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신의 계기는 의외로 사소하다. 4년 전, 초등학교 4학년에 접어들던 아이가 ‘비와 비율’ 개념을 어려워한다는 말에 문제집을 펼쳤고, 30년 차 변호사인 자신이 보기에도 ‘외계어’로 쓰인 듯한 설명에 멈춰 섰다. 이를 계기로 ‘왜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힘들게 수학을 배워야 할까?’라는 질문을 품게 됐다. 암기식 수학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국 그가 최근 내놓은 책 ‘변호사 아빠의 진짜수학 이야기’로 이어졌다.
박 변호사는 암기식 학습만으로는 결코 고등수학 과정을 소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식을 외우는 수학은 가짜 수학”이라며 “공식 너머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고력이야말로 아이들의 미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도 ‘진짜 수학’의 사고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변호사가 말하는 ‘진짜 수학’
기업의 구조조정을 담당하면서 수학을 많이 다루셨을 것 같아요.전혀 아닙니다. 업무를 하며 가장 많이 소통했던 분들은 회계사였는데, 이분들 역시 실무에서는 사칙연산 정도만 사용합니다. 미적분 같은 고등수학을 실제로 쓸 일은 거의 없죠. 주변의 의사나 공대 출신 회사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을 업무에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수학을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데, 우리는 왜 수학을 배워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문제의식이 커졌어요.
지금의 아이들이 왜 수학을 배운다고 생각하나요.
‘줄 세우기’ 가장 쉬운 도구이기 때문이죠. 수학이 난도가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변별력이 가장 높잖아요. 결국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만 수학을 공부하는 셈입니다. 공식과 풀이 과정을 외우는 방식의 공부는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진짜 수학에서 길러지는 사고력과 창의력은 살아가면서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단계적으로 호기심을 채워나갈 때 비로소 진짜 수학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짜 수학은 뭔가요.
가짜 수학의 출발점은 구구단 암기라고 봅니다. 초등학생들은 덧셈과 뺄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곧바로 곱셈과 나눗셈, 구구단을 외워야 하죠. 또 이런 암기 방식의 학습이 이어지면 중학교 때 삼각형이나 부채꼴 넓이 등의 공식을 외워야 하고요. 부모들 역시 연산을 잘하는 것이 곧 수학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연산 위주의 산수와 사고를 요구하는 수학은 분명히 다릅니다.
‘진짜 수학’의 정의를 밝히신다면요.
수식을 계산할 수 있는 학생들은 많지만,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학생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수식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진짜 수학입니다. 공식 너머의 의미를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가짜 수학의 암기식 공부는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결국 한계에 부딪혀요. 그래서 아이들이 결국에는 ‘수포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가짜 수학을 공부하면 결론적으로 입시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이 ‘진짜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 대학에서는 기하학, 천문학, 수사학, 논리학, 음계학 등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이런 학문적 토대가 서양 기술 문명을 주류 문화로 만든 것이죠. 일본과 중국이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며 수학을 배웠지만, 동양의 수학은 주로 연산 중심의 산학에 머물렀습니다. 문제의 답을 맞히는 데 집중한 학습 방식이었죠. 기술 격차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챗GPT 같은 기술이나 필즈상, 노벨상 수상자가 서양 문화권에서 주로 나오는 이유도 본질적인 수학에 대해 고민하는 사고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봅니다.

1월 17일 박현욱 작가는 경북 경산시 대평동에 위치한 경산중앙교회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 ‘주도적 학습’이 선행보다 중요해요”
변호사에게도 ‘수학적 사고력’이 많이 요구되나요.복잡한 개념이 얽힌 심화 수학 문제처럼 소송 역시 다양한 요소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수학 문제 풀이와 소송 모두 문제에서 출발해 해결책을 역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닮아 있죠. 수학 문제는 답을 찾을 수 있는 핵심 키는 보이지 않게 잘 숨겨놓는데, 그걸 찾는 과정에서 사고력이 길러집니다. 수학에서 공식만 암기하는 것은 변호사로 치면 판례만 외우는 것과 같아요. 판례만 외우는 변호사들은 문제 분석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분석력을 곧 ‘리걸 마인드(legal mind)’라고 합니다. 리걸 마인드란 해당 요건이 판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 누구의 주장이 승소에 더 유리할 것이냐를 찾아내는 직관력입니다. 리걸 마인드를 키우는 건 암기가 아닌 체화된 지식으로만 가능하죠.
