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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딸 태명은 ‘럭키비키’, 국경 없이 자랐으면”

내년 1월 아빠되는 인도 출신 방송인 럭키

윤혜진 객원기자

2025. 12. 15

인도 출신 방송인 럭키가 겹경사를 맞았다. 지난 9월 28일 한국인 신부와 웨딩마치를 울린 데 이어 곧 딸이 태어난다. “행복해서 하루가 짧다”는 새신랑을 만나 러키한 신혼 생활을 들었다.

한국과 인도의 문화 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인도 출신 방송인 럭키(본명 아비셰크 굽타)에게 올해 한국 생활은 특히 의미 있다. 18세 때인 1996년,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에 건너온 럭키는 JTBC ‘비정상회담’ 시즌 2로 얼굴을 알린 후 방송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본업인 무역회사와 인도 음식점을 운영하며 주한인도무역협회 이사, 킨텍스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올 초에는 드디어 영주권까지 획득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족이 생겼다. 지난 9월 28일 2세 연하의 비연예인 한국인과 서울 한강 세빛섬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 승무원 출신으로 여행업계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일을 하는 아내와는 6~7년 전부터 알고 지내다가 올해 연인으로 발전했다. 아내는 현재 임신 중으로 내년 1월 출산 예정이다.

럭키는 결혼 전 SNS에 깜짝 소식을 알리며 “1996년, 앞으로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 올라탄 한국행 비행기는 제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면서 “가야의 수로왕과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가 서로의 문화를 품고 새 역사를 써 내려갔듯 저희 부부도 인도와 한국의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며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살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타 하나 없이 적어 내려간 제법 긴 글에서 사랑하는 한국에서 사랑을 완성한 럭키의 진심이 읽혔다. 결혼한 지 이제 한 달여, 깨소금 냄새를 폴폴 풍기는 럭키를 만났다.  

영화 ‘007’ 테마송 맞춰 등장, 흥 넘치던 결혼식

어느덧 결혼하고 한 달 반 가까이 흘렀어요. 어떻게 지내나요.

해야 할 일도 많고 재미있어서 요즘 하루가 한 8시간처럼 느껴져요. 결혼 준비가 정말 만만치 않더라고요. 게다가 산후조리원 예약이라든지, 동시에 출산 준비까지 하느라 엄청 바빴어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 연휴도 있었잖아요. 장모님, 장인어른, 처제네 가족이랑 다 같이 맞는 추석이 참 좋았어요. 명절 요리도 하고 상금 건 윷놀이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보통의 한국 며느리라면 시댁도 갔을 텐데 그런 건 없었겠네요.



시댁이 먼 게 국제결혼의 장점이죠(웃음). 어머니가 인도에 계시다 보니 추석 때는 뵈러 못 갔고 그 후에 일주일 정도 인도에 다녀왔어요. 아내가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비행기 타기가 어려울 듯해서 신혼여행 겸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고 촬영도 하고 겸사겸사요. 간 김에 인도에서도 결혼식을 한 번 더 하면 좋았겠지만, 인도는 결혼식을 며칠 동안 해요. 2시간 정도 하는 한국 결혼식도 준비할 게 많은데, 며칠 동안 하는 인도 결혼식은 얼마나 준비할 게 많겠어요. 아내가 무리하면 안 돼서 이번에는 가족만 만났어요. 

결혼식에 신경 많이 썼더라고요. 신랑 입장과 신부 입장곡으로 영화 ‘007’ 테마송을 쓰는 건 처음 봤어요.   

인도인들이 흥이 많아요. 저도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주말에 모임 하는 걸 보면서 흥 넘치게 자랐죠. 결혼식에 오는 분들한테 즐거움을 주고 싶었어요. 인도 전통 결혼식과 똑같진 않더라도 춤도 추고 인도 음식도 맛보여드리고요. 입장곡 같은 경우는, 사람들에게는 자라면서 영향을 받는 시대적 인물이 있잖아요. 저는 1978년생인데, 우리 세대는 ‘007’ 시리즈에 나오는 패션을 따라 하는 등 로망 같은 게 있어요. 하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멋있는 곡으로 골라봤죠. 

