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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솔직한 고백

세 번 이혼 아픔 딛고 방송 통해 공개구혼 나선 박윤배

글·김명희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8. 04. 23

드라마 ‘전원일기’의 ‘응삼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탤런트 박윤배. 이혼의 고통을 세 번이나 겪은 그가 싱글 대디로 두 아이를 키우며 겪은 애환과 남은 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아나선 사연을 들려주었다.

세 번 이혼 아픔 딛고 방송 통해 공개구혼 나선 박윤배

“한 여자와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어요. 전처 외에는 다른 여성을 만나본 적이 없고요.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았는데 요즘 들어 차츰 옆구리가 시리네요. 이제 함께 여행도 다니며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 2002년 종영한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농촌 총각 ‘응삼이’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윤배(61). 그가 3월10일부터 방영 중인 케이블 채널 ETN ‘돌싱 결혼 프로젝트-응사마! 장가가자’를 통해 공개구혼에 나서 화제다. 그는 이번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세 번 이혼했던 아픈 상처를 드러냈다. 그가 이혼 후 아들(30) 딸(28) 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지만 세 차례 이혼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혼을 세 번 했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어요. 첫 아내와 결혼하고 이혼하고 재결합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그의 부부가 두 번이나 재결합을 시도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시 잘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별 이유를 묻자 박윤배는 “이유 없는 이별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말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 엄마와 처음 이혼했을 때는 갑자기 혼자가 되고 나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아무래도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내를 다시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했죠. 그래도 인연이 아니었는지 결국 헤어졌어요.”
그는 15년 전인 지난 93년 세 번째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험난한 ‘싱글 대디’ 생활이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이혼했을 때가 하필이면 아이들이 한창 예민한 사춘기였어요. 공부도 안 하고 밖으로만 나돌더군요. 그렇다고 자세한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답답했지만 언젠가 제 진심을 알면 아이들도 달라질 거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어요. 조바심내지 않고 다른 집 엄마처럼 밥해주고 도시락도 싸주고 친구처럼 대화도 많이 하려 노력하고…. 그렇게 애쓰다보니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아버지, 엄마, 친구까지 1인 3역을 해가며 아이들을 뒷바라지했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완전히 채워줄 수는 없었다고 한다. 특히 졸업식·입학식·생일 등 평범한 가족들에게는 행복한 기념일이 그의 가족에게는 유독 슬픈 날이었다고.
“도시락을 못 싸면 아이들이 놀림을 받거나 빵을 먹어야 할 게 걱정돼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싸 줬어요. 그런 일은 오히려 쉽죠. 하지만 기념일 같은 날 허전한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특히 졸업식이나 입학식 같은 학교 행사가 고역이었어요. ‘저 집은 왜 엄마가 없을까’라는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저도 가기 싫었지만 그러면 우리 아이 혼자 운동장에 남겨질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하고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죠.”

세 번 이혼 아픔 딛고 방송 통해 공개구혼 나선 박윤배

‘어머니’라는 단어를 모르고 자라게 한게 미안해 더욱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다고 말하는 박윤배.


그가 이처럼 피눈물 나게 노력을 하며 키운 덕분에 아이들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반듯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들에게 ‘죄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준 점은 고맙지만 아쉬움도 커요. 다른 부모들처럼 외국에 보내서 공부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혹시나 아이들이 빗나갈까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했죠. 엄마가 있었더라면 맘껏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 또 ‘어머니’라는 소중하고 고귀한 단어를 모르고 자라게 한 점도 미안하고요.”
그가 공개구혼에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크다고 한다. 앞으로 아이들 결혼을 비롯해 더 많은 집안 행사가 있을 텐데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 곁을 지켜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는 것.
“우리 아이들도 어머니라고 부를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행히 아이들도 그런 제 마음을 잘 알고 ‘아빠가 하루빨리 좋은 사람 만나면 우리도 좋겠다’고 말해줘서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박윤배는 또한 “전처와 헤어진 후 아이들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 한번도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며 그간의 외로움을 털어놓았다.
“지방에서 촬영을 마친 뒤 서울로 올라오기 전 스태프들이나 연기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집에 전화를 해서 아내와 ‘나 뭐 먹고 싶다’, ‘금방 도착할 거야’ 같은 대화를 나눌 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쓸쓸하게 열쇠로 대문을 따고 집에 들어갈 때면 외로움이 더하죠. 그럴 때마다 ‘재혼’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떠올려보긴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저처럼 얼굴이 알려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나쁜 소문에 휘말릴 수 있고요. 그래서 공개구혼을 하게 된 거죠.”
그는 이상형으로 “나의 단점을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여성”을 꼽았다.

“제 단점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 만나고 싶어요”
“지금까지 떳떳하게 살아오려 노력했기에 특별히 부끄러운 점은 없어요. 술자리를 좋아해서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대여섯 시간씩 자리를 뜨지 않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좋은 사람이 생기면 그런 버릇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박윤배는 학창시절 손꼽히는 우등생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명문대 진학을 기대했지만 그는 뜻밖의 선택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우연히 영화 관련 모임에 갔다가 영화의 매력에 빠져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그는 크고 작은 조연을 거쳐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주로 범인 역을 맡다가 ‘전원일기’에 농촌 총각 ‘응삼이’로 합류했다. 응삼이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20년 가까이 한 가지 캐릭터로 이미지가 고정되는 바람에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섭외가 들어오는 작품의 배역들이 모두 응삼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전원일기’가 끝났을 때 빨리 응삼이 캐릭터를 버리고 다른 캐릭터로 변신했어야 했는데 많은 시청자들께서 ‘응삼이’ 박윤배를 사랑해주시니까 그럴 수 없었어요. 배우로서는 마이너스였지만 시청자들 사랑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는 거니까 감사할 따름이죠.”
지난해 드라마 ‘연개소문’을 끝으로 일년 가까이 휴식을 취한 그는 케이블 채널 tvN의 드라마 ‘리틀맘’을 촬영 중이다. 오랜 공백 끝에 다시 시작하는 일인 만큼 그에게는 연기하는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박윤배는 특별한 배역 또는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한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연기자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제가 톱스타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거기까지 올라가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나라 전국 곳곳을 다니다가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려 냉수 한 그릇 청했을 때 얻어 마실 수 있을 정도는 되잖아요. 여기서 더 욕심 부려 정상까지 올라가면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고독하고 허무하겠어요. 일이 없으면 쉬어 가기도 하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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