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배출한 가장 주목할 만한 신예는 누구일까. 꽃미남 군단 10화랑, 그중에서도 덕만·김유신을 괴롭혀 깊은 인상을 남긴 알천 이승효(29)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지난 7월 중순 만난 그는 몇 달간 이어진 야외촬영 때문에 피부가 구릿빛으로 변해 있었다. 최근의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인터뷰하러 오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주변에서 인기가 많아졌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다른 사람 이야기 같아요.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거든요. 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소식이 끊겼던 친구들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다는 거예요(웃음).”
극중에서 그는 용맹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비천지도의 수장 알천을 연기하고 있다. 초반에는 덕만과 김유신이 속한 용화향도와 앙숙으로 지내다 전쟁을 치른 후 그들의 편에 서는 역할이다.
극 초반 아막성 전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당시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온통 그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군복무 당시 JSA 저격수로 지냈던 그의 이력도 화제가 돼 “알천 역할에 적격이다”는 평가도 많았다. 미생으로 출연 중인 정웅인조차 “게시판에 온통 알천 이야기뿐”이라며 서운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정웅인 선배님이 정말 그렇게 이야기하셨어요?(웃음) 연기를 잘해서라기보다 작가님이 잘 써주셔서 그래요. 사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알천이 ‘싸움밖에 모르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용맹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어서 놀랐어요. 제가 체구가 큰 편도 아니고 선이 굵은 외모도 아니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못한다고 할까 하다가 ‘시키는 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는데 운 좋게 잘됐어요.”
그는 오디션을 볼 때 원래 이문식이 연기하는 죽방 역할에 도전했다고 한다. 당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듯해 체념하고 있었는데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기뻤다고. 역사적으로 보면 알천은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돕는 인물. 그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나올 것 같아 결과적으로 잘됐다”며 웃음 지었다.
군 제대 후 연기자 꿈 못 버려 뒤늦게 도전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서야 연기자에 도전했다. 다른 연기자들에 비하면 출발이 다소 늦은 편. 그는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이어 받을까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고미술품 감정평가사인 이상문씨로 KBS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걸 보며 저도 그 일을 이어서 할까 했어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번은 아버지가 의뢰인이 가져온 도자기를 보자기도 열지 않은 채 만져보시고는 어느 시대 것인지 알아맞히셨죠. 그 모습을 보고 섣불리 했다가는 아버지 이름에 먹칠만 할 것 같아 포기했어요.”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고 선언한 아들을 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공부를 못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기대가 크셨어요. 연기를 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놀라셨죠. 확고한 의지를 갖고 설득했더니 이내 승낙해주셨어요. 이후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요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걸 보고는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계세요. 최근에는 분량이 적어졌다고 아쉬워하시더라고요(웃음).”
충북 충주 출신인 그는 제대 후 스물다섯에 서울로 올라와 연기를 시작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대본을 쓰고 몇 달간 연습해 삼성동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에도 꽤 성공적으로 연극을 마쳤어요. 이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오디션을 봤는데 여러 번 떨어졌지만 운 좋게 잘 풀려서 드라마로 데뷔할 수 있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모자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진학해 정식으로 공부도 했고요.”
그는 2006년 ‘드라마시티’로 데뷔, 그해 ‘대조영’에 출연했고 ‘최강칠우’를 거쳐 ‘선덕여왕’에 합류했다. 데뷔작을 제외하고 모두 사극에만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궁금했다.
“일부러 사극만 공략한 측면도 있어요.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저 같은 신인에게는 의상이나 헤어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극이 편하거든요. 배우라면 사극이든 현대물이든 가리지 않아야겠지만 사극을 하면 연기력 향상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았죠.”
그는 1년 동안 ‘대조영’에 출연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목소리 톤이 낮은 그는 당시 PD로부터 발성법에 대해 지적도 받았는데 지금은 부단히 노력한 끝에 오히려 전달력이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이번 드라마에서도 연기경험이 많은 선배들을 보며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편하게 쉬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눈빛이 변하더라고요. 이번 드라마에서 엄태웅 선배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많아 가까워졌는데 장난기가 많아서 쉴 때는 같이 웃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예요. 하지만 촬영만 들어가면 뿜어내는 열기에 놀라곤 하죠.”
“닮은꼴 외모 논란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라 생각해요”
드라마 초반 알천의 용맹함으로 주목받을 때 그는 이준기·지현우와 닮은꼴 외모로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데뷔 전부터 두 배우와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기분 좋아요. 오히려 그분들이 언짢아할까봐 걱정이죠. 물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굴레가 될 수도 있잖아요. 열심히 해서 배우 이승효로 평가받고 싶어요.”
남들보다 출발이 늦은데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기자는 나이보다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실 데뷔할 때 주변에서 나이를 속이라고도 했어요. 서른보다 스물여덟이 캐스팅될 때 더 유리할 거라고요. 그런데 전 반대했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나이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촬영장에서도 그는 젊은 친구들보다 훨씬 더 체력이 좋다고 한다. 전쟁 장면을 찍느라 며칠 동안 들판을 기어다니고, 진흙탕에서 구르는 등 강행군이 계속됐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그는 예전에는 여가시간에 운동을 하고 콘서트장을 찾았지만 요즘은 시간만 나면 잠을 잔다고 한다. 일주일 내내 촬영이 진행되기 때문에 피로가 쌓인다고.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자 “영원히 휴가가 없으면 좋겠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피곤해도 쉴 새 없이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처음 연기 시작할 때 10년을 바라보고 ‘그때쯤 이병헌 선배처럼 멋진 배우가 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이른 것 같아 걱정돼요.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연기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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