‘진짜 수학’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도, 학부모들은 조바심이 납니다.
2026학년도 수능 만점자 인터뷰를 한번 보세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미분을 공부해도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간혹 초등학생 때 미분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때의 뇌 발달로는 미분을 이해할 수 없어요. 선행학습을 위해서 학원에 보내도 그저 선생님의 가르침을 관람할 뿐 지식이 체화되진 않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호기심과 창의력을 위한 에너지를 남겨둬야 합니다. 그래야 중학교 때도 공부할 수 있죠.
서울대 법대 출신에 엘리트 코스만 밟아오셨는데, 의외네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당시 정권이 과외나 학원을 금지해서 순수하게 교과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었죠. 부모님 역시 한 번도 저한테 공부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 덕분에 입시와 사법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는 힘이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주도적으로 학습했던 경험이 지금의 교육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주도적 학습의 중요성을 느낀 적이 있나요.
변호사 일은 엄청난 사명감을 요구하죠. 소송을 맡긴다는 것은 고객사 입장에서는 ‘살기’ 아니면 ‘죽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건을 맡으면 집요하게 파고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강력한 동기가 있을 때 사람은 끝까지 해낸다는 사실입니다. 그 속에서 성취감이 쌓이며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거죠.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본인만의 뚜렷한 동기가 있어야 하고, 작은 성공으로 성취감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긍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지 말고 질문하세요”
‘진짜 수학’을 위해서 부모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우선 부모가 수학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학에 대해 자녀와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다 보면 결국 집에서는 큰소리가 나기 마련입니다. 다만 ‘왜 이럴까’를 물어보고 아이의 답을 들어주세요. 예를 들어, 숫자 ‘6’을 2개로 나누면 3이 나올 수 있죠. 3개로 나누면 어떻게 될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거죠. 아이가 수를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주세요.
책에도 딸과 수학에 대해 나눈 대화가 실렸는데, 실제 대화인가요.
실제 대화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완전수 개념이에요. 28은 1, 2, 4, 7, 14를 더하면 자기 자신이 되는 수인데, 이를 완전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딸과 함께 수를 쪼개보고 손가락을 이용해 속셈도 해보면서 재밌고 쉽게 수학을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그런 딸과 저의 대화를 책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아이는 수학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지금 딸이 중학교 2학년인데요. ‘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흥미를 느끼더라고요. 저랑은 문제 풀이를 안 하고 계속 말로 ‘이 개념이 뭘까’를 탐구했거든요. 미분은 어떤 개념이고 왜 배워야 하는지를 계속 질문하고 답하는 식이죠. 현실에 수학 개념을 적용해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 각각 해와 땅의 각도가 0°와 180°입니다. 이때 해가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sin함수의 미분계수의 절대값이 가장 큰 1이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위치함수의 미분계수는 곧 속도를 나타내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아이들은 수학 학원에 다니나요.
사실 그것 때문에 아내와 싸우기도 했어요. 아내는 아이에게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큰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내를 설득해서 수학 학원을 보내지 않았고, 그때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도 수학 학원에 다니기를 멈췄어요. 현재 딸은 스스로 공부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학원을 보낼 생각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본인이 학원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 때 학원에 보낼 생각입니다. 아들은 아직 어려서 분수와 비의 개념만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교육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하루 정도 짬을 내서 아이들과 수학에 관한 대화를 나눠요.
아버지로서 또 다른 학부모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요.
아이들은 착해서 부모가 싫어할 행동과 좋아할 행동을 정확히 알아요. 그래서 부모의 기분을 위해 눈치를 보면서 공부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스스로 습득한 게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 무리한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은 아이를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적 앞에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패배감만 쌓이고, 이는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행복하지 않은 어린이는 행복한 청소년이 될 수 없고, 행복하지 않은 청소년은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조바심은 잠시 내려놓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변호사 #진짜수학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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