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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상속, 증여 분쟁 막는 지름길은 ‘효도계약서’” 고득성 공인회계사

정세영 기자

2025. 02. 04

평생 일궈놓은 재산을 지키면서 부모, 자식 모두 만족할 만한 상속 방법에 대해 물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돈 때문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 돈 문제로 얽히면 오해와 다툼이 일고 결국 원망과 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불화의 원인으로 ‘상속’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부모가 사망한 뒤 기대만큼 상속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경우 형제자매 간 싸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부모가 본인 사망 전 상속 관련해 미리 정리를 해둬야 하는 이유다.

자식 처지에서도 상속은 보통 부모님이 연로해졌을 때 알아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속에 대한 논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동안 여러 자산가의 상속 플랜을 전담해온 고득성 공인회계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받는 상속 상담은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산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려면 상속은 평상시에 미리 준비해놓아야 한다는 것. 상속을 질병이나 사고를 대비한 보험과 같이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상속, 증여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는 것은 부모와 자녀가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놓는 것과 같다. 자녀가 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교육하고, 상속과 증여에 대한 플랜을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사후에도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 특히 요즘은 1인 가구의 확산과 이혼, 재혼 변수 등으로 상속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

고득성 공인회계사는 삼성회계법인 대표파트너다. 삼성회계법인 대표이사, ㈜에이피알(메디큐브·널디)과 ㈜안랩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장, SC제일은행 PB사업본부장, CFP, AFPK 자격시험 및 한국금융연수원 국가자격시험의 출제위원을 역임했다.

요즘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열린 경제 캠프에서 유산과 부모님의 결혼 지원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 결과 응답자의 80%가 자신이 물려받게 될 부모의 유산을 기대한다고 답했죠. 70%는 결혼할 때 부모가 반드시 전세 자금을 도와줘야 한다고 답했고, 25%는 결혼 후 자신의 자녀 교육비까지 대신 부담해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인이 돼서도 부모의 지원은 계속되고, 유산도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고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씁쓸한 현실이죠.

성인이 됐을 때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많이 실망하겠네요. 부모와의 사이도 소원해질 거고요.
아이 입장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셈이죠. 실제로 어른이 돼서 부모에게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부모는 자녀가 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가족의 재산에 기대감을 심어주는 잘못된 교육은 사후 가족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어요. 돈에 대한 학습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겨질 자녀가 안정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부모 자산의 통제력 유지하며 자녀 지원

돈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해요. “부모의 돈은 네 것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얘기하는 거죠. 요즘은 부모의 돈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이로 인해 남의 것을 쉽게 생각하고, 빌린 돈을 갚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죠. 형편이 어려울 때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는 게 먼저가 될 수도 있고요. 따라서 부모의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주변에 보면 아이들 세뱃돈을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는 부모들이 꽤 많아요. 반대로 아이 스스로 돈을 모아서 사기로 한 물건을 부모가 덥석 사주는 일도 있고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녀들은 ‘내 것’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집니다. 부모는 자녀의 것을 인정해주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유산, 증여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맹목적으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해요. 그중 하나가 효도계약서입니다.

실제로 효도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많이 있나요.
지금까지는 주로 강남에서 활용되고 있어요. 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되 조건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다시 반환 요청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골자죠. 효도계약서는 원래 민법에 있던 조건부 증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생전에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효도’라는 조건을 붙이는 거죠. ‘결혼을 앞둔 아이에게 수억 원을 미리 증여해도, 부모가 원하는 의무를 저버릴 경우 모두 회수하겠다’ 등의 항목을 넣어 부모와 자녀 간의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효도계약서 작성 시 주의 사항이 있다면요.
반드시 구체적인 내용을 기재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내용보다는 누가 누구에게 증여하는지, 증여 시 매달 생활비는 어떻게 얼마를 받을 것인지 등을 디테일하게 작성하는 거죠.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거나 추상적이면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게 되고, 서로의 입장 차이로 소송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구체적인 방법을 목록화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 밖에 날짜, 이름, 사인을 명시해 증여자와 수증자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됐음을 확인해야 해요.

