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영화배우 최은희씨(76)는 요즘 마음이 설레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그가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는 8월10일부터 14일까지 충남 공주영상대학에서 ‘제1회 공주 천마 신상옥 청년영화제’가 열리는 것. 지난해 4월 세상을 뜬 남편 고 신상옥 감독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이 영화제에서 최씨는 집행위원을 맡아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감회가 남다르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늘 그를 기념하는 영화제가 있으면 하고 바랐거든요. 신 감독은 제 남편이기 전에 영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소중한 동료였어요. 우리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감독이기도 하고요.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제가 마련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신상옥 청년영화제’의 기틀을 놓은 이는 바로 최씨.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춘사영화제에 시상자로 참석했다가 단상에 올라 “한국 영화의 기틀을 마련한 1세대 나운규 감독을 기념하는 영화제가 있는 것처럼, 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2세대 신상옥 감독을 기리는 영화제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인 바 있다. 그의 제안을 들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신상옥기념사업회가 구성됐고, 신 감독 1주기를 맞는 올해부터 한국영화감독협회와 공주시, 공주영상대학이 공동 주최하는 ‘신상옥 청년영화제’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영화 이끌 신인 감독 발굴이 목적, 남편도 하늘나라에서 흐뭇해할 거예요”
이 영화제는 생전에 안양예술학교·신필름예술센터 등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공을 들였던 신 감독의 뜻을 이어 35mm·16mm·애니메이션·디지털 시네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참가 대상을 만 16~29세의 청소년과 대학생, 청년영화인으로 한정했어요.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많은데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적잖아요. 예비 영화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유능한 영화인을 육성하는 게 이 영화제의 취지죠. 이 영화제가 젊은 영화학도들에게 꿈을 심어주면 좋겠어요.”
‘신상옥 청년영화제’ 대상 수상자에게는 ‘신상옥상’과 2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이 외에도 ‘강우석상(최우수연출상)’ ‘강제규상(우수연출상)’ ‘차승재상(기획제작상)’ ‘김청기상(애니메이션상)’ ‘안성기상(편집상)’ 등 우리나라 영화 산업의 주역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상하는 상들이 다수 마련돼 있다. 총 상금은 1억원이다.
최씨는 지난 6월 초 남편의 산소를 찾아 영화제의 진행 소식을 전하고 왔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한 달에 두어 번 신 감독의 산소를 찾아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는 그는 “아마 그 소식을 듣고 신 감독도 하늘나라에서 흐뭇해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산소를 찾을 때마다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는지, 외롭지 않은지 묻고는 “살아생전 다 찍지 못한 영화를 마음껏 찍으면서 지내라”고 말한다는 그는 신 감독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사재를 출연해 이미 부지까지 마련해두었다고.
최씨는 “남편의 오랜 꿈이기도 했던 젊은 영화인을 위한 영화제가 성황리에 열려 우리나라 영화계를 대표할 거장이 배출되기를 바란다”며 “남편 또한 하늘나라에서 영화제의 성공과 영화계의 발전을 기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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