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TV에서 볼 수 없었던 중견 탤런트 서우림(65)이 오랜만에 안방극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홍준표(김상중)의 어머니, 황 여사 역을 맡아 출연한 것. 그는 그동안 연기생활을 중단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난 2001년 라스베이거스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재미교포 김무영씨와 재혼해 거처를 미국으로 옮긴 것. 두 사람은 지난 98년 서우림이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카지노 사업 문제로 한국을 방문한 김씨를 처음 만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김씨는 53년 국비유학생으로 뽑혀 처음 미국 땅을 밟아 자수성가한 인물로 오래전 이혼하고 혼자 살다 그를 만났다.
“결혼하기 3년 전부터 알고 지내긴 했지만 따로 데이트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모임에서 가끔 만나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였죠. 사실 재혼은 갑작스레 결정한 일이에요. 제가 여러모로 힘들 때 남편이 옆에서 큰 힘이 돼줬거든요. 사실 전남편과 오랫동안 별거를 하면서도 재혼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인연은 따로 있나봐요.”
재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현재 라스베이거스 시에나 빌리지에 살고 있다. 그곳은 55세 이상의 노인만 거주할 수 있는 곳으로 골프장·수영장·헬스클럽 등 고급 휴양지에 버금가는 각종 오락·스포츠 관련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남편이 호텔 사장인 건 맞지만 ‘백만장자’라는 소문은 과장된 거예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단아한 한복차림으로 편안한 연기를 선보인 서우림.
그가 미국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이 방송가에 전해지면서 ‘백만장자와 결혼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호텔 사장인 건 맞지만 평범한 월급쟁이 사장”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왕비 대접을 받으며 산다’는 얘기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평범한 가정주부와 달리 집에서 밥을 거의 지어먹지 않는다는 것. 결혼해서 지금까지 직접 식사를 준비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그는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남편과 함께 운동을 한 뒤 남편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고 한다.
“현재 남편이 운영하는 호텔이 5개 정도 되는데 아무 데나 들어가 식사를 하고 사인만 하면 되니까 매 끼니를 그렇게 해결해요. 무엇보다 남편이 제가 집에서 밥하는 걸 싫어해요. 부엌에서 뭐라도 할라치면 ‘밥하려고 시집왔냐’며 못하게 하거든요. 남편은 50년 넘게 미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입맛이 서양식으로 길들여졌지만 저는 가끔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남편 몰래 김치찌개나 김치볶음 등을 만들어 먹죠(웃음).”
그는 재혼과 동시에 남편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막을 도리가 없다고 한다. 평생 업으로 삼아온 연기를 그만두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생활하다 보니 혼자 눈물짓는 시간도 많았다고. 그럴 때면 한국 드라마를 비디오로 빌려다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만든 건 한국에 두고 온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재혼과 동시에 두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그는 “나 하나만 보면 행복한 삶이지만 두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30대 중반 나이에 접어든 두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그가 재혼을 결심할 무렵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미국과 한국에서 떨어져 지낸 그와 두 아들은 이제야 한집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살겠다는 기대를 했었는데 그의 재혼으로 다시 한 번 헤어져야 했다.
“재혼을 결심할 무렵 경제적으로 참 힘들었어요. 아이들 아빠와 여러가지 이유로 별거를 시작한 뒤 제가 두 아이의 유학비를 다 댔는데, IMF가 터지면서 환율은 환율대로 오르고 수입은 점점 줄어들었죠. 어떻게든 아이들 공부는 마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버티고 버텼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어요. 매일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께 ‘제발 일 좀 많이 하게 도와달라’고 빌 정도였죠. 그 즈음 남편에게 프러포즈를 받았고요.”
그동안 자신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 많았다며 재혼해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준 두 아들
그는 재혼을 결심하고 군에 있는 두 아들을 찾아간 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두 아이 모두 엄마의 결혼을 적극 지지해줬지만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그는 “엄마로서 두 아들에게 큰 힘이 돼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큰아이를 만나고 둘째를 만나러 갔는데 두 아이 모두 그동안 자기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면서 결혼해서 잘 살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실 저뿐 아니라 아이들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고생이 많았어요. 엄마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걸 알고 자기들이 알아서 아르바이트를 했더라고요. 유학생은 정식으로 일을 할 수 없으니까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면서 힘들게 공부를 한 거죠. 두 아이 모두 10년 넘게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한국에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독하게 살았어요.”
미국에서 대학원 입학만 해놓고 한국에서 군 복무를 시작한 두 아들은 제대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아직까지 그가 살고 있는 미국 집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고. 새 아버지와도 얼마 전 한국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동안 일년에 한두 번 한국에 들러 아들들과 짧은 만남을 가져온 그는 “이번에는 드라마 촬영을 핑계 삼아 석 달 넘게 아들들과 함께 지내 행복하다”며 웃었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큰아들 집에서 지냈는데 오랜만에 함께 생활하니까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고 싶더라고요.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촬영 스케줄 때문에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더군다나 한동안 부엌일에서 손을 떼서인지 음식 솜씨가 예전만 못한가봐요. 큰아들 말이 제가 끓인 찌개가 맛이 달라졌다고 하는 거 있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가 정말 편하게 사시나봐요’ 하더라고요(웃음).”
지난 65년 TBS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평생 연기자로 외길을 걸어온 그는 오랜만에 촬영에 임하면서 다시 한 번 연기자가 천직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때는 어쩔 수 없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긴 적도 있지만 막상 일을 그만두고 보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았다는 것. 그는 미국에서 비디오로 한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불러만 준다면 다시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며칠 전 큰아들도 그러더라고요. 미국에 있을 때 동생과 함께 제가 나온 드라마를 빌려다 보면서 펑펑 운 적이 있다고요. 제가 할머니 분장을 하고 장독대에 올라가면서 눈물짓는 모습이었는데 어린 자기들이 보기에도 제 눈물 연기가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래요. 사실 그동안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온 시간들이 참 행복했다는 걸 느껴요. 연기를 하는 동안에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하겠지만 그래도 가끔의 외출은 가능할 것 같아요.”
그는 “하루빨리 두 아들이 장가를 가 예쁜 손자를 안아보고 싶다”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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