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틀꿈틀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밝았다. 예부터 신비롭고 관능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뱀을 향한 열망은 패션계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올봄에는 조금 더 특별하다. 친환경을 넘어 ‘필환경’ 시대로 접어들면서 동물의 가죽을 착취하는 방식이 아닌, 디지털 프린팅이나 신소재를 접목한 윤리적인 공정 방식을 실천하고 나선 것. 매년 자연을 벗 삼은 컬렉션을 선보이는 라콴스미스는 뱀의 비늘을 형상화한 파이톤 패턴 시폰 셋업들로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미를 만들었다. 한땀 한땀 수놓은 시퀸 디테일로 고혹적인 우유뱀의 비늘을 표현한 보테가베네타의 레드 드레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외에도 고전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발렌티노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비비안웨스트우드, 예술적인 프린트를 앞세운 로맨스워즈본의 피스들까지 선택의 폭을 넓히며 우리의 소비 욕망을 꿈틀거리게 한다.2. 인간 체리 레드
정열적이고 도전적인 레드 컬러는 스타일의 자신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번 S/S 컬렉션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갛게 물들인 인간 체리를 연상시키는 올 레드 룩이 연이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페라리는 동일한 레드 컬러에 명도와 채도, 질감을 달리한 톤온톤 룩으로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셔링이 풍성하게 잡힌 레드 드레스로 시선을 모은 발렌시아가와 레드 재킷과 팬츠 셋업 룩을 선보인 캐롤리나헤레라 역시 마찬가지. 반면 셔츠와 슬랙스, 트렌치코트 등 실용적인 오피스 룩에 레드 컬러를 한 방울 섞어 활기를 준 스텔라맥카트니와 슈슈통은 보다 현실적인 스타일링 답안을 내놓았다.3. 로맨틱 튀튀
지난해 이미 한 차례 패션계를 휩쓴 바 있는 발레코어 룩이 동면에서 깨어났다. 이번 시즌엔 발레리나의 상징인 튀튀 스커트가 대세로 떠올랐다. 시몬로샤는 춤추듯 넘실대는 풍성한 볼륨의 튀튀 스커트로 고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국내 디자이너 황록이 이끄는 록은 또 어떤가. 특유의 장기가 돋보이는 셔링과 드레이핑 기법으로 튀튀 스커트의 격식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끌로에의 둥글게 부푼 코쿤 실루엣 재킷과 튀튀 스타일의 셔링 스커트는 지금 당장 입고서 거리를 활보하고 싶을 정도. 여기에 튀튀에서 영감을 얻은 로에베와 JW앤더슨의 극단적인 후프 스커트까지, 그간 실용성을 기반으로 하는 평범한 하의의 개념에 머물러 있던 스커트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했다.4. 캄 다운, 체크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 체크 패턴은 사계절 내내 유용하지만 특히 봄, 가을 간절기엔 매일같이 손이 가는 아이템이다. 포멀한 룩엔 격식을 덜어주는 요소로, 캐주얼한 룩엔 포인트를 더하는 것이 바로 체크의 힘. 이번 시즌엔 드뮤어 트렌드의 영향으로 차분한 모노톤 체크가 런웨이에 이어졌다. 체크의 정수 버버리는 아이보리, 베이지 위주의 컬러 팔레트로 분위기를 이어갔고, 조르지오아르마니는 재킷과 베스트에 블록 체크 팬츠로 리듬감을 줬다. 슬리브리스 톱에 넉넉한 체크 팬츠로 활기를 부여한 마리암나시르자데와 크리스고이리, 블랙 & 화이트의 블루 체크 재킷과 팬츠 셋업으로 룩에 악센트를 더한 크리스찬디올도 눈여겨볼 만하다.5. 겹칠수록 좋아
이번 시즌 시스루를 입는 색다른 방식은 바로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이다. 가벼운 시스루 셔츠 위에 시폰 베스트를 겹쳐 입고 펜슬 스커트로 격식을 지킨 펜디의 룩처럼 말이다. 클래식의 대명사 샤넬은 전통적인 트위드 셋업 재킷 안에 풍성한 볼륨이 돋보이는 시폰 블라우스를 곁들여 여성미를 배가했다. 시스루 셔츠, 베스트, 스커트, 팬츠 등 동일한 컬러와 소재의 아이템을 겹쳐 입어 마치 한 벌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제이슨우와 케이트도 런웨이를 환히 밝히며 트렌드에 동참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비비드한 색감의 충돌을 즐기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설파한 가니도 있다.6. 치마와 바지 그 어딘가
팬츠의 반란이 시작됐다. 치마와 바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치마와 바지를 합친, 일명 스칸츠(skants)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하의가 패션 카테고리에 이름을 올린 것.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은 마치 팬츠 위에 스커트를 덧입은 듯한 형태의 스커트 팬츠다. 에르메스는 시스루 슬렉스에 윙 랩스커트를 레이어드한 것 같은 인상의 스커트 팬츠를 내세우며 트렌드의 선봉에 섰다. 이제 질세라 프라발구룽은 미니스커트 형태의 튜브톱과 팬츠가 결합된 스커트 팬츠 룩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쇼츠와 롱 팬츠 2개를 겹쳐 입은 듯한 하이크의 팬츠는 허벅지 아래로 떨어지는 풍성한 시폰 장식으로 스커트 효과를 톡톡히 냈고, 바닥을 쓸어 담을 정도로 긴 기장의 와이드 팬츠로 전형적인 바지 라인에서 탈피한 빅토리아베컴도 주목을 받았다. 코페르니는 아예 바지 한쪽이 잘려나간 듯한 비대칭의 원 레그 팬츠로 색다른 실루엣을 창조하기도 했다.7.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도 울고 갈 보헤미안 스타일의 대표 주자는 단연 이자벨마랑. 2025 S/S 컬렉션은 그야말로 보헤미안을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의 집합체였다. 스웨이드 소재의 프린지 장식 톱과 팬츠에 웨스턴 부츠까지, 마치 서부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발목까지 떨어지는 거대한 프린지 장식 드레스로 장관을 연출한 브랜드들도 눈에 띄었다. 가브리엘라허스트와 프로엔자슐러, 랄프로렌이 대표적인 예. 모델의 힘찬 워킹에 맞춰 프린지 장식들이 서로 겹치고 흘러내리며 유기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또 테일러링에 기본을 둔 디젤은 분쇄기에 넣은 것처럼 잘려나간 프린지 장식 재킷으로 보헤미안 시크 스타일을 재정의했다.8. 이토록 점잖은 고프코어
일상 속에서 아웃도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움직임은 고프코어가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다 가볍고 한층 점잖아진 고프코어 룩이 이번 시즌 절정을 맞았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건 마틴로즈. 모터사이클에서 영감을 받은 보머 스타일의 톱과 대조를 이룬 슈트 팬츠가 더없이 시크한 무드를 자아냈다. 오피스 룩으로서의 활용도도 무궁무진하다. 셔츠와 스커트 룩에 보머 재킷을 천연덕스럽게 매치한 라반이나 우아한 프린지 집업 재킷과 스커트 셋업을 선보인 구찌를 참고하면 된다. 사랑스러움을 한 스푼 추가하고 싶다면 튜브톱, 스커트, 보머 재킷의 조합을 따른 미우미우와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에 스커트, 집업 점퍼를 착용한 사카이의 믹스 매치도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2025패션트렌드 #을사년패션코드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라콴스미스 로맨스워즈본 마리암나시르자데 보테가베네타 비비안웨스트우드 슈슈통 캐롤리나헤레라 케이트 크리스고이리 하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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