현금을 증여할 때는 효도계약서 작성에 더욱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증거가 없으니까요.
맞아요. 현금은 꼬리표가 없어요. 따라서 영수증을 꼭 구비해놓아야 합니다. 이 또한 다시 돌려받게 되는 조건을 명확히 기재해야 하고요. 예를 들어 ‘2025년 1월 1일부터 매달 25일에 아버지의 00은행 00계좌에서 150만 원을 이체한다’ ‘매월 1회 이상 부모님 댁에 방문한다’ 등 조건을 디테일하고 확실하게 기재하는 거죠. 이와 같은 조건이 명시되면 이행 여부를 계좌 내역이나 휴대폰 통화 내역으로 확인할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증여받은 재산을 회수한다’라고 써놓으면 됩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기입해야 효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요.

자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 부모의 경제적 기반을 지킬 수 있는 상속 플랜이 궁금합니다.
부모 스스로 자산의 통제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자녀를 지원하는 거죠. 대표적으로 부모가 소유한 부동산을 자녀를 통해 환급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부동산을 자녀에게 전세로 빌려주고, 부모는 자녀로부터 받은 전세 자금을 노후 생활비로 활용하는 거죠. 해당 부동산은 부모 사후에 자녀에게 이전한다는 내용으로 사인증여계약(증여자가 사망한 후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 계약)을 해두고요. 이를 행하면 부모는 상속 시점, 즉 죽을 때까지 재산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어요, 자녀는 전세 자금만 부담하면서 훗날 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안심할 수 있고요.

구체적이고 명확한 항목으로 유언장 힘 키워

요즘은 상속 관련 분쟁으로 가족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돈을 자식들에게 물려줬음에도 상속 이후 불화가 생겨 일순간에 모든 명예와 가치가 허물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이 같은 상황을 막으려면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놓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유언장은 죽기 직전에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잘못된 판단입니다. 가족의 동의가 없는 유언장은 자칫 가족 간 갈등과 반목을 가져옵니다. 재산 이전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고 자녀도 본인의 인생, 즉 재정 준비와 직장 생활, 사업을 장기적으로 주도면밀하게 계획할 수 있어요. 따라서 유언장과 상속에 대한 준비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평상시 가족들과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유언장을 완성해나가는 거예요.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필요에 맞는 재산을 정하고, 이해도를 높여야 합니다.

유언장만 쓴다고 모든 상속 분쟁이 해결되진 않죠. 유언장을 ‘잘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아요.
대충 쓴 유언장은 없느니만 못해요. 유언장 작성의 핵심은 물려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공평하게 나눠졌다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공평’은 재산을 5:5로 물려주는 단순한 개념이 아닌, 부모에게 기여한 정도에 따라 비율을 달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을 20년 넘게 모시고 산 자녀와 해외에 거주하면서 1년에 한두 번 보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는 함께 산 자녀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줄 가능성이 커요. 이는 누가 봐도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겠죠. 만약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특정인에게만 재산을 많이 남기면 유류분청구소송 등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 누구라도 최소한의 상속은 받을 수 있게 작성해야 하고요.

회계사님도 유언장을 쓰셨나요.
그럼요.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제 유언장은 꽤 재미있어요. 자녀의 나이, 상황에 따라 유언이 달라질 수 있는 조건 등을 붙였거든요. 또 저는 ‘재능 개발 투자 플랜’도 넣었습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자녀에게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예요. 아들이 20대 초중반일 때 선포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 나이 40세가 되었을 때부터 45세 미만일 때까지, 다음과 같은 조건 중 3개 이상을 충족하는 경우 아들의 요청이 있을 때 투자하기로 한다’ ‘투자액은 아빠 명의 순가족자산의 20% 이내로 한정한다’ 등의 원칙으로 만들었어요. 그 조건으로 ‘300인 이상의 기업에서 5년 이상 근무 또는 이와 유사한 근무 또는 사업의 형태로 부모의 승인을 받아 5년 이상 근무’ ‘본인 가족의 존경과 신임을 받으며, 아내 및 자녀가 2인 이상’ 등 해당 조항을 구체적으로 구성했습니다.

