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도 학력 검증 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친 가운데 가수 인순이(50·본명 김인순)가 최근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동안 경기도 포천고등학교의 전신인 포천여자종합고등학교 출신으로 알려졌던 그는 지난 9월 초 기자와 만나 “가정형편상 중학교도 겨우 다녔다. 남들은 외국 대학이니 석·박사 학위를 가지고 속이는데, 남들 다 다니는 고등학교를 가지고 거짓말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나 스스로가 서글퍼서 밝히지 못했다”며 착잡한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중학교 때 한 학기를 마치면 헌책방에 교과서를 팔아서 가족들이 며칠 끼니를 때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해 중학교 졸업장도 가수가 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찾아왔고, 고등학교 역시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진학하지 못했죠.”
지난 1972년, 경기도 연천 청산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의 집안은 극도로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한다. 엄마와 이모가 잡일을 해 생계를 꾸리기는 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아 늘 곤궁했던 것. 그는 “엄마가 일을 나간 사이 집안 살림을 하거나 열세 살 어린 동생을 돌봤다. 영어와 음악을 좋아했지만 꿈을 펼치기엔 삶이 너무나도 퍽퍽했다”고 말했다.
인순이가 중졸 사실을 밝힌 후 오히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열정과 실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그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
“버스비가 없어 학교 행사에 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어요. 여느 친구들과는 피부색이 달랐던 탓에 그런 제 행동들이 유난히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죠.”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날 인순이는 시험장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합격해도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준비를 해갔지만 교문 앞에 다다른 순간 어머니와 동생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대로 발길을 돌렸죠. 집에 오는 길에 속이 상해 펑펑 울었지만, 엄마에겐 ‘공부는 더 이상 취미에 맞지 않으니 돈을 빨리 벌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인순이와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기일(9월4일) 하루 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 ‘많이 못 배우게 한 게 끝까지 한이 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게 왜 어머니 탓이겠어요.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도 새삼 이 일로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고등학교 입학이 좌절된 뒤, 그는 식당에서 잡일 등을 하며 생계를 도왔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운 생활은 우연히 그의 노래 실력이 알려지면서 78년 그룹 희자매의 멤버로 발탁될 때까지 계속됐다고.
“바깥에 나가는 게 항상 불안했어요. 피부색이 달라 어딜 가나 눈에 띄었거든요. 아마 고등학교를 나왔어도 평범한 직장을 갖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겠느냐는 질문에 항상 수녀나 간호사가 됐을 거라고 대답했는데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는 최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어려운 집안환경을 알고 물심양면 도움을 줬던 선생님을 무대 위에 모시고 노래 ‘거위의 꿈’을 부르다가 눈물범벅이 됐다.
“어린 마음에 좋아했던 그 영어선생님이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중학교 시절 포천에서 서울 수유리까지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저는 차비가 없어서 결국 가지 못했어요. 1학기 때 사용했던 교과서를 팔아 당시로서는 큰돈이던 5백원을 만들어 결혼식에 갈 여비를 몰래 마련하긴 했는데, 가족들 생각에 결국 못 갔죠.”
가수 활동으로 정신없던 어느 날, 경기도 포천 인근에서 어린 시절부터 살아왔던 그의 프로필에 언젠가부터 ‘포천여고 졸업’이라는 거짓 경력이 붙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굳이 수정하지 않으면서 그게 사실인 것처럼 굳어진 것 같다.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나 자신을 속이고 착각을 진짜라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프로필을 수정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한창 인기 있을 때 외신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고등학교도 변변히 나오지 못했다’고 몇 차례 밝힌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옆에 있던 (당시 친하게 지낸) 몇몇 한국 기자들과 제작 관계자들이 ‘꼭 그런 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지 않냐’고 몇 차례 만류했어요. 그때 정확히 밝혔어야 했는데, 자기 합리화에 빠졌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이 고졸인 것처럼 포장되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던 거죠. 자기 최면… 그게 참 무서운 것이더라고요.”
“공인으로서 신뢰 잃어버릴 만한 행동한 점 부끄러워요”
그는 최근 학력위조 논란이 연예계 핫이슈로 떠오르자 마음이 무겁고 팬들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 있는 프로필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잡지 못하겠더라고요. ‘언젠가는 밝혀야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저 스스로 사람들을 속이고 신뢰를 잃어버릴 만한 행동을 했다는 게 부끄럽고 가슴이 아파요. 하지만 동정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판단은 보는 분들이 하는 것이니까요.”
그가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은 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여느 연예인들의 학력 위조 사례와는 다른 행보들이 이어졌다. 가수로서 그의 성공이 혼혈이라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가창력과 실력을 바탕으로 거둔 결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네티즌들로부터 격려와 응원의 박수가 쏟아졌던 것. 이후 그로부터 한 통의 짧은 전화가 왔다.
“이유를 막론하고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인데, 이렇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늦게나마 사실을 알리게 돼 홀가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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