결혼식을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진행하고, 하객들도 많이 왔던데요. 

한국 결혼식은 예식장 한 곳에서 하루에 여러 사람이 식을 올려야 하다 보니 빨리빨리 진행하잖아요. 결혼식에는 정해진 절차가 있고, 파티도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서 일부러 저녁 6시에 했어요. 전현무 형이 사회를 봐주고, 방송인 알베르토랑 다니엘이 덕담을 해줬고요. 축가는 강산에 형님이 불러주시고, 대니정 형님은 재즈 퍼포먼스도 해주셨어요. 저에게 제일 큰 재산은 지인들이에요. 이번에 다 초대하지 못해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안 부르는 게 미안해 결혼식을 하지 말까도 생각했다니까요. 그렇다고 다음번에 초대하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강산에 씨 축가라니 발이 정말 넓네요. 어떤 노래를 불러주셨나요.

제가 좋아하는 ‘넌 할 수 있어’와 ‘장가가는날’을 불러주셨어요. 형님 노래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죠. ‘...라구요’에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중에 18번이기 때문에’라는 가사가 나오잖아요. 무슨 뜻인지 몰라 주변에 물어보니까 한국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더라고요. 

남북 관계부터 SNS에 적은 김수로 왕과 허황옥 공주 이야기까지, 역사 지식이 대단하네요. 

역사를 파다 보면 재미있는 얘기들이 나와요. 특히 저는 인도인이다 보니까 인도와 한국 관련 내용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이미 2000년 전에 가야 시대 왕이 인도 공주와 국제결혼을 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뿌리 절반은 인도라는 게 신기했어요. 이번에 결혼 발표를 하면서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 부부처럼 국제 커플이었던 김수로 왕과 허황옥 왕비가 떠올랐어요. 요즘 한국에 사는 외국인도 많고 국제 커플도 많이 탄생하니까요.

결혼 준비 자체도 힘든데, 국제 커플이라 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한 10년, 20년 전만 해도 제가 느끼기에 국제결혼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듯해요. 그런데 이제는 다문화 키워드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국제 커플도 국제라는 말만 붙었을 뿐 그냥 사랑하는 연인 사이잖아요. 딱히 어려운 건 없었으나 아무래도 상견례 전에는 좀 걱정이 되긴 했죠. 다행히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TV에서 저를 많이 봐서 조금 더 친근하게 맞아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사실 저한테는 최고의 사위라고 해주시지만 두 분 마음속에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 걱정을 하니까요.  

럭키 씨도 곧 부모가 되잖아요. 아이 맞을 준비는 잘돼가고 있나요.

아내는 입덧도 전혀 없었고, 건강하게 잘 지내요. 제가 럭키라서 우리 부부 운이 좋은가 봐요. 태명도 ‘럭키비키’라고 지었어요. 준비는 일단 당장 필요한 부분만 해놨어요. 한국은 아기를 키울 때 100일 문화가 있잖아요. 해외는 100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데,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거니까 100일을 기준으로 스텝 바이 스텝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 주말에도 킨텍스에서 열리는 베이비페어에 가요. 

태교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저는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24시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듣고 산책도 하면 그게 태교라고 생각해요. 꼭 동화를 읽어주고 클래식을 틀어줄 필요는 없잖아요. 태교는 해야 할 숙제도 아니고, 오늘 보는 수능처럼 정해진 기준도 없는걸요. 중요한 건 아내에게 일어나는 변화죠. 산후조리원에서 임신부 체험복을 입어봤어요. 10kg 정도 되는 옷을 잠깐 입어본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는데, 임신한 여자는 그 상태로 24시간 지내잖아요. 일단 무사히 출산하고 회복하는 데 신경 쓰려고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가 따로 있었나요.

