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가 최고의 화두는 SBS 특별기획 ‘파리의 연인’이다. ‘파리의 연인’은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그 인기 열풍 중심에 ‘백마탄 왕자’ 박신양(36)이 있다.
실크 셔츠와 고급스러운 검정색 재킷, 폭이 넓은 넥타이, 여기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까지 박신양의 모습은 극중 배역인 자동차 회사 사장 한기주와 썩 잘 어울린다. 그는 ‘럭셔리’한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고가의 양복 20여 벌을 맞추었다고 한다.
한기주는 일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인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이 남자가 어떻게 뭇 여성들의 가슴을 뒤흔들고 있는 것일까. 박신양은 먼저 “정말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러죠?” 하며 생뚱맞게 반문한 뒤 이내 “정의의 사도, 뭐든 다 해주는 역할 때문이 아닐까요?” 하고 덧붙인다.
그럴듯한 얘기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한기주는 올 초 ‘권상우 신드롬’을 일으킨 SBS ‘천국의 계단’의 차송주와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재벌 2세로 한 여자만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한기주는 현실성이 있다는 점에서 차송주와 구별된다. 이번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박신양이 가장 신경 쓴 부분 역시 ‘개연성 있는 인간상의 구현’이라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흔히 재벌들이 일은 안하고 매일 놀고먹으며 연애나 하는 사람들로 그려져요. 하지만 저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제 할 일을 다 팽개치고 오로지 정인(情人)을 위해 ‘올인’하는 모습은 지극히 로맨틱하기는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박신양은 어떤 식으로 한기주를 ‘로봇’이 아닌 인간으로 살려내고 있을까.
지난 95년 영화 ‘유리’로 연예계에 데뷔한 박신양은 러시아 셰프킨 연극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유학파 연기자답게 10년 내공의 유연한 연기력으로 인간 한기주를 그려내고 있다. 한기주에게서 나오리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돌발 멘트 “애기야, 가자”는 이미 유행어가 됐고, 생일 파티 도중 뜬금없이 나온 “자고 갈래?”도 네티즌들 사이에 두루 회자되고 있는 상태. “~했나?” “~했군” 등 혼잣말 같은 어눌한 말투와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표정, 전후 수식어구를 생략한 절제된 표현 등도 모두 박신양이 창조해낸 한기주의 특징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서 펼치는 완벽한 줄타기가 바로 박신양을 제 2의 전성기에 올려놓은 비결인 셈이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로맨틱한 사랑하는 현실적인 재벌 2세로 인기
박신양은 극중 평범한 여자 태영을 사랑하는 재벌 2세 한기주 역으로 데뷔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박신양의 인기는 여기저기에서 실감할 수 있다. ‘파리의 연인’의 인기가 상승함에 따라 박신양이 주연했던 영화 ‘약속’과 ‘범죄의 재구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박신양을 보기 위해 그가 카메오로 출연한 ‘달마야 서울가자’를 봤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한때 시련도 있었다. 지난 5월 말 첫 방송을 1주일 앞두고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것. 4년 전 같은 부위를 수술한 적이 있는 그는 파리 현지 로케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으나 다행히 “극중 아이스하키 장면만큼은 꼭 찍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98년 SBS 드라마 스페셜 ‘내 마음을 뺏어봐’ 이후 6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를 화려하게 장식한 박신양은 최근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미국에서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던 아내 백혜진씨가 6월 말 딸과 함께 귀국한 것. 결혼 후 유학을 원한 아내를 위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온 박신양은 요즘 촬영이 끝나면 곧바로 아내와 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달려간다.
벌써부터 영화, 드라마, CF 출연 제의가 밀려들고 있지만 박신양은 ‘파리의 연인’이 끝나면 한동안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대본이 너무 늦게 나오는 데다 너무 빡빡하게 촬영이 진행돼 스스로 연기를 냉정하게 돌아볼 시간조차 가질 수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또 다른 박신양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잘 나갈 때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용기와 소신. 이것이 연기자 박신양을 만들어온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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