아이들 반응은 어떤가요.
생각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첫째 아이는 “자신이 원할 때마다 부모가 지원해주는 것이 아닌, 조건에 부합해야만 도움을 받는다는 마인드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책임감이 생긴 거죠. ‘아빠의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유언장을 작성했음에도 원치 않게 폐기되거나 내용이 수정될까 봐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유언장을 소신대로 작성하고 보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는 거예요. 신탁법상의 제도로 재산 주인이 생전에 예금,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을 금융회사에 맡겨 자산관리를 하다가 사후 고인의 뜻에 따라 상속을 집행하는 거죠. 특히 질병을 겪어 재산 관리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언대용신탁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생전에 본인 재산을 금융회사 등의 수탁자에게 맡기고, 이에 따라 발생한 수익을 본인이 수령하다가 사후에는 어떻게 할지 등의 계약을 할 수 있거든요. 본인 의료비, 간병비 등을 모두 충당한 이후 남은 재산을 물려주는 식으로 유연한 설계가 가능하죠.

유언장과 유언대용신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상속인이 사망할 때를 대비에 2차, 3차 상속까지 설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유언장은 본인 사망 시 재산을 누구에게 분배할지만 결정할 수 있어요. 상속인이 사망했을 때 그다음 순번을 지정하긴 어렵죠. 유언대용신탁은 예컨대 ‘나의 땅을 아내에게 넘긴다. 아내가 사망하면 큰딸에게, 큰딸이 사망하면 작은딸에게 넘겨라’와 같이 세대에 걸친 재산 분배가 가능해요. 또 상속인이 미성년이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 종종 발생하는 후견인 개입 문제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일정 나이에 도달하기 전까지 수탁자인 금융회사에서 재산 관리 후견인 역할을 해주거든요.

빚이나 채무의 대물림을 막는 방법도 있나요.
상속을 포기하면 돼요. 만약 부모님의 재산이 더 남았을 수 있다고 생각되면 한정승인을 추천합니다. 한정승인은 내가 받은 만큼만 채무를 갚겠다는 의미예요. 일부 재산만 상속받고 나머지 상속은 포기하는 거죠. 한정승인은 사망 후 3개월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모님 재산을 사용했는데도 이후에 상속을 포기할 수 있나요.
절대 안 됩니다. 사망 후에 피상속인의 카드, 현금 등을 쓰는 것은 상속을 받아들이고 이미 재산을 사용한 것과 같아요. 가끔 “사망신고 전에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 않냐?”는 질문을 받아요. 사망신고는 형식적인 행위예요. 모든 기준은 사망한 날과 시간에 맞춰져요. 만약 상속을 포기할 생각이라면 부모님 사망 후에는 그 어떤 것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상담하신 고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케이스가 있다면요.
몇 년 전에 20대 청년에게 메일을 받았어요. 1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가진 할아버지가 있는데, 자식 둘 중 본인의 아버지는 장남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약 30년 동안 할아버지를 모셨는데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먼저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몇 년 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죠. 그런데 할아버지가 남기신 100억 원을 미국에 사는 작은아버지가 모두 받았다며 상담을 의뢰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뒤 작은아버지가 어떤 문서를 건네며 할아버지 사망에 필요한 서류이니 어머니와 함께 인감도장을 찍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당시 너무 정신이 없고 작은아버지와 사이도 좋아서 의심 없이 도장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긴 상속협의분할서였던 거죠. 상속협의분할서는 상속인들 간에 상속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기록한 문서예요. 상속인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재산을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절차의 일환이죠. 이 문서는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한번 날인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이미 상황 종료라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어 너무 안타까웠죠.

상속과 관련된 피해를 줄일 방법이 있나요.
평소 상속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 말곤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상속은 부잣집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수십 년 상속 관련 상담을 해오며 느낀 건 ‘집 한 채, 땅 한 평, 몇천만 원의 예금일지라도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평생 쌓아온 재산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상속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가족 재산의 의미와 현명한 상속의 비결을 공부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상속 #재산분할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YTN 유튜브 KBS 여유만만 캡처 
‌자료제공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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