“사귀자”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한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 워낙 둘이 공감 코드가 많고 같이 있으면 편해요. 외국인이 타향살이하면서 제일 힘든 점이 음식과 소통일 거예요. 아내는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고, 여행도 많이 다녀서 타지에서 지내는 외국인의 마음을 잘 알아요. 이해심이 많고 에너지도 넘치는 멋진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아쉽네요. 영화배우처럼 멋있게 “오늘부터 우리 1일이야” 이런 말을 했었다면 200일, 1000일 기념일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런 건 없어요. 

“결혼은 정답 있는 수능이 아니잖아요”

그럼 아내와 서로 지켜주면 좋겠다 정해놓은 규칙은 있나요. 

하지 말라, 혹은 해달라고 정해놓은 건 없지만 크게 다툰 적도 없어요. 영어 속담에 “Put yourself in other’s shoes”라는 말이 있어요. 남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면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겠죠. 제가 지금 하고 싶은 행동을 아내가 나중에 했을 때, 제가 받아주지 못할 행동이라면 저 역시 지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만약 정말 별로인 부분이 있으면 “그건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면 되고요. 서로 여러 부분이 다른데, 살면서 어떻게 불편한 점이 없겠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그런 불편함보다 행복이 수천 개 더 많아요. 어제 병원에서 백일해 주사를 맞아 지금 어깨가 뻐근한데도 멀리 봤을 때는 아이를 위한 거잖아요. 빅 픽처를 봐야죠.

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자라길 바라나요.

저나 아내나 여행을 좋아하고 먹고 자는 데 있어 가리질 않아요. 저는 홍어도 먹거든요. 럭키비키도 국경 없이 세상 어디에 가든 유연성 있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하나 더 바란다면 여러 언어를 할 줄 알면 좋겠고요. 저도 제 인생에서 한국어를 배워 여기까지 온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건 바람 정도이고 일단은 건강하게 만났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아이는 태어나 5년 동안 잘 키워주면 그 후로는 ‘오토파일럿 모드’로 자란대요. 럭키비키와 우리의 관계가 잘 형성되는 게 중요하고요. 본인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는 더 크면 느끼겠죠. 

럭키 씨 어머니가 참 멋진 분 같아요. 힌두교 집안임에도 럭키 씨에게 종교의 자유를 주기 위해 기독교 학교에 보냈잖아요. 

맞아요. 엄마는 100% 채식주의자예요. 인도는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많거든요. 그런데 고기 드시는 아버지와 결혼하고 나서 저한테는 자유를 주고 싶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고기 요리를 해주셨어요. 특히 힌두교를 믿는 엄마가 아이를 기독교 학교에 보낸다는 건 엄청난 일이에요. 크리스마스에 학교 연극을 하면 저한테 예수님 분장도 해주셨다니까요. 종교의 자유와 삶의 자유를 준 어머니한테 정말 감사하고, 저도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어요.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면 인도인인 제가 한국에 와서 소갈비 맛보며 살 수 있었겠어요?

2018년부터 운영해온 인도 요리 식당을 올해까지만 운영한다면서요. 또 다른 사업 계획이 있나요.

참 많은 추억을 남긴 곳인데, 식당마다 수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상권, 임대료, 트렌드 등 여러 고민 끝에 이곳은 정리하기로 했어요. 인도 요리를 조금 더 새롭게 접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다시 도전해보려고요. 반대로 인도에 한국 음식으로 진출할 기획도 하고 있어요. 저는 매일 24시간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인 사람이에요. 제 SNS에도 ‘The best plan is no plan’이라고 적어놓았지만, 미리 기획하는 일들이 없는 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일을 열심히 하면 계획하지 않은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올해 참 많은 행복이 찾아왔네요. 

걱정하는 분들이 많아 방송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올 3월에 자전거를 타다가 손이 부러졌었어요. 지금도 재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올해는 제 인생에서 행운이 가득했다고 생각해요. 비록 정든 식당은 정리하지만, 무언가 끝나는 게 있어야 또 새로운 시작이 올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밸런스가 좋은 해 같아요. 

#럭키 #인도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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