 주방에서 악으로 버텼다. 중식 특성상 불 앞에서 무거운 웍을 들고 요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체력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활동 중인 중식 전문 여성 셰프 수도 적고, 방송마다 현재 중식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정지선 셰프와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딤섬의 여왕’ ‘중식 여왕’으로 불리는 정지선은 티엔미미를 운영하는 스타 셰프로, 박은영 셰프와는 혜전대학교 호텔조리학과 선후배 사이다.
터프함 속 섬세함이 중식의 매력

프렌치가 지닌 디테일이라든지 다른 장르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해요. 하지만 메인 자체를 바꿔볼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중식만이 가진 매력이 있거든요. 중식은 남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터프한 장르예요. 그런데 그 안은 섬세해서 반전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많아요. 또 타 장르에 비해 중식이 한국에서는 발전이 좀 더딘 편인데요. 이탈리아 요리나 프렌치, 한식만 해도 다양한 스타일의 레스토랑이 많이 생겼잖아요. 어떻게 보면 변화가 더딘 점이 오히려 저는 중식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새롭게 도전해볼 거리가 많으니까요.
정지선 셰프와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건 부담스럽지 않나요.
저는 저만의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도 하고, 그런 부담은 없어요. 다만 정 셰프님이 저보다 8년 선배예요. 선배 입장에서는 한참 어린 후배랑 대결 구도로 간다는 자체가 불편할 수 있죠. 이렇게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영광이라 생각해요. 재미있게 방송하고 있어요.
여왕, 여신을 상대할 중식 요정이 등장하기 전까진 이 대결 구도가 계속될 텐데요.
저의 20대 때를 돌이켜보면, 한 10년 정도 버틴 저를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쉽지 않긴 했어요. 그래서 새 인물이 그 과정을 견디고 나타난다면 굉장히 반가울 것 같아요. 또 예전의 저를 보는 듯해서 애틋하고, 잘해주고 싶고요. 요정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어요.
20대 때 많이 힘들었나요.
요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그런데 순간순간 힘들기는 했어도 제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힘들 때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도 교수님처럼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나를 평가했던 셰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다’라고 상상했죠. 시간이 지나면 멋진 선배들처럼 되리라는 그런 믿음이 제 마음속에 자리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요즘 ‘흑백요리사’를 보고 셰프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이 생겼어요.
셰프가 겉으로는 힘들어 보여도 다이내믹해서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에요. 다만 어린 친구들이 꼭 셰프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길을 열어놓고 본인이 어디에 적성이 맞는지 탐색해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 좋겠어요. 사실 전 어머니가 대학을 무조건 가라고 해서 알아보긴 했으나 딱히 가고 싶은 학과가 없었어요. 조리학과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게 그나마 재미있어 보여서였죠(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반대도 많이 하셨어요.
지금은 부모님께서 좋아하나요.
요즘은 불러주는 곳이 많으니까 좋아하시는데, 최근까지도 제가 주방에서 일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서서 일하고, 오래 일하니까 제가 힘들까 봐요. 그런데 전 금융권에서 일하는 쌍둥이 언니와 달리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더 힘들어요. 저한테는 셰프가 최고의 직업이에요.
쌍둥이 언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둘이 정말 많이 닮았어요.
저인 줄 알고 말을 거는 분이 종종 있다더라고요. 그런 분을 만나면 언니가 저랑 너무 닮아서 아니라고 말하기는 그렇고, 그냥 자기는 박은영 셰프의 언니라고 얘기한대요. 제가 한국에 있으면 맛볼 수 있었을 인기의 맛을 언니가 대신 느끼고 있나 봐요(웃음).
혼자 있는 게 힐링, 사람보다 카메라 앞이 편한 ISTP

4분 차이 쌍둥이 언니는 둘도 없는 친구다. 왼쪽이 박은영 셰프.
아, 방송 봤는데 엉망진창이더라고요. 하하. 어떡하겠어요. 이미 나온 거 재미있게 봐주세요. 제가 원래 ‘해야겠다’ 마음을 먹으면 열심히 하는 성격이에요. 춤도 ‘아는 형님’ 사전 인터뷰에서 특별한 일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침에 운동 겸 춤을 배운다”고 했다가 하게 된 거예요. 작가님이 춤을 추고 싶으면 춰도 된다길래 그럼 제가 한번 춰보겠다고 했죠.
MBTI 성향이 ISTP라고 봤는데 전혀 내성적이지 않네요.
저는 ‘극 I’가 맞습니다. 하하.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평소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을 잘 안 만나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 사적인 얘기를 나누는 것보다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는 게 더 편해요. 방송은 일이니까요.
그럼 방송은 일이고, 부엌 밖에서 스스로를 설레게 하는 게 또 있나요.
한국에 있을 때는 캠핑을 많이 했어요. 번거롭긴 해도 준비를 끝내고 혼자 앉아서 고요한 숲을 보면 정말 좋아요. 강아지랑 둘이 많이 다녔는데, 요즘은 못 간 지 오래됐죠. 그래서인지 홍콩에서는 더 혼자 있고 싶어요. 워낙 홍콩이 인구 밀집도가 높은 데다, 또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늘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서요. 혼자 조용히 있는 게 요즘 제 힐링이에요.
연애하기 좋은 봄인데, 혼자 있는 게 좋다뇨. 배우 이이경 씨가 이상형이라면서요.
지금은 너무 바쁘게 지내서 연애는 생각하기 좀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연애한 지 한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좋은 기회가 있으면 또 만나게 되겠죠. 이이경 씨는 예능에서 보여주는 유쾌한 모습이 좋아요.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면을 지닌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잖아요. 밝고 유쾌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이상형을 방송에서 직접 만나 좋았겠네요.
좋긴 좋았죠. 하지만 그날은 일하러 간 거니까 일만 열심히 했어요. 저는 먼저 다가가는 타입은 아니에요. 상대방이 호감을 표현해주면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는데, 먼저 다가간 적은 없어요. 거절당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까 조심스러워서요.
어느덧 30대도 절반을 달려왔어요. ‘중식 여신’으로서 더 하고 싶은 일은요.
셰프로서 계획은 한국에 제 색깔이 담긴 레스토랑을 여는 거예요. 저는 아주 새로운 요리보단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음식에 저만의 킥으로 약간의 변주를 주는 걸 좋아해요. 억지스러운 퓨전 음식은 별로예요. 지금은 발효에 관심이 많아서 발효를 활용한 중식을 포인트로 하는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싶어요.
홍콩 외에 또 다른 나라에서 일할 생각도 있나요.
마음으로는 중국, 싱가포르 등 많죠. 하지만 욕심 같아요. 사실 지금도 다른 셰프들이 외국에 나갔다가 국내 복귀하는 나이에 저는 반대로 나간 거예요. 제 나름대로는 엄청난 도전이라 해외 근무는 홍콩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 박은영으로서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일단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결혼은 음, 이렇게 늦게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는 30세에는 결혼도 이미 했고 아이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좋은 상대가 나타나면 당장 내년에라도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도, 삶도 불도저 같은 면이 있네요.
저는 한번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빠르게 밀어붙이고 미련 없이 놓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정해진 계획을 중간에 바꾸는 걸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요. 더 나은 선택이 있으면 언제든지 마음이 따르는 대로 할 수 있어요.
#박은영셰프 #중식여신 #흑백요리사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박은영 인스타그램 ‘흑